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구판절판


그 신사분에 관한 네 질문은 굉장히 미묘하고 굉장히 민감하고 또 굉장히,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더라. 그 남자를 사랑하느냐고? 무슨 질문이 그래? 플루트 합주에 튜바가 끼어든 것 같잖아. 너한테 좀 실망했어. 꼬치꼬치 캐묻기의 첫째 규칙은 옆에서 치고 들어가는 거야. 네가 알렉산더에게 폭 빠진 상태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대신 그가 좋아하는 동물을 물어봤지. 네가 보낸 답장으로 나는 그에 대해 알아야 할 건 다 알아냈다고. 자기가 오리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 것 같니? -134쪽

그렇지만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터에서 돌아온 찰스 램이 칼에 찔려 죽은 어머니와 피 흘리는 아버지, 그 옆에서 피 묻은 칼을 들고 서 있는 누이 메리를 발견했다지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방 안으로 들어가 누이의 손에서 칼을 뺏을 수 있었을까요? 경찰이 누이를 정신병원으로 보낸 후에는 판사를 설득하여 누이를 데려와 자기를 돌보겠다고 했다죠. 당시 그는 겨우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까요?

그는 누이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한 이상, 결코 발을 빼지 않았지요. 그가 그토록 좋아한 시 쓰기도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대신 생계를 위해 딱히 좋아하지도 않던 비평과 수필을 썼다네요. 그는 동인도회사의 서기로 일하면서 만일의 ‘그날’을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메리가 다시 발작을 일으키는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찰스는 또다시 그녀를 사설 보호소에 맡겨야 했지요.-176쪽

그 후에도 찰스는 누이를 진심으로 그리워했습니다. 그만큼 절친한 남매이자 친구였던 겁니다. 생각해봐요. 찰스는 누이에게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를 끔찍한 발작의 징후를 매의 눈으로 예리하게 관찰해야 했고, 메리는 또다시 광기가 자신을 덮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을 방도가 없었지요. 그야말로 최악이었을 겁니다. 찰스가 몰래 누이를 지켜보고 앉아있고 누이도 자신을 훔쳐보는 그를 보며 앉아있는 모습을 나는 상상해 봅니다. 남매 둘 다 상대방에게 강요된 삶의 방식을 서로 얼마나 증오했겠습니다.

하지만 메리가 제정신일 때는 그처럼 멀쩡하고 훌륭한 친구도 없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찰스는 분명 그렇게 생각했고 그의 친구들도 모두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콜리지가 죽던 날 그가 읽던 책에 휘갈겨 쓴 메모가 발견되었습니다.
'찰스 램과 메리 램, 내 심장만큼 소중한 사람들. 그래, 말 그대로 내 심장만큼.’ -177쪽

엘리아 수필 선집, 엘리아 수필집 후편, 찰스 램 서간집, 찰스 램 전기(E.V.루커스), 윌프레드 오언 시선집, 세네카 서간집 -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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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7월
절판


가면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이상하게 작용하거든요. 보는 사람의 마음을 비추어서 꼭 표정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노 가면은 표정 하나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합니다.-190쪽

우연히 일어난 일을 예측할 때, 인간은 대개 세가지 사고방식을 따른다고 합니다. 지금 이 주사위로 예를 들자면, 처음에 1이 나왔을 때 다음 번에도 1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게 하나. 진짜 도박사 중에 이런 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 두 번째는 처음 나온 눈을 아예 무시하는 생각입니다. 이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대단히 지성적이고 인정에 좌우되지 않아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세 번째 사람들은.. 처음에 1이 나왔으니 두 번째는 1이 또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오늘 비가 좍좍 쏟아지고 있으니까 내일은 안 올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43쪽

하지만 인간은 재미있게도 완전히 대충 한 가지를 선택하기 힘든 성격을 갖고 있거든요. 예컨대 인간은 자주 산책을 하는데, 어느 길로 가도 될 것 같건만 늘 산책하는 길이 대개는 정해져 있곤 하답니다. -229쪽

아는 새 양복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단정하게 매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사진에 찍힐 모습이었으나 그는 찍는 쪽이었다. 그것도 진창을 뒹굴며 마구 찍어대는 보도 카메라맨이 아니라 구름이라든지 짚신벌레 같은 것을 재미있어하며 찍었다. 그렇다고 과학에 열중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사진 하나만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면 제일 좋을지 여태 잘 모르는 듯 보였다.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으로 태어나고 말았다는 사실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아가 늘 말끔한 몸차림을 한다는 것을 깨닫고 이유를 묻자, 아는 되레 이상하다는 듯 이치니를 보며 대답했다.
"지저분한 꼴로 촬영하면 자연에 대해 실례가 아닙니까."-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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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의 미스터리 클럽
구지라 도이치로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품절


마스터가 생선 튀김을 건넸다. 미야케지마에서 낚이는 날치 튀김이었다. 신선한 날치를 간 것에 참마 다진 것을 입혀 튀긴 것이다. 뜨거울 때 레몬즙과 간장을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최고다. 날치는 높이 10미터, 거리는 400미터까지 비약하는 생물이라, 이것을 입에 넣으면 그 파워까지 몸속에 흡수되는 기분이다.-61쪽

R이 붙지 않는 달에는 굴을 먹지 말라고 하잖아-135쪽

쌀을 발효시키면 니혼슈가 돼요. 대맥을 발효시키면 맥주, 포도를 발효시키면 와인이 되죠.
맥주를 증류시키면 위스키, 니혼슈를 증류시키면 쌀소주, 와인을 증류시키면 브랜디가 돼요.-178쪽

