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 신화
하워드 슐츠 외 지음, 홍순명 옮김 / 김영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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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한잔에 담긴 성공신화는 스타벅스 스토어 하나로 시작한 하워드 슐츠가 어떻게 전 세계에 2천여개의 스토어를 열게 될 만큼 성공했는가에 대한 얘기이다. 알다시피 스타벅스의 커피는 결코 싸지 않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자판기 커피에 비하면 10배가량 비싸고 왠만한 한끼 식사는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커피 매장에는 아침이면 출근길에 커피를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왜 그럴까? 하워드 슐츠는 이러한 이유를 마케팅과 고품질의 원재료 그리고 사람중심의 경영이 이룩해낸 성과라고 말한다.

우선 마케팅 부분을 살펴보자. 스타벅스는 다른 제품들처럼 매체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스타벅스와 비교하는 글로벌 패스트푸드(하워드 슐츠는 거대 패스트푸드 기업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눈치지만) 들에 비하면 거의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매체 광고만이 전부가 아니다. 스타벅스의 상표를 예로 들어보자. 초록색 바탕에 흰색으로 그려진 요정 사이렌은 멀리서도 확연하게 눈에 띄며 고급스럽다. 커피하면 이내 떠올리는 갈색이 아닌 자연과 편안함 신선함등을 떠 올리게 하는 초록색 로고는 커피를 고리타분한 음료에서 고급스러운 음료로 탈바꿈 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스타벅스 스토어의 인테리어와 제품 패키지등은 스타벅스내에 전담팀이 존재할 정도로 많은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그들은 단지 맛있는 커피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스타벅스라는 이미지 자체를 소비하도록 한다.

다음으로 최고급 원재료를 사용하므로써 스타벅스가 훌륭한 맛을 내도록 했다. 장사란 것이 모두 그렇듯 원가를 절감하면 할수록 그만큼 이익이 남지만 하워드 슐츠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원재료에 대한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스타벅스가 다른 글로벌 패스트푸드와 결정적인 차별화의 전략을 걷는 것은 바로 이런 고급스러움을 고집하는데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인력관리를 철저히 하였다. 최상의 대우를 해 줄때 회사는 그에 걸맞는 능력을 개인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충분한 보상이 따르지 않거나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다면 그 사람은 회사를 위해 절대로 최선을 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무시되고 늘 요구만 많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치 공산주의 국가에서의 일터처럼 사람들은 적당히 시간을 때우고 정해진 임금을 받아 갈 것이다.

내가 스타벅스에 가장 감탄한 부분은 바로 이 마지막 부분이었다. 훌륭한 마케팅과 최고급 원료는 사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충분하게 해 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스타벅스처럼 직원에게 투자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스톡옵션제를 도입하고 주 30시간 미만인 파트타임 사원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더구나 그들은 함께 살고 있는 사원의 파트너에게도 동성이건 이성이건을 떠나서 모두 의료보험 혜택을 주고 있다.) 이것은 돈의 문제라기 보다 경영자의 마인드 문제이며 더 나아가서는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직원들마저 욕하고 외면하는 회사. 같은 조건이라 하더라도 자리만 생기면 당장 옮기고 싶은 회사는 절대로 발전할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사람이야 나가면 또 채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영업이익같은 실질적인 형태로 드러나지야 않겠지만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며 투자하는 회사는 분명 오래도록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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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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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멜리 노통의 책 중에서는 그리 역작은 아님을 밝혀둔다. 적의 화장법이나 오후 네시에서 보여준 아멜리 노통 특유의 분위기가 거세된듯한 약간 평범한 소설이다.

나를 죽인자의 일생에 관한 책 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아멜리 노통 자신을 살해한 살인자의 탄생부터 다루어져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살인자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노통을 죽이기 위해 준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사실 나는 그러하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아멜리 노통 특유의 치밀하고도 빡빡한 긴장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19살에 결혼을 하고 남편을 죽인 여자의 아기로 태어난다. 남편을 죽일때 그다지 큰 이유가 없었던 여자는 아이를 낳자 마자 감옥에서 자살을 한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언니. 즉 이모의 손에의해 큰다. 어릴때 발레리나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이모는 주인공을 공주처럼 키우고 발레리나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모는 무척 자상하게 주인공을 돌보고 사랑을 주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주인공이 발레리나로 대성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주었던 사랑이었다. 어릴때부터 남다른 생각과 남다른 재주(발레)를 가졌던 주인공은 어느날 사고로 발레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는 자기 어머니의 얘기를 알게 되고 아멜리 노통을 살해한다. 살해 이유는 단순하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았으면서도 아무도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아멜리 노통이 추궁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상의 범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뱃속에서 부터 아버지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한(실제로는 느꼈다고 표현해야 옳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 만약 그녀의 이모라도 정상인이었으면 주인공이 발레라는 꿈을 통해 그나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모역시 한 핏줄인지 자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작가를 죽이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의 어머니 역시 별 다른 이유가 없이 남편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는 무능력했으며 아이의 출산에 무관심했다는 죄가 있다. 그리고 오랜세월 함께 살다보면 사소한 일이 쌓여 증오가 되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과 작가의 관계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친구, 오히려 막 만났다고 표현해야 하는 인간관계에서 의미없이 이루어진 살인이다. 죽이고 나서 아멜리 노통이 더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책의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아멜리 노통의 글을 읽고 분노를 했다거나 하는 표현은 없다. 오히려 아멜리 노통이 왜 아무도 죽일 생각을 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죽였다고 밖에는 생각이 되질 않는다.

