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사람과 산에 오른적이 있다. 이 분은 너무나도 가볍게 오르는 산을 나는 내 다리가 아닌 듯이 질질 끌며 오르는데 애시당초 정상은 꿈도 안 꾸고, 오로지 약수터까지만 가는데 목표를 두며 부지런히 라마즈 호흡법을 구사했다. 그때 내가 라마즈를 알리는 없었고, 계속 미친듯이 헥헥댄 것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몇걸음도 안 걷고 계속 쉬면서 지나가는 분들에게 계속 물어댔다. 왈왈.(하이 유머랍니다.)  

- 저기, 약수터, (헥) 정상말고 약수터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헥) 가야하나요. 

 등산객들은 하나같이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냥 내려가라고, 약수터는 택도 없을거라고 못을 박았다. 너무 숨차하니까 그런가보다 싶어 온건한 숨소리로 다시 여쭤도 같은 대답만 들려줬다. 산을 자주 타는 사람들은 한 눈에 약수터 체력, 정상 체력이 나오는걸까? 아니면 어디냐고 묻는폼이 믿음이 안 간 걸까? 아니면 또 약올릴려고 그러시는걸까. 등산객들의 말뿐 아니라 산 근처에서 사시는 분의 말씀도 웃겼는데, 

 산의 초입 부분에 빈집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길래 꿈만 야무지게 나중에 산 속에 산다는 아치인지라 선뜻 여쭤보았다.

- 빈집인가요. 

 그랬더니 그분은 빈집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지 않고, 혼자 웃으시면서 등산로가 아닌 길을 가리키며 저기로 가보라고 하셨다. 이건 무슨 놀림일까 생각하다, 아차, 우리가 빈집으로 숨어들어 뭔가를 하려는 등산객 남녀로 본거구나란 생각에 미치자 산에 살면 센스도 좋아지는구나 싶어 더더욱 산 깊숙히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아무튼, 다시 호명산으로 돌아와서 

 계단을 오른 후 가파른 산을 다시 올랐다. 무릎이 당기고 턱끝까지 숨이 가파오기 시작했다. 맥박이 귀에서 뛰다가 머릿 속으로 곧장 돌입, 머리까지 쿵쿵 울려댔다. 게다가 날은 오지게 추워 손이며 얼굴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수족냉증이 있는지라 조금만 차가워지면 머릿 속까지 하얘졌는데 그날이 딱 그랬다.  

 이런 얘기를 그날과 다음날에 쓰려고 해놓고선 미루다가 임시저장된게 날라갈 것 같아 지금에서야 부랴부랴 마무리 중이다. 요약하자면 난 정상은 커녕 두번째 쉼터에서 그래도 호수를 봤다고, 너무 무리하면 건강에 안 좋다고 이것저것 갖다붙인 이유를 대고선 산을 내려왔다.  

 산의 초입에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고, 분별없이 짖어대는 유원지의 개들과 누군가 버린 그 아이들을 키우는 아저씨랑 산 얘기를 했고, 오랜만에 문방구에 들려 옥찌에게 쓸 편지지를 사기도 했다. 누구가 청평에 간다면 쁘띠 프랑스나 아침고요수목원을 구경하면 좋을거라고 소개를 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난 조금 힘에 벅차게 호명산을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연의 숨결을, 대지의 기운을 받아서란 식의 수사는 낯간지러운데다 내 자신이 미력해 그렇게까지 느껴보진 못했으니 거창한 이유를 대기는 곤란하다. 이제 막 캠핑족들에게 들켜서 여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산을, 여름이 되기 전 시간을 내서 찾아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란 생각 정도.  

