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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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이벤트 신청해서 천명관 작가의 작가와의 대화에 다녀왔다. <고래>를 읽고 충격 받고 잊을 수 없었던 그 이름. 천명관. 사실 <고래>이외에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다른 소설도 읽지도 않았고. 단지 <고래>에 실렸던 삭발의 작가 모습만 떠오른다. 다소 강해 보였던 그의 이미지. 세상엔 소년의 모습으로 나와 앉아 있다. 어쨌든 나는 <고래>를 이사람 저사람에게 선물했고 누가 재밌는 소설 있냐고 물어보면 늘 <고래>라고 대답했다. 시나리오작가 생활을 10년간 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런데 7년만에 나왔다는 단편집이 너무 얇아서 맘에 안들었다. 대신 표지 디자인과 그립감은 좋았다. 만만했다. 가방에 넣고 다니기도 좋을 것 같고. 한 권 사서 같이 간 친구와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앞에 두 편 정도를 읽고, 집에 와서 나머지를 읽었다. 나는 <고래>를 관통했던 괴기스러운 환상성을 좋아하는데, 앞의 두편에선  그런 느낌은 없었다. 집에 와서 나머지를 다 읽으면서 천명관스러움을 찾았다. 여기저기 발표한 단편을 묶은 것이라서 그런지 색깔이 확확 바뀌는 느낌도 있었고, 무거운 느낌과 가벼운 느낌이 섞여 있어 책장이 잘 넘어 갔다.

 

'사자의 서', '동백꽃',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핑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자의 서는 공감이 확 되었고, 동백꽃은 질펀함이,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 노동자는 7,80년대 잘 쓴 단편을 읽는 느낌이었다. 핑크는 괴기스러운 환상성이 어느 정도 보여서 좋았다. 작가의 새로운 장편이 읽고 싶긴 하지만, 장편이 아니어도 좋았다. 책이 안나오는 것 보다는 나오는 것이 백배 낫다. 출판되어지는 모든 것은 궁극의 쓰레기라는 관점에서 봐도, 이런 책 쯤은 나와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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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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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하루키랑 밀당을 하며 읽는 느낌이었다.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정도까지 말 하고 어느 선까지 말 안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서 쓴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문맥 사이에서 하루키가 말 하지 않은 진실이 무엇일까 무엇을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일까를 찾아 가며 생각하며 읽는 긴장감이 굉장했다. 쿨함으로 포장한 내밀한 이야기.

 

하루키는 본인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지만, 굉장히 승부욕이 강한 사람. 예민하고 철저히 자기를 감추는 사람. 절대로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 난 하루키의 산문집이 참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그 자자체는 거의 조금도 변한 것이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 보스턴 만을 향해 소리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줄기는 강변을 적시고 푸른여름 초목을 무성하게 하고, 물새들을 키우며, 오래 된 돌다리 밑으로 빠져나가, 여름 하늘의 구름 모습을 물 위에 띄우고(겨울에는 얼음을 띄우고)딱히 서둘러 급한 걸음을 재촉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쉬어가는 여유도 보이지 않고,여러 검증 과정을 거쳐오며 굳어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관념이라도 지닌 듯 그저 묵묵히 바다로 향해 간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이 항상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하루에 한 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 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 이었다. 적어도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 얘기하지 ㅇ낳아고 괜찮고, 누구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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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 욕망하는 인문적 통찰의 힘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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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어야 할 일이 있었다. 도서관 인문학 강의를 듣는데 필요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역시나 두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말았다. 철학책은 늘 시도하지만 혼자 읽기는 버겁다. 개념 정리도 안되고, 번역투의 그 문체는 정말 읽히지가 않는다. 결국 책을 못 읽고 강의를 들었는데, 있는 것은 무엇이고 없는 것은 무엇이냐. 여러분이 본 것이 정말 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등등의 질문을 받고 멘붕에 빠졌다.

 

하지만 난 늘 이런 식의 화두를 혼자서도 생각하는 편이고, 이런 질문들을 좋아하기에 수업이 재밌었다. 유명한 데카르트의 명제에 대해서도 뭔가 더 알아진 기분으로 만족했다. 그런데 강의 말미에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째 동양 철학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동양철학과 데카르트를 비교해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늦었고 그 질문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 찜찜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찜찜함이 해소되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백프로 인지는 검증 되지 않지만 스스로 이해했다고 느끼는 것이 어딘가. 철학책이라면 두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과거의 전례에 비춘다면 말이다. 어쩜 이렇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해줄 수가 있지? 동서양의 사유들이 달콤한 꿀처럼 혀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쉬운 비유와 반복. 기초부터 단계별로 확장해가는 강의 기법? 입말로 씌여있어서 시리즈물 티비를 시청하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자아실현'. 이 책은 자아실현의 방법에 관한 책이다. 자아실현이라는 단어도 구닥다리가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내 삶의 목표는 자아실현이었다. 요즘의 세태는 어떤가 자아실현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왠지 현실감 없고 뜬구름 잡는 못난이들 취급을 당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도 자존감을 잃고 방황하기 일쑤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나 보다. 자아를 확고히 세우고 눈치보지 말고 멋대로 내질러라.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그런 인간이 많은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사회라고 말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확고한 자아가 내지르는 멋대로는 건강성과 이타성을 당연히 가지고 있을 테고, 누군가 시켜서 하는 억지로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잘함이 모이면 당연히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책에서 강조했는데 또 사회 걱정이다.ㅎㅎ 나만 잘 살면 다 잘산다라는 나의 신념에 신념을 불러 넣어 준 책.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가벼우면서 농밀하다. 나도 추천 받아 읽었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에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상상력이나 창의성은 이념이나 가치관의 굴레를 벗고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서 스스로 우뚝 섰을 때 움트는 것입니다. 인문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입니다.인간이 이 세계에서 움직이며 형성하는 결이지요.이 세계에 살면서 생존을 효과적으로 잘 도모하고 자신만의 의미로 충만한 삶을 영위하려면 가장 근본적으로 이 무늬의 청체를 알아채고 느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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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반양장) - 박노해 사진 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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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가 부암동 어디께였던 거 같은데, 우연히 지나다 작은 공간에서 열리는 박노해 사진전을 본 기억이 있다. 아, 이렇게 다니시는 구나. 하고 조용하고 소박한 그 공간에서 한참을 있었다. 우리 시대에 치열한 혁명가로 '노동의 새벽'으로 기억되는 시인 박노해.

