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에는 늘 허무함이 따라다닌다. 엉켜버린 커다란 실타래에서 겨우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힘들여 풀어낸들,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별로 없다. 단 한 가닥의 실을 끌어당기기 위해 수사원들은 쓸데없는 무수한 실들을 끈기 있게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96쪽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런 거들먹거리는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완전한 타인에 대한 증오 따위 그렇게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미워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벌어지는 사건,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범죄자에 대해 그런 풋내 나는 감상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럴 만큼 한가하지 않다. -108쪽
다카코는 자기 안에 끓어오른 이 감각을 좀 더 맛보고 싶었다. 반가웠다. 이상할 정도로 기뻤다. 공격적이고, 난폭하고, 앞뒤 가리지도 않고, 대신 정직하고, 생기가 넘치고, 터질 것 같은 에너지가 내포된 감각. 몸속 깊은 곳에서 힘차게 뿜어 나오는 그것은 때로 성가신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불화를 일으키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고, 폭풍처럼 휘몰아치기도 했다.-122쪽
그래서 키가 비슷한 남자와 나란히 걷기 싫은 것이다. 얼굴이 가까운 위치에 있으니 매번 표정 변화가 느껴져 성가셔 죽겠다. 특히 다키자와처럼 지저분한 얼굴이 항상 시야에 들어와 있으면 몹시 불쾌하다. -192쪽
무슨 일을 해도, 무슨 음악을 들어도 기억과 결부되어 간다. 그것이 나이를 먹는다는 걸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풍경만 쌓여가는 것이 인생인가…-3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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