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생활의 발견
와타나베 쇼이치 지음, 김욱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독서의 질을 높이는 데 반복해서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문체의 특성이나 문장의 배후에 깔린 작가의 사상 등을 파악하려는 적어도 두세 번 정도는 책을 탐독해야 한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복 독서를 통해 감각을 연마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진다. 이는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 인간의 뇌세포가 미묘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진정한 재미를 느낄 때 독서는 비로소 진정한 취미가 될 수 있다.-37쪽

65세 이상이 되면 지적생활에서 확실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정년이 넘은 후 공공도서관에서 문고판 책을 빌려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거의 드물다. 젊어서부터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좋은 책들을 조금씩 사들여 자신의 서재에 소장해온 사람은 정년 이후에 참된 지적 즐거움을 알게 된다. 정년 후에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저서를 출간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정년 후에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차분히 꺼내 읽으며 애독할 만한 책들이 없으면 지적생활은 불가능하다…. 젊은 시절부터 나이가 들 때까지, 살아가는 동안에 조금씩 책을 사 모으는 과정 자체가 바로 지적생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구용 참고도서라도 훗날을 위해 고급 양장으로 구입하여 소장하고, 개인적인 취향으로 애독하고 싶은 책을 만날 때마다 한 권씩 한 권씩 사 모으다 보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나만의 개성넘치는 서재가 만들어진다.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얼마나 지적으로 성장했는지 고스란히 보인다. -90쪽

좋은 영감도 일할 때 떠오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오히려 마음은 자유로워져 통찰이 깊어지고 새로운 영감과 구상이 떠오르는 것이다. 즉,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일단 작업에 착수해 일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117쪽

"부는 우리에게 시간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자를 보면 질투심으로 가슴이 쓰린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학도 선이고, 예술도 선이며, 따라서 그런 것들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돈도 선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시간을 사는 돈, 즉 인생을 사는 돈만큼 선한 것은 없다."- 찰스 램 -182쪽

흄은 50여년을 살면서 권력자에게 아첨해 본 적도 없었고,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었다. 칼뱅파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들의 교의를 뿌리째 흔드는 학설을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리고 수많은 종교적 비판에도 전혀 미동하지 않고 대작인 <영국사>를 완성시켰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은 23세에 ‘경제적 독립’이라는 목표를 세운 후 흔들리지 않고 실천해나갔기 때문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명언 중에 ‘빈 자루는 서지 못한다. An empty sack cannot stand upright’라는 말이 있다. 이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자산이 없으면 사람은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이 명언을 남겼을 때 흄은 대서양 맞은 편에서 그것을 실천해보였던 것이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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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이야기
성수선 지음 / 엘도라도 / 2009년 7월
품절


외로워도 죽지는 않으니까,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거나 정신을 분산시키기 위해 쓸데없는 짓을 하진 말자. 그냥 외롭고 말자. 어차피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니까.-238쪽

내가 어디에서 뭘 하건, 잘못한 것도 없이 바보처럼 맞고 다녀도, 어이없이 실수를 해도, 성질을 못 참고 회사를 때려치워도, 백수로 세월을 탕진해도, 주식을 하다 돈을 다 날려도, 쳐다만 봐도 숨이 막힐 것처럼 뚱뚱해져도, 평생 결혼을 못하고 혼자 살거나 너무하다 싶은 허접스러운 남자랑 결혼을 해도 무조건 나를 믿어주는, 일단은 내 편을 들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50쪽

달인의 길은 연습이라는 것, 이것이 핵심이다. 달인의 길은, 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89쪽

어려운 길만 골라서 가는 어떤 인생, 하지만 괜찮을 거다. -86쪽

"상식이 통하는 조직을 만들자! 회사는 정치를 하는 곳이 아니라 일을 하는 곳이다." -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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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품절


"네 아빠는 엄마의 그런 점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대했어. 아빠는 나비가 자신의 손 위에 올라앉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인내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대했지."-259쪽

