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왜 푸르냐?

Why is the sky blue?

 

이것은 진리는 무엇인가 (What is truth? )라는 질문과 마찬가지이다.

하늘은 왜 파란 것일까?

이런 질문은 단순한 마음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몇몇 과학자들은 이렇게 답할 지도 모른다.

태양빛이 미분자들과 하늘에 부딪쳐 특별한 방식으로 반사되는데

이때 우리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파란색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단지 설명일 뿐이다.

선이란 설명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선은 깨달음이며 경험에 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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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1-0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이 파랗기 때문에 파랗죠..뭐..^^

니르바나 2004-11-0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꼬마요정님

비연 2004-11-0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였던가요. 성철스님의 말씀이 떠올라지네요^^

니르바나 2004-11-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성철스님이 하신 말씀이 들리는 듯 싶네요. 비연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정 진 규-

 

 

 

바람,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었을 때 왜

 나는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가고 있었을까. 기우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나무들은 바람 따라 따라서 가 주고 있

 었는데, 세상의 물이란 물들이 흐르는 소릴 들어 보아도 그렇

 게 그렇게 가 주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게 아니 되었을까.

 실이란 어떤 것일까. 있는대로 있는대로만 따라가 주는 것

 일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바람 바람이여 그 동

 안 나는 꽃을 돌멩이라 하였으며,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바다의

 깊이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와서 어둡게 어둡게 나를 흔

 든다. 가슴을 친다. 알 수 없어라. 길 가의 풀잎에게 물어 보

 았을 때 그는 바삭거리는 소리만, 바삭거리는 소리만 세상 가

 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그가 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

 런 모습으로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슴 깊이로부터 한 두레박의 물, 물을 길어 내게

 건넸다. 나를 씻었다. 한 두레박의 차고 시원한 물, 이것이 바

 로 영원이라 하였다. 빛이라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하루가 모자란다 하였다.

 잠들 수 없다 하였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곳

 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아픔, 열리지 않은 문, 그가 나의 문

 을 열고 당도한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느님의 체온이 거기 머물고 있었다.

 수 없어라. 내 가는 곳까지 아무도 바래다 줄 수 없다고 모두

 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어

 . 그가 내게 당도하였다는 것은,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

 의 꿈, 그런 꿈의 깊이에 우리는 함께 이르고 있었다.

...........................................................................................

나는 유감스럽지만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못하고 결혼하였다.

처음 만난 여자와 한 5년 연애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여 결혼은 생각도 않고 지냈는데

참다 참다 안되겠는지 아내는 만난 지 4년이 되던 해, 거룩한 성탄절 이브에 나를 끌고서

자기네 집으로 갔다.

술 좋아하신다는 장인어른을 위해 양주 한 병 끼고서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기적 어기적 갔다.

당신의 애지중지하는 딸과 7살 이나 차이나는 늙다리 총각이 어디가 이뻤겠는가!

그래서 나는 장인어른이 취하기도 전에 먼저 마시고 취해버렸다.

어쩌겠는가 자식이 좋아한다는데, 이래서 도둑놈 소리를 듣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나의 결혼전말서이다.

그럼 왜 나는 하지도 않은 프로포즈를 했다고 이렇게 페이퍼로  올리는고 하니

아주 가끔 아내는 내가 준 편지속의 이 詩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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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흠~자꾸 미소가 나오네요. 니르바나님 정말 좋으신 분이신가 봅니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했어도 남자가 프로포즈 안하면 아, 이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없는가보다 해서 여자는 떠나는 수도 많은데, 하도 안해서 부인되시는 분이 이를 벌이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으면 그리 하셨겠습니까?

저 같으면 어림 없습니다. 흐흐.

니르바나 2004-11-0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의 마지막 대사**************

" 내가 이 詩를 안 읽었으면 팔자 고치는 건데"


stella.K 2004-11-0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중에 후회해도 좋으니 이렇게 시라도 읊어주는 사람 좀 만났으면 좋겠네요. 제 주위의 사람들은 이런 멋이 없으니 원...근데 결국 저 시가 니르바나님에겐 프로포즈인 셈이군요. ㅋㅋ,

니르바나 2004-11-0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아주 멋진 분이니까 고개숙인 남자들이 쳐다보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虛가 조금 있어야 남자들은 氣가 살아납니다. 필요충분조건아시지요. 스텔라님

진/우맘 2004-11-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난.....니르바나님이.....여자분....인 줄 알았다. 그것도 곱디고운 이십대 처자로....ㅡ.ㅡ;;;

니르바나 2004-11-0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비로그인 2004-11-0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감동적이라서 저 펌~ ^0^

니르바나 2004-11-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감동적이라 하시니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글을 읽고 한 번 웃어주시니 고맙습니다.
 

