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열림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다 슈이치로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첫번째 읽었던 작품은 [퍼레이드]로 각기 다른 화자들이 한 공간에서 머무는 것을 서술한 장편소설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섞어 놓은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두번째로 읽은 이 책 파크 라이프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일본의 꽤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이라길래 기대가 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이 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는지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는다.

요즘들어서 내가 환멸을 느끼는건 그저 쿨 하기만 한 소설들이다. 주인공은 어떤 내면도 보여주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옮아가는 일상에 콩고물처럼 묻어서 간다. 그들에게는 애틋함도 애절함도 없고 소중한것도 중요한것도 없다. 그냥 쿨할 뿐이다. 흥분도 미움도 기쁨도 없는 무턱대놓고 차분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리얼해서 마치 거울로 나를 들여다보는것 같은 섬세함은 홍상수 영화처럼 짜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이 작품처럼 '뭐가 심각해 그저 쿨 할 뿐이라구' 하는 작품도 괴물같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파크 라이프. 와 플라워스라는 두 가지 작품으로 되어있다. 파크 라이프는 그야말로 심각하고 싶어도 심각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내용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디선가 Blue의 동명인 Park Life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것 빼고는 내게 아무것도 남져준게 없는 소설이다. 어떤 남자가 (입욕제를 팔고 있는) 어느날 지하철에서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와 습관처럼 공원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내용이 전부인데 모두들 쿨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들의 일상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크루와상이나 샌드위치를 씹으며 공원에 앉아있는 것 자체 만큼이나 무료하다. 가끔 여자의 입을 통해서 자기 자신들을 꿰뚫어보는 듯한 문장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걸로 전부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여자를 쿨해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뿐 거기서 어떤 스토리나 고민도 파생되지 않는다.

플라워스는 파크 라이프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음료수 배달을 하는 한 남자가 일과 가정사에서 느끼는 점인데 역시 덮어놓고 쿨하다. 위에는 조금 더 엘리트들이 등장했다면 아래에는 약간 더 시골스럽다. 그래도 그들 역시 도시사람에게 뒤지지 않을만큼 아니 오히려 그들이 더 쿨하다. 어떤 고민도 없고 어떤 생각도 없는 삶. 그저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땡이라는듯.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자기 살고싶은데로만 산다. 어느 하나도 그걸 나서서 막지 않는다. 주인공도 약간은 고민하는 척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것 마저도 그리 부지런하지는 않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잘잘하고 세부적인 것에만 리얼리티를 가미한것 같다. 꼭 연극이라는 커다란 허구 속에 실제로 선이 연결되어서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들어앉아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읽기는 아주 쉬웠다. 쿨하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것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읽는 내내. 대체 뭘 말하려는 것일까? 아니 하고싶은 말이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정도의 글쓰기라면 나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맥주를 홀짝거리며 한없이 그냥 써내려가기만 하면 하나 나오지 않을까? 시건방진 생각이 들 정도로 쉬운 소설이었다. 단 하나 소설을 쓰면서 어떤 상황에서건 쿨함을 잊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쿨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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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8-18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쿠타가와상..요즘은 일본에서도 왜 그 작품이 저 상을 받았지? 라는 얘기가 있다고...누군가 말해줬습니다. 소설을 고르는 꽤나 요긴한 조건인데...-.-;;;

플라시보 2004-08-18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렇군요. 저도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던 작품은 꽤 읽었는데 전부 괜찮았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만은 좀 예외였던것 같습니다. 글을 술술 잘 쓰고 문장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그저 그랬어요.

털짱 2004-08-1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형식적 분위기만 취해있을 뿐 실체와 대면할 생각이 없었겠죠.
핫해본 적 없는 사람이 쿨할 수 있을지.. 저는 의심합니다.

플라시보 2004-08-1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맞아요. 그런것 같네요. 뭐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걸 꼭 찝어주셨네요.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덮어놓고 쿨한게 전부는 아닌. 님의 말씀처럼 hot해 본 사람 같아서 좋습니다.