 유원지를 관리하는 아저씨가 인생의 굴곡을 비켜선 몇십년을 그 산에서 함께 했듯이 묵묵히 산을 오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흔한 편의시설도, 친절한 표지판도, 까딱하면 멧돼지에게 습격당할지도 모르지만(멧돼지가 다니는 길에 들어서지 않으면 문제 없다고 한다.) 예전에 있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내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따로 살갑게 끌어안아주지도 않는 호명산. 산 중턱 즈음에서 숨을 몰아쉬면 바람에 실려 무심하게 하품하는 호랑이 소리를 들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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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는 당연히 내 몫인줄 알았다. 내가 요리를 제일 잘하고, 아니 요리를 하는 어떤 동작을 제일 비슷하게 흉내낼줄은 알고 그나마 사먹지 않고 직접 해먹는 축으로는 유일한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났다. 재빠르게 움직이고, 손을 놀려 뚝딱 음식을 만들어내는가하면 유아용 보리차로 물을 끓여먹고, 들어보지도 못한 요리법으로 새로운 음식을 금세 만들어냈다. 조용한 저녁에, 뭔가에 홀린 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자 환하게 웃으며 맛은 없겠지만 좀 먹어볼테냐며 음식을 권한다. 

 가끔씩 인사를 나누고, 느즈막한 금요일 밤에 맥주를 나눠마시며, 그 와중에 폭탄주를 제조한다며 설레발을 치는 나를 말리며 우린 조금씩 친해졌다. 그런 와중에 그녀가 부모님이 없으며, 나보다 어리고,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고, 나는 나대로 답 안 나오는 것들이 참 많다며 한탄스러운 신세 비슷하게 흐르는 얘기들을 나눴던 것도 같다. 저녁 무렵에 조금 싸게 파는 식재료를 잔뜩 사와서 잔치를 하기도 했고, 모양 안 나오는 부침개를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우두커니 앉아있길래 술이 땡기는가보다란 말을 들어본적이 있으며 나보다 이곳에 오래 산 그녀에게 지역 정보를 주워듣기도 했다.  

 그녀를 처음 본 후부터 줄곧 그녀로 인해 내가 어른이 된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녀가 막무가내거나 자꾸 '언니'란 호칭을 남발해선 아니었다. 안간힘을 쓰면서 자기 삶을 혼자 지탱해나가야하는, 비빌 언덕이 없는 앙상한 어깨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어려서 직접적이었던 사무침은 그 아이가 뭐든 잘 먹을때도,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할때도, 심지어는 음식을 멋들어지게 만들어낼때도 꾸준히 그랬다.  

 어제는 신나게 떠들다 이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펑펑 울었던 얘기를 했다. 친구 결혼식에서 술을 좀 많이 먹었단다. 마침 예전에 짝사랑하던 오빠도 보이고, 오랜만에 마음 맞는 친구들을 보니까 즐거웠단다. 그러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괜히 눈물이 삐질삐질 새어나오더니 급기야는 엉엉거리며 울었다고.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래서 술이 깨고난 후 민망해서 혼났다고 웃으며 말하는데 그 맘,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엄살이고, 별거 아닌 일들일 수 있다며 나보다 안 힘든 사람이 어디있냐며 자꾸 자신을 추스리며 견뎠을테지. 그러다 잠시, 아주 잠깐 맘을 내려놓을 때 밤과 남의 시간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기 맘을 채가는 순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어린 네가 참 고되었겠구나.  

 벌어진 틈새로 뭐가 보일지 모르겠지만, 줄곧 행복하기만을 바란다는 공수표는 남발하지 않을게. 가끔씩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게 다지만. 

 도마 소리가 들려서 나가봤더니 그녀가 에디오피아의 케이와 같이 얘기를 하고 있다. 둘은 뭐가 신났는지 자꾸 떠들고 웃었다. 그러고보니 먼 곳에서 온 케이와 그녀의 나이가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인데 그래도 동갑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은 다른 관계보다 좀 더 진할거야. 깔깔대는 소리가 듣기 좋은 저녁이다.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며 입술에 부드러운 핑크를 바른 그녀가 오늘따라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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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4-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알 거 같은데요~~

바람돌이 2009-04-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울고싶어 울때 옆에서 가만 가만 어깨를 다독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건 참 행복한 일이지요. ^^

Arch 2009-04-03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아시는구나^^
바람돌이님, 그렇죠? 나도 그런 누군가가 있다면 참 고마울텐데.

