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김희선이라는 여배우 때문에 실패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사람들은 이 영화를 더 많이 보았을 것이고, 이 영화가 썩 잘 만들어진 멜로물임을 알게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그녀는 김희선답지 않은 연기력(?)을 보여줬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녀가 나오는 그렇고 그런 트랜디한 드라마같은 선입견을 주었다. 그녀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을 것 같다.
카라와 자귀모에서의 김희선. 또 그 밖에 그녀가 출연한 수 많은 드라마에서의 연기를 보자면 김희선은 연기력이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갖추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예쁠 뿐이다. 예쁜 얼굴 하나로 책 읽듯 대사를 하며 오랜시간 잘도 버틴 배우가 바로 그녀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그 당연한 판단에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녀. 정말로 연기를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관객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그녀의 모습은 연기력이 아닌 그저 예쁜 얼굴이었기 때문에 그녀가 머리빈 바비인형 같아 보였던 것일까?
와니(김희선)와 준하(주진모)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리고 옥탑방 고양이로 동거가 화두에 오르기 이전. 그들은 영화 속에서 서로 동거를 하고 있다. 옥탑방보다 조금 더 넓고 마당도 있는 집에서 말이다. 와니는 애니메이터이고 준하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다. 와니는 준하를 사랑하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첫사랑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그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형벌마저 내려진 상태이다. 그녀의 첫 사랑이 의붓 동생 (조승우)이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와니는 운전을 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동생과 함께 유학을 가겠다고,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가로수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다. 그 후 동생은 유학을 가고 엄마는 시골 이모네 집에 가서 살며 와니는 원래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준하와 함께 동거를 하며 살고 있다. 다들 그 사실로 부터 떠났지만 와니는 그 집을 지킴으로서 매일 그 사실을 마주하고 사는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나면 슬프고 구차하며 질질 짜는 멜로드라마랑 뭐가 다르냐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저 조금 어두워 졌을 뿐. 와니는 자신의 일도 열심히 하고 새로운 사랑도 한다. 다만 동생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분명 동생도 자신을 사랑했음을 알고 있다. 어느 한 사람도 와니를 비난하지 않는다. 와니의 엄마도 와니와 동생의 오랜 친구였던(와니에게는 후배였던) 여자아이도 그냥 그들의 사랑에 대해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따위의 추궁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써 와니와 동생의 사랑은 원색적이거나 통속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분명 통속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마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속 인물들이 통속적이지만 눈요깃거리를 위해서 과장하지 않기 때문에 통속적으로 보이지 않는것과 마찬가지 이다. 와니와 동생은 서로 사랑했었고 지금은 그냥 다 뭍어두고 있다. 거기에는 눈물도 질투도 원망도 없다. 다만 지나간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만약 준하가 이 사실 때문에 질투를 하거나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그리고 와니가 죄책감에 시달리며 엄마 앞에서 고개도 못 든다거나 매일 아빠의 무덤에 찾아가 사죄라도 했더라면 이 영화는 분명 내가 좋아할 만한 성질의 영화는 아니다. 그들이 울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울 수가 있었다. 꼭 와니와 동생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아서도 아니고 준하와 와니의 사랑이 아름다워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씩씩하게(발랄하거나 깜찍하진 않다.)잘 사는 와니가 너무 와 닿았기 때문이었다. 와니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슬픔을 이용해서 한없이 가련하고 처량한 희생양으로 둔갑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슬프지만 담담한것. 그게 와니의 매력이었고 나를 울게 한 힘이었다.
둘의 동거는 옥탑방의 그것처럼 알콩달콩 하거나 늘 사건이 하나씩뻥뻥 터지지는 않는다. 시장에서 장을 보며 딸기를 사려다가 너무 비싸서 포기하고 마는 와니의 뒷모습을 본 준하는 딸기를 사려고 한다. 여기있는 딸기 다 주세요 하지만 준하가 가진 돈은 별로 없다. 그래도 준하는 웃으며 딸기를 사고 와니와 함께 맛있게 먹는다. 둘의 사이가 조금 서먹해져서 떨어져 있는 동안 와니는 늘 준하가 자기 배에 얼굴을 올렸기 때문에 그 무게감이 그리워서 벼개를 배 위에 올리고 잔다. 와니와 준하는 예쁘게 살지 않는다. 그냥 우리처럼 산다. 일을 하고 장을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이 전혀 영화같지가 않다. 물론 그 안에 지지고 볶고 싸우는, 조금 넌더리나는 현실은 거세되어 있지만 그 정도는 충분하게 봐 줄만하다. 절대로 현실같지 않게 아름답고 고귀한 하루 하루를 사는 영화속 주인공이 넘처 흐르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함께 사는 것에 대한 환상도 심어주지 않고 첫사랑의 기억에 언제나 짖눌려사는 비현실도 보여주지 않는 와니와 준하는 그래서 이쁜 영화이다. 다분히 여성적인 영화이지만 남성 관객들도 충분하게 만족시킬 만하다고 생각되는 보기 드문 멜로이다.(총과 피가 등장하지 않는 영화는 보지 않는 사람은 예외)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고 또 아무도 이 영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 참 슬프다. 그래서 나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이 영화를 추천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누구 나오는 영화냐고 묻고 김희선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눈빛은 너무 뻔하지만 어쩔 수 없다. 비록 김희선이 이 영화 이후에 찍은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서 또다시 이쁘지만 뻣뻣한 마네킹같은 연기로 돌아가버렸지만 나는 와니와 준하에서의 그녀만 기억하고 싶다. 여배우가 그것도 정말 예쁜 여배우가 화면에서 예쁘기를 포기했을때 얼마나 더 예뻐 보이는지를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보여주고 그 이미지로 먹고 사는것이 여배우지만 그녀가 연기를 하면서 조금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지고 싶다면 이제 더이상 예쁜 얼굴만 우려먹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그녀가 현대 의학의 힘을 빌려 그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더 이상 예뻐도 대접을 받기가 힘들다. 보톡스로 땡겨 어색한 웃음이나 짓는 과거 아름다웠던 여배우에 관해 냉담한 관객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에 비해 주름은 좀 생겼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그 연기력과 카리스마 하나로 영화를 압도하는 여배우는 아직까지 관객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이 영화는 꼭 순정만화 같다. 와니의 직업이 애니메이터 이기도 하지만. 그리고 첫 장면에서 애니메이션이 나오기도 하지만(참 한국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와니와 준하의 사는 모습이랄지 그들의 모양이 눈만 큰 여자가 등장하는 순정만화가 아닌 한혜연의 사실적인 순정 만화를 떠 올리게 한다. 나는 아직도 가끔 이 영화를 보면서 운다. 파이란이나 반딧불의 묘를 보고 흘리는 눈물보다는 훨씬 덜 짜고 가벼운 눈물이지만 가끔 그런 눈물도 필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