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러 그런 곳에 가는 거야?"하고 사람들이 물어도, 그저 그것이 나한테 필요해서, 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프랑스 문학을 만났던 젊은 날의 기억을 버리지 못해, 사르트르나 니장이 살던 파리의 카르티에 라탱이라는 곳에 한 번쯤 서보고 싶다, 브위헐, 고야, 고흐,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할 기회를 스스로 허락한 것이다.

 유럽 각지를 석 달에 걸쳐 걸으며 홀린 듯이 미술 작품을 보고 다녔다.

 예컨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고야의 <검은 그림> 방에서 멍하니 긴 시간을 보냈다. 나도 고야처럼 괴로워하고, 고야처럼 싸우고, 고야처럼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야는 궁정화가였으나 자유주의를 신봉했으며, 나폴레옹군이 그 자유주의를 조국 스페인에 가져다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나폴레옹군의 포악함을 눈앞에서 보면서 <전쟁의 참화> 시리즈를 남몰래 제작했다. '근대'로 가는 입구에 서서 그 명과 암을 지켜 본 그는 스스로 마음이 찢겨 죽었다. 50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 쓴 것이었다. 중학생 때처럼 글을 쓰는 것으로 자신을 객관화하고, 그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나라는 존재에게 어떤 의미에서든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미술이라는 거울에 비춘 나에게 공감해줄 독자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도 있었다. 51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고향 」의 말미에 적어둔 루쉰의 이 말을 "명량한 언설로 앞길의 광명을 생각하며 걷기 시작하는 잗르의 구령처럼 인용하는" 예가 많다고 나카노 시게하루는 지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읽는 이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희망은 없지만 걷는 수밖에 없다.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야기이다. 루쉰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이야기한다. 암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카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견인불발의 중국 혁명가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략) 여기서 희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짙은 어둠과, 어둠 그 자체에 의해 필연적으로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한 실천적 희망과의 살아 있는 교착, 교체를 '문학적'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루쉰의 정치와 문학의 결합을 나카노 시게하루는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라 부른다.

 

 거기에 거의 서정시 형태로 된 그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 있었다. (중략) 루쉰의 문학이 문학으로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러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에 있다.

 

 시란 무엇인가?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란 무엇인가? 지금도 나는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길이 그곳으로 뻗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라 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걷는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태도가 아니다. 효율이라든가 유효성이라든가 하는 것과도 무관하다. 이 길을 걸으면 빨리 목적지에 닿을 테니 이 길을 간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요컨대 이것은 승산의 유무나 유효성, 효율성 같은 원리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것은 시인의 언어이며 그것이 서정시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절망'을 말할 때도, "이런 짓을 해봤자 아무런 희망도 없어, 절망이라고"하는 것과, 루쉰이 말하는 '절망'과는 같은 단어이지만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말에서 절망밖에 읽을 수 없건만,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이렇게 느낀다고 말한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어떤 일이 있어도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지, 하는 것 이상으로 (중략) 일신의 이해, 이기라는 것을 떨쳐 버리고, 압박이나 곤란, 음모가들의 간계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견뎌내며 어디까지나 나아가자, 고립되고 포위당하더라도 싸우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곳으로 간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을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루쉰이라는 중국의 시인을 만나, 한 사람의 일본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가 감동을 받았다. 여기에 동아시아 근대사 속의 만남이 지닌 실낱같은 가능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 사회에 나카노가 루쉰으로부터 배운 것을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이가 존재할까? 큰 의문이다. 전후 한 시기에 보였던 그런 '가느다란 가능성'은 이제 소멸의 낭떠러지에 있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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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2-14 14:49   좋아요 0 | URL
저도 <시의 힘>은 따로 페이퍼를 만들어야하나 고민중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 적었더니 a4지 열 장도 넘더라구요. 이웃분들께 스크롤의 폭력을 행하는건 아닌지 걱정되더라구요^^

2016-02-14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02-14 17:50   좋아요 0 | URL
쑥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책은 그냥 선택되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제목이 눈에 띄어 뽑아보는 일이 있을지라도 '읽게 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도 누군가가 좋다고 해서 꺼내 들었지만 꽤 오래 시루었다. 인연이었는지, 떠나지 않고 곁에 있다가 오늘에야 결국 제대로 만났다고 해야 하나. 아침인 줄 알고 잠이 깬 자정부터 시작해 꽤 재밌게 대여섯 작품을 읽었다. 

