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친절하지 않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

'너나 잘하세요'
'친절해 보일까봐'
'바빴어'
이미 금자씨가 나오기도 전 부터 유행했던 말이다. 이영애의 나긋하면서도 얌전한 목소리. 그녀의 천사같은 얼굴이 차가운 표정과 절묘하게 어울린 이 대사는 '친절한 금자씨'에 대한 나의 기대를 한껏 끌어 올렸다. '그래, 박찬욱이 누구야.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서 복수는 나에것에서 연타를 치더니 올드보이에서 롱런을 예고하지 않았던가'. 나는 어서 개봉하라고 노래 노래를 부르며 기다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예우를 다 하느라 개봉 첫날. 그것도 보통 영화관의 몇배나 비싼 VIP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
이미 내용은 다 알것이다. 6살난 남자아이를 유괴해서 살해한 이금자 (20살. 이영애) 는 교도소에서 13년간 복역을 마친다. 그리고 그녀는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백선생 (최민식)에게 복수를 한다. 금자는 고도소에서 13년간 복역하면서 사람들에게 친절한 금자씨로 불리웠다. 그만큼 그녀는 교도소안의 모든 사람에게 다 친절하게 잘 해주었다. 그들은 금자씨가 출소를 하자 마자 그녀를 돕는다. 너무나 친절했던 그녀이기에..
나는 영화가 굉장히 사실적이길 바랬다. 이미 있었던 사건 (실제로 옛날에 이금자라는 여대생이 남자 아이를 유괴해 살인했는데 그녀가 미모의 여대생이라는 것이 큰 이슈였다.) 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하지만 영화는 그다지 사실적이지 못하다. 우선 끊임없이 성우의 나레이션이 들어가고 과거와 현재는 전혀 친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엮여있다. 어쩌면 박찬욱 감독은 너무 거대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올드보이보다 나아야 한다는, 아니 적어도 올드보이 만큼은 나와야 한다는 강박감이 느껴졌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화려하다. 이미 JSA나 복수는 나의것, 올드보이에 출연한 배우들이 총 출동을 한다. 하지만 그 조연들은 이미 박찬욱의 영화 속에서 너무나 강렬한 캐릭터성을 확보해버렸기 때문에 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한다. 마치 의리 지키느라 그들을 다 불러모은것 처럼. 그 연기 잘하던 조연들이 어쩐지 빛을 잃고 비틀거린다. 너무 많은 스타가 출연했던 오션스 트웰브처럼.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에도 너무 많은 스타급 조연들이 출연한다. 그래서 영화는 금자씨에게 온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
이영애의 연기는 비교적 좋았다. 그녀로써는 거의 파격에 가까운 변신을 무리없이 잘 소화해냈다. 거기다 여고생때의 금자, 교도소 안의 금자, 출소한 후의 금자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영화에서 금자씨의 복수가 와닿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영화 스토리를 적절히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얘기들을 하고 싶은 사람이 흔히 갈피를 잃고 여기서 왕창 저기서 왕창 열변을 토하듯. 영화는 그렇게 시종일관 '나 보여줄거 많아 죽겠거든? 그러니까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하는것 같다.
처음에는 금자씨 혼자만의 복수였던 영화는 뒷 부분으로 갈수록 우리 모두의 복수로 변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실수는 주연 배우라 할수 있는 금자씨를 관객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이지만 전혀 친절하지 않은 영화인 셈이다. 금자씨는 악역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천사도 아닌것이 정말로 묘한 심리와 정신상태를 가진 여자다. 백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냥 악하니까 악한 인간으로 나와버려서 최민식의 캐릭터가 참으로 이상해져 버렸다. 복수는 나의것이나 올드보이에서 우리는 그들이 사람을 죽이고 해치는 것을 백분 이해했었다. 그래 나라도 저랬을꺼야. 하지만 금자씨는? 잘 모르겠다. 하려면 아쌀하게 복수를 하던가 아니면 용서를 하던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금자씨를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
스타일 면에서도 금자씨는 올드보이나 복수는 나의것에 미치지 못한다. 이영애라는 워낙에 눈에 확 띄는 배우를 써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박찬욱의 스타일이랄지 뭐 그런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이영애의 빨간 눈화장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다. 그러나 이영애의 눈화장은 복수는 나의것에서 신하균의 초록색머리,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의 갈퀴머리만큼 강렬한 무언가를 남기지는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내 기대에 한참은 뒤지는 영화가 되어버렸다. 내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서 그런것인지 모르겠지만, 혹은 기대가 너무 커서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친절한 금자씨가 여태 쌓아온 박찬욱의 복수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것이 한없이 아쉬울 뿐이다. 그녀의 복수는 너무 겉멋에 치우친 나머지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다.
덧붙임 : 같은 과 친구였던 고수희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데 너무 충격적인 캐릭터라 한동안 멍해질 지경이었다. 딱 프란다스의 개에서 배두나의 친구였을때가 좋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