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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 이야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최승자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아마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읽어 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샐린저의 호밀밭은 국내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꾸준하게 읽히고 있는 밀리언셀러이고 심지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렇게 유명해질 만큼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괜찮은 소설인걸까? 나쁘지는 않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의 명성중 8할은 한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이란 마크 채프먼이라는 작자가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을 암살할 당시 손에 들고 있었던 책이 바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도 호밀밭이 작품성을 인정받은 좋은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중적 인기를 얻은데에는 저 사건이 미친 영향이 지대하지 않나 싶다.
사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다지 나쁠것도 좋을것도 없는 소설이다. 문학계에서는 샐린저의 계보를 잇는 작가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뽑지만. 내가 보기엔 별로 영향을 받은것 같지도 않고 하루키는 샐린저의 작품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하루키가 만약 샐린저의 계보를 이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거나 원해서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는 그냥 우연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내게 있어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렇게까지 칭송받을 만한 작품도 그렇다고 해서 욕을 푸지게 먹을만한 작품도 아닌것 같다.
아홉가지 이야기는 대학때 읽은 호밀밭을 제외하고는 두 번째로 읽는 샐린저의 책이다. 보통 J.D. 샐린저로 표기가 되기 때문에 그의 풀 네임을 몰랐었는데 이 책 덕분에 나는 J.D. 가 제롬 데이비드의 약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내가 건진 유일한 성과라고 하면 좀 과장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몹시 재미없게 봤다. 아홉가지 단편이 실려 있건만. 어느 하나 '과연 재미있군'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작품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아홉가지 중에서 에스키모와의 전쟁 직전은 적어도 무슨 내용의 단편인지 정도는 파악이 가능했으나 나머지 여덟가지 단편은 정말 너무도 형편이 없어서 책값이 다 아까울 지경이었다. 제목도 어째서 저런것들을 붙였을까 싶게 내용과 거의 무관하고 (이건 그중 제일 나았던 단편 에스키모와의 전쟁 직전도 마찬가지다. 거긴 에스키모인도 전쟁도 또 그 전쟁의 직전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거의 대화로 이루어진 단편들은 무슨소리를 하고 싶은건지 알 수가 없다. 꼭 남의 메신저를 훔쳐본것 처럼 말이다. (알다시피 메신저는 바로바로 대화를 하면서 봐야 무슨 소리인지 알지. 대화를 다 나누고 난 이후 제3자가 보면 대화처럼 바로바로 피드백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소 엉뚱한 대화로 보이기 쉽상이다.)
호밀밭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음에도 이 책을 산 이유는 순전히 단편 모음집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건 호밀밭보다 훨씬 더 떨어지는 작품들이 실려있다. 뭘 말하고 싶은지는 고사하고라도 어떤 내용인지 정도라도 알았으면 좋겠는데 읽는 내내 머리통만 어지러워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교훈적이라던가 재미를 추구했다던가 하는 것도 없다. 이런 글을 주절주절 쓸꺼라면 대체 왜 글을 쓰나 싶을 지경이다. 물론 이건 문학적 소양이 한참이나 부족하고 무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이 책은 절대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건 몰라도 재미있고 없고 정도는 나도 안다고 생각한다.) 혹시 J.D. 샐린저라는 이름에 혹해서 이 책을 사서 읽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재미가 없어도 이건 좀 너무 심하다 싶게 없기 때문이다. (허나 여기서 뭔가 대단한 문학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