치니 2004-08-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친구들과 쿨 하냐 핫 하냐 담소를 나누다가,
저는 웜(warm)한 것으로 판명 났던 기억이 납니다.
후후. 무조건 쿨 한게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 이제 바보로 보여요.-.-

플라시보 2004-08-19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는 어느쪽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제 자신에게는 조금 쿨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남들과 살아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핫 한것 같습니다. 제 자신에게 핫 하지 않은 이유는 그러면 삶이 너무 힘들것 같아서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열정을 가지고 대한다는게 좀 지칠것 같기도 하구요.^^
 
윤석화가 만난 사람
윤석화 지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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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러 간 적도 별로 없고 연극에 대해 관심도 그다지 없는 나 이지만 배우 윤석화는 안다. 워낙에 유명하니까. 예전에 그녀는 원미경이 극중 '순임'이라는 이름을 가진 드라마에 나왔었는데 덕분에 나는 그녀를 배우가 아닌 탈렌트로 먼저 알았었다. 어렸었지만 나는 그녀의 연기가 극중 다른 배우들과 달리 굉장히 과장되어 있구나 하고 느꼈었는데 그건 그녀가 연극배우 였기 때문이었던것 같다. 사실 솔직하게 말 하자면 내가 배우 윤석화의 연기를 본건 그게 전부였다. 윤석화라는 배우에게서 내가 느꼈던 것은 무척 '잘난 여자'구나 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잘난척으로까지 보일 정도로 그녀 특유의 턱을 치켜뜨는 행동들. 그렇지만 별로 밉지는 않았다. 가끔 저렇게 잘난 여자들이 길을 닦아야 평범한 여자들이 좀 더 편하게 길을 걸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배우 윤석화가 경향신문에 냈던 인터뷰 모음집이다. 그 중 34인을 추스렸는지 아니면 그동안 만난 사람들이 모두 34명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문화인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것이다. 문학계, 음악계, 미술계, 학계, 문화행정계, 연극계, 무용계, 종교계, 영화계, 재계 인사들이 있는데 종교계 인사들이 6인으로 가장 많다.

인터뷰 책들을 읽을때 마다 나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본다. 물론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이지만 인터뷰를 하는 사람을 잘 모를 경우 읽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이 책 역시 윤석화라는 배우를. 아주 잘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알기에 읽기가 훨씬 수월했던것 같다. 다만 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내용이 조금 더 충실했으면 하는 것이다. 34명이나 되어서 그런지 한 사람에게 할당된 질문이 그다지 많지 않아서 좀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다음으로 윤석화가 인터뷰를 한 느낌을 간략하게 적어두고 그 뒤에 약력을 그리고 이어서 현재 그 인물에 대한 기사를 약간 적어 놓았다.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인터뷰는 화가 김점선과 미술사학자 유홍준. 최일도 목사의 인터뷰였다. 나머지 인터뷰들도 다 고만고만하니 읽는 재미가 있었지만 저 세사람들에게는 겸손과 깊이가 느껴져서 좋았다. 확실히 인간은 아무리 잘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가 약간이라도 잘난것을 드러내면 배알이 꼴리나보다. 잘났기 때문에 잘난것이 드러나는 걸 가지고도 이런데 잘나지 않았으면서 잘난척을 한다면 얼마나 꼴불견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또 하나 조금 아쉬운 점을 들자면 윤석화씨의 질문이 너무나 평이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에 대해 자료를 훝어보고 인터뷰를 준비한듯한 느낌이 드는 질문들이 몇몇개가 거슬렸다. 분명 바쁜 윤석화가 준비했다기보다는 작가들이 혹은 기자들이 미리 건네줬겠지만 나는 배우 윤석화만의 독특한 질문들을 더 기대했었기 때문에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꼭 윤석화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도 충분하게 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굳이 윤석화를 내새운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화계에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연극배우와 문학계, 음악계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이라 나도 들어봤지만 나머지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생각과 하는 일을 엿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은 80점의 점수를 주고 싶다.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인터뷰책들은 이미 내가 아는 사람을 인터뷰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러더러 나왔지만 지루하지 않게 잘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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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브라운의 선스크린 포 페이스 제품.

나는 메이컵 베이스를 잘 바르지 않는다. 왜냐. 너무

화장이 두터워지니까. 대신 메이컵 로션 (베이스처럼

색은 없지만 어차피 돌가루인 메이컵 제품들로 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막을 형성해줌)을 바르는데

바비 브라운의 메이컵 로션 (SPF 15)를 썼었다.

