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니네 이발관 기타리스리트이자 보컬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가 출간 5년을 맞았다. 그냥 편한 마음으로 집어 든, 보통 날 읽기 좋은 산문집이겠거니 했는데. 가벼운 듯 사색적인 문장은 보통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들을 좋아했지만, 그의 노래들이 이런 치열함 끝에 나온 것인줄은 몰랐다. 누구에게 위로를 주고 좋다 라는 감상을 주는 작품들을 창조해낸다는 것은 이런 생의 결과 였구나 한다. 인구에 회자되는 위대한 작가들이나 화가들의 작품들에겐 경외감을 느끼면서 인디밴드 음악을 들으면서는 그저 가볍게 만들어졌겠거니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나 보았다. 나는 '산들산들'이란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그 노래를 하루종일도 반복해서 들을 수 있는데, 누군가 무엇인가 좋아진다는 것의 이면을 캐고 보면.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는 부분이 많은 걸 새삼 깨닫는다. 양양의 노래가 그랬고, 이석원의 노래가 그런 것을 이제 알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니맨 - 생에 한 번, 반드시 떠나야 할 여행이 있다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작년 여름 알라딘 메인에서 제목을 봤을 때 부터 끌렸던 <저니맨>을 이제 다 읽었다. 도서관에서 조금씩 읽다가 두고 오곤 했으니 만난지 몇 개월을 두고 천천히 데이트를 즐긴 셈이기도 하다. 제목과 저자 이름, 여행의 스타일이 남성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여행기만 너무 읽는 것 같아 당분간 자제를 좀 해야지 했는데, 결심이 오래 못간다. <저니맨>이라니...

 

 나는 늘 지시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절실했다. 하지만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 나의 역할과 위치가 그런 공간, 그런 상황을 가질 수 없음 이었다. 파비안은 그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떠났다. 그는 중세 수련여행 규칙에 대해 조사하고 그 규칙들을 자신의 상황에 맞게 고쳐 수련여행 규칙 10가지를 완성한다.

 

 세계의 다섯 대륙에 발자국을 찍는다, 여행지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번다, 잠잘 곳과 먹을 곳 말고는 바라지 않는다, 최대한 긍정적인 나그네가 된다, 목적지는 길이 정한다, 최소한의 도구만 갖고 떠난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일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한군데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집에서 300키로 이내의 장소는 피한다, 2년이라는 여행 기간을 지킨다. - 영리하고 멋있으며, 긍정적이고 진취적이다. 그의 젊음이, 그의 행동력이 부럽기만 했다.

 

마치, 감상을 소비하러 떠나는 듯한 여행기가 넘쳐나는 요즘,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담금질하는, 모험에 도전하는 여행기는 신선했다.  일단 부딪치고 현지에서 일자리를 조달하는 방식으로 5개 대륙 10개 도시, 12개 직업 체험을 한 이 능력자. 단지 풍경을 보고 소요하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인가를 꾸미고 해내는 과정을 즐겼던 이 남자. 이제는 너무 흔해진 그래서 의미 없어진 것 같은, '여행'이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요일의 기차 속 깊은 그림책 5
제르마노 쥘로.알베르틴 글.그림,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분이 울울할 땐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해결 되지 않으면 좋아하는 낱말들을 떠올려 본다. 낱말들의 페이지엔 언제나 '토요일'과 '기차가 있다. 낱말 '토요일'과 '기차'가 모여서 <토요일의 기차>가 되었다. 더 꼼꼼하게 들여다 본다. 그림책을 멀리 한지 백만 년. 백만 년의 시간 너머에서 꾸물꾸물 기차가 달려온다.

 

기차는 기차답게 가로로 길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게 앞 뒤 모양도 똑 같다. 구부러질 수 있게 분절이 있고 가장 중요한 풍경을 볼 수 있는 창이 나란히 나란히 나있다. 빛깔은 예쁜 애벌레색이다. 기차는 메트로폴리탄적인 직선의 도시에서 출발한다. 화려하고 각이 졌고, 수직으로 거침 없는 고층 빌딩 속에서 기차는 가로로 달린다. 달리지만 속도감은 없다. 페이지가 넘어갈 뿐.