무해한모리군 2009-04-0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순간 ㅎ
 

 주말에 군산을 다녀오면서 부쩍 커버린 듯한 옥찌를 보니까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가 없어도 잘 자라니 다행이다 싶다가도 서운하기도 하고. 다행인 감정 쪽으로 맘이 기울긴 했지만 가끔씩 위태롭게 느껴질때도 있다. 식탁에 앉아 엄마표 인삼 딸기를 홀짝이면서 먹는데 옥찌가 다가와 언제 가냐고 물었다. 그래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갈거라고 했더니 아쉽다란 말을 한다. 

 아쉽다란 말은 놀이를 하다가 그만 하자고 할 때 옥찌가 자주 쓰던 말이다. 누군가와 헤어진다고 아쉽다고 말하거나 떼쓰지 않던 옥찌라 그 말이 계속 맘에 걸렸다. 안정적 애착을 표하지 않는 이 아이 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이해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자격지심이 범벅된 맘 때문인 것 같다.  혹은 '아쉽다'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인지도. 

 우리는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웃고 웃음 끝에 대롱대롱 달린 즐거움을 따먹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옥찌와 내가 찍은 사진을 동생에게 보내려고 하자, 옥찌가 직접 문구를 생각해줬다. 

- 엄마, 집에 빨리 들어와. 문자 보내니까 즐거워? 사랑하고 행복해. 

 정말 그런 감정을 알고 말하는걸까? 하긴 이건 나한테도 물어볼 수 있는 말이겠구나. 정말 알고 쓰는거니, 아치? 

 동생은 사진 속 옥찌와 내가 닮았단 소리를 한다. 그럼, 옥찌 이모인걸. 옥찌에게도 엄마 얘기를 전하자, 활짝 웃는다. 그러면서 같이 그림을 그리자고 종이를 가져와 나를 그린다. 여전히 속눈썹 세개인 이모, 신발 속 발이 비치는 이모. 내가 부모님에게 불만을 갖았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내가 옥찌에게 채워줄 수 있을까,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 채워지진 않겠지만 그것마저도 못해줘서 미안했다. 

 아이들이 오는 시간 전에 집을 나서며 옥찌에게 메모를 남겼다. 서울에 도착해 그걸 보고 옥찌가 울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조급하지 않게, 인생은 짧지만 여지껏 살아온만큼 길테니 심호흡 크게 하고 옥찌랑 살아야겠다. 같이 살아야할 많은 이유들과 변명들은 모두 지우고 나를 위해서 옥찌랑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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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04-0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와요. 우리 언제 얼굴 보죠?

Arch 2009-04-02 18: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언제 보죠? ^^

순오기 2009-04-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모하고 너무 정들면 안돼요~ 나도 그런 이모였지만... ^^

Arch 2009-04-03 02:01   좋아요 0 | URL
으음, 모르겠어요. 정말.

LAYLA 2009-04-0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뻐라...:)

Arch 2009-04-03 20:05   좋아요 0 | URL
으음^^
 
8월의 크리스마스
허수정 지음 / 예술시대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학생들은 술렁이고 있었다. 군산에서 영화촬영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학교가 있는 월명동에서 몇분 안 되는 골목에서. 그 당시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던 심은하와 접속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한석규. (내 기억의 연대기가 확실하다면) 영화 촬영을 보고 온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한석규는 평범하게 생겨서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구분이 잘 안 된다고 했지만, 심은하만큼은 너무 작고 예뻤다고 했다. 너무 작고 예쁜 여자가 나오는 영화는 어떨지 궁금했지만, 그다지 영화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뭔가에 떠밀려 해야하는걸 싫어하는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군산의 어디가 나왔는지 얘기를 할때도 관심이 없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니. 제목부터가 좀 유치한거 아냐?


 시나리오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는 주제 얘기를 하면서 이 영화를 언급하셨다. 이 영화의 주제가 뭔줄 아는 사람. 당연히 학생들은 아무것도 안 씌어진 노트를 뒤적이고, 니가 말하라며 짝꿍 옆구리를 찔러대기만 했다. 뻔한 수작이 나올줄 아셨던 선생님은 질문을 바꾸셨다. 이 영화에서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건 아마 파를 씻는 장면일거야. 혹시 기억나는 사람. 어떤 언니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공감을 표현했고, 학생들 사이에선 동요가 일어났다. 넌 기억나냐, 난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 술렁술렁. 나로 말할것 같으면 그때 두번이나 봤던 이 영화에 그저그런 평을 내린 상태였고, 물론 기억을 못했다.