그런데 여름이 되니까 자외선 차단 지수가 좀 약한것

같아서 이 제품으로 바꿨다. (이 제품은 SPF 25 이다.)

메이컵 로션겸 자외선 차단 로션인데 차단제가 다 그

러하듯 이 제품 역시 약간의 끈적임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비교적 가벼운 편이고 후레쉬한 민트

같은 허브향이 나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메이컵 로션보다 가격은 1만 5천원가량 저렴한 4만원.

다만 유화물감처럼 납 튜브속에 들어있어서 뚜껑을 열었을때 저절로 조금씩 내용물이 나온다. (아

마 연고같은거 쓰다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짜지도 않은 내용물이 뚜껑을 열면 삐죽거리면서 나오

는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저 제품을 다 쓰고난 바비브라운 페이스 로션 통에 짜 넣었더니 훨씬

사용하기가 편했다. 가끔은 화장품 회사들이 화장품 용기를 이쁜것에만 치우치지 말고 좀 실용적

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펑펑 쓰고 얼른 새거를 사라는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구멍이 넓은 스킨병

같은건 정말 사용할때 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튼. 화장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라면 이 제품 하나 바르고 위에 파우더를 덧바르면 땡이다.

(바쁜 아침시간에 이것 이상의 정성을 들여 화장을 하는 이땅의 모든 여성들을 게으른 나는 진심

으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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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나와 친구들 두 명이서 이 영화를 봤다. 전작인 로드무비를 너무나 괜찮게 보았기 때문에 그 감독의 신작은 꼭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친구1. 영화잡지 프리미어 기자인 동생이 추천했기 때문에 봐야겠다고 생각한 친구2와 달리 나는 김혜수가 보고 싶었다. 그녀가 이 영화를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가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전작인 미스터 콘돔, 닥터 봉, 신라의 달밤, YMCA야구단 처럼 꼭 그녀가 아니여도 상관없었을 작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김혜수라는 여배우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한때는 그녀가 참 천박한 이미지를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녀의 과감한, 펜슬을 들고 단박에 화악 그려재꼈을것 같은 갈매기 눈썹. 삐에로처럼 크게 그린 입술. 여배우치고는 다소 풍만한 육체까지 나는 그녀의 이미지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를 다시 본 것은 김혜수의 플러스 유 라는 토크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였다. 그녀는 말을 잘 했다. (물론 그녀의 이전 주자였던 이승연이 한수 위였지만) 그녀의 매끈한 말솜씨를 듣고 있자니 자기 이미지와 달리 다소 아기같았던 그녀의 목소리마저 나쁘지 않게 들렸었다. 그 이후 그녀는 고만고만한 TV드라마를 했고 (노희경의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극 장희빈에서는 아기같은 목소리 대신 낮고 카리스마 있는 저음의 목소리와 안그래도 큰 눈을 똑바로 부릅뜨고 정말 열심히 연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하야 나는 김혜수라는 배우를 조금씩 재평가 하기 시작했다. (이 재평가는 물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이뤄진것이었다.)

