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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ㅣ 에버그린북스 1
리처드 바크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5월
평점 :
절판
고백하건데 나는 이 책만 떠 올리면 동시에 화장실이 떠 오른다. 우리 가족들은 전부 화장실에서 책을 보는것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아예 화장실에 작은 책장이 있었다. 대게는 잡지 따위를 놔두곤 했었는데 로스같은 우리 오빠는 공룡에 관한 전집을 놔두기도 해서 나를 경악케 만들곤 했었다.
그 시절 나는 소화기계통이 몹시 좋지를 않아서 화장실에 앉았을때마다 고통에 시달렸었다. 배가 아픈날 언제나 집어드는 책은 바로 갈매기의 꿈 이었다. 위장이 좋지않아서 잔뜩 찌푸린채 읽는 갈매기의 꿈은 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다지 권할 만한 풍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나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나는 동물을 의인화시켜 놓은 책들을 유달리 싫어 했었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였다. 의인화된 동물들은 언제나 잘난척의 끝을 보여주던가 아니면 인간보다 훨씬 덜 떨어진 바보들이었는데 적어도 조나단 리빙스턴은 둘 중 어느 하나에도 속하지 않았다.다만 조나단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럴듯한 희망이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동물왕국의 왕이 되기에 여념이 없는데 조나단은 멀리 날고싶어 했다.
어려서부터 나는것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을 가지고 있어서 존경하는 인물이 나이트 형제였던지라 나는 조나단과 쉽게 친해질 수가 있었다.나 역시 갈매기였다면 아니 일단 뭐든 날개가 달린 생물이었다면 나도 분명히 더 멀리 더 높이 날기위해 어떤 발악도 불사했으리라...
너무 거창한 꿈들은 우리를 지치게 한다. 그리고 우린 일단 꿈이란 나는 그렇다치고 남들에게 충분하게 납득을 받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그래서 장래 희망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얼빵하게도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꿈이랍시고 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나단의 꿈이야 말로 진짜배기 꿈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건 간에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싶은 꿈 말이다.
내가 어려서 조금이라도 더 똑똑해서 지금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면 일치감치 나는 내가 하고싶은 것을 했을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꿈을 꾸느라 무리수를 두었고 지금은 꿈이 뭐더라 하면서 살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책은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을만한 나이때 부터 꿈을 잊어버리고 사는 어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읽어 볼 만한 책이다. 그러면 꿈이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국민학교에 다닐때 학년이 바뀔때 마다 선생님들은 장래 희망을 묻곤 했었다. 이 책을 읽은 혹은 읽을 교사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장래 희망보다는 꿈을 물어주기를. 그리고 그 꿈이 대통령이나 과학자같은 헛다리 짚는 소리보다는 조금 더 자신의 내면에서 나온 소리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시면 정말 고맙겠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면 잘 된다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근거없지는 않은것 같다. 머리가 나빠서 좀처럼 주인공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 책만큼은 복사라도 한 듯이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