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너서클 - 조직 내 파워 게임의 법칙
캐서린 K. 리어돈 지음, 장혜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아직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공부는 암만 열심히 해도 댓가를(월급을) 안받기 때문에 열심히 안했지만 내가 직장만 들어가 봐라. 일을 열심히 해서 승진도 하고 해서 꼭 잘나가는 직장인이 되어야지. 하지만 그건 정말 멋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직장에서 그저 일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급여가 오르고 승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순진한 생각이다. 적어도 어디가서 인턴사원이라도 해 보면 직장에서 필요한것이 업무능력이나 성실만이 전부가 아닌것을 알게 될 것이다. 좀 특이한 집단이라면 오히려 저런것 보다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 나가느냐에 승부가 달려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또 직장인에게 호봉이 오르는것과 승진하는건 일단 짤리지 않고 버틸때나 가능한 것이지 막상 직장생활을 해 보면 단지 떨려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내 문제점을 몰랐다. 경력도 있고 이 바닥에서는 실력도 있고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다. 어떤 환경이라도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능력이 있으며 같은 나이의 남자보다 훨씬 급여면에서나 직책 면에서나 높은 위치를 점령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회사에서의 내 위치는 그냥 여직원에 지나지 않으며 내 일의 전문성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나는 그게 오로지 회사가 엿같아서 그렇다는 생각을 했었고 당연히 나는 회사에 엄청난 불만과 반감을 품고 있었다. 막말로 이놈의 회사 돈만 아니면 내일이라도 확 떼려 치운다는 생각으로 다녔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찬찬히 뒤돌아 보니 나는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질렀었다. 처음 회사가 생길때 창립멤버였던 나는 출근한지 일주일도 안되어서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지원을 해 주지 않자 회사를 떼려치우겠다고 부장을 협박했었다. (당시에는 건의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창립일을 얼마 앞두고 부서 책임자가 저러는건 상관에게 협박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다.) 그리고 회사 초기에 내 일이 아닌 다른 허드렛일을 맡겼을때 죽지못해서 하기는 했지만 난 늘 불평 불만이 가득했었다. 세상에 나같은 인재에게 이따위 일을 시키다니 하고 말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냐면 난 아예 승진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상사의 눈밖에 나서 급여가 오르기는 커녕 인사고과가 개판 오분전이라 급여가 감봉조치 되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는 직장내 정치적행동을 잘 못해서 회사를 관두기 직전까지 갔었다는 것이다.

어찌어찌 해서 나는 겨우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지금도 회사내에서의 내 위치가 아주 확고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회사 상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자를 수 있으며 창립 멤버들이 모두 나갔는데도 아직까지 버티고 앉아있는 독한인간쯤에 지나지 않다. 그럼 언제까지 이런 회사 생활을 계속 해 나갈 것인가. 회사의 처우에 언제나 불만이 가득하고 회사에서는 나라는 인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악순환. 이제 그 연결고리를 끊을때가 왔다.

회사에서 맡은바 업무를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혹은 사장이 알아주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순진하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회사라는 것이 어차피 인간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하물며 이익집단이 아닌 곳에서도 인간들이 모여 있으면 정치적인 행동에 따라 인기가 있는 인간 (즉 호의적인 인간) 인기가 없는 인간 (사람들에게 반감을 사는 인간)이 있게 마련인데 자신의 밥줄이 달린 회사라면 오죽 하겠는가. 회사가 아주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업무능력이나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일정 수준이상으로 올라가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대단히 합리적인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아닌 곳에 다니고 있으니 더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이 책은 직장에서 살아남거나, 성공하고 싶거나, 조금 더 안전하고 조금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즉 모두가 다 읽을 필요가 있다. 당장 내일이라도 관둬도 미련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느정도 직장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회사 내에서의 정치적인 행동들을 이해하겠지만 직장 초년생인 경우 잘 모르기 쉽상이다. 더구나 나처럼 처음부터 자기 잘난맛에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에라이 여기 아님 갈때 없냐' 라는 마인드로 일을 해 와서. 꽤 오래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에서의 코드나 사인을 전혀 읽어내지 못한 인간이라면 필독서이다. 물론 나는 어떻게 해서건 살아남기는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둘러왔다고나 할까? 아무튼 쉬운 길이 있었는데 나는 그 길을 몰라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버텨서 여기까지 왔다. 만약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자 마자 관두겠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고 허드렛일 때문에 짜증이 날 망정 사람들에게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 위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동료들과 잘 지내는 편은 아었니다. 우리회사의 동료들은 내 기준에서 볼때 수준 이하의 인간들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 수준 이하의 인간들이라고 내가 무시했던 동료들이 나의 직장생활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직장 상사들에게 조차 나는 늘 불만을 터트리고 내가 얼마나 이 회사에 많은 일을 해 주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는지만을 강조했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3분의 1이라도 읽어보고 직장생활을 했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또 회사내에서 정치적 활동을 통해 내가 그동안 받지 못했던 내 몫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으려고 하겠지만 사람이 한번 각인된 이미지가 사라지는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생긴 것이다.