 두번째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볼때까지만 해도 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껏 동적인 사건이래봐야 둘이 놀이 공원 간게 다인, 심심한 영화. 두번째 볼때까지만 해도 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정원을, 그의 주위를 맴도는 다림의 맘에 다가가지 못했다. 사는게 퍽퍽한 것도 아니었다고 자부해왔는데 멜로랑은 뭔가 맞지 않는다는 잠정적인 결론까지 내려놓고 있었다.

 세번째 8월의 크리스마스.

 나는 분명히 정원이 꾹꾹 파를 씻는 장면을 봤고, 정원의 썰렁한 농담을 시작하려는 순간 다림이 그의 팔을 잡았을 때 나온 노래를 기억하고, 그 순간 내 팔이 움찔거렸던 느낌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림이 놀이공원 가면 공짜로 놀 수 있다는 말을 흘리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살풋거리는 맘으로 봤고, 만땅 3000원에선 어깨를 들썩였다. 다림이 정원보고 왜 자기만 보면 웃냐고 묻는걸 보고, 자는척 하고 있다가 차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드는걸 보고, 다림인 꽤 앙큼하구나란 생각도 해보았다.

 나는 정원이 그의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주면서 분통을 터트리는 순간을, 동생과 수박씨 멀리 뱉기를 하다 그 둘 사이에 흘렀던 침묵을, 술먹고 죽자고 해버린 정원을,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그들 각자가 가진 쓸쓸한 표정을, 웃으면서 영정 사진을 찍은 정원을 기억한다.

 나는,

 다림이 파견근무 나간 곳을 찾아가 그녀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던 정원의 손을 기억한다. 흐려진 손은 내내 잔상으로 남아 모든 순간의 배경이 되어 살아나고, 살아질 것을 안다. 다림의 사진이 사진관에 오랫동안 걸려져 있을 것처럼.

-선생님, 파를 씻는 장면이 왜 중요한가요?

- 죽음 앞에서 일상의 작은 일들, 너무 사소해서 따로 관심도 두지 않았던 일들이 소중해지는 얘기를 하니까. 삶의 촉수들이 작은 빨판을 곤두세우며 자신에게 말을 거니까.

 세번째 8월의 크리스마스로 난 아마 한동안은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허준호의 모든 영화를 봤지만,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풀어놓은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물론 봄날은 간다는 참 좋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보여준 아릿거리는 풋풋함보다야 못했다. 너무 일찍 와버린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어느 날 너무 일찍 내게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삶과 사랑,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죽음 후에는 추억 상자도 사라질텐데 그때 남는건 과연 뭘까, 무언가를 남기려는 시도는 무용한게 아닐까.  

그런데 심은하, 너무 예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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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처럼 2009-04-02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버지역의 신구가 자는 척 하며 침을 꿀꺽 삼키는 장면이 너무나도... 우리는 다들 죽는데 말이죠. 그걸 다들 잊고 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살아가는 건지도...

Arch 2009-04-02 01:23   좋아요 0 | URL
나무처럼님 반가워요.
아, 그 장면이 생각날듯 말듯, 전 다시 네번째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봐야겠어요.
모두가 다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의 일이 아닌 듯 사는게 나은건지 아닌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어요.

turnleft 2009-04-02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이 영화, 어제 읽은 <쓸쓸함의 주파수>랑 맞닿아 있네요. 손에 닿을 듯 비켜간 인연의 애뜻함이랄까...

Arch 2009-04-02 03:14   좋아요 0 | URL
새벽이 아니죠, 거긴?
턴레프트님, 그 영화 제목은 처음 들어보지만 으응, 그럴 것 같아요.

turnleft 2009-04-02 03:24   좋아요 0 | URL
여기는 이제 오전 11시랍니다 ^^;
영화는 아니고 단편집이에요. 오츠 이치.