'티벳 사자의 서'를 쓴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나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섯 번 정도 대출받아

읽다가 중단하고를 반복하다가 어제야 일독하였다.

오래 전 고려원에서 나온 전기와 내용이 다른 까닭은 출판사 민음사에서 공모한

논픽션 문학작품으로 저자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독자리뷰를 찾아보니 혹평이 달려 있었다.

그런 경우 쉽게 책을 구매하지 못하게 되는게 내 주변머리고 보니

늦게사 공공도서관의 책으로 만나고 출간된 지 일 년이 훨씬 지나서야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파드마삼바바가 저술한 책인

'티벳 사자의 서'와 '티벳 해탈의 서'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잘 살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生은 좋고, 死는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깔려있는 것이다.

나무잎이 사는게 좋다고 매년 나오는 새 잎을 그대로 간직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그것을 보는 인간들은  잎의 무성함을 넘은 나무의 모습에 숨막혀 할 것이고,

단풍구경도 못하고, 낙엽도 못 밟고, 심지어 낙엽을 태우는 냄새도 못 맡을 것이다.

 

 

사실은, 죽음때문에 생이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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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1-0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만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비할 뿐입니다. 어린 나이라 죽음이 와 닿지는 않지만, 죽음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지금 열심히 노력할 수 있을테니까요..

니르바나 2004-11-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죽음이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마세요. 숭산스님식으로 말씀드리면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 입니다. 사실 우리는 들숨과 내쉼속에서도 생사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야 지금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재 열심히 살면 죽음의 시간 이후가 자연스럽게 대비되는 것 아닐런지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꼬마요정님

꼬마요정 2004-11-0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無心에서 본다면 죽음은 그저 그릇과 주인공의 분리일 뿐이겠지만, 중생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두려움 그 자체이겠지요... 중생심에서 죽음을 죽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깨친 이가 그렇게 느끼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무섭다는 것을 인정하여 그 두려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死의 절벽에 섰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니르바나 2004-11-0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꼬마요정님

일체유심조

있다고 생각하면 물질로 존재하지만, 이 물질을 캐어들어가면 에너지의 파동이라고 합니다.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체유심조는 과학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군요.
 

왜 매일 밥을 먹는가?

Why do you eat everyday?

 

이것은 왜 사는가( Why alive)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어떤 사람은 배 고프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개도 배가 고프고, 고양이도 배가 고프고, 뱀도, 돼지도 배가 고프다.

그러면 인간은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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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몇 권의 회고록이 출판되었었다.

청담스님하면 입적하신지 오래되어서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 현대 불교의 모습이 그래도 이 만큼의 위의(威儀)를 갖게 된 것도 스님의

그야말로 몸을 바친 헌신의 고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땡초들과 왜색불교로 절간이 점령되어 해방을 맞게 되고,

사유화된 절을 한일 합방이전으로 회복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숫자로도 열세인 비구승들이 자금과 인적구성에서 절대 우위에 섰던 대처승들에게

절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대통령의 말 뿐이었다.

이때, 한국 불교 정화의 화신으로 등장하신 분이 청담스님이셨다.

 

같이 정화사업하자는 스님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성철스님이셨고.

두 분의 행로가 그래서 나뉘어지게 된 것이다.


이 책을 몇 번 대출받아서 시간이 날 때 마다 조금씩 읽었다.

여러 사람들의 회고를 모은 대담집으로 전부를 읽으면 청담스님의 모습이 그려지는

일종의 모자이크화 같은 책이다.

禪수행자이며, 행정가이며, 교육자이기도 했던 한국 불교의 일꾼이셨던 스님의

지극정성이 눈에 선하다.

 

재미있는 일화로는 당시 우리나라의 종교지도자이셨던 노기남대주교, 한경직목사님,

김수환추기경, 강원룡목사님등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무얼 모르는 아해들이 내 것이 최고다 라고 싸우지,

어른들은 그런 것 가지고는 싸우는 일이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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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4-11-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청담스님 전혀 모릅니다. 님 글 읽고 알게 되었는데요, 이제부터라도 알면 되는 거겠지요?? 세상은 넓고 알아야 할 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다방면에 걸친 님의 관심에 꾸벅.

니르바나 2004-11-0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별 말씀 다하십니다.

어릴 적에 많이 쓰던 말있지요.

'새발의 피'

2004-11-05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