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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열림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시다 슈이치로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첫번째 읽었던 작품은 [퍼레이드]로 각기 다른 화자들이 한 공간에서 머무는 것을 서술한 장편소설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섞어 놓은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두번째로 읽은 이 책 파크 라이프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일본의 꽤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이라길래 기대가 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이 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는지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는다.
요즘들어서 내가 환멸을 느끼는건 그저 쿨 하기만 한 소설들이다. 주인공은 어떤 내면도 보여주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무기력하게 옮아가는 일상에 콩고물처럼 묻어서 간다. 그들에게는 애틋함도 애절함도 없고 소중한것도 중요한것도 없다. 그냥 쿨할 뿐이다. 흥분도 미움도 기쁨도 없는 무턱대놓고 차분한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리얼해서 마치 거울로 나를 들여다보는것 같은 섬세함은 홍상수 영화처럼 짜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이 작품처럼 '뭐가 심각해 그저 쿨 할 뿐이라구' 하는 작품도 괴물같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파크 라이프. 와 플라워스라는 두 가지 작품으로 되어있다. 파크 라이프는 그야말로 심각하고 싶어도 심각할 건덕지가 하나도 없는 내용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어디선가 Blue의 동명인 Park Life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것 빼고는 내게 아무것도 남져준게 없는 소설이다. 어떤 남자가 (입욕제를 팔고 있는) 어느날 지하철에서 한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와 습관처럼 공원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내용이 전부인데 모두들 쿨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들의 일상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크루와상이나 샌드위치를 씹으며 공원에 앉아있는 것 자체 만큼이나 무료하다. 가끔 여자의 입을 통해서 자기 자신들을 꿰뚫어보는 듯한 문장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걸로 전부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여자를 쿨해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일뿐 거기서 어떤 스토리나 고민도 파생되지 않는다.
플라워스는 파크 라이프와는 조금 다른 내용이다. 음료수 배달을 하는 한 남자가 일과 가정사에서 느끼는 점인데 역시 덮어놓고 쿨하다. 위에는 조금 더 엘리트들이 등장했다면 아래에는 약간 더 시골스럽다. 그래도 그들 역시 도시사람에게 뒤지지 않을만큼 아니 오히려 그들이 더 쿨하다. 어떤 고민도 없고 어떤 생각도 없는 삶. 그저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땡이라는듯.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자기 살고싶은데로만 산다. 어느 하나도 그걸 나서서 막지 않는다. 주인공도 약간은 고민하는 척 하지만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나마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것 마저도 그리 부지런하지는 않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잘잘하고 세부적인 것에만 리얼리티를 가미한것 같다. 꼭 연극이라는 커다란 허구 속에 실제로 선이 연결되어서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들어앉아 있는 것 처럼 말이다.
읽기는 아주 쉬웠다. 쿨하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것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읽는 내내. 대체 뭘 말하려는 것일까? 아니 하고싶은 말이 있기라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정도의 글쓰기라면 나도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맥주를 홀짝거리며 한없이 그냥 써내려가기만 하면 하나 나오지 않을까? 시건방진 생각이 들 정도로 쉬운 소설이었다. 단 하나 소설을 쓰면서 어떤 상황에서건 쿨함을 잊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쿨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게 내가 이 소설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