아직 아멜리 노통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멜리 노통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너무 크다. 인과관계이고 이유고 다 무시하고 쓰고 싶은데로 쓰는 작가라고 말이다. 비록 분위기는 독특했지만 그녀가 전작에서 보여준 놀랍고도 유쾌한 부분들은 도저히 찾아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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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밥해먹기
김혜경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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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밥해먹기>는 그야말로 일을 하면서 ‘요리’가 아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밥 해먹기에 관한 책이다.

나 역시 일을 하면서 밥을 해 먹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혼자 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고, 벌써 8년차나 되었으니 그럭저럭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제대로 배운 적 없이 내 멋대로 대강대강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했기 때문에 찌게는 종류를 불문하고 한 가지 맛이 나고 볶음은 뭐를 넣건 거기서 거기라는 치명적인 오점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요리책도 사 보았고, 케이블TV 푸드 채널도 드문드문 봐왔건만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았다. 요리책이나 요리프로에서의 가장 난점은 몇 그람 몇 티스푼 하는 단위와 좀처럼 집에 갖춰놓기 힘든 재료들이라고 생각한다. 뭐 하나를 해먹기 위해서 저렇게나 많이 필요할까 싶은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것을 보면 간장, 설탕, 고춧가루, 소금, 다시다가 양념의 전부인 나는 그냥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거기다 요리프로에서 쓰는 도구들은 역시 도마와 칼이 주방도구의 전부인 이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요리를 하는데 필요한 시간이다. 하루에 8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일을 하면서 몇 시간이나 투자하는 요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청소도 빨래도 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김혜경의 <일하면서 밥해먹기>는 정답은 아닐망정 해답을 주기는 한다. 우선 주방에 필요한 기본부터 갖추라고 말 하므로써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재료와 도구들이 넘쳐흘러서 이걸 다 사다가는 살림 거덜나겠군 싶은 요리책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무엇무엇이 필요하다고 말해놓고 그 기본을 가지고 만든 요리들을 소개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만 갖추어 놓으면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 요리들이 많다. 그리고 저자 역시 기자생활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서인지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요리들이 많다. 물론 중간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는 것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쉬는 날 충분하게 준비가 가능한 정도이고 만약 시간이 없다면 맛은 조금 덜하더라도 단시간에 할 수 있는 방법까지 적혀있다.

또 하나. 무슨 소스이건 양념이건 직접 다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여타 요리책 혹은 요리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시중에 파는 소스와 드레싱등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있다. 웰빙족이라 유기농 이외에는 절대 먹을 수 없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스턴트나 레토르트, 통조림을 이용한 요리도 많아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잘 읽힌다는 것에 있다. 흔히 요리의 그림아래 재료. 만드는 법으로 땡인 요리책들을 여간해서 한권을 그 자리에서 독파하는 것이 힘들다. 허나 기자출신 답게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정감 가는 문체로 저녁거리를 걱정하는 옆집 새댁에게 일러주는 듯한 주방에서 식칼 들고 심호흡한번 하고 나서야 들춰보게 되는 요리책과는 다르다. 한번에 죽 읽어두면 머릿속에 남기 때문에 요리를 할 때가 되어서 찾아보는 레시피북들 보다 훨씬 더 와 닿는다.

이 책에 소개되는 주방도구와 여러 재료들 역시 만만찮게 많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단 한가지 목적에 귀결된다. 바로 일하면서 즉 시간이 별로 많지 않는 상황에서 보다 손쉽고 빠르게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소개되는 것 마다 모두 갖출 필요는 없겠지만 식구들이 밥을 먹고도 쉬는 동안 소화시킬 틈도 없이 설거지통에 손을 담글 바에는 차라리 설거지 기계를 사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혼자 살면서 밥을 해먹는 나도 설거지가 끔찍한데 최소 3인이상의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일까지 하는 주부라면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까지 부엌에서 동동거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유를 부려가며 읽었는데도 이틀 만에 다 읽을 만큼 재미도 있고 실용적인 책으로 일을 하면서 밥을 해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한권쯤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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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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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가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동네 구석구석 생긴 슈퍼마켓도 모자라서 대형 할인마트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재래시장을 이용할 일은 일년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힐까 말까 한다.

내가 기억하는 시장은 어릴때 엄마손을 잡고 가지런하게 누운 갈치들의 꼬리를 팔로 스윽 문지르고 되에 담긴 땅콩을 집어먹던 곳이었다. (마트에는 시식코너가 따로 있지만 시장에는 그냥 집어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어쩌다 엄마가 기름속에서 구름처럼 부풀던 도너츠를 사주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종일토록이라도 그렇게 시장을 돌아다닐 수 있을것만 같았다.

