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드라마가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을 살다가 보면 여러가지 우연한 기회로, 우리는 갖은 사람들과 연결된다. 알고보니 딸이었더라 혹은 내가 니 아비다 정도의 거짓말같은 우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나오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서로 알게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 한번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또 관계를 맺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랑도 있고 세상살이의 힘듦이나 삶의 고단함도 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러브 액츄얼리를 표방했다. 하지만 주로 사랑에 국한되어 있던 러브 액츄얼리와는 달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는 사랑 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얘기들이 들어있다. 빨간색의 크리스마스 리본 테두리의 러브 액츄얼리와 포스터마저도 비슷한 느낌이지만 이 영화는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준다.

영화의 가장 큰 축은 저 포스터에 나오는 여덟명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짠돌이 극장사장 노주현과 그 극장 한켠에서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운영하는 오미희의 이야기나 엄정화의 남편 천호진과 그의 아들의 이야기 등은 결코 주연을 받쳐주기 위한 조연급 스토리가 아니다.

먼저 엄정화와 황정민의 이야기. 엄정화는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이다. 남편 천호진과는 이혼을 했고 아들이 하나 있지만 남편이 키우고 있는 중이다. TV토론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우연히 무식한 형사 황정민과 엮이게 된다.

수녀인 윤진서는 가수인 정경호를 남몰래 짝사랑한다. 그러다 둘은 같은 병원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고 그때부터 윤진서의 기발한 애정공세는 시작된다.

아내에게는 회사를 다닌다고 거짓말을 하고 지하철에서 싸구려 물건을 파는 임창정. 그리고 그냥 먹고 싶어서 김밥을 만다고 거짓말을 하고서는 길에서 김밥을 파는 서영희는 가난한 부부이다. 임창정은 매일 채권추심사 직원으로부터 독촉전화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낸다.

김수로는 과거 잘 나가던 농구선수였다. 그 시절 만났던 여자의 아이가 어느날 병자가 되어서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을 아빠라고 부른다. 마침 아이는 한 TV프로그램에서 후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김수로가 다시 농구코트에 서서 골을 10개를 넣어야 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엄정화의 아이는 김수로의 딸과 친구이고, 임창정에게 채권추심을 하는 직원은 김수로이다. 마치 촘촘한 그물로 연결된것 처럼, 그렇지만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처럼 이들은 서로의 인생에 끼어들게 된다. 언뜻 보면 얽히고 섥혀서 무척 복잡해 보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무게중심을 잃지 않는다. 그 무게 중심이란 어느 한 배우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뉘어져 있다. 이 영화는 어떤 스토리 하나만 중요하고 나머지는 그 스토리를 위해 존재하는 보조자 역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똑같은 무게와 똑같은 힘을 가지고 스크린 속에서 빛난다. 배우들은 모두 각자의 역활에 딱 맞는 정도의 연기를 선보인다. 다만 황정민이 너무나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서 조금 튈 뿐이다. (황정민의 연기는 정말 끝내준다. 그가 연기한 무식한 형사역은 마치 황정민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같다.)

언젠가 아는 영화사 사장님이 내게 이런 소망을 피력하신적이 있었다. 일단 관객이 많이 들게 한 다음 그 관객들을 웃기고 종국에는 울려서 내보내고 싶다는. 나는 그게 정말 말도 안되는 바램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판국에 웃기다가 울려서 보내겠다고? 그것도 많은 관객들을? 나는 속으로 그랬다. 아서라 말아라.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그 영화사 사장님이 꾼 꿈이 실제로 이루어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해서 가벼운 코믹터치도 아니다. 충분하게 웃기고 충분하게 감동을 주는걸 한 영화에서 가능하다고 감히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영화는 그걸 능청스럽게 해내고 있다.

다만 이 영화에도 약간의 문제점은 발견된다. 감동을 주려는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 뻔한 공식을 따라간다는 것, 그리고 제목을 의식해서인지 억지로 요일을 가져다 붙여서 일주일간의 스토리를 만들려고 한다는 점 (사실 이 영화에서 일주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굳이 이 얘기들이 일주일안에 일어났다고 상기시키지 아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다.) 그러나 이만큼의 성도를 보이는 영화에 그 정도의 문제점은 문제점이라고 하기도 좀 미안하다.

새드무비를 기다리다가 지겨워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잡은 식으로 본 영화치고는 월척을 건진 셈이다. 내가 올해 본 한국 영화중에서는 제일 괜찮았다고 감히 말 할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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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0-07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개봉했군요. 이거 봐야게따...

플라시보 2005-10-07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네. 전 되게 재밌게 봤습니다.

▶◀소굼 2005-10-07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오늘 개봉. 내일 볼까 생각주이에요: )

플라시보 2005-10-07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1t님. 으음. 그렇군요. 내일 재미나게 보시기 바랍니다.^^

이매지 2005-10-0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워낙 황배우 좋아해서 보고 싶은데 좀 산만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달 말에 남자친구 휴가 나오면 봐야겠어요 ^-^

그림자 2005-10-07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회사사람들과 볼 생각인데 기대되네요^^
러브 액츄얼리도 상당히 잼이게 봤거든요...^^
황정민 좋아해서 초기작부터 거의 챙겨 봤는데 너는 내 운명은 아직 못봐서리...

하루(春) 2005-10-0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이 민규동이라죠? 보고 싶어요.

플라시보 2005-10-0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저도 황배우 좋아라 합니다. 제가 볼때는 전혀 산만하지 않고 스토리를 아주 잘 풀어나갔더라구요. (휴가나오면 남자친구랑 꼭 보세요. ^^)

그림자님. 네. 저도 러브 액츄얼리 상당히 재밌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황정민의 연기는 너는 내 운명보다 이 영화에서 더 빛났던것 같습니다.^^

하루님. 네. 여고괴담2 했던 감독이요^^

비로그인 2005-10-07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