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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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호의를 받을 마음이 없었을 뿐이다. 경험이 가르친바, 호의는 믿을 만한 게 아니었다. 유효기간은 베푸는 쪽이 그걸 거두기 전까지고, 하루짜리 호의도 부지기수였다. 고마워하며 사양하는 게 서로 낯이 서는 길이었다. -43쪽

...자신의 개 같은 인생과 맞붙어 싸웠다는 삶의 증거물...-133쪽

그녀가 생각하기에, 스트레스는 겁쟁이의 변명이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압박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였다.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피 터지게 싸워 거꾸러뜨려야 마땅했다. 하다못해 침이라도 뱉어줘야 했다. 그것이 그녀가 '사는 법'이었다.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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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성술 살인사건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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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걸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어. 인간은 정말 불편해. 먹고 자고 하는 쓸데없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면, 인간은 훨씬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393쪽

"이렇게 매일 별의 움직임을 뒤쫓으면서 살면, 지구 위에서 우리의 사소한 행위는 허무한 것이 정말 많아.
그 중 가장 허무한 것이 다른 이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는 경쟁이야. 그런 경쟁만큼은 아무리 해도 몰두할 수가 없어. 우주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거대한 시계의 내부처럼. 우리의 별도 구석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톱니바퀴의 얼마 안 되는 톱니 중 하나야. 우리 인간 따위는 그 쇳조각에 들러붙은 박테리아 같은 역할이지.
그런데 이 패거리들은 하찮은 것 때문에 기뻐하고 슬퍼하면서, 눈 한 번 깜빡이는 시간 정도의 일생을 크게 소란을 피우며 보내지. 그것도 자신이 너무 작아서 시계 전체를 보지 못하니까, 그 메커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고 존재한다며 자만하고. 정말 우스워. 이런 생각을 하면 언제나 웃음이 나와."-297쪽

"...그리고 이 방은 두뇌 대신에 야경꾼 근성밖에 없는 정체 모를 저능아로 우글거리게 되는 거지. 나는 방에 돌아올 때마다, 네가 어디로 섞여 들어왔는지 큰 소리를 내서 찾아야 할 거야. 너는 모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들어. 머리를 어딘가에 두고 온 것 같은 무리 때문에 이 페이스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다음 날 일만 없으면 원하는 시간까지 잘 수 있어. 파자마 차림으로 신문도 읽을 수 있지. 좋아하는 연구를 하고, 마음에 드는 일만을 위해 문밖을 나가지. 싫어하는 녀석에게는 네가 싫다고 말할 수 있고, 백은 백, 흑은 흑이라고 누구에게 스스럼없이 말할 수도 있어. 이것들은 모두, 언젠가 형사도 말했듯이 세상이 상대해 주지 않은 룸펜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대가로 내가 손에 얻은 재산이야. 아직은 잃고 싶지 않아. 쓸쓸해지면 너도 있고, 나는 외톨이가 아니야. 이 생활이 아주 마음에 들어." -511쪽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알아. 하지만 모두가 말하는 만큼 내가 사람들과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사람들이야말로 날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거지. 이런 식으로 매일 평범하게 생활하는데도, 왠지 화성에서 사는 듯한 기분이 들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모두 나와는 달라.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모두가 너무나 시시한 일에 필사적이야. 관 속에 들어갈 때, 어라, 그건 착각이었군, 하고 말할 것이 뻔한 데도 말이야! …
사소한 기쁨이나 슬픔이나 분노, 그런 것은 태풍이나 소나기, 봄이 되면 매년 어김없이 피는 벚꽃 같은 거야. 인간은 그런 것에 매일 좌지우지되면서도 결국 모두 비슷한 곳으로 흘러가. 아무도, 아무것도 되지 못해."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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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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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오해받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의 삶은 대단해. 나도 따라할 수 있으면 좋겠어. 가만히 입을 꾹 다물고 연달아 닥쳐오는 온갖 시련을 말없이 견디며, 하지만 목적만은 결코 잊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들어도, 어떻게 생각되어도, 치매 노인이라 욕을 얻어먹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지. 나는 당신처럼은 도저히 살 수 없어."-504쪽

"나는 바보겠지. 언제나 돈 한 푼 되지 않는 일에 힘이나 쓰고 뻐겨도 되는 녀석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가장 그렇게 햇는 안된다는 인간에게 호통을 치지. 그러나 이 성격은 고칠 수 없어. 틀렸다고 생각하면 경시총감에게라도 확실하게 말해준다. 아무리 나쁜 패를 뽑아도 내 신념대로 갈 수밖에 없어. 당신에게 알아달라고는 안 해. 그러니 그냥 놔둬. 내 바람은 단 하나, 내 보잘 것 없는 인생에서 만나는 일에 대해 백은 백이고 흑은 흑이라고 말하며 죽어가고 싶어. 다만 그뿐이다. 방해하지 미."-510쪽

...아마 쇼와라는 시대, 그리고 일본인이 과거에 저지른 죄 혹은 지금도 계속 범하고 있는 죄 또한 이 인종의 본질 같은 것이 아닐까. 경찰관인 자신에게 이것을 깨닫고 그리고 파악하라, 하늘이 그렇게 재촉하는 느낌이 들었다. -5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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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2011년 제42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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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테바가 '아브젝트abject'라고 부른 것의 혐오스러움, '대상object'이라고 하기엔 경계가 모호해 실체의 식별도 불가능하고, 게다가 직전까지 '주체subject'의 내부에 있었으나 배설되고 버려졌으므로 이제 주체의 일부라고도 할 수 없는 물질이 불러 일으키는 불쾌한 매혹... 주객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아브젝트들의 범람 앞에서 그것에 매혹당한 주체의 불안과 공포... 한때 자신의 태반이기도 했던 무정형의 자연에 구획과 질서를 부여하는 노동, 인간의 주거와 야만의 주거, 코스모스와 카오스를 기필코 구분해내려는 사내의 공사... (김형중, 동일성의 지옥에서)-239-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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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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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원문의 분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단어 하나, 조사 하나가 모두 필요한 부품처럼 느껴져서 선뜻 버리질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품이 알고 보면 부품이 담긴 비닐봉지일 때가 있다. 판매할 때는 부품을 담을 비닐봉지가 필요하지만, 조립할 때는 봉지가 필요없다. 부품인지 비닐봉지인지 구분하는 안목은 아무래도 경험에서 나오겠지만, 되도록 깔끔한 번역을 위해서 군더더기가 될 것 같은 단어나 조사는 미련없이 버리자.-164쪽

탈고한 책을 다시 읽어보지 않는 이유?
그건 마치 벗어놓은 양말 냄새를 맡는 것과 같아서. (하루키)-157쪽

정말로 번역하기 싫은 책은 원문이 후진 책이다. 책의 재미나 교훈을 떠나서 아무리 잘 번역해도 '발 번역'으로 보이게 하는 재주 좋은 원문을 말한다. 이럴 때는 문장이 어설픈 건 작가 탓인데 역자가 욕먹는다. "작가가 그렇게 쓴 걸 어떡해요."하고 일일이 변명할 수도 없고 말이다. 욕 안 먹으려면 역자가 리라이팅까지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회의에 빠지게 만든다.-131쪽

번역료 인세율은 3~6%인데, 6%를 주는 곳은 양반이다. 대체로 4~5%다. 어느 출판사에서는 신인에게 2%를 주기도 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번역 인세가 8%다. 요즘 들어 출판 불황으로 6~7%를 주는 곳이 많아졌고, 생초보인 경우 어쩌다 4%를 주기도 한단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중견 번역가는 일본의 생초보(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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