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인가 대종상 영화제에서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상을 모조리 휩쓸어서 말썽이 많은 적이 있었다. 왜 말썽이 많았는고 하니 극장에 걸린 작품도 아니거니와 심사 당시 완성된 프린터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작품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장모 여배우는 시상식장에서 그 특유의 음색으로 ‘아름다운 밤입니다. 알러뷰~’를 감격어리게 외쳤으나 결국 시끄러운 영화제로 인해 극장에 걸리지 못했다. 영화 애니깽에서는 어찌된 이유인지 한국인들이 일하게 되는 멕시코 농장이 애니깽 -원래는 에네켄이나 우리식으로 애니깽이라 불렀었다고 한다.- 농장이 아니라 사탕수수 농장이지만 아무튼 멕시코로간 이민1세대 한인들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에네켄은 로프를 만드는 섬유의 원료로 원산지가 멕시코이다. 당시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던 맥시코가 단 한차례 우리나라 사람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본이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됨으로써 농장가서 돈을 벌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던 이들은 다시는 한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별로 볼 생각이 없는 이 영화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았던 것은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역시 애니깽을 주제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달리 사탕수수가 아닌 에네켄을 제배했던 이들은 잘사는 나라에 돈 벌러 간 후진국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듯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온갖 착취와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고생을 무용담처럼 주절주절 늘어놓지는 않는다.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비교적 한정된 공간 -에네켄 농장-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여태까지 김영하를 좀 말랑한 작가쯤으로 봤던 나에게는 좀 충격적인 작품이었는데 조금 더 늘이면 대하소설 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동로를 작가역시 그대로 따라가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속의 인물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실적인 역동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작가의 노력 덕분이다. 김영하는 검은꽃을 쓰기 위해 생판 가보지도 않았고 말도 통하지 않은 멕시코에서 소설을 완성했다. 작품의 고저를 떠나서 나는 작가들의 노력을 말 하고 싶다. 이왕 읽을꺼라면 나는 머릿속에서 나온 일기장같은 소설들 보다는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무언가에 대해 상상하고 때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발로도 뛰는 그런 노력형의 소설을 읽고 싶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자. 책의 주인공은 이정이라는 남자아이이다. 멕시코행 배를 타기 전에는 소년에 불과했던 그는 갖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청년으로, 또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멕시코행 배에서는 일본인 요리사를 도와서 소일거리 없이 지내는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일을 하게 되고 멕시코에 도착해서는 다른 한인들과 마찬가지로 에네켄 농장에서 지독하게 고생을 한다. 요행히 에네켄 농장에서 탈출을 하긴 하지만 멕시코 내전에 휘말려 명목 없는 전쟁에 끌려다니게 된다. 마지막에는 멕시코의 한 밀림속의 유적지에서 신대한을 세우려고 하지만 일장춘몽으로 끝난다. 그는 배에서부터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들의 사랑은 시대 앞에서 온전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

이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첫 도입부를 너무 길게 끌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멕시코로 떠나는 배 안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만 후반부에 비하면 지나치게 호흡이 더디다. 차라리 대하소설이었다면 어울릴법한 도입부였으나 소설에 쓰이므로서 전체적인 무게중심을 잃었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지만 여느 이민사들처럼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는 영웅담을 낳지는 못한다. 당시 그들이 떠나온 대한민국은 너무나 힘이 없는 조그만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정이라는 인간 개인의 삶의 기록이자 당시 시대상황의 재현이며, 더 나아가서는 나약한 국가의 불쌍한 국민들에 관한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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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4-05-2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잼있게 읽었던 소설입져..김영하 또한 좋아하지만서도 헤헤..여기서 보니 방갑네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