 

 기차는 가만히 있는데 내 고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쉼없이 돌아간다. 장면은 끊기는 것 같지만 페이지는 페이지로 연결된다. 기차 안의 아이는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다. 기차는 공간을 이동할 뿐 달리지는 않는다. 기차는 흡사 떠 있는 듯 하다. 기차는 일상의 자잘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은 마을을 지나, 공장 지대를 통과한다. 아이는 세상을 다 다녀보고 싶다 말하고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아이는 여행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공간 이동 만이 아닌 내 안을 여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황량한 들판을 보며 깨닫는다.

 

 도시와 마을들을 지나면 습지가 나오고 강물이 흐른다. 풀밭엔 환상의 동물이 게으르게 풀을 뜯고 침엽수림을 지나면 온갖 꽃이 핀 들판이 하염 없이 펼쳐져 있다. 이탈리아 산골 마을 할머니댁에 내렸지만, 아이에겐 기차보다 더 긴, 긴 여정이 놓여있다. 아이는 세상을 다 가고픈, 갖고픈 꿈이 있다. 앞으로의 세상에 대한 불안을 아이는 극복하고자 선언한다. 할 수 있다고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모두는 불안을 안고 산다.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일뿐 모든 생명에는 불안이 깃든다.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세상이 두려울 것이라는 불안이 있는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은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심어 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림책은 책장을 펼치는 순간 그 공간으로 들어가야 그림책을 '볼' 수 있다. 나는 여기서 아이가 탄 기차를 바라보지만, 실상은 내가 아이가 되어 기차를 타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다. 아주 잠깐의 시간을 내어 새뜻한 그림들을 흘려 보았을 뿐인데, 근사한 환상여행을 끝낸 기분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란 무엇인가> 매우 도발적인 제목이다. 도서관에 들렀다 눈에 띄길래 뽑아왔는데, 생각해보니 수개월 전에 빨책에서 소개한 그 책이었다. 그 때도 재밌게 들었었는데 정작 책을 읽는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그러다 연말에 저공비행에 포스팅 된 글을 보았으니 세 번을 맞닥뜨려 겨우 읽게 된 책인 셈이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밀란 쿤데라,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포스터. 이름을 불러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조아리고 싶은 작가군이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을 때 작가론과 연계해서 생각하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책은 완전 흥미진진이었다.

 

특히 첫 장의 움베르토 에코의 무게감은 정말 '쩐다'라는 표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우르비노에 있다는 별장 무지 부러웠고 밀라노에 장서 3만권이 넘는 서재라니..작품론이나 이런 것에 혹해야 하는데 항상 늘 이런 곁가지들에 더 관심이 간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관심을 적당히 충족시켜 준다. 단지 인터뷰일 뿐인데 작가들의 문체가 느껴지듯이, 자기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개개인의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오르한 파묵은 마치 내가 그를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딱 그사람인 듯한 인터뷰였는데, 덕분에 읽다 만<내 이름은 빨강>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본인이 영향을 받았던 작가군들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 책 한 권이 또 수많은 책을 파생 시킨다. 돈 드릴로와 포크너 같은 작가는 여러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여서 읽고 싶은 소설 목록에 넣어 두었다. 또 여러 명이 언급하지는 않았는지만, 처음 들어 보는 소설가들도 있어서 다시 한 번 무식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12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하루하루 읽기에 딱 좋다. 사람과 작품,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과 사유를 이야기하니 이 책 한 권에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은 그냥은 잘 안 읽힐 소설들도 인터뷰를 보고 나니 읽고 싶어진다. 반대의 경우, 우리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그 작가가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을 읽기 전후에 상관 없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과의 '만남'이다. 생전에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기에 이토록 매혹적인 것임에 틀림 없다. 