 

1931년생 앨리스 먼로가 1968년에 낸 첫 작품집이다. 책날개의 사진이 노년의 앨리스 먼로라, 당연히 이 책도 5,60대의 먼로가 썼겠거니 했다. 마흔도 안되어 이런 작품들을 써내다니, 작가로 태어난 사람이구나,한다. 30대 후반이 이런 통찰력으로 작품을 써낸 곳이 어딘지, 괜히, 지도에서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찾아 보고, 주빌리도 찾아 본다.

 

 50여년 전의 작품인데, 오늘을 읽은 것 같다. 순간을 포착하는 시선은 예리하고 서술은 담담하다. 무료한 인간은 무료하게 지루한 풍경은 지루하게 그렸다. 상처있는 인물들을 건드리고 위로하는데, 설교하지 않는다. 상황을 보여 줄 뿐이다. '죽음 같은 시간'의 퍼트리샤나 '위트레흐트 평화조약'의 매디는 현실을 직시하는 자체가 상처가 된다. 상처를 외면하는 것은 내면의 고통을 키운 뿐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볼 수가 없다. 그 자체가 너무 큰 고통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그들의 상처를 보며 자신의 상처를 돌아본다. 그렇게 먼로는 삶의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독립적인 공간을 원하는 주부 작가. 농장에 사는 여자 아이, 오래 병을 앓는 어머니를 모신 딸, 무료한 시골의 일상에서 한 번 놀만한 상대를 찾는 젊은이들...

 

사람과 풍경이 빼곡한데, 참 황량하다.황량하다 고 쓸쓸해 하는 내게 먼로는 말한다.

"사람은 저마다 제각각의 풍경으로 살아가게 마련이랍니다."

 

 

작업실

 

집은 남자가 일하기에는 아주 좋다. 남자가 일감을 가져오는 집은,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고 일하기에 딱 좋도록 남자 중심으로 새로 배치할 수도 있다. 남자에게는 일이 있다는 걸 누구나 알아준다. 따라서 으레 전화를 받는 일도, 어디 두었는지 모를 물건을 찾는 일도, 아이들이 왜 우는지 알아보는 일도, 고양이 먹이를 주는 일도 기대하지 않는다, 방문을 닫아 걸어도 무방하다, 방문이 닫혀 있고 그 방 안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아이들이 안다고 생각해 보라.(생각해 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용납하기 어려울 테니까. 여자가 허공을 응시한 채,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엉뚱한 곳을 바라보는 건 자연의 섭리를 저버린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길 테니까. 그러니 여자에게 집이란 남자와 같은 곳이 아니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13

 

태워줘서 고마워

 

나는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로이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속으로는 도대체 기대고 있으면서 경멸스러워하고, 순순히 따르면서 성이 나 있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서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여자애라니. 그 때 나는 만지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데, 그건 당찮은 바람이었다. 몸을 만지는 일보다 대화를 한다는 게 로이스에게는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152

 

 

서로 떨어져서 무지근한 몸으로 각자 검불을 털어내고 매무새를 가다듬고, 헛간을 나와 달은 졌으되 그루터기만 남은 평평한 밭들도 미루나무들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음을 발견하고, 그 무모한 여정을 끝낸 다음 한기에 오슬오슬 떨던 우리도 여전히 그대로라는 걸 발견하고, 차로 돌아가 두 사람이 널브러져 자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트리스테(쓸쓸함)이다. 트리스테 에스트.(쓸쓸해지는 것이다)

