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아멜리 노통의 책 중에서는 그리 역작은 아님을 밝혀둔다. 적의 화장법이나 오후 네시에서 보여준 아멜리 노통 특유의 분위기가 거세된듯한 약간 평범한 소설이다.

나를 죽인자의 일생에 관한 책 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책의 내용은 아멜리 노통 자신을 살해한 살인자의 탄생부터 다루어져 있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살인자가 처음부터 치밀하게 노통을 죽이기 위해 준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사실 나는 그러하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아멜리 노통 특유의 치밀하고도 빡빡한 긴장감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인공은 19살에 결혼을 하고 남편을 죽인 여자의 아기로 태어난다. 남편을 죽일때 그다지 큰 이유가 없었던 여자는 아이를 낳자 마자 감옥에서 자살을 한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언니. 즉 이모의 손에의해 큰다. 어릴때 발레리나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이모는 주인공을 공주처럼 키우고 발레리나가 될 수 있도록 한다. 이모는 무척 자상하게 주인공을 돌보고 사랑을 주지만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 주인공이 발레리나로 대성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주었던 사랑이었다. 어릴때부터 남다른 생각과 남다른 재주(발레)를 가졌던 주인공은 어느날 사고로 발레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는 자기 어머니의 얘기를 알게 되고 아멜리 노통을 살해한다. 살해 이유는 단순하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았으면서도 아무도 죽일 생각을 하지 않았냐고 아멜리 노통이 추궁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정상의 범주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뱃속에서 부터 아버지를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한(실제로는 느꼈다고 표현해야 옳았을 것이다.) 주인공은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 만약 그녀의 이모라도 정상인이었으면 주인공이 발레라는 꿈을 통해 그나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모역시 한 핏줄인지 자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것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작가를 죽이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의 어머니 역시 별 다른 이유가 없이 남편을 죽이기는 했지만 그는 무능력했으며 아이의 출산에 무관심했다는 죄가 있다. 그리고 오랜세월 함께 살다보면 사소한 일이 쌓여 증오가 되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공과 작가의 관계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친구, 오히려 막 만났다고 표현해야 하는 인간관계에서 의미없이 이루어진 살인이다. 죽이고 나서 아멜리 노통이 더이상 글을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책의 어디에서도 주인공이 아멜리 노통의 글을 읽고 분노를 했다거나 하는 표현은 없다. 오히려 아멜리 노통이 왜 아무도 죽일 생각을 하지 않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죽였다고 밖에는 생각이 되질 않는다.

아직 아멜리 노통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아멜리 노통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너무 크다. 인과관계이고 이유고 다 무시하고 쓰고 싶은데로 쓰는 작가라고 말이다. 비록 분위기는 독특했지만 그녀가 전작에서 보여준 놀랍고도 유쾌한 부분들은 도저히 찾아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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