 

<다른길>은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라오스,버마,인디아,티벳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나라이름이나 나눔이 부질 없을 정도로 한 풍경 한 마음을 담고 있는 사진과 글들이었다. 잔잔한 감동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사진 한 장 한 장 글귀 하나 하나가 모두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이정표 앞에 서면 항상 길을 잃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이정표는 그의 인생의 화두라고 했다. 시인이 걷는 길은 이정표가 없는 길. 시인은 마음의 지도를 따라 온종일 온 세상을 걷고 있다. 그에게도 시인을 따라 이정표 없는 길을 가라고 하고 싶다. 세상 끝 간데 까지.

 

하루 일을 마치고 노을이 물든 마당에 모여 앉아
수확한 감자와 갓 볶아 내린 향긋한 커피를 마신다.
'아이가 자라서 라당의 농부가 되면 좋겠어요'
밭을 밟고 오르며 농사짓는 것 몸이 좀 힘들 뿐이지만
남을 밟고 오르는 괴로움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지요.
늘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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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 - 폭식하는 알바트로스와 히치하이커 애벌레
제럴드 더럴 지음, 김석희 옮김 / 우리학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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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동물 친구들(my family and other animals).

 

'미치는 데에는 분명 미치광이들만이 아는 즐거움이 있다'-드라이든, <스페인 수도사>

 

제럴드 맬컴 더럴은 영국의 야생동물 연구가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동물원에서 키운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자연보호 방법을 개척한 선구자로서 그는 이후 많은 야생동물 보호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가 야생동물 보호가가 된데는 어린 시절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살았던 시기가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 책은 그 5년간의 시절을 회상해서 쓴 것이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마라. 손님을 대접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천사를 대접한 이도 있었느니라'

<히브리서> 13장 2절

 

대럴의 가족은 모두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후에 작가가 된 큰 형 래리는 자신의 개성 넘치는 손님들을 그리스로 불러 들인다. 화가나 작가, 음악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 집에 방문한 손님들 조차도 아주 이색적인 캐릭터 들이었다. 대럴이 묘사한 래리의 손님들 때문에 나는 한참을 웃고 말았다.

 

'즐거운 사람은 오래 산다고들 하지만 비참한 사람은 그보다 하루 더 오래 산다'

니콜라스 유달, <랠프 로이스터 도이스터>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동물친구들이 주요 등장인물이지만, 작가의 가족과 주변인들 또한 책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작가 가족의 그리스인 친구들은 마치 가족처럼 그들의 곁에 있었는데,

책을 읽었는지 영화를 봤는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묘사가 섬세해서 읽는 내내 유쾌하고 상쾌했다.데럴의 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작은 아씨들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끊이지 않는 일상의 소동들과 자연과 벗하며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작은 천국을 발견했다.

 

이 책에 나오는 동물 친구들에 대한 데럴의 섬세하고 사려깊은 묘사는 그가 왜 야생동물보호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는지 알게 했다. 그리고 왜 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도. 그의 글을 읽노라면 동물과 인간에 대한 시선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곤충이든 그저 그렇게 섞여 사는 존재일 뿐.

 

작은 따옴표는 책에서 인용함.

새우는 날 것으로 먹으면 포도처럼 단맛이 났다.

점심 시간이 되면 우리는 주린 배를 안고 해변에 모였다. 레슬리는 불룩한 사냥 자루를 들고 왔다. 그 자루에는 피에 젖은 토끼들. 자고새와 메추라기, 도요새와 숲비둘기가 들어있었다. 테오도레와 나는 작은 생물들이 들어 있는 시험관과 유리병을 들고 왔다. 우리는 모닥불을 피우고, 깔개 위에 음식을 쌓아놓고, 물에 담가 차갑게 해둔 포두주를 바닷가에서 가져왔다. 래리는 몸을 쭉 뻗고 누워서 하얀 나팔 같은 백합꽃에 완전히 파묻힐 수 있도록 깔개의 한쪽 귀퉁이를 모래언덕 위쪽으로 잡아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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