 그 무모한 여정. 처음이라서였을까? 술기운이 알딸딸하게 올라서였을까? 아니다. 그건 로이스 때문이었다. 사랑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조금만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꽤 멀리까지 가서 신비주의자처럼 아주 많은 것을 내던지기도 한다. 그 사랑의 신비주의자, 로이스가 이제는 꼬깃꼬깃 구겨지고 추운 모습으로 완전히 자기 안에 갇힌 사람처럼 자동차 좌석 한쪽 끝에 앉아 있었다. 내가 로이스에게 하고 싶었던 모든 말들이 머릿속에서만 요란하게 헛돌고 있었다. 널 보러 또 올게, 기억해, 사랑해 이런 말들을 또 하지 못했다. 우리 사이에 놓인 공간을 절반조차도 제대로 건너지르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다음번 나무 앞에서, 다음번 전신주 앞에서는 말하리라 나는 마음 먹었다. 그러나 번번이 못했다. 다만 도시에 더 빨리 닿도록 속력을 높여 무섭도록 차를 빨리 몰았을 뿐이다.    158

 

죽음 같은 시간

 

이 집도, 나무로 지은 나머지 다른 집들도 페인트 칠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물매가 가파른 지붕마다 덕지덕지 땜질을 했고, 좁다란 베란다들은 비스듬히 기울었다. 굴뚝마다 장작 연기가 피어 올랐고, 유리창에 짓누르고 있는 아이 얼굴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집들 너머에는 군데군데 갈아 놓은 밭과 풀이 무성하고 돌투성인 나머지 땅이 가느다란 띠처럼 늘어져 있었으며 그 뒤로 오종종한 소나무들이 서 있었다. 앞쪽으로는 마당과 메마른 텃밭과 시내로 통하는 잿빛 고속도로가 있었다. 눈이 왔다. 고속도로와 집들과 소나무들 사이로 눈은 천천히 고루고루 내렸다. 처음에는 커다랗더니 차츰차츰 작아진 눈송이가 딱딱하게 굳어진 밭고랑에서도 땅에 박힌 바위에서도 녹지 않았다. 204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그해 겨울은 예전에 헛간 앞에서 엄마가 꺼냈던 그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듣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몹시 불안했다.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유유히 흐르는 생각의 물줄기가 이 한 가지 주제에서만큼은 곁길로 새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계집애라는 말이 아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이 천진난만하고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생각 같았다. 계집애는,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냥 본디부터 타고난 내가 아니라 어떠어떠하게 되어야 마땅한 존재였다. 계집아이를 규정하는 말은 언제나 강다짐과 꾸지람과 실망의 뜻으로 덧칠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언젠가 레어드와 싸우면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적이 있었다. 그런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뿐 아니라 팔을 눈 깜짝 할 사이에 동생에게 잡혔는데 움쭉달싹도 할 수 없었고 무척 아팠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몇 주일 묵을 때면 으레 듣는 말들은 또 어떻고.

 "계집애가 그렇게 문을 꽝꽝 닫으면 못쓰느니라."

 "계집애는 다리를 모으고 앉아야 하느니라."

그보다 더 심한 말을 들은 건 내가 질문을 했을 때였다.

 

"계집애가 그건 알아서 어디다 쓰게."

 그래도 나는 계속 문을 꽝꽝 소리 나게 닫았고, 되도록 다리를 쫙 벌리고 볼썽사납게 앉았다. 그것이 내 자유를 스스로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221

 

이 근방에는 농장만 있을 뿐, 플로라가 내쳐 달아날 야생 지대가 없다. 더욱이 아버지가 돈을 주고 플로라를 산 것은 여우에게 먹일 말고기가 필요했기 때문이고 우리가 먹고살자면 여우를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짓은 가뜩이나 뼈 빠지게 고생하는 아버지를 더 고생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내가 한 짓을 알게 되면 아버지는 앞으로 날 믿지 않을 거였다. 온전한 아버지 편이 아니라고 여길 테니까. 나는 플로라 편들어 주었고. 그로써 나는 누구에게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심지어 플로라에게 조차. 그렇다고 해도 후회스럽지는 않았다.플로라가 나를 보고 뛰어왔을 때 나는 열린 문을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231

