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만 떠 올리면 동시에 화장실이 떠 오른다. 우리 가족들은 전부 화장실에서 책을 보는것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아예 화장실에 작은 책장이 있었다. 대게는 잡지 따위를 놔두곤 했었는데 로스같은 우리 오빠는 공룡에 관한 전집을 놔두기도 해서 나를 경악케 만들곤 했었다.그 시절 나는 소화기계통이 몹시 좋지를 않아서 화장실에 앉았을때마다 고통에 시달렸었다. 배가 아픈날 언제나 집어드는 책은 바로 갈매기의 꿈 이었다. 위장이 좋지않아서 잔뜩 찌푸린채 읽는 갈매기의 꿈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다지 권할 만한 풍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나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나는 동물을 의인화시켜 놓은 책들을 유달리 싫어 했었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였다. 의인화된 동물들은 언제나 잘난척의 끝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인간보다 훨씬 덜 떨어진 바보들이었는데 적어도 조나단 리빙스턴은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않았다.다만 조나단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럴듯한 희망이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동물왕국의 왕이 되기에 여념이 없는데 조나단은 멀리 날고싶어 했다.어려서부터 나는것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을 가지고 있어서 존경하는 인물이 나이트 형제였던지라 나는 조나단과 쉽게 친해질 수가 있었다.나 역시 갈매기였다면 아니 일단 뭐든 날개가 달린 생물이었다면 나도 분명히 더 멀리 더 높이 날기위해 어떤 발악도 불사했으리라...너무 거창한 꿈들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우린 일단 꿈이란 나는 그렇다치고 남들에게 충분하게 납득을 받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그래서 장래 희망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얼빵하게도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이랍시고 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나단의 꿈이야 말로 진짜배기 꿈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건 간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싶은 꿈 말이다.내가 어려서 조금이라도 더 똑똑해서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면 일치감치 나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꿈을 꾸느라 무리수를 두었고 지금은 꿈이 뭐더라 하면서 살고 있다.내 생각에 이 책은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만한 나이때 부터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그러면 꿈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국민학교에 다닐때 학년이 바뀔때 마다 선생님들은 장래 희망을 묻곤 했었다. 이 책을 읽은 혹은 읽을 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장래 희망보다는 꿈을 물어주기를. 그리고 그 꿈이 대통령이나 과학자같은 헛다리 짚는 소리보다는 조금 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소리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면 정말 고맙겠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면 잘 된다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근거없지는 않은것 같다. 머리가 나빠서 좀처럼 주인공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 책만큼은 복사라도 한 듯이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보다시피 절판이 되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구해서 읽었냐고? 알라딘에서 주문했었다. 책에 보니 2001년 5월이라고 되어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출장가는 비행기 안에서 보았나보다. 그런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최근에 다시 읽었다. 내가 왜 출장때 이 책을 골랐는지 알만했다. 책은 아주 작고 가벼웠기 때문이다. 사실 재미로 따지자면 이거보다는 SF단편 걸작선같은게 훨씬 나았겠지만 그걸 가지고 가려면 다른 짐들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할꺼다. 책이 얇고 가볍다는 것은 분명 나에게 아주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나는 이 책을 굴 소년의 한없이 우울한 죽음이라는 책과 비교하고 싶다. 그 책 역시도 읽고나서 내가 뭘 읽었는지 가물거리기는 마찬가지니까. 우디 알랜에 관해서는 다들 조금씩 알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유명하고도 괴상한 영화 감독이므로... 