 

에코: 어떤 문맹인 사람이 가령 현재의 제 나이에 죽는다면 단지 한 개의 삶만을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나폴레옹, 카이사르, 달타냥의 삶을 살았지요.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데, 책을 읽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엄청나게 다양한 개성을 개발 할 수 있답니다.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수없이 많은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그건 굉장한 특권이지요. 54

에코: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글쓰기는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소통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요....사람들은 지속성의 느낌을 바란답니다.57

하루에 열 시간이나요?
파묵: 네. 그렇습니다. 저는 아주 열심히 일하거든요. 일하는 걸 즐긴답니다. 사람들은 제가 야심가라고 하는데, 그 말은 어쩌면 맞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해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 일하는 걸 즐긴답니다. 본질적으로는 일이지만, 재미도 있고 게임이기도 해요. 73

파묵: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터키가 두 가지 정신을 갖는 것,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하는 것, 그리고 두 가지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분열은 사람을 지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현실과의 관계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정신 분열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죽이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을 많이 하면, 하나의 영혼만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분열되어서 아픈 것보다 더 문제지요. 87

하루키: 책을 쓰는 데 좋은 점은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진짜 꿈이라면 통제가 불가능했겠지요. 책을 쓸 때는 깨어 있기 때문에 시간, 길이 등 모든 것을 결정할 수가 있어요. 오전에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을 쓰고 나서 때가 되면 그만 씁니다. 다음 날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진짜 꿈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지요. 121

하루키: 기억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거든요. 타오르면서 인간을 따뜻하게 해주거든요. 제 기억은 일종의 궤짝과 같아요...어떤 서랍을 열면 고베에서 보낸 소년 시절의 광경이 떠올라요. 공기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땅도 만질 수 있고, 초록색 나무도 볼 수 있답니다. 그게 제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지요. 142

오스터: 과거의 많은 작가들 중에서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작가이며, 가장 깊게 말을 걸어오는 작가입니다. 호손의 상상력에는 무언가 제 상상력에 반향하는 것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에게로 돌아가고 계속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호손은 아이디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이며, 또한 훌륭한 심리분석가이고,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을 읽어낼 수 있는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은 완전히 혁명적으로 어떤 미국 작가도 그런 소설을 쓰지 못했습니다. 헤밍웨이는 모든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핀]에서 유래했다고 말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문학은 [주홍 글자]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161

오스터:...나이가 오십 쯤되면, 우리 모두는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살게 되지요. 귀신이 우리 안에 살면서, 산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자신에게 이런 상실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걸까요? 정말로 몇 사람뿐이겠지요. 몇 명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나면 당신의 내적 세계의 지도는 변할 겁니다. 178

오스터: 각각의 책은 다 새로운 책이지요. 예전에 써본 적이 없으며, 써가면서 스스로에게 글 쓰는 법을 새롭게 가르쳐야만 하지요. 제가 과거에 책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항상 초심자라고 느끼며, 계속해서 똑같은 문제, 똑같은 장애물, 똑같은 절망에 부딪히지요. 작가로서 너무도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너무도 많은 형편없는 문장과 생각을 지워버리고, 너무도 많은 가치 없는 부분들을 버리면서, 마침내 배우는 것이라곤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점 입니다. 그러니 작가란 직업은 참으로 겸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해야겠지요.1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이스 캐롤 오츠 : 작가의 신념 - 삶, 기술, 예술 위대한 생각 시리즈 8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송경아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잠이 일찍 깨어 머리맡에 있던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삶,기술,예술>을 집어 들었다. 두시간쯤 고요 속에서 책을 읽었다. 중간에 청어 굽고 시금치 나물 무쳐 아침 먹여 아이 학원도 보냈다. 그리고 계속 읽으니 오전 안에 마무리가 되었다. 분량 자체가 워낙 부담이 없는 데다 짧은 산문들이라 막힘 없이 읽혔다. 읽다가 독서라는 것은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나'가 '내게 읽어주는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만 읽으면 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 눈으로 책을 읽고 있는데, 귀로 마음에서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경험. (잠깐 이런게 정신분열인가?) 역시 독서란 온 몸과 온 힘을 다하여 '하는' 행위예술이다. 책 속에 책도 많이 나와서 뭐부터 읽어야 하나 기분 좋은 부담감도 느낀다. 이렇게 적당한 부담감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인 것 같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소설들은 읽어 본 바 없어 검색을 했더니 꽤나 많은 책이 나와 있다. 이렇게 화려한 작가였구나 한다. 특이한 점은 청소년 소설들이 비룡소와 창비에서 꽤 여러 권이 나왔는데, 내가 다니는 도서관 세 군데에는 단 한 권도 없다는 점이다. 리뷰를 보니 꽤 흥미진진한 소설들일 것 같은데. <좀비>,<소녀 수집하는 노인>정도만 있고 <작가의 신념>에 언급 된 <블론드>는 도서관에는 아예 없다. 새 해엔 부지런히 희망도서 신청을 해야 할 듯하다. 어쩌다 보니 <작가의 신념>이 2015년 첫 책이 되었다. 첫 책으로 괜찮았다. 밑줄 긋기 하고 싶은 문맥들이 많았는데, 다 하지는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실 선천적으로 고독하다. 만약 끈기있게 노력하고 기술적으로 낙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간, 공간, 언어, 민족 정체성이라는 인공적인 경계선을 초월하는 문학이라는 신비로운 대체 세계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예술 활동은 개인의 고독으로부터 홀연히 나타나서 다채로워지며 끝없이 매혹적이고 언제나 진화한다. 12

나는 누렇게 빛바래고 모서리가 접힌 책장에 곱게 인쇄도니 문장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신기한 경험에 완전히 매료되어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나는 오르기 어려운 나무(예를 들어, 배나무)와 씨름하듯이 이런 책들과 씨름했다. 25

결코 당신의 주제와 그에 대한 열정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
당신의 `금지된`열정은 글쓰기의 연료와 같다.43

이해 받지 못할 이런 충동이 없다면 당신은 겉보기에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고 공동체와 더 밀접한 관련을 맺는 시민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질적인 것은 전혀 창조해내지 못할 것이다. 44

이상주의자가 되거나,낭만에 차서 `열망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마라. 만약 당신이 느끼는 흥미에 보답하지 않을 사람들을 열망하고 있다면, 보답이 없는 한,당신이 그들을 열망한다는 사실이 아마도 그들에게서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47

이야기들은 정밀한 구현체를 요구하는 유령처럼 나타난다. 관념적으로 말하면, 달리기는 내가 쓰는 것을 영화나 꿈처럼 마음 속에 그려볼 수 있는 확장 의식을 갖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타자기 앞에서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한 것을 회상한다.58

꿈이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신경생리학의 어떤 법칙에 따라 우리를 실제 광기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광기를 향한 일시적 비행일지도 모른다.따라서 달리기/글쓰기라는 활동 한 쌍은 작가를 이성적으로 건전하도록 해주고,(아무리 환상적이고 일시적인 제어일지라도) 제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유지하게 해준다. 58

평생 동안 나는 인간 개성의 신비에 매혹 되어 있었다. 이토록 다양하지만 그 다양성 아래 이렇게 닮아 있는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여기는 과연 어디인가? 61

아, 당황하고 좌절하고 대지에 무릎 꿇은 채
감히 입을 열었던 나 자신에 풀 죽어
이제 메아리가 되돌아오는 모든 지껄임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한 번도 안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내가 쓴 모든 오만한 시 앞에 진짜 나는 손상되지 않고 언급되지 않고 전혀 손이 닿지 않은 채 서 있다.
멀리 물러나, 자축하는 몸짓과 인사로 나를 놀리며
내가 쓴 모든 단어에 빈정대는 어렴풋한 웃음의 울림과 함께
침묵 속에서 그 노래들을, 그리고 그 아래의 모래를 가리킨다.
-월트 휘트먼.
`내가 생명의 바다와 함께 썰물처럼 빠져나갈 때` 에서
83

왜 어떤 사람들은 구조와 언어의 견지에서 경험을 해석하는 일에 일생을 바칠까 하는 의문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님은 물론이고 삶에 대한 대안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삶이다. 그러나 마치 사람이 전적으로 현재 시제 속에서 살고 있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 것처럼, 특이한 종류의 광채가 씌워진 삶이다. 85

읽기의 예술은 쓰기의 예술과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의 비밀스러운 공감은 우리 자신에게조차 비밀인 채로 남아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분명한 이유 없이 어떤 예술 작품과 사랑에 빠진다. 86

개인적이고 속박받지 않는 이런 감정의 몰아침 없이 독창성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영감과 에너지, 심지어 천재성도 `예술`을 낳기에 충분할 경우란 거의 없다. 산문 소설이란 기술이기도 하고, 기술은 우연으로건 의도적으로건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