 

위트레흐트 평화조약

 

"괴기스러운 우리 엄마 말인데, 이젠 나도 지칠 대로 지쳐서 엄마를 그냥 두거든. 엄마를 사람답게 만들려고 기를 쓰는 일 따위 이젠 안 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매디는 신앙심이 깊어서 자기희생이라는 희열과 전면 포기라는 강력하고 신비로운 마력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352

 

지구상 어디에도 주빌리로 통하는 편한 길이 없었으므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큰길과 샛길을 거쳐 온 탓이다. 353

 

"여기가 엄마네 집이에요?"

 나는 딸아이의 목소리에서 착잡한 실망감, 뭐랄까 체념한 듯한, 아니 벌써부터 체면하고 있었던 듯한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전설의 근원이라는 데가 도대체 신통치 않고 안쓰럽고 악착같은 현실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찰나의 무미건조함과 이상야릇함이 오롯이 담긴 목소리였다.354

 

행복한 그림자의 춤

 

그럴만도 한 것이 마살레스 선생님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아이들을 대했기 때문이고, 고지식한 이상주의자의 인자함은 선생 노릇을 하는 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없이 자상하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는 투로 지적하는 것 말고는 꾸중이라는 걸 할 줄 몰랐고 칭찬할 때는 허무 맹알하리만큼 치켜세우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보기 드물게 열심히 노력하는 제자조차도 훌륭하다 할 만한 실력을 익히지 못했다.383

 

기적을 믿는 사람은 정말로 기적이 일어날 때 법석을 떨지 않는다.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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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짧다.그러나 `시`라는 형식을 빌리면 21세기 일본 사회를 살고 있는 나라는 인간이 80년 전의 루쉰, 60년 전의 나카노 시게하루, 그리고 조국의 과거 시인들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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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할 수 있다.5쪽

-세상엔 좋은 책이 왜이리 많은지.새삼 행복함을 느낀다. 소설로 너무 달린다 싶어 한 템포 쉬어가려고 시의 힘을 펴들었는데, 머리말과 첫 페이지, 둘째 페이지를 읽는 순간 온 몸의 세포에 슬픔이 꽉 차버렸다.

어제는 친구한테 까이고 슬퍼하고 있는데, 구세주가 나타나 캐롤도 보여주고 화요도 사주고 독토까지 해서 기분 이만땅 좋았는데. 배터리 없어서 마지막 한 통화를 위해 꺼둔 전화기 땜에 또 식구를 넘 속상하게 하였다. 주말일정까지 꼬이고. 안 그럴려고 딴에는 노력하는 편인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 나오면. 한 번 자리에 앉으면. 도무지 다음 일을 생각안하는게 병중의 병이다. 그러느라 어제 남기고 온 연어사시미가 눈 뜨자마자 생각날건 뭐람. 국물이 좋고 우동면까지 입에 감기던 오뎅탕도! 홍대 이자카야 주가노 주방? 안주 맛이 일품이던데...ㅎㅎ 이상하게 술 마신 다음 날은 술 생각이 더 난다.

후둑후둑 또. 비님이 오신다. 아침에 친구에게서 받은
예쁜 톡이 아니었다면 오늘 하루 종일 사경을 헤매었을 듯.