얼굴없는 미녀에서의 김혜수는 완벽했다. 연기로나 비주얼로나 그녀가 보여 줄 수 있는 베스트의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경계성 장애(누군가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정신착란을 일으킴)를 겪고 있는 극중 지수는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과감한 악세사리와 파격적인 옷차림 (노출로 인한 파격보다는 디자인과 색으로 승부한다.) 을 100% 소화한다. 원석의 알록달록하고 큼지막한 목걸이와 반지. 엄발란스하면서도 과감한 컷의 의상들. 과연 이걸 입어서 김혜수만큼의 느낌을 낼 사람이 대한민국 여배우 중에서 누가 있을까 싶다. 거기다 과장되어 있는 화장과 선글라스만 끼면 '인궈니 라이프!' 하고 외칠것 같은 수세미같은 헤어스타일까지. 정말이지 김혜수는 도저히 소화하기 힘들것 같은 지수의 외모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 주목할것은 김혜수의 허스키하게 쫙 가라앉은 매마른 목소리다. 김혜수의 목소리는 사실 굉장히 앵앵거리는 고음이다. 경계성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가 그런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 한다는 것은 분명 어색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극중 인물때문에 목소리를 변화시킨이가 없었던건 아니다. 실패하긴 했지만 [4인용 식탁]에서의 전지현 역시 가라앉은 저음을 선보인바 있다. 하지만 전지현의 목소리가 조금 미숙했다면 김혜수의 목소리는 세월의 관록이 묻어있는듯 하면서도 상당히 복잡한 느낌을 준다. 물론 요즘 영화에서 배우들이 대사를 치는것을 보면 마치 영화가 아닌 실제에서 대사를 치는듯 현실적인데 비해(류승범, 공효진, 이나영, 양동근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너무 작위적인 나머지 우스꽝스러웠던 부분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김태우도 나름의 열연을 했지만 김혜수에 비해서는 많이 가려지는 느낌이다. 김혜수가 연극을 했다면 김태우는 연기를 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나는 두 사람이 그다지 멋진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성숙미가 뚝뚝 넘쳐 흐르는 김혜수에 비해 김태우는 선이 좀 약한 편이다. 따라서 김태우의 연기가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김혜수와 동시에 잡히는 샷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처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그건 연기력때문이라기 보다는 비주얼적인 면에서 처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간 처진눈의 김태우는 복잡하기 보다는 선해 보인다.) 극중 김태우가 소화해내야 하는 인물 역시 상당히 복잡한 내면을 보여줘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선한 그의 얼굴에서 그런면을 표현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김태우는 유달리 눈빛이 약한 연기자인데 얼굴없는 미녀에서는 눈빛이 더더욱 약해 보였다.

사실 이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도무지 극중 인물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관한 설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 영화에 대해 럭셔리니 어쩌니 하는 것도 바로 그런점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주얼도 끝내주고 영화적 장치도 완벽했지만 정작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의 내면이 없다. 그건 마치 너무나 잘사는 사람들이 '인생이 심심해서 미치겠어' '돈을 써도 감출 수 없는 이 공허함을 어쩌란 말인가' 하는 외침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대부분 먹고 살기 힘들고 사는게 기쁨의 연속만은 아닌 일반인들은 극중 지수나 석원(김태우) 처럼 되기 힘들다. 즉 적당한 정도의 아픔은 있어도 없는 척 할 뿐 아니라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지수나 석원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면이 너무 많다. 아하. 이래서 그녀가 이렇게 되었구나 혹은 그래 그정도면 그가 그렇게 될만 해 같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너무 비주얼과 이미지에 치우친 나머지 극중 배우들은 관객과의 소통에는 실패한다. 이것은 시나리오상의 문제이기도 하며 영화의 네러티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비주얼과 네러티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작품으로는 '더 셀' 이라는 외국 작품과 우리나라의 작품이라면 '정사' 와 '스캔들' '장화홍련'을 들고 싶다. 이 네 작품 모두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비주얼 세계를 창조했으며 그 멋진 비주얼 만큼이나 썩 괜찮은 스토리와 구성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하지만 얼굴없는 미녀는 비주얼 면에 있어서는 위의 작품들과 충분히 견줄만 했지만 스토리나 구성에 있어서는 많이 뒤쳐지지 않았나 싶다. 디자인이 괜찮다고 해서 그 물건의 성능이 조금 떨어져도 괜찮은건 아니다. 디자인이 아름답기 위해 사용하기 불편하도록 만들어 놓았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디자인과 실용성은 함께 상호보안을 해야 하는 존재이지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비주얼을 위해 스토리를 포기할 수도 없고 스토리를 위해 비주얼을 포기하다가는 눈이 높아진 관객들의 미학적 욕구를 도저히 만족시켜 줄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볼때 얼굴없는 미녀는 몹시 아쉬운 작품이었다. 조금만 더 스토리와 극중 인물들의 내면에 포커스를 잘 맞췄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영화가 친절하기라도 했더라면 더 많은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잘 만들었다. 장면 하나 하나에 감독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가 느껴진다. 화면의 구도, 색상, 조명, 소품.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배우들마저 완벽한 미장센을 이룬다. 우리나라 감독들이 잘 쓰지 않는 분명한 색의 대비는 그가 얼마나 조명과 색상에 자신감이 붙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상당히 아쉬웠지만 이 영화를 본건 잘했다고 생각한다. 금방 보고 나서는 조금 실망을 했지만 곱씹을수록 괜찮은 영화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왜냐면 영화가 통째로 이렇게나 분명하게 내 머리속에 남아있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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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gool 2004-08-0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형이랑 슈렉2를 보러갔는데 예고편에서 이 영화가 나오길래 좀 당황했어요. ^^;;; "인궈니 라이프" 헤어스타일 봤지요. ^^ 감독이 김혜수에게 최대한 건조하게를 강조했다던데... 그 느낌이 잘 살았나요? 어쨌거나 김혜수는 특유의 강한 느낌때문에 손해도 많이 보는 것 같지만.. 뭐.. 다 지가 만든걸테니 할 수 없지요.. 헌데.. 그동안은 납작하거나 말거나 손도 안대고 있던 코 라인이 좀 달라진 것 같던데... 안 그래 보이시던가요?

