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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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이고 따듯하며, 아름답다. 이제 막 비추기 시작한 햇볕 아래에서 미지근한 욕조에 발을 담그는 것처럼. 책의 플롯은 단순하다. 치매로 소중한 기억들을 잃어가는, 그리고 그것을 죽음보다 더 두려워하는 한 노인이 지독히도 힘들게 기억들을 붙잡으려 애쓰며 그 현상을 그와 그의 가족들이 힘겹게, 하지만 겸허히 받아 들이는 과정의 이야기다. 그는 그의 머릿속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손자가 그와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애쓰지만,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질 수록, 말하자면 그의 ‘머릿속 광장’이 계속 좁아질 수록, 그의 ‘히아신스로 둘러싸인 광장’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던 나무 밑’에서, ‘우주에 떠다니는 배’ 위에서, 그의 아내와 노아는 오히려 그를 다독이며 그를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으로 이끈다. 괜히 보랏빛 꽃에서 날 법한 향기가 코 끝에서 느껴지는 그런 책이다.

“’제 손을 왜 그렇게 꼭 붙잡고 계세요, 할아버지?’ 아이는 다시 속삭인다. ‘모든 게 사라지고 있어서, 노아노아야. 너는 가장 늦게까지 붙잡고 있고 싶거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보답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더욱 세게 잡는다.”

“히아신스 향기가 나고 가끔 고수 냄새도 풍기는 정원 옆에 오래된 벌판이 있다. 벌판을 가로지른 울타리 저편에 오래전에 동네 주민이 육지로 끌어다 놓은 고물 어선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는 도무지 평온하게, 조용히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 할머니는 항상 할아버지가 집에서 일을 하면 평온하게, 조용히 지낼 수가 없다고 대꾸했기에 어느날 아침 할아버지가 정원을 지나고 울타리를 돌아 나가서 어선의 선실에 페인트를 칠하고 사무실로 꾸몄다. 그 곳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모든 것이 논리적인 공간이었다. 수학자들에게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공간이 필요할 지 모른다. 커다란 닻이 어선 한쪽에 기대 세워져 있다. 테드는 아주 어린 꼬맹이였을 때 가끔 아빠에게 그 닻보다 더 키가 커지러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노아가 태어났을 때 그는 달라졌다. 할아버지인 그는 아빠였을 때와 다른 사람이었다. 예전에 테드가 했던 질문을 노아가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평생 그러지 않길 바라는 게 좋을거다. 왜냐하면 닻보다 키가 작은 사람들만 할아버지의 사무실에서 언제든 놀 수 있거든.’ 노아의 머리가 닻 꼭대기에 점점 가까워지자 할아버지는 방해받을 특권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 밑에 돌을 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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