친구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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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를 찾아라
배혜경 지음 / 수필세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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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떠나있던 알라딘 마을을 다시 기웃 거릴 때였다. 어떤 글을 읽고 어, 이 분. 내가 아는 그 분이 아닌가. 했더니 역시 그 분이었다. 그녀는 배혜경에서 프레이야가 되어 있었다. 이름을 가리고도 분별이 되는 무엇. 그녀의 글에는 색깔이 있다. 향기라고 해도 좋고 리듬이라고 해도 좋을 독특함은 그녀가 가진 고유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많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저만의 고유함을 가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행위하는 주체가 분명한데도 주체의 개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창작하는 사람들의 고뇌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이미 어떤 경지를 이루었다고 보아도 좋겠다.

 

 그녀는 일상을 단단히 직조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그런 일상에서 꾸준히 우물물을 퍼내듯이 글을 써왔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맡기도 하고 누가 뭐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꼼꼼히 하기도 하면서 주어진 일에는 책임을 다했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중국인 거리>가 생각났다. 오정희 선생님은 일과 생활을 잘 병행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중국인 거리>에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잘 닦은 툇마루의 감성이 있다. 오래 먼지를 쌓아두다가 어느 날 하루 맘 먹고 북북 닦아 봐야 나올 수 없는 그런 반짝임. 헌신과 꾸준함의 나날들이 반짝이는 툇마루에는 쌓여있다. 울툭불툭 변덕 부리지 않고 자기 앞의 생을 꾸준히 고르게 살아 온 사람의 단정함. 이렇게 말하면 그녀가 쪽지고 하얀 모시저고리 입고 툇마루에 앉아 있는 이미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아서라. 그녀는 뜨거운 여자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2부는 유년의 기억과 성장과정 그녀가 살아 온 이야기들, 에피소드에 이어지는 심상들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위대함은 누추한 삶을 구원해 줄 청모 입은 손님을 기다리며 살아 봄 직한 삶을 이어가는 데 있다. 자만과 자책으로 착각과 권태가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고 하수구의 비누거품처럼 싸구려 욕망이 들끓을 때면 청포도 한 알 한 알을 굴려서 깨물어 볼 일이다. 우리의 시절,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에. 45

 

 뒤집어 볼 일이다. 잘 유지되는 좋은 관계는 정말 하고 싶은 속내를 얘기하지 않는 경우에 많다고 한다. 사실과 속마음을 다 드러내는 게 과연 옳을까. 처음부터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며 살면 과연 더 좋을까. 송어가 노니는 물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수면 아래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일 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가면을 건네주면 그는 진실을 말할 것이다."75

 

얼마 전의 일이다. 솔직하려고 하다가 동티가 난 일이 있었다. 나는 잘 덮어두는 걸 좋아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냥 내 입으로 다 털어 놓는 일이 다반사지만, 일단은 덮는다. 그래서 남들이 의뭉스럽다고 말할 지도 모를 비밀을 지니고 사는 편이다. 가족에게조차 사생활이 중요해서 남편이 모르는 절친도 많다. 다 까발리고 나면 허전해서 살 수가 없다. 남들에게 솔직함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솔직한 사람이 오히려 부담스럽다. 좀 모른척하고 사는 일이 아름답다 여긴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는 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체, 그렇게 다 표현하고 사는 사람이 말하지 않는 비밀은 뭐래?...흠, 암튼, 누군가 나에게 솔직하라고 하면 폭력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솔직은 나의 문제다. 상대가 요구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이런 나의 격한 감정을 이렇게 순연하게 표현해주었다.

 '송어가 노니는 물처럼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수면 아래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3부는 짧고 긴 기행의 흔적이 소담히 담겨있다.

 

눅눅했던 운동화가 보송보송해져 있다. 발바닥으로 온후한 태양의 온기가 퍼진다. 잰걸음으로 선착장을 향하는 오후 두 시의 태양은 뜨겁고 다른 섬으로 향하는 내 가슴은 오히려 서늘하다. 무형의 바람이 가슴에 한동안은 불어 댈 테고 마음을 좀 더 열어 두라고 귀엣말할 것이다. 동서남북 전 방향의 출발점, 섬은 소유를 사양하지만 세상을 다 가진 듯 무량하다. 113

 

꽃이 지듯 매미 소리가 지듯 시간도 진다. 매달려도 부질없는 일이다. 지는 꽃송이에서는 사랑이 송가가, 지는 매미 소리에서는 생명력의 찬가가 들린다. 124

 

나무는 혼자 서서 시간의 무게를 견딘다. 사람은 홀로 서기에는 너무 무기력하고 권태로운 습성에 젖어 있는 건 아닐까.