삼오식당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시장통의 작은 밥집이다. 그녀의 어머니뿐 아니라 시장통의 모든 여자들은 한사람의 아내로 또 한사람의 어머니가 되어서 생업을 잇고 있다. 그들은 많이 배우거나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지도 않다. 기껏 약아봐야 남들에게 뻔히 들킬 정도의 잇속만 챙길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이명랑이라는 작가에게 아쉬움이 들었다. 글 솜씨는 좋지만 결국 그녀 역시 다른 여류작가들이 그러하듯 '삶의 체험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겪은 일들은 기가 막힌 문장으로 맛깔스럽게 버무려 내지만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등장인물 가운데 몇몇은 허구고 또 스토리 가운데서 어떤것들은 순전히 머리속에서 나오기도 했었지만 애초 가보지 않은 장소, 겪지않은 일들,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는 것에는 절대적으로 인색하다. 그러나 그녀의 글솜씨 만큼은 쓸만해서 은희경과 함께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해 줬으면 싶은 작가의 반열에 올릴 만 하다.

대체적으로 부담없이 읽을 만한 책이며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 간다. 하지만 읽고 난 이후의 강력한 임펙트가 없다. 그것은 마치 시장통에서 남의 이야기를 주어듣기를 좋아하는 여편네가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무슨 얘길 그렇게 재미나게 들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것과도 비슷하다. 새의 선물같은 책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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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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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가 대종상 영화제에서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상을 모조리 휩쓸어서 말썽이 많은 적이 있었다. 왜 말썽이 많았는고 하니 극장에 걸린 작품도 아니거니와 심사 당시 완성된 프린터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장모 여배우는 시상식장에서 그 특유의 음색으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알러뷰~’를 감격어리게 외쳤으나 결국 시끄러운 영화제로 인해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영화 애니깽에서는 어찌된 이유인지 한국인들이 일하게 되는 멕시코 농장이 애니깽 -원래는 에네켄이나 우리식으로 애니깽이라 불렀었다고 한다.- 농장이 아니라 사탕수수 농장이지만 아무튼 멕시코로간 이민1세대 한인들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에네켄은 로프를 만드는 섬유의 원료로 원산지가 멕시코이다. 당시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던 맥시코가 단 한차례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이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됨으로써 농장가서 돈을 벌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이들은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볼 생각이 없는 이 영화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았던 것은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역시 애니깽을 주제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달리 사탕수수가 아닌 에네켄을 제배했던 이들은 잘사는 나라에 돈 벌러 간 후진국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듯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온갖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고생을 무용담처럼 주절주절 늘어놓지는 않는다.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비교적 한정된 공간 -에네켄 농장-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태까지 김영하를 좀 말랑한 작가쯤으로 봤던 나에게는 좀 충격적인 작품이었는데 조금 더 늘이면 대하소설 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동로를 작가역시 그대로 따라가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속의 인물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실적인 역동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작가의 노력 덕분이다. 김영하는 검은꽃을 쓰기 위해 생판 가보지도 않았고 말도 통하지 않은 멕시코에서 소설을 완성했다. 작품의 고저를 떠나서 나는 작가들의 노력을 말 하고 싶다. 이왕 읽을꺼라면 나는 머릿속에서 나온 일기장같은 소설들 보다는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에 대해 상상하고 때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발로도 뛰는 그런 노력형의 소설을 읽고 싶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자. 책의 주인공은 이정이라는 남자아이이다. 멕시코행 배를 타기 전에는 소년에 불과했던 그는 갖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청년으로,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멕시코행 배에서는 일본인 요리사를 도와서 소일거리 없이 지내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일을 하게 되고 멕시코에 도착해서는 다른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에네켄 농장에서 지독하게 고생을 한다. 요행히 에네켄 농장에서 탈출을 하긴 하지만 멕시코 내전에 휘말려 명목 없는 전쟁에 끌려다니게 된다. 마지막에는 멕시코의 한 밀림속의 유적지에서 신대한을 세우려고 하지만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그는 배에서부터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은 시대 앞에서 온전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도입부를 너무 길게 끌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멕시코로 떠나는 배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후반부에 비하면 지나치게 호흡이 더디다. 차라리 대하소설이었다면 어울릴법한 도입부였으나 소설에 쓰이므로서 전체적인 무게중심을 잃었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지만 여느 이민사들처럼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는 영웅담을 낳지는 못한다. 당시 그들이 떠나온 대한민국은 너무나 힘이 없는 조그만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정이라는 인간 개인의 삶의 기록이자 당시 시대상황의 재현이며, 더 나아가서는 나약한 국가의 불쌍한 국민들에 관한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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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4-05-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잼있게 읽었던 소설입져..김영하 또한 좋아하지만서도 헤헤..여기서 보니 방갑네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