한 아이 1 -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 한 아이 1
토리 헤이든 지음, 이희재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잘님의 우국충정 리스트가 비록 한회에 끝날지라도 그 첫회에 빛나는 책의 리뷰를 보고선 맘이 동해버렸다. 책에 대한 내용은 아주 특이할만한게 없었으나, 굳이 우국충정이란 칭호까지 내리며 골라준 미잘표 리스트라는데 의미가 있었고, 미잘님이 재미있다고 하면 그가 추천한 책을 아직 한번도 읽은적이 없으니 '정말?'이러면서 반신반의하게 됨에도 취향의 쫀쫀함을 맞춰보고 싶은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난 것이다. 옆구리 찔러 받아낸 책을 조금씩 아껴가며 다 읽어내려갔다. 처음에 뭐라고 써야할지, 쉴라의 이름을 먼저 불러봐야할지. 남들도 느끼고, 나도 잘 아는 감정 과잉과 내식대로의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틀이 아닌 것으로 써내려갔으면 좋겠다란 바람도 생겨났다. 

 아동교육 심리학의 영원한 고전이란 책 표지의 문구는 약간 낯뜨겁고 지난 30여년 동안 베스트셀러였다란 부분은 지난 30년을 살아온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풍겼다. 책을 읽기 전에 교육이나 논픽션의 이야기들은 어쩜 하나같이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는지 도식적인 플롯을 전수받는건 아닐까란 선입견과 아이가 일으키는 문제가 어마어마해야 선뜻 동의가 된다는식의 역시 도식적인 나의 입장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장을 넘겼고, 마법의 주문이 씌어지기라도 한듯이 마지막장까지 아껴가며 책을 다 읽었다. 

  토리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의 반을 맡아서 가르치고 있다. 이 아이들만으로도 버겨워 쩔쩔매고 있는 토리 앞에 어느 날 신문에서 다른 아이에게 불을 질러 다치게한 6살날 꼬마 쉴라가 배정된다.

 내가 파악한 정보에 비추어볼 때 쉴라의 신체활동은 정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감당해야할 싸움이 더 힘겨워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게 우리 손에 달려있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쉴라를 바르게 이끌지 못했을 경우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자폐증이나 뇌손상 같은 그럴싸한 방패막이가 없었다.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었다. 적개심으로 가득찬 그 눈 너머에는 인생은 결코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달관한 어린 꼬마 소녀가 있었다. 더 이상 거부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가급적 반감을 사는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그러니 쉴라가 보이는 애정결핍 증상은 본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치는 그렇게 간단했다. -43p

 고함을 지르고, 금붕어의 눈을 연필로 파내고, 다른 아이들을  위협하는 쉴라, 토리 선생님은 쉴라의 과격한 행동 너머에 있는 따스한 내면을 아직 접하지는 못했지만 쉴라의 놀라운 지능과 이 아이가 겪어왔던 일들을 떠올리며 기다려준다. 마침내 그녀가 토리에게 맘을 열어준 아주 짧은 순간을 목격한다.

 쉴라가 커다랗고 끈적끈적한 덩어리를 마지막으로 고물에 묻힌 다음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쉴라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번지면서 아랫니 빠진 자리가 드러났다. - 80p 

 토리는 내가 책에서 봐왔던 다른 선생님과는 다르다. 뛰어나게 전문적이지도 않고, 헌신적이거나 사람의 능력 이상을 지닌 것처럼 위대한 사람도 아니다. 도리어 내가 아이들을 접할 때와 마찬가지로 어쩔줄 몰라하고, 쉽게 상처 받으며, 순간 순간 고민한다. 쉴라를 대할때도 이 아이를 완전히 바꾸겠다거나, 깊은 절망으로 자신을 몰아내며 흥분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다른 관계를 바라보듯이 쉴라를 보며, 자신이 하는 일을 통해 자신도 성장해 나간다. 토리 선생님의 면면은

  나는 진정한 사이가 좋거든. 내 눈에 정직해 보이는 사람은 어린아이 아니면 미친 사람뿐이었어. 그러니 여기가 마음에 들 수 밖에. -214p 

라며 휘트니에게 털어놓는 마음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래서 난 쉴라만큼 토리 선생님이 좋아지고 말았다. 헐리우드 영화처럼 극적인 화해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점층적인 갈등이 대단원의 막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아닌, 한 아이만의 논픽션이 함의하는 장점을 의도적으로 직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투박한 구성마저 맘을 두드렸다.  