우디 알랜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 책에서 정상적이고도 보편적인 형태의 재미를 기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우디알랜을 제외한 다른 작가들에게서 바래야 하는 것이다.여러가지의 단편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걸 읽는동안 머리속에는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비롯해서 각종 괴상한 SF책들이 내 머리속을 휘젓고 다녔다.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을 펼치면 15분 이내로 잠들 수 있었다. 굳이 재미가 없어서라고 말 하기도 힘들지만 또 아니라고 박박 우기기도 힘들다. 뭐 나름의 독특한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잠을 막을 정도는 아니라고 해 두는것이 좋겠다.나도 이상한 인간이란 소릴 좀 듣는편이지만 우디알랜의 책은 나 같은 인간이 봐도 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디 알랜의 광팬이라면 한번쯤은 구해서 읽어 볼 만하겠다. 하지만 평소 그의 유머를 혐오하던 사람이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움직이는 영상이 낫지 글자들로 된건 더 골치아프다고 말 해주고 싶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나는 마당깊은 집을 드라마로 먼저 봤다. 당시 고두심씨가 나왔고 아이들이나 이웃들은 누가 나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무척 재미있게 봤었다. 요즘 날림으로 만드는 시대물하고는 차원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그때 어찌나 재밌게 봤던지 나는 이 책을 MBC에서 소개를 하려고 고두심씨를 불렀을때 부터 마당깊은 집 인줄 알았다.그리고 원작이 있는줄은 그날 처음 알았다. 당장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일이 바쁘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몰아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마당깊은 집에 등장하는 지명중에 하나여서 그런가 읽으면서 내내 남의 얘기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오는 동네의 대부분이 내가 다녀봤던 곳이고 아는 곳이라서 친숙했다. 물론 그때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없지만 말이다. 언젠가 우리 동네가 예전에는 술집이 즐비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도 술집 골목으로 묘사된걸 보면 그 말이 맞긴 맞나보다.(지금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주택가라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쇼 프로에서 책을 읽으라고 법석을 떠는 것 중에서 아마 내가 그걸 보고 읽게 된 유일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 프로를 늘 경멸했었는데 그래도 원작이 있다는걸 알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드라마로만 기억하는 마당깊은 집을 다시 만나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이 책과 비교를 해 볼 만한 책으로는 <홍어가 있다. 둘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데 홍어는 자신과 어머니 단 두 사람의 단촐한 인간관계에 대한 시선을 전한다면 마당깊은 집은 그 안에 세들어살고 있는 이웃들을 모두 포함해서 포괄적이다. 박경리씨의 소설도 비슷한게 있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목이었던가?) 사실 이런류의 소설이 아주 귀한 종류는 아니다. 아마 전쟁을 겪은 세대의 작가 중에서는 한번 정도는 그때의 기억을 떠 올리며 글을 썼을테니까. 그럼에도 내가 마당깊은 집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여러 등장인물을 악의없이 그려내는 시선에 있다. 어떤것도 미화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는 시선이야 말로 이런 류의 책들 가운데서도 빛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 개인적으로 파고들지도 않고 딱 적당한 정도로만 그 시대를 표현했다는 것도 포함시켜서 말이다.
나는 글쟁이를 꿈꾸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러고 나면 글 쓰기가 절대로 재미가 없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가 인생 모토인 나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나는 작가도 기자도 다 싫다. 다만 그냥 재미삼아 키득거리기 위해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간혹 글 쓰는것이 목표라고 버젓이 떠드는 이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그 용기가) 약간 한심하다.(그들이 써 놓은 글이)그러면서도 책을 일다가 보면 간혹 정말 저 재능을 확 훔쳐오고 싶고나 하는 충동에 휩싸일때가 있다. 무라카미가 그랬고 움베르토 에코가 그랬다.(그 외에도 좀 많지만 불행하게도 한국 작가는 없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한번 척 팔라닉이 그렇다.척 팔라닉의 질식을 나는 먼저 읽었다. 아마도 서바이버가 질식 이 전의 작품인줄로 안다. 같은 작가의 글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조금 웃기긴 하지만 나는 일단 서바이버에 점수를 더 주고싶다. 