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의 기사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품절


음악이 몸에 부딪친 순간, 내 몸 속에 전혀 쓰이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썼던 감각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 부분이 순식간에 입구를 열어 격렬하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받아들였다. 몸이 뜨거워져 지금까지 잊고 있던 충동에 가득 차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피아노가 감동적인 악구를 칠 때마다 머리가 멍했고 몇 번이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기억하고 있다! 이런 느낌을 내 몸이 기억하는 것이다. -83쪽

부장은 무척 놀란 것 같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뻐하며 아양을 떨며 들러붙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부장에게 그럴 마음 따위 없다. 솔깃한 먹이를 던져 반응을 보려고 할 뿐이다. 요컨대 그는 나를 파악하고 싶어 한다. 파악하고 분류해 딱지를 붙이고 안심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술이나 여자나 돈, 출세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인간이 주위에 있으면 자신의 가치관이 뒤흔들리는 느낌이 들어 불안에 사로잡힌다. -60쪽

"바다요! 바다 말입니다. 회색으로 파도치는 바다, 회색 지붕이 뒤집어진 책들처럼 끝없이 파도치고 있지요? 인간은 그 바닥에 달라붙듯이 헤엄치는 심해어입니다. 대부분은 저능합니다. 이 창문 높이까지도 헤엄쳐 올라올 수 없습니다…. 저들 심해어가 잔돈푼을 벌어 뭘 한다고 생각합니까? 미역이나 따개비 뒤에 다른 이보다 좀 더 나은 집을 지을 뿐입니다. 가소로운 일입니다! 고래만 지나가면 다 무너져 버리는데, 우하하하!... 우습지 않습니까? 따개비가 이런 작은 집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평생을 엄청난 염가로 판매합니다." -115쪽

다른 직원들과 나의 감수성은 정말로 몇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나는 혼자 이방의 땅에 섞여들어 있었다. 나는 그들과 생활의 일부분을 공유하는 것은 틀림없었지만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미라타이를 이해했다. 그 남자도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지도 못하는 곳을 제대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라타이라는 남자는 꾀죄죄한 5층짜리 빌딩이라는 인공 바위산의 정상에 살면서 초연하게 하계를 내려다보는, 남모르는 신선 같다.-139쪽

갑자기 폭발하는 것처럼 슬픔이 솟구쳐 나를 때려눕혔다. 눈물이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마치 거대한 수압에 눌린 듯이 내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다. 양손으로 때리는 듯 나는 얼굴을 감쌌다. 허탈감으로 인한 평정이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격렬한 슬픔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의자에서 굴러 떨어져 바닥 위에 납작 엎드렸다. 이를 꽉 물고, 비참한 작은 동물처럼 나는 신음했다. 고뇌를 견디는 심정과 똑같았다.
"제길!"
이를 악물고 나는 소리쳤다. 누구에게, 왜,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 노여움, 그러나 생각해보면 무엇보다도 그것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나는 내 젊음과 미숙함에 무한한 분노를 느꼈다. 자신에 대한 살의. 이래서 사람이 자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울었을까. 시간이 제법 지난 뒤 얼굴을 들고 바닥을 내려다보니, 내 눈물로 작은 웅덩이가 생겼다. 그것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한숨을 쉬어보았다. 두 번, 세 번, 그러자 그때마다 울고 싶은 기분이 서서히 멀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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