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사자의 서'를 쓴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나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섯 번 정도 대출받아

읽다가 중단하고를 반복하다가 어제야 일독하였다.

오래 전 고려원에서 나온 전기와 내용이 다른 까닭은 출판사 민음사에서 공모한

논픽션 문학작품으로 저자가 소설의 형식을 빌어 파드마삼바바의 생애를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이 나왔을 때 독자리뷰를 찾아보니 혹평이 달려 있었다.

그런 경우 쉽게 책을 구매하지 못하게 되는게 내 주변머리고 보니

늦게사 공공도서관의 책으로 만나고 출간된 지 일 년이 훨씬 지나서야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파드마삼바바가 저술한 책인

'티벳 사자의 서'와 '티벳 해탈의 서'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잘 살지도 못하면서 죽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生은 좋고, 死는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깔려있는 것이다.

나무잎이 사는게 좋다고 매년 나오는 새 잎을 그대로 간직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 그것을 보는 인간들은  잎의 무성함을 넘은 나무의 모습에 숨막혀 할 것이고,

단풍구경도 못하고, 낙엽도 못 밟고, 심지어 낙엽을 태우는 냄새도 못 맡을 것이다.

 

 

사실은, 죽음때문에 생이 빛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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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1-06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만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비할 뿐입니다. 어린 나이라 죽음이 와 닿지는 않지만, 죽음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지금 열심히 노력할 수 있을테니까요..

니르바나 2004-11-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죽음이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마세요. 숭산스님식으로 말씀드리면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 입니다. 사실 우리는 들숨과 내쉼속에서도 생사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야 지금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현재 열심히 살면 죽음의 시간 이후가 자연스럽게 대비되는 것 아닐런지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꼬마요정님

꼬마요정 2004-11-0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無心에서 본다면 죽음은 그저 그릇과 주인공의 분리일 뿐이겠지만, 중생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두려움 그 자체이겠지요... 중생심에서 죽음을 죽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깨친 이가 그렇게 느끼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무섭다는 것을 인정하여 그 두려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死의 절벽에 섰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니르바나 2004-11-0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꼬마요정님

일체유심조

있다고 생각하면 물질로 존재하지만, 이 물질을 캐어들어가면 에너지의 파동이라고 합니다.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일체유심조는 과학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