질식도 꾀 재밌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난 서바이버를 더 단숨에 읽었으니까.내용은 사이비교에서 자라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어떤 종교이건 광적인 것은 질색인 나에게 역시 종교는 깊이 파고 심각하면 또라이같아 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고 볼 수 있겠다.그러나 사실 척 팔라닉은 종교를 말 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종교는 현실의 교육 시스템이다. 주인공이 괴상한 교도에서 자라나서 그저 주입받은 것만 알고 거기까지만 생각을 할 줄 알듯이 현대의 교육 시스템 아래서 나온 아이들도 모두 넣은대로만 입력되어 있는 바보 컴퓨터 같다. 자기들 딴에는 몹시 똑똑하고 잘난 줄 알지만 한번 생각 해 보자.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것이 하나라도 있는지...학교 다닐때 나는 그런 얘들을 젤 싫어했다. 딱 주어진만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만 생각하는 아이들. 딱히 범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부류들이다.서바이버에 나오는 주인공 역시 똑같다. 일종의 쇠뇌를 당한 주인공은 에이전트를 만나기 전 까지는 늙어 죽을때 까지 다림질, 얼룩지우기나 하면서 살 팔자였다. 그러나 에이전트를 만나 유명해지고도 여전히 그는 꼭두각시 일 뿐이다. 왜냐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 삶의 정리마저도 타인이 시키는대로 한다. 처음에는 상상조차 안했지만 자기가 공중 납치범이 되어야 한다는 타인의 얘기를 듣고 그렇게 되기로 한다.책 표지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블랙박스에 담긴 이 시대가 낳은 가짜 메시아의 처절한 고백'. 참 할 말이 없는 문구다. 제발 책좀 똑바로 읽고(아니 읽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저따위 광고 문구를 쓰라고 정중하게 권유하고 싶다. 아무튼 표지에 씌인 바보같은 문구는 신경쓰지 말고 보길 바란다. 옳은 말은 블랙박스 하나니까...
듀나의 소설은 [면세구역]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개인적으로는 면세구역 보다는 태평양 횡단특급에 별 한개 정도 더 주고 싶다.한때 듀나는 한 사람이다. 혹은 여러사람이 모인 집단이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물론 성별 논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듀나는 이영수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내기 시작했고 의견은 좁혀지는 듯 했다. 하지만 누가 아는가 이영수 조차도 필명 일지...면세구역을 읽어보면 그다지 여러 사람이 썼다는 생각이 들지않아서 나는 듀나를 한 사람이며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태평양 횡단특급을 읽으면서 또 다시 헤깔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듀나라는 이름아래 활동을 하고 그 중에는 여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SF장르라고는 했지만 앞의 3가지 단편들('태평양 횡단특급''히즈 올댓''대리 살인자')는 SF라기 보다는 그냥 재기발랄한 단편 정도이다. 그리고 '첼로'부터 나머지 까지의 단편들은 앞의 소설 [면세구역]과 그리 다르지 않은 장르와 문체를 택하고 있다.내가 듀나를 여자일지도 혹은 여러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대리살인자'와 '첼로' 때문이다. 두 단편은 다른 듀나의 글과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것은 역시 '대리살인자'와 '첼로'인데 대리살인자의 경우 누구나 한번쯤은 아무런 댓가도 지불하지 않으며 잡혀서 죄값을 치뤄야 할 일이 절대로 없다면 누군가를 죽일텐데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더구나 내 손에 피를 바르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죽여주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얼씨구나 하면서 여러사람의 이름을 말 할 것이다. 특히 이 단편에 정이갔던 이유는 주인공들이 선생을 많이 지목했다는 것이다.대한민국에서 학교라는 곳을 다닌 사람들은 안다. 선생들 중에서 얼마나 죽이고 싶은 인간들이 많은지를...다음으로 첼로는 로봇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것인데, 뭐 그리 로멘틱하지는 않지만 충분하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이다. 특히 주인공의 이모가 로봇을 그리워하며 내뱉는 말들은 가히 압권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 사람이 그리운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감이 그리운 것이다. 첼로는 그 부분을 아주 잘 표현 해 낸 수작이다.자. 나머지 단편들은 거의가 SF이다. 조금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도 있고 괜찮은 작품들도 있다. 반나절 정도면 뒹굴거리며 충분히 읽을 만 하고, 읽고나서 그다지 머리에 콱 와서 박히는것은 없지만 재미는 보장 할 만하다. 적어도 듀나의 다음 작품이 나오면 선뜻 장바구니에 넣을 정도는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