Arch 2009-04-02 03: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읽었다란 말까지 읽어놓고선 영화 어쩌고 해버렸으니... 새벽 세시에 바람은 안 불지만 제 머리가 좀 비어가는 중이라.
우리 사이엔 9시란 강이 흐르네요.
 


 

 혼잡한 지하철이었다. 대개는 러시아워를 피했는데 그날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입성도 칠칠치 못한 채로 지각 면피용 달리기 끝에 가까스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미어터질려고 했다. 신촌에서 신도림을 걸쳐서 신림까지. 신자로 시작하는 2호선의 난코스. 신촌에서부터 갑갑했던 지하철은 신도림쯤에서 좀 나아지려나 했더니 더 밀려선 옴쭉달싹도 못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옆사람의 입김까지 거칠게 전달되는 순간, 어? 이게 뭐지. 하반신 근처에서 어떤 움직임이 감지됐다. 슬쩍 부딪힌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비비고, 비트는 느낌.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성추행? 에이 아니겠지.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리고 내가 고개만 들면 얼굴을 볼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겠어?

 움직임은 끈덕지게 계속됐다. 정말이지 대놓고 손이었다면 손을 꺾거나 손을 꽉 잡아서 이제껏 암기해온 욕들을 한바가지로 해줄 생각이었지만 대체 이 움직임을 뭐라고 말해야한단 말인가. 슬쩍 팔꿈치에 힘을 실어 그 ㅅㄲ의 몸을 제쳤다. 다른 쪽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떻게든 해야해. 나만 당하는게 아니잖아. 누군가는 또 피해를 당할거라고. 증명할 수 없다는건 말이 안 돼. 어서. 악이라도 쓰라고.

 나는 살아오면서 작게든 크게든 많은 성추행에 노출돼 왔다. 그럴때마다 호기심이거나 별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해왔다. 내 불쾌감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악을 써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이 더 크게 작용했다. 비겁했고, 무지했다. 추행의 기억이 차곡차곡 포개지면서 다음번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으리 결심을 하며 질펀한 욕들도 외워보고, 강제로 키스하려고 하면 입을 쫙 벌려서 틈을 안 보이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 기상천외한 방어에 대한 후문에도 귀를 기울였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목소리도 좀 커졌으니까 행여나 성적인 바운더리를 훼손하는 일이 생긴다면 간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침묵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지도 못했고, 고함을 지르지도 못했다. 다만.

 신도림에 도착해 사람들 틈에서 뻥소리나게 튀어나와선 그 사람을 노려보는 것 밖에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눈이 작고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과 섞이면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평범한 얼굴에 조롱을 담은 표정. 성추행을 당한 순간보다 더 지독한 무기력과 분노가 밀려왔다. 욕이란게 난생 처음 입 밖으로 나왔다. 분해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를 향하기보다는 내 내부로 불쾌함이 쌓여갔다. 왜 나는 대항하지 못했나. 왜 제발 네 욕망을 내 몸에서 떼라고 왜 말하지 못했나.

 성적인 훼손을 받은 사람의 가장 큰 자괴감 중 하나가 자신이 아무것도 못했다는 무기력이라고 한다. 난 힘이 센 여자였을 수도 있고, 괴력의 소녀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번연히 성추행을 할 수 있었던건 아저씨가 용가리 통뼈여서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틀 안에 갇혀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살아보면 엉덩이를 바짝 앞으로 당긴 후 발 뒤꿈치로 걷어차 상대방의 급소를 공격할 수 있을까? 두꺼운 머리로 박치기를 시도해볼 수 있을까? 고함을 지를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성적인 수치심과 노골적인 추행에 노출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혹은 이건 네 잘못이 아니라, 상황이 좋지 않았단 위로라도. 그래, 혹은 정말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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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4-0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추행의 기억이 더 끔찍해지는 건, 말씀하신 대로 무기력했던 나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보거나 듣거나 할 때도 그때의 기억을 반복해서 재생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니 정말 엿같은 일이죠.

