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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우리의 사유가 ‘열쇠-개념’을 계기로 작동하고, 각각의 개념은 다른 개념과 짝을 이룬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유의 틀을 구성하는 116개의 ‘열쇠-개념’을 규정한다. 그리고 그 개념을 가장 구체적인 것부터 추상적인 것 순으로 나열하여 짧은 개론서 한 권을 완성해냈다. 책이 얇고 여백이 많아 일견 가볍게 보이지만 실로 야심찬 계획이고, 어지간한 통찰력과 자신감 없이는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유의 틀을 빌려 독자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내 경우에는 우선 그 개념쌍 중에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피에로와 아를르캥처럼 전혀 몰랐거나 관심이 없던 조합이 있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개념들을 접할 수 있었고, 이미 알던 개념이라도 상반되거나 비교할 만한 개념을 함께 떠올려 봄으로써 각 개념의 정의나 성격이 한층 도드라지는 효과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사랑과 우정에 대한 정의는 다종다기하겠으나, 여기에서는 양자의 차이를 ‘상호성’으로 규정하여, 상호성을 나눌 수 없는 우정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사랑은 서로 나눌 수 없다는 불행으로부터 자양분을 얻기도 한다고 규정하는 순간 두 개념이 한결 명확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개념간의 대비를 좀더 확장시키면, 세상을 파악하는 사고의 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부부의 형성은 외혼과 내혼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원칙으로 이루어져, 외혼제 원칙도 있지만 내혼제 원칙이 더 우세하게 작용하는 프랑스에서는 ‘너무 가까운’ 인척과의 결혼도 안되지만 ‘너무 먼’ 사람들끼리의 결혼도 안된다는, 그래서 인종, 종교, 직업, 재력, 거주지역 등 가급적 유사한 테두리 내에서 결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식의 설명이나 역사와 지리, 즉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에서 시작하여 역사학자와 지리학자, 역사화가나 풍경화가, 역사소설과 지리소설, 나아가 역사적 시간(전쟁 등의 사건)과 지리적 시간(계절의 순환주기), 그리고 그 예로서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의 비교로 종횡무진 뻗어가는 사유의 전개는 재미와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준다.
물론 문화적 맥락이 다르다 보니 이해를 돕자고 든 예가 오히려 더 생소하거나, 작가의 개념 구분이나 정의가 자의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개념의 연결과 조합, 풍부한 인용구, 그리고 작가만의 철학적 통찰이 어우러져 뜻밖의 생각을 자극하는 대목도 여럿 있었다. 마냥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판에 박힌 일상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 뼘쯤 생각의 수위를 높이고 싶을 때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봄 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