직장 초년생이라면 혹은 예비 직장인이라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인것 같다. 외국사람이 쓴 거라서 우리의 실정과는 맞지 않는 면도 있고 반복이 심해서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읽어보지 않는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별로 능력도 없어 보이고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것 같은데도 유달리 상사들의 인정을 받고 회사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는 직원이 있다면 관찰해 보길 바란다. 그러면 그가 이 책에 나와있는 것 처럼 고도의 정치적인 활동을 펼쳐서 얻은 댓가인걸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단지 내가 보기에 그 직원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것 같겠지만 그 직원은 좀 다른 방향. 그리고 쉬운 방법을 택한것 뿐이다.

책의 제목은 이너서클이지만 즉 조직의 소수 핵심 권력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에 관한 것이지만 꼭 그렇게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읽을 만 하다. 그저 직장생활을 오래 별 탈없이 하고 싶어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단 이미 직장생활에 노련할대로 노련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싱거울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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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10-20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플라시보님의 책 뿜뿌가 강력합니다. ^^

플라시보 2004-10-2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랬나요? 제게 참 필요했던 책이었구나 싶었어요. 예전에는 이런책들 거들떠도 안봤었는데 말입니다.

레이저휙휙 2004-10-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너서클을 읽으셨군요^^;; 그래도 막상 직장에서는 마음 먹은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기 힘들더군요.

sayonara 2004-10-2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입니다.
서점의 한쪽 책꽃이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처세술책따위들, 그냥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많은 책들중에 괜찮은 책도 드물지만.. ㅎㅎㅎ)

암리타 2004-10-2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많은 공감과 분노가 동시에 떠오르는 서평 같습니다.

치니 2004-10-2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는 , 늘 허드렛일이 더 좋던데요... 정치적 이해관계 생각 이전에, 그런 일을 할 때, 맘이 오히려 편해지는지라...^-^

플라시보 2004-10-20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스님. 물론 이 그러긴 힘들겠죠. 사람인 이상 이렇게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고 해서 꼭 그럴 수 있는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모르고 있을때 보다는 낫더군요.^^

sayonara님. 저는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야 말로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한번정도는 읽어 볼 가치가 있더군요.^^

암리타님. 공감과 분노라. 님도 직장생활이 무척 힘드셨나봅니다. 전 그랬거든요. 늘 불만족스럽고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도 들고...

치니님. 허드렛일도 허드렛일 나름이여야지요. 전 진짜 육체적으로 힘든 허드렛일을 시키더라구요. 흐흐^^ 그것도 시키면서도 끊임없이 사람을 괴롭혀대니...정말 예전 부장이 있을때는 거의 죽음이었더랬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그 부장이 떨려난지라 속은 편합니다.^^

마냐 2004-10-21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세와 성공학...이런 책들 중에 괜찮은거 고르는게 제 중요한 일인데...어려워요. 근데, 어찌보면 사람마다 그 상황에 따라 수용도가 달라지는 거겠죠. 님에게 도움이 된 책이라니..예뻐해줘야겠네요. ^^

플라시보 2004-10-21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흐흐. 뭐 이거 하나 읽는다