Arch 2009-04-01 23:53   좋아요 0 | URL
평안의 마노아님에게서 엿이란 소리가 나올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킹콩걸의 비르지니 데팡트의 말처럼 이런 엿같은 일은 빨리 잊을수록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요. 자기 책임을 묻는건 너무 어처구니 없는데도 성적 침해에 있어서 피해자들은 늘 셀프플레임으로 더 지난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04-01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억에는, 더 어린시절의 지저분한 기억도 몇 개 있지만 언제 어디서라고 확실히 기억나는 수준은 아니고, 저도 성추행을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번은 펍에서 일할때 서빙하는데 어느 놈(인지 년 인지) 뒤에서 엉덩이를 만지더군요. 오, 그 지저분한 느낌이란.. 하지만 너무 피곤했고, 바빴고, 정신이 없어서 그 순간엔 별 생각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요 한적한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달려오더니 뒤에서 꼭 껴앉는거에요. "흐흐 * **** **"(자체심의) 라고 하면서요. 허허허허허허허.. 그런 노땅 손목 관절 하나쯤 뽑아버리는 거나, 콧잔등 몇 센치 주저앉히는건 일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 아무것도 못하고 한 5분쯤 멍때리고 서 있었던 기억이 있네요.

성폭력이 (어쩌면 모든 종류의 폭력이)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닌데 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을 더 혐오스럽게 느끼는 걸까요? (따지는 거 아닙니다.ㅋㅋ) 아마, (사회적이고 육체적인) 약자에게 상대적 강자가 행사하는 폭력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왜 어릴때도 고만 고만한 녀석들이 싸우는 것 보다 쎈 놈이 약한 놈 괴롭히는 게 더 재수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군대의 성 폭력은 참 심각한 문제죠. 아, 전 정말 그런 건 못 참아요. 애 새끼건 어른 새끼건.

하긴, 약자가 강자를 추행하는 일은 별로 없겠죠. 제가 최홍만같은 덩치에 그런 외모를 가졌다면 감히 그 녀석이 저를 뒤에서 껴앉았을리는 없었을거에요. 제가 서빙 알바가 아니라 지배인이었다면 제 엉덩이가 안주거리가 됐을 일은 없었겠죠. 흐..

마노아님 말씀처럼 성폭력은 참 엿같은 일이에요. 그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내 사회적, 육체적 위치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거든요. 미모로운 우리에게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대안이란게 겨우 급소공격과, 박치기와, 고함밖에 없다니 역시 '엿같은' 일입니다.


Arch 2009-04-02 00:06   좋아요 0 | URL
미잘님, 사회적 약자 가운데 여성에 대해 쓴거라 그렇게 봤을 수도 있겠네요.
글을 올리고나서 좀 더 생각을 정리해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모든 폭력, 특히 자신의 우월한 힘을 과시하려는 폭력은 모두 혐오스럽죠. 성폭행이나 성추행은 자기 바운더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치졸한 폭력의 일종이고, 실은 성폭력이나 성추행의 주체가 여성이 될 수도 있는거겠죠. 그런 의미에서 그간 관습적으로 행해졌던 폭력적인 행동에 대한 다른 입장을 써보고 싶었는데 말씀했던 것처럼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네요.
군대내 성폭력과 문화에 대해서는 경험해보지 않고,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어요. 이건 여성주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을 볼때의 시각이랑 비슷하다는 것 인정해요. 잘 알 수는 없지만, 미잘님이 제 페이퍼에 공감했던 것처럼 이 문제에 있어서도 동의해주고 지지해주는게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섣부르게 그러면 모병제 하자느니, 군대문화를 전면적으로 바꿔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말이죠.
성폭력의 가해자는 쾌감보다는 상대방을 굴종시키고, 지배했다는 만족감, 자신이 물리적 힘에서 우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변태(다른 의미의 변태는 환영함^^)란 의미에서 정말 shit이죠. 자꾸 어떤 대안이 있을까, 이런쪽으로 생각이 흐르고, 그런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란 위악도 떠오르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좀 놔두려구요. 그냥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