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장에 가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동네 구석구석 생긴 슈퍼마켓도 모자라서 대형 할인마트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재래시장을 이용할 일은 일년에 세 손가락 안에 꼽힐까 말까 한다.

내가 기억하는 시장은 어릴때 엄마손을 잡고 가지런하게 누운 갈치들의 꼬리를 팔로 스윽 문지르고 되에 담긴 땅콩을 집어먹던 곳이었다. (마트에는 시식코너가 따로 있지만 시장에는 그냥 집어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어쩌다 엄마가 기름속에서 구름처럼 부풀던 도너츠를 사주기라도 할라치면 나는 종일토록이라도 그렇게 시장을 돌아다닐 수 있을것만 같았다.

삼오식당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시장통의 작은 밥집이다. 그녀의 어머니뿐 아니라 시장통의 모든 여자들은 한사람의 아내로 또 한사람의 어머니가 되어서 생업을 잇고 있다. 그들은 많이 배우거나 똑똑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지도 않다. 기껏 약아봐야 남들에게 뻔히 들킬 정도의 잇속만 챙길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이명랑이라는 작가에게 아쉬움이 들었다. 글 솜씨는 좋지만 결국 그녀 역시 다른 여류작가들이 그러하듯 '삶의 체험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겪은 일들은 기가 막힌 문장으로 맛깔스럽게 버무려 내지만 상상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물론 등장인물 가운데 몇몇은 허구고 또 스토리 가운데서 어떤것들은 순전히 머리속에서 나오기도 했었지만 애초 가보지 않은 장소, 겪지않은 일들,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는 것에는 절대적으로 인색하다. 그러나 그녀의 글솜씨 만큼은 쓸만해서 은희경과 함께 조금만 더 상상력을 발휘해 줬으면 싶은 작가의 반열에 올릴 만 하다.

대체적으로 부담없이 읽을 만한 책이며 페이지도 술술 잘 넘어 간다. 하지만 읽고 난 이후의 강력한 임펙트가 없다. 그것은 마치 시장통에서 남의 이야기를 주어듣기를 좋아하는 여편네가 정작 집에 돌아와서는 무슨 얘길 그렇게 재미나게 들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것과도 비슷하다. 새의 선물같은 책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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