고양이의 눈은 시간에 따라 동공의 확장된 상태가 다르다고요. 제일 동공이 작아지는 때가 정오예요.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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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하우스 플라워 - 온실의 꽃과 아홉 가지 화초의 비밀
마고 버윈 지음, 이정아 옮김 / 살림 / 2010년 6월
절판


...아홉가지 화초를 갖고 있으면 누구라도 완벽해진다네. 그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이 욕망하는 것들을 모두 갖게 될 테니, 결국 전설대로 되는 거겠지. 하지만 반드시 아홉가지 화초를 전부 갖고 있어야 해. 한 가지 화초라도 제 주인을 만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는 있으나 아홉가지 화초가 결합해 만들어내는 마법은 아무도 꺾을 수 없다네.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말이지.-99쪽

그대가 쓰레기차 때문에 잠을 깨고서도 저 정적을 들을 수 있다면 그대는 참으로 대단한 힘을 가진 거요. 그대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초고층 빌딩들의 불빛이 전부인데도 별빛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어찌 대단하지 않다 하겠소. 그대가 대형 쓰레기통 앞에서 숲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이 또한 대단한 능력이오. 그대를 둘러싼 환경이나 사람들이 그대에게 무엇을 보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들을지 강요하도록 절대로 내버려두지 마시오. ... 아가씨 면전에 대고 다른 사람들이 지껄여대는 터무니없는 말에 휘둘리지 말고. 아가씨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자기 마음을 제대로 쓸 수 있다면 아가씨는 자유로워지는 거라고!-132쪽

명심해, 이 꽃은 아가씨보다 훨씬 더 예민하다는 걸. 하지만 참을성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최악의 상황에서도 아름다움과 은은함을 잃지 않는 꽃이지. 적응의 귀재야! 그리고 또 얼마나 우아한데. 이 꽃을 지켜보면서 그 비결을 배워봐. 아가씨가 오랜 시간을 두고 충분히 연구한다면 이 꽃이 아가씨에게 자기가 선택한 이상 어떤 상황이든 즉각 평화롭게 적응해 나가는 법을 가르쳐줄 걸세. 이 장미가 아가씨에게 뭘 말하려는 건지 이해하겠나?-134쪽

느낌으로 아는 거죠. 훤히 노출돼 있지만 확실히 보호받고 있어서 안전한 느낌이랄까. 진정되면서 동시에 흥분되는 것 같은 느낌. 한번 그렇게 느끼게 되자 결코 그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이제는 강제로 나를 옛날로 돌아가게 하려는 그 누구나, 그 무엇과도 멀리하고 있죠. 당신도 자신의 참모습을 알면 앞으로 다시는 다른 사람인 척 꾸미고 싶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참모습 대로 사는 게 이제까지 그런 척 꾸미거나 또는 꿈꾸거나 상상하거나, 되려고 노력해왔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더 좋으니까요. -307쪽

하지만 그들이 타고난 그 모습은 수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고, 학교에 가고, 현실에 적응하면서 덧씌워진 모습이죠. 한 해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사람은 조금씩 더 덧씌워져요. 마치 천천히 지퍼를 올려 몸 전체를 가리는 침낭처럼 말이죠. 진짜 모습이 완전히 가려질 때까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 진행되죠. 그러다 결국 침낭이 완전히 닫히면 사람들은 결코 다시 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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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가방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3년 3월
절판


그날 밤엔 둘이서 청주를 한 다섯 홉쯤 마셨다. 술값은 선생님이 치렀다. 다음에 같은 집에서 만나 마셨을 때는 내가 계산을 했다. 세 번째부터는 계산서도 각각, 돈을 내는 것도 각자 하게 되었다. 그후 이 방법이 이어지고 있다. 만남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던 것은 선생님이나 나나 그런 기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주의 취향뿐 아니라 타인과 거리를 두는 법도 닮아 있다. 나이는 삼십 년도 넘게 차이 나지만, 동갑내기 친구보다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10쪽

분노라는 것은 미묘하게 쌓이고, 작은 파도가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그렇게 쌓인 분노가 살면서 뜻밖의 장소에서 터질지도 모르는 거지요. 결혼 생활이란 그런 거죠, 그럼요.-69쪽

짐을 챙겨 왔던 길을 돌아갔다. 걷고 있는 동안에 웃고 싶어졌다가 울고 싶어졌다가 했다. 취기 탓인지도 모른다.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취기 탓이겠지. 사토루 상과 도오루 상이 똑같은 등을 보이며 똑같은 걸음걸이로 앞서 가고 있다. 선생님과 나는 나란히 서서 함께 웃고 있다. 선생님, 도망간 사모님을 지금도 사랑하세요? 내가 중얼거리자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아내는 지금도 내게는 알 수 없는 존재지요, 하고 선생님은 약간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 나서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이 내 옆에 있고 모두들 붕붕거린다. 어째서 이런 곳을 걷고 있는 걸까, 전혀 알 수가 없다. -78쪽

다카시를 만날 때면 언제나 나는 ‘어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 나이와 그에 걸맞는 언동, 다카시의 시간은 균등하게 흘렀고, 몸도 마음도 균등하게 성장했다.
나? 나는 아마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제법 어른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거꾸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되어 갔다. 더욱더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다. 시간과 사이좋게 갈 수 없는 체질인지도 모른다. -151쪽

선생님의 의향에 신경 쓰는 일 따위는 이제 그만둔 것이다. 들러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다. 신사답게, 숙녀답게 담백한 교제를. 그렇게 나는 결심했다. 담백하게, 오랫동안,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리 내가 다가가려 해도 선생님은 다가가게 해주지 않는다. 공기로 된 벽이 있는 것 같다. 얼핏 보기에 부드럽고 거칠 것이 없건만, 압축되면 그 무엇이든 퉁겨내 버리고 마는 공기의 벽.-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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