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들끼리 마치 쌍둥이처럼 꼭 닮은 경우도 있지만, 도무지 한 뱃속에서 났다고 믿기 어려울만큼 다른 사람들도 있다. 로즈 (토니 콜레트) 와 매기 (카메론 디아즈) 는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다른 자매들이다. 책임감있고 똑똑하며 변호사라는 전문직업을 가진 로즈. 그러나 매기는 책임감도 없고 제 멋대로이며 삶을 즐기는것 이외에는 어떤 관심도 없다. 로즈는 뚱뚱하고 못생겼으며 매기는 누구나 보기만 해도 반할 정도로 근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딱 하나 똑같은게 있다면 바로 구두 사이즈가 같다는 것이다.

매번 사고나 치는 매기는 집안의 골칫거리다. 그 중에서도 특히 로즈에게있어 매기는 늘 자신의 삶에 끼어드는 불청객이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로즈와 매기는 어릴때는 꽤 친하게 잘 지냈지만 클수록 각자 개성이 너무 달라서 이제는 한 자매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 어느날 매기는 새엄마의 집에서 쫒겨나 로즈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다. 그러다 그만 매기의 남자친구를 유혹하게 되고 이때 우연찮게 집에 온 로즈는 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여태껏 참았던 울분을 다 터트린 로즈는 매기에게 나가라고 말한다. 새엄마의 집에도 언니의 집에도 있을 수 없게 된 매기는 우연히 알게된 외할머니의 주소를 찾아내고. 무작정 그 곳으로 향한다. 한편 실연의 상처를 겪고 있던 로즈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기게 되고, 동생 매기를 찾고 싶지만 도무지 어느곳으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자 그녀의 견고하던 삶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헐리우드나 충무로나 공통점이 있다면 여자가 주인공인 영화는 대박이 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더구나 가족애까지 끌어들이면 흥행과는 무관한. 작품성으로 밀고 나가는 영화가 되어버린다. 그만큼 관객들은 여자 주인공만 나오는 영화를 그리고 가족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이 영화처럼 화목한 한 가정이 등장하는게 아닌 자매의 얘기라면? 결과는 뻔하다. 물론 로즈역을 맡은 토니 콜레트 대신 드류 베리모어가 나오고, 여기다 입양한 동생이라면서 루씨 루 까지 등장한다음 카메론 디아즈와 함께 신나게 액션이라도 펼치면 모를까. 아무리 카메론 디아즈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그녀 혼자만으로 흥행을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나는 토니 톨레를 어바웃 어보이에서 보고 홀딱 반했었다. 카메론 디아즈도 존 말코비치되기에선 좋았다.)

이 영화는 오전에만 개봉관이 있었고 오후에는 전부 킹콩이나 나니아 연대기등에 스크린을 넘겨줬다. 그러니까 볼 사람들은 아침 1,2,3회에 보던가 아니면 포기를 하던가 둘 중 하나였다. 지금 개봉영화 중에서 왕의 남자 만큼이나 재미 면에서 뒤지지 않지만 여자들만 나오고 거기다 노인이 등장하는데다 가족 영화이니 멀티플렉스들은 상당히 불안했던 모양이다. 영화에는 갖은 보석같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너무 멋지게 늙어가는 노인들 (그 사이에 살짝 로맨스도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끝내주게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가족들 대신 미워하고 증오하던 가족들 (나중에는 세월의 힘으로 화해하지만 결코 억지스럽지 않다.) 영화의 스토리로 봤을때는 언니가 동생의 모든것을 책임지거나 일방적으로 희생해야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내용을 끌고가지 않는다. 가진건 예쁜 외모뿐인듯 보이는 매기도 나름 자신의 몫을 다 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녀 역시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로즈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날때 매기 역시 너무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으로 끝났으면 굉장히 식상했을테지만 영화는 매기를 그냥 매기로 남겨둔다.