혐오가 헌트의 배 속에서 장기처럼 자라났다. 그 일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혐오란 장기가 요동쳤다.-188쪽

"조용히 한 말이었지만 마치 방에 수류탄을 던진 것 같았다. 그 세 마디에는 엄청난 힘, 삶을 망가뜨리고 무수한 부수적 피해를 발생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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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 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03년 5월
구판절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은 치열하고, 나중에 온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이민자들이 구한 자유는 굶주리는 자유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들은 바닥도 없는 수렁 같은 뉴욕의 예토(정토의 반대) 속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다. 예토 속의 욕망만이 메탄가스처럼 부풀어올라 갈 곳 없는 좌절의 독기만 기르게 될 뿐이다. 이 독기는 언제 불이 붙어 폭동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위험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칠 뿐인 위험한 에너지이다. -상, 133쪽

그런데 이곳의 하늘은 어떤가? 한정된 공간에 너무 많은 별을 한꺼번에 뿌려 놓아서 별들끼리 부딪치면서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잘 갈아놓은 금속같이 날카로운 빛이며, 그 하나하나가 흉기처럼 끝이 뾰족해서 찔릴 듯한, 따뜻한 맛이 전혀 없는 광채였다. 별하늘 밑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무수한 별 부스러기들이 굶주린 짐승의 떼가 먹이를 발견하고 일제히 떠들어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살벌하게 느껴지는 별이로군."-상, 255쪽

일본인의 강인함과 무서움은 야마도 민족이라는 동일 민족에 의해서 단일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가족의식’과 정신주의에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인인 한 대개 그 신원을 알고 있다. 요컨대 일본인 사이에는 ‘어느 말 뼈다귀’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인종의 전시장이라는 말처럼, 세계의 온갖 인종이 모자이크처럼 모여있는 복합 국가이다. 국민 모두가 ‘말 뼈다귀’뿐이다.
이런 나라에서는 불신이 싹트기 쉽다. 사람들은 인간보다는 물질을 믿게 된다. 자동판매기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가 미국이다….쓸쓸할 때, 괴로울 때, 실연을 했을 때에도 동전만 던져 넣으면 각각 그 방면의 전문가가 녹음재생기로 제각기 인생의 고민에 대해서 상냥한 대답을 해준다…
사람들은 그 간편함과 확실성(어디서나 돈만 내면 같은 것을 살 수 있다)에서 자동판매기를 별 생각 없이 쓰고들 있지만, 이것은 인간이 물질만을 믿는 단적인 구조이다...
틀림없이 돈은 인간 사이를 옮겨가고 있으면서도, 거기서 인간은 완전히 무기물처럼 되어가고 돈만이 살아있다. 그러나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다.-하, 64쪽

"그야 인간이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대부분을 가족과 더불어 걸어가게 되지."
"단지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지, 각자가 고독하다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피붙이나 친구들은 편대를 이루고 날아가는 비행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편대를 이룬 비행기?"
"그렇습니다. 어떤 비행기에 고장이 생기거나 또는 비행사가 부상을 입고 비행불능이 되어도 함께 가던 비행기가 대신 조종해 줄 수는 없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옆으로 다가가서 격려를 하는 정도지요."
"그래도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낫지."
"실질적으로는 그런 격려는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아무리 격려해 보아야 비행기의 고장이 고쳐질 리도 없고, 비행사의 몸이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비행기를 계속 날게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혼자밖에 없는 겁니다."
"꽤 냉엄한 생각을 하고 있군."
"인생이란 한 사람 한 사람이 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 아닐까요? 아무리 기체에 상처를 입어도 남의 비행기와 바꿀 수도 없고, 조종을 대신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하, 91-92쪽