"차라리 우리 이 나무에 목을 매달까?"

고고를 디디가 만류하고 그들은 다시 기다림을 선택한다. 나무에 목을 매다는 대신 어깨동무를 하고 서로 돌보는 편을 택한다. 그것이 무기수의 생을 견딜만한 놀이로 바꾼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 간다.

 기다림은 그리움의 다른 말, 미련한 환상인지도 모른다. 그 환상 마저 불가하면 무엇으로 버틸 수 있을까.

"심장이 뛰는 한 기다리겠어요. 당신과 함께라면 좋겠지요. 내일은 꼭 그가 온다고 하니 한 손에는 꽃을 들고 있을까 해요." 138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여행을 해도 될만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그만한 가치로 표현하고 글로 그 아름다움을 나누는 사람은 여행에게도 사람에게도 가치를 더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한답시고 돌아다니기는 하는데, 좋다. 죽인다. 술 가져와라. 이런 말만 남발하는 나님을 반성하게 하는 이 깊이!)

 

4부와 5부는 영화와 연극 감상기, 문학관 기행기다. 5부는 여느 다른 에세이집에서 볼 수 없는 특화된 꼭지다. 최명희 문학관, 요산 김정한 문학관, 이병주 문학관을 다녀와서 그녀가 성심을 다해 쓴 글들인데, 문학관이라 하면 떠오르는 어쩔 수 없는 진부한 감상들을 깨는 반전이 있다. 문학관 하면, 내가 가진 이미지는 잊혀지고 죽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공간을 가보고 싶은 곳으로 바꿔 놓았다. 그 사람을 알고 사랑하고 공감하려한 그 다감함에 다시 한 번 그 작가에 대해 그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탐방기 정도에도 그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읽혔다.

 

 나는 보랏빛 우체부가 되고 싶다

 기산여고 3학년 때 전국문예콩쿠르에서 장원으로 당선 된 수필 <우체부>의 결문이다. 여고생 특유의 몽상가적 문장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최명희는 우체부가 주는 "흐뭇하고 서민적인 평화를 좋아한다"고 썼다.188

 

전시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작은 나무책상이 창가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그 위에 명함과 메모지가 방금 누군가의 손이 닿은 것처럼 놓여 있다. 가운데에는 꼼꼼히 기록하여 만들어 둔 단어장들이 누렇게 빛바랜 색을 하고 열람되어 있다. 작품 속에 낱낱이 드러나는 향토색 짙은 단어와 생생한 현실의 언어는 이런 꼼꼼한 습관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204

 

그녀의 글은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하나의 사물, 하나의 사건, 하나의 풍경을 보더라도 그녀는 다각적인 사유를 한다. 그런 겹을 깔끔한 문장에 다 담아내려는 그녀의 열정은 처음 한 두 편에서 좀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논리적이고 명징하기만 문장을 구사하기에 그녀는 너무 예술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다음 책에선 그런 감성이 좀 더 산만하게^^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세상에 생산되어지는 모든 것은 궁극의 쓰레기다. 박경리처럼 박완서처럼 쓸 것 아니면 글을 써서 세상에 내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왕 태어난 거야 할 수 없지만 가능하면 지구한테 죄 짓지 말고 조용히 덜 남기고 가자 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쓰레기를 생산해낸 것일진대, 나는 지금 쓰레기 앞에서 숙연하다. 그녀의 책이 나오고 내가 그 글을 읽고 그녀가 누군지 알겠고, 또는 모르겠고, 여기서 거기서 과거에서 현재로 이렇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니 공감하고 찡하다. 어떤 한 문장에서 맺힌 게 풀어지고, 그냥 좀 더 살아볼까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좀 위로가 필요했다. 이런 내 마음을 떼어가고 또 보태주는 책이 있어 다행이다.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음..다시 읽어 보니 내가 그녀와 백만년전쯤부터 알고 있고, 백 번쯤 만난 친구라고 오해할 만한 글이다. 나는 그녀와 서재지인이고, 한 달여 전 야나문에서 있었던 소심한 출판기념회에서 딱 두어 시간 얼굴을 마주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글이 뻥은 아니다. 나름 직관과 토..통...찰..력..을 동원..해 썼을 뿐....   (..  ). 그렇다. 그녀와 나는 책으로 오래 오래 만났다. 백 번쯤이라고 해도 비밀이나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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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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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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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2-12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실시간 답글..감사합니다..^^..아 일해야 하는데 알라딘 이웃분들 서재만 돌아다니네요 ㅎㅎㅎㅎ