영화는 꽤 심각한 가족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것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가벼운 웃음까지 섞어가면서 문제를 해결한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가족간의 문제를 단지 웃음 몇번으로 때울 수 있는 무언가로 가볍게 그리지도 않았다. 딱 정도를 걸었다고나 할까? 실제 가족들의 문제도 저 정도로만 무겁고 또 가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가족들은 흔히 서로의 잘못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용서를 못하는게 아니다. 한번 골이 생기고 그 골에 세월이 더해져 버리면 화해를 할 기회조차도 갖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가족들은 남남처럼 살려고 작정하면 남보다 더 못한 법이다. 로즈네 가족들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외할머니와 아빠의 사이는 벌어졌으며, 새엄마의 등장으로 인해 아빠와 딸들인 로즈와 매기의 사이도 벌어졌다. 그리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 때문에 로즈와 매기의 사이도 정상적이지 못하다. 이 가족들이 전부 서로의 노력으로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또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결코 요란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한 사람만의 희생으로 혹은 노력으로 이뤄지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가족의 화해를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에서 매우 매력적으로 나오는 카메론 디아즈가 이제는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게 좀 안타깝긴 하지만 보톡스로 팽팽한 얼굴이지만 괴물같은 표정을 짓는 여느 배우들 보다는 훨씬 더 아름다웠다. 토니 콜레트는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 영화에서 자꾸 뚱뚱하다는 식으로 나와서 좀 속상했다. 그녀 정도가 뚱뚱하고 볼품없는 외모라면 오직 우리 여자들이 지향해야 할 외모는 바비인형 뿐인걸까? 아무튼 간만에 꽤 재미있고 쓸만한 영화를 발견했다. 개봉관에서 보기 힘들면 비디오로라도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덧붙임 : 원제는 인 허 슈즈인데 여동생과 언니의 화해 뿐 아니라 외할머니와 집안의 화해에도 신발은 큰 작용을 한다. 원제 그대로 둬도 괜찮았을텐데 왜 제목을 바꿨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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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2006-01-1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은비님. 흐흐.

호랑녀 2006-01-18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조금 지루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마지막에 다 정리도 잘 되고 ^^
저도 원제가 훨씬 좋다는 느낌이여요.

마늘빵 2006-01-1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원제는 모르고 봤어요. 저도 이거 봤는데.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상징성이 있는 의미있는 제목보다 직설적인 제목이 관심을 끌거라고 생각했나봐요.

하이드 2006-01-18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는 안 봤지만, 아무래도 in one's shoes라는 뜻이 누군가의 입장이라면, 이런 뜻이라서, 의역한것 같으네요. 신발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니, 잘 맞췄네요. ^^

플라시보 2006-01-18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흐흐. 처음에는 약간 그랬죠? 좀 뻔하게 갈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스토리를 참 잘 끌고 나간것 같아요.

아프락사스님. 그런가봐요. 하긴 신발이라는 단어나 뭐 그런 분위기를 풍기면 분홍신을 연상했을지도...흐흐. 그럼 졸지에 공포필 나는거죠.^^

하이드님. 원제가 in one's shoes인가요? 저는 in her shoes로 알고 있었는데... 아무튼 이 영화 되게 재밌었어요. 간만에 건진 영화였지요. 흐흐. ^^

로렌초의시종 2006-01-1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전에 봤는데 참 좋은 영화였어요. ㅋㅋㅋ 특히 그 장면 재밌었어요. 재키 오나시스 같아~라고 말하던 할머니 ㅋㅋ

플라시보 2006-01-1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 맞아요. 재키 오나시스같아 라고 하던 할머니... 처음에는 재키 케네디라고 했었죠? ^^ 근데 이 영화 번역이 좀 거시기했었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좋았을텐데 뭔가 더 재밌게 한다고 의역을 한것 같은데... 저는 그저 그랬어요.

이쁜하루 2006-02-01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너무 재미있게보면서 아니 이렇게 좋은 영화가 왜 망한거야~~ 하며 개탄을했었죠! 음....왜 망했는지 플라시보님 글 보니까 알겠네요..아..안타까워용

플라시보 2006-02-01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하루님. 네..저도 친구랑 막 개탄했어요. 이 좋은 영화가 망한건 여자가 주인공인데다 할머니들이 우루루 나오고 거기다 가족영화이기까지 해서라고...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