긴자의 밤에서 견뎌내기 위해서는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칠칠치 못한 남편이 견뎌내야 할 세금일지도 모른다.
불쾌하긴 했지만, 그것뿐이라면 견딜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아내와 공개된 긴자의 여자와의 병존이었다. 궁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내 부분에 공개된 영역이 침범해 왔다. 침략은 가차없이 확실하게 행해졌다. 그를 위해서 보존되었던 조그만 화원마저 야금야금 침범해왔다.
그것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병이 나을 때까지 참는 것이다. 그때가 오면 지금의 침식 같은 것은 단숨에 쫓아내고 다시 자기만의 화원으로 되돌려놓을 테다. 그리고 그 화원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아름답고 개성적인 꽃을 기르는 거다. 그럴 자신은 있었다. 적어도 공개된 부분에 의해서 아내의 영역이 침범되어 있는 동안은 세금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 침식에는 개성은 없다. 가면이 아무리 커진다고 해도 본 얼굴이 죽는 것은 아니다. 본 얼굴이 일시적으로 숨겨질 뿐이다. -상, 99쪽

그러나 가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본 얼굴이 되어버렸다면? 다른 얼굴이 옛날의 본 얼굴을 덮는다면? 덮인 본 얼굴은 끝내 되돌아오지 않을 테지. 그것은 본 얼굴의 변질이다.
오야마다는 최근 아내를 침범하는 부분에 다른 개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어느 틈엔지 다른 사내의 괭이가 아내의 몸속에 새로운 개척의 자국을 남겨 놓았다. 세련되고 직업적인 훈련이 아니고, 여자의 의지에 의한 ‘변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기의 아내에서 다른 남자의 여자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미 자기를 위한 화원은 말라 죽고 다른 사내가 뿌린 씨앗이 새로운 움을 튀우고, 다른 꽃봉우리를 맺고, 전혀 다른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상,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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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우리의 사유가 열쇠-개념을 계기로 작동하고, 각각의 개념은 다른 개념과 짝을 이룬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유의 틀을 구성하는 116개의 열쇠-개념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 개념을 가장 구체적인 것부터 추상적인 것 순으로 나열하여 짧은 개론서 한 권을 완성해냈다. 책이 얇고 여백이 많아 일견 가볍게 보이지만 실로 야심찬 계획이고, 어지간한 통찰력과 자신감 없이는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유의 틀을 빌려 독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우선 그 개념쌍 중에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피에로와 아를르캥처럼 전혀 몰랐거나 관심이 없던 조합이 있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개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미 알던 개념이라도 상반되거나 비교할 만한 개념을 함께 떠올려 봄으로써 각 개념의 정의나 성격이 한층 도드라지는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랑과 우정에 대한 정의는 다종다기하겠으나, 여기에서는 양자의 차이를 상호성으로 규정하여, 상호성을 나눌 수 없는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은 서로 나눌 수 없다는 불행으로부터 자양분을 얻기도 한다고 규정하는 순간 두 개념이 한결 명확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개념간의 대비를 좀더 확장시키면, 세상을 파악하는 사고의 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부의 형성은 외혼과 내혼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원칙으로 이루어져, 외혼제 원칙도 있지만 내혼제 원칙이 더 우세하게 작용하는 프랑스에서는 너무 가까운인척과의 결혼도 안되지만 너무 먼사람들끼리의 결혼도 안된다는, 그래서 인종, 종교, 직업, 재력, 거주지역 등 가급적 유사한 테두리 내에서 결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식의 설명이나 역사와 지리, 즉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에서 시작하여 역사학자와 지리학자, 역사화가나 풍경화가, 역사소설과 지리소설, 나아가 역사적 시간(전쟁 등의 사건)과 지리적 시간(계절의 순환주기), 그리고 그 예로서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의 비교로 종횡무진 뻗어가는 사유의 전개는 재미와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준다.  

 

물론 문화적 맥락이 다르다 보니 이해를 돕자고 든 예가 오히려 더 생소하거나, 작가의 개념 구분이나 정의가 자의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개념의 연결과 조합, 풍부한 인용구, 그리고 작가만의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져 뜻밖의 생각을 자극하는 대목도 여럿 있었다. 마냥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판에 박힌 일상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 뼘쯤 생각의 수위를 높이고 싶을 때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봄 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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