2016-02-12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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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2-1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좋아요를 백만번은 누르고 싶은 리뷰에요.^^

2016-02-12 17:05   좋아요 0 | URL
군더더기란 표현 적확하지 않아 수정하고픈데 집이 아니라. 난감. 제 뜻은 전달 된거죠? 어휘를 넘어선 ㅋㅋ

꿈꾸는섬 2016-02-12 17:08   좋아요 0 | URL
깊은 사유..풍성한 나무..충분히 공감가는 이유이긴한데 역시 군더더기는 부정적으로 보이긴 하네요.ㅎ 어떤 단어로 바뀔지 궁금해요.

2016-02-12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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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0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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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12: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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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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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생님께 참 죄송한 날이다. 마음이 하루 종일 그랬다. 잠자기 글렀다. 오후에 진한 커피를 두 잔 마셨고. 책수다를 실컷 떨어서 마음이 흡족하기도 한 탓인가. 못 잘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 친구가 욕심 없는 두 여자의 얘기를 해주었고, 그 중 한 명이 나인 것 같았는데. 내가 욕심 많은 것, 욕심 많은 그 친구도 알테지만, 네가 비정상이야.라고 말해주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친구가 있어 정말 좋다. 고맙다.친구야.

열흘만에 로스의 여섯 작품을 읽고도 지금 더 못읽어 환장한 마음인 나는. 잠시 로스랑 밀당하느라 폼잡느라 문학의 고고학을 읽는다. 미셸 푸코의 문학강의.라니 문학 강의.라는 말이 매우 환장하게 좋다. 한 단락에 환장이라는 말이 두 번. 이로써 세 번 나오다니. 역시 나는 오버 캐릭터인가 보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아이라가 하루 내 순간 순간 자꾸 생각났다. 마음이 아팠다.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의 인물들 중 한 명에게 감정 이입이 되거나 작가의 입장으로 읽어질 때 글이 잘 읽히는데, 결혼했다에서는 아이라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의 무엇이 나의 무엇과 통했을까. 오래 생각하고 싶다. 그의 삶이 쉽게 받아들여졌듯이 나의 삶도 쉽게 받아들이고 싶다. 고 생각하니 내가 왜 내 삶을 못 받아들였나 답이 좀 알아지는 것도 같다. 나는 그 같은 사람인데 그처럼 못.안사니까 스스로가 마음에 안드는 거다. 이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고 좋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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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2-12 00:32   좋아요 0 | URL
책수다, 참 진지하고도 똑 부러지게 하시던 모습 생각나요. 생의 이면을 바라보는 시선도 넉넉하다고 느꼈던‥ ^^

2016-02-12 0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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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6-02-12 00:43   좋아요 0 | URL
다행이예요. 휴우~
잘 읽어주셔서 너무나 고맙습니다!! 쑥님의 통찰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2016-02-12 0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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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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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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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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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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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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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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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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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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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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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1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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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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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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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11: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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