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정 진 규-

 

 

 

바람,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었을 때 왜

 나는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가고 있었을까. 기우는 달빛

 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나무들은 바람 따라 따라서 가 주고 있

 었는데, 세상의 물이란 물들이 흐르는 소릴 들어 보아도 그렇

 게 그렇게 가 주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게 아니 되었을까.

 실이란 어떤 것일까. 있는대로 있는대로만 따라가 주는 것

 일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바람 바람이여 그 동

 안 나는 꽃을 돌멩이라 하였으며,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바다의

 깊이로 바꾸어 놓기도 했다.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지금와서 어둡게 어둡게 나를 흔

 든다. 가슴을 친다. 알 수 없어라. 길 가의 풀잎에게 물어 보

 았을 때 그는 바삭거리는 소리만, 바삭거리는 소리만 세상 가

 득 채우고 있었다. 그때 그가 왔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

 런 모습으로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슴 깊이로부터 한 두레박의 물, 물을 길어 내게

 건넸다. 나를 씻었다. 한 두레박의 차고 시원한 물, 이것이 바

 로 영원이라 하였다. 빛이라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

 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하루가 모자란다 하였다.

 잠들 수 없다 하였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곳

 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아픔, 열리지 않은 문, 그가 나의 문

 을 열고 당도한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느님의 체온이 거기 머물고 있었다.

 수 없어라. 내 가는 곳까지 아무도 바래다 줄 수 없다고 모두

 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어

 . 그가 내게 당도하였다는 것은,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

 의 꿈, 그런 꿈의 깊이에 우리는 함께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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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감스럽지만 아내에게 프로포즈를 못하고 결혼하였다.

처음 만난 여자와 한 5년 연애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여 결혼은 생각도 않고 지냈는데

참다 참다 안되겠는지 아내는 만난 지 4년이 되던 해, 거룩한 성탄절 이브에 나를 끌고서

자기네 집으로 갔다.

술 좋아하신다는 장인어른을 위해 양주 한 병 끼고서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기적 어기적 갔다.

당신의 애지중지하는 딸과 7살 이나 차이나는 늙다리 총각이 어디가 이뻤겠는가!

그래서 나는 장인어른이 취하기도 전에 먼저 마시고 취해버렸다.

어쩌겠는가 자식이 좋아한다는데, 이래서 도둑놈 소리를 듣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나의 결혼전말서이다.

그럼 왜 나는 하지도 않은 프로포즈를 했다고 이렇게 페이퍼로  올리는고 하니

아주 가끔 아내는 내가 준 편지속의 이 詩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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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흠~자꾸 미소가 나오네요. 니르바나님 정말 좋으신 분이신가 봅니다. 아무리 연애를 오래했어도 남자가 프로포즈 안하면 아, 이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없는가보다 해서 여자는 떠나는 수도 많은데, 하도 안해서 부인되시는 분이 이를 벌이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으면 그리 하셨겠습니까?

저 같으면 어림 없습니다. 흐흐.

니르바나 2004-11-06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의 마지막 대사**************

" 내가 이 詩를 안 읽었으면 팔자 고치는 건데"


stella.K 2004-11-0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나중에 후회해도 좋으니 이렇게 시라도 읊어주는 사람 좀 만났으면 좋겠네요. 제 주위의 사람들은 이런 멋이 없으니 원...근데 결국 저 시가 니르바나님에겐 프로포즈인 셈이군요. ㅋㅋ,

니르바나 2004-11-06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아주 멋진 분이니까 고개숙인 남자들이 쳐다보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虛가 조금 있어야 남자들은 氣가 살아납니다. 필요충분조건아시지요. 스텔라님

진/우맘 2004-11-06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난.....니르바나님이.....여자분....인 줄 알았다. 그것도 곱디고운 이십대 처자로....ㅡ.ㅡ;;;

니르바나 2004-11-0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머...

비로그인 2004-11-0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감동적이라서 저 펌~ ^0^

니르바나 2004-11-07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감동적이라 하시니 참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글을 읽고 한 번 웃어주시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