마태우스 2004-08-09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제가 아는 분 중 영화평을 가장 잘 쓰세요.

플라시보 2004-08-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는 잘 모르겠구요. (유심히 안봐서..흐흐) 전반적으로 지방흡입과 바스트쪽을 손본것 같더군요. 들리는 소리도 그러하고... 아무튼 진형이가 예고편을 보고 놀랐을것을 생각하니 맘이 아프네요. 흐... 김혜수는 건조하다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구요. 뭐랄까 예고편에서 '난 할말이 아주 많은 여자에요' 라고 말한 딱 그 느낌이였어요. 뭔가 비밀이 많을것 같은 여자.^^

마태우스님. 히..농담이시죠?^^

sooninara 2004-08-0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저도 이영화 봤는데요..전 이렇게 후기 못쓰는데..꼭 님이 제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온듯이 쓰셨네요^^ 영화가 멋있긴한데..2%가 부족한것이..마지막에 속이 좀 헛헛하다고나 할까..볼만은 한데..권할만하진 않더군요..

플라시보 2004-08-0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onninara님. 저와 생각이 비슷하셨나보군요. 흐흐. 음. 저는 권할만하지는 않다기 보다 그냥 너무 기대를 하지 말고 보아라 정도? 아무튼 2% 부족하고 속이 헛헛한 영화였다는 것에는 공감합니다.^^

마냐 2004-08-0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니...이게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쓰고 싶었던 평이라니까요...님은 언제 제 속마음을 훔쳐보시구...ㅋㅋㅋ

플라시보 2004-08-09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마냐님 제가 독심술을 좀 합니다. 그래서 얼른 님의 맘을 훔쳐보았더랬지요.^^

비누발바닥 2004-09-26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는데....제가 쓴글이 초라해보이네요....ㅠㅠ
 



사실 뭐 이게 그다지 뷰티풀 할것 까지는 없다. 하지만 콘돔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여자가 핸드백에 콘돔을 넣어다니면 받을 수 있는 온갖 오해를 생각해 볼때 이 물건은 분명 뷰티풀하다. 하긴 뭐 여자가 핸드백에 담배를 넣어 다녀도 역시 거시기하게 보기는 마찬가지지만 콘돔만 하겠는가. 이건 여자도 물론이거니와 남자들도 휴대하기가 뻘쭘하지 않아 좋아보인다. 그녀를 사랑하는가? 그럼 저런거 하나씩 사가지고 다녀라. 자신을 지키고 싶은가? 담배를 안피운다고? 그래도 차라리 담배 피운다는 오해를 받는게 나으니 저거 하나 구입함이 어떤가? 아. 뭐 그냥 가지고 다닐 수 있다면 살 필요가 없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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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4-08-06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시기해보여도...차라리 담배 피운다는 오해를 받아라~ 캬아. 명문이십니다.

sweetmagic 2004-08-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는 스무 가치 저건 세 개 ? 네 개 ?? 이히힛`!!

플라시보 2004-08-0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히히 부끄럽습니다.^^ 근데 저는 원래 담배를 피우니 저걸 가지고 다닌다고 해도 오해고 뭐고 없습니다. 흐흐.

sweetmagic님. 저것도 아마 20개가 아닐까요? 보통 평범한 콘돔은 12개가 들었지만 말입니다.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