 아동교육 심리학의 고전이란 말은 잠시 잊어도 좋다. 교육학의 면모를 보는게 아니라 쉴라를 따라 내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치료되고,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테니. 누구에게도 맘을 주지 않을 작정으로 반감을 살만한, 다른 누군가를 상처줄 수 있는 가장 지독한 방법을 터득한 쉴라는 조금씩 변해간다. 자신의 상처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말하는 모습, '너도 결국은 나를 떠날게 아니냐.'라며 토리 선생님을 윽박지르는 모습, 성폭행으로 갇혀있던 몸을 내려놓고 엉엉 울던 모습은 층위는 다르지만 마찬가지의 상처와 기억을 갖고 있는 내 몸과 마음에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쉴라가 자신의 말들을 풀어가며 사람들이랑 친해지면서 이 아이 안에 얼마나 많은 영롱한 빛깔의 에너지가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 선생님이 옆에 있으면 난 좋아질텐데 왜 못그러겠다는거죠? 

- 널 좋게 만드는건 내가 아니라 너니까 그렇지. 내가 여기 있는건 네가 올바르게 사는지 안 사는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너한테 알려주기 위해서였어. 네 생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단다. 난 어딜가나 너한테 관심을 둘거야. - 296p

 쉴라와 토리 선생님은 어린 왕자를 읽어가며 자신들의 관계를 책에 비추어 성장해간다. 어린왕자를 많이 읽어온 내 눈에도 이토록 생생하게 삶 속에 깃든 책이란 의미에서 내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래, 심장은 늘 뛰어왔고, 내 가슴은 늘 떨려오고 있었지.   

 그건 우리가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에요. 책에 그렇게 나와있죠? 여우를 길들이느라고 어린 왕자가 고생고생했는데 나중에는 어린 왕자가 떠난다고 여우가 막 울었잖아요....... 언제나 밀밭을 생각하면 되니까 괜찮다고 여우가 나중에 말했구요. 맞죠? - 297p 

 아무도 서로를 길들이지 못할거라고 믿어왔고, 나 역시 누구에게도 길들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누구보다 더 길들임을 당하거나 길들이고 싶었더란 것을 쉴라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길들임에는 책임이 따르겠지만 고생고생해서 길들였는데 헤어지면 막 울어버리고 무너지겠지만 길들이는 관계란 기억을 먹고 한뼘쯤 자라날 것을 믿는다. 쉴라가 그랬고, 쉴라를 보는 아주 오래된 아이인 나도 그렇고. 어린 왕자를 통해 관계를 조명하는 한 아이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쉴라가  토리 선생님의 생일날 선물을 준 부분이 아닐까 싶다. 토리 선생님은 생일날인데도 다른때보다 더 떠들고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 때문에 다른 날보다 더 울적해있어서 아이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는 벌을 준다. 이제 조용히 할 수 있는 사람만 고개를 들라고 말을 했는데, 

 쉴라는 머리를 숙인채 가만 있었다. 

- 쉴라, 너도 일어서야지. 

 하지만 쉴라는 머리를 감싸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 옆으로 가서 앉았다. 

- 선생님도 이젠 화가 풀렸어. 일어나서 놀아도 된다니까. 

- 여기 있는게 선생님한테 드리는 제 선물이에요. 나머지 시간은 여기서 조용히 있을래요. -303p

 우리 맘을 건드리고, 손을 뻗게 만드는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작은 몸의 쉴라는 내 안에 들어와 지금 바로 사소한 몸짓을 해보라고 충동질 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네 안에 예전에 나와 같은 마음이 있었구나, 그런데 조금 불편해하는거 같구나.'라고 무심하게 말을 건넬 뿐이다. 내 안에 있는 쉴라가 가끔씩 내게 무심하게 말을 걸어올때면 나도 그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겠지. 사랑을 받지 못한 쉴라가 나중에는 어떻게 사랑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 사소했을 만남을 구원한건 바로 그 '사소함 자체'가 아니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뷰리풀말미잘 2009-03-3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름드리미디어에서 상 받아야 할 거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반 어거지로 책 읽히고, 리뷰받아내고.
ㅎㅎ 생각해 보니까 속지에 '아치님께 드림'도 못 썼네요.
음..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

Arch 2009-04-01 00:24   좋아요 0 | URL
아름드리미디어말고 내가 상 줄게요. 밥상? 영상? 진상? 그 중에서 제일은 진상이니 가끔씩 제 진상을 받아주셔요.
쑥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