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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 -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 ㅣ 파리 리뷰 인터뷰 1
파리 리뷰 지음, 권승혁.김진아 옮김 / 다른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란 무엇인가> 매우 도발적인 제목이다. 도서관에 들렀다 눈에 띄길래 뽑아왔는데, 생각해보니 수개월 전에 빨책에서 소개한 그 책이었다. 그 때도 재밌게 들었었는데 정작 책을 읽는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다. 그러다 연말에 저공비행에 포스팅 된 글을 보았으니 세 번을 맞닥뜨려 겨우 읽게 된 책인 셈이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밀란 쿤데라,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포스터. 이름을 불러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조아리고 싶은 작가군이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을 때 작가론과 연계해서 생각하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책은 완전 흥미진진이었다.
특히 첫 장의 움베르토 에코의 무게감은 정말 '쩐다'라는 표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우르비노에 있다는 별장 무지 부러웠고 밀라노에 장서 3만권이 넘는 서재라니..작품론이나 이런 것에 혹해야 하는데 항상 늘 이런 곁가지들에 더 관심이 간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관심을 적당히 충족시켜 준다. 단지 인터뷰일 뿐인데 작가들의 문체가 느껴지듯이, 자기 색깔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개개인의 이야기가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오르한 파묵은 마치 내가 그를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딱 그사람인 듯한 인터뷰였는데, 덕분에 읽다 만<내 이름은 빨강>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본인이 영향을 받았던 작가군들도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 책 한 권이 또 수많은 책을 파생 시킨다. 돈 드릴로와 포크너 같은 작가는 여러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여서 읽고 싶은 소설 목록에 넣어 두었다. 또 여러 명이 언급하지는 않았는지만, 처음 들어 보는 소설가들도 있어서 다시 한 번 무식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12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니 하루하루 읽기에 딱 좋다. 사람과 작품,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과 사유를 이야기하니 이 책 한 권에 세상의 이치가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은 그냥은 잘 안 읽힐 소설들도 인터뷰를 보고 나니 읽고 싶어진다. 반대의 경우, 우리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 그 작가가 궁금해진다. 그러니까 이 책은 책을 읽기 전후에 상관 없이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과의 '만남'이다. 생전에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기에 이토록 매혹적인 것임에 틀림 없다.
에코: 어떤 문맹인 사람이 가령 현재의 제 나이에 죽는다면 단지 한 개의 삶만을 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나폴레옹, 카이사르, 달타냥의 삶을 살았지요. 언제나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데, 책을 읽으면 기억력이 좋아지고 엄청나게 다양한 개성을 개발 할 수 있답니다. 삶의 마지막에 가서는 수없이 많은 삶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그건 굉장한 특권이지요. 54
에코: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글쓰기는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소통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요....사람들은 지속성의 느낌을 바란답니다.57
하루에 열 시간이나요? 파묵: 네. 그렇습니다. 저는 아주 열심히 일하거든요. 일하는 걸 즐긴답니다. 사람들은 제가 야심가라고 하는데, 그 말은 어쩌면 맞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해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책상에 앉아 일하는 걸 즐긴답니다. 본질적으로는 일이지만, 재미도 있고 게임이기도 해요. 73
파묵: 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터키가 두 가지 정신을 갖는 것,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화에 속하는 것, 그리고 두 가지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신분열은 사람을 지적으로 만들어줍니다. 현실과의 관계를 잃을지도 모르지만 정신 분열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죽이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을 많이 하면, 하나의 영혼만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분열되어서 아픈 것보다 더 문제지요. 87
하루키: 책을 쓰는 데 좋은 점은 깨어 있으면서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진짜 꿈이라면 통제가 불가능했겠지요. 책을 쓸 때는 깨어 있기 때문에 시간, 길이 등 모든 것을 결정할 수가 있어요. 오전에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을 쓰고 나서 때가 되면 그만 씁니다. 다음 날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진짜 꿈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지요. 121
하루키: 기억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일종의 연료 역할을 하거든요. 타오르면서 인간을 따뜻하게 해주거든요. 제 기억은 일종의 궤짝과 같아요...어떤 서랍을 열면 고베에서 보낸 소년 시절의 광경이 떠올라요. 공기의 냄새도 맡을 수 있고, 땅도 만질 수 있고, 초록색 나무도 볼 수 있답니다. 그게 제가 책을 쓰고 싶어하는 이유지요. 142
오스터: 과거의 많은 작가들 중에서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작가이며, 가장 깊게 말을 걸어오는 작가입니다. 호손의 상상력에는 무언가 제 상상력에 반향하는 것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그에게로 돌아가고 계속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호손은 아이디어를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이며, 또한 훌륭한 심리분석가이고,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을 읽어낼 수 있는 작가입니다. 그의 소설은 완전히 혁명적으로 어떤 미국 작가도 그런 소설을 쓰지 못했습니다. 헤밍웨이는 모든 미국 문학은 [허클베리핀]에서 유래했다고 말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문학은 [주홍 글자]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161
오스터:...나이가 오십 쯤되면, 우리 모두는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살게 되지요. 귀신이 우리 안에 살면서, 산 사람들에게 하는 것만큼 죽은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하지요. 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자신에게 이런 상실이 계속해서 쌓이는 것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그런 일들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생은 너무도 짧고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알 수 없지요. 결국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걸까요? 정말로 몇 사람뿐이겠지요. 몇 명 되지 않을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나면 당신의 내적 세계의 지도는 변할 겁니다. 178
오스터: 각각의 책은 다 새로운 책이지요. 예전에 써본 적이 없으며, 써가면서 스스로에게 글 쓰는 법을 새롭게 가르쳐야만 하지요. 제가 과거에 책을 썼다는 사실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항상 초심자라고 느끼며, 계속해서 똑같은 문제, 똑같은 장애물, 똑같은 절망에 부딪히지요. 작가로서 너무도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너무도 많은 형편없는 문장과 생각을 지워버리고, 너무도 많은 가치 없는 부분들을 버리면서, 마침내 배우는 것이라곤 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점 입니다. 그러니 작가란 직업은 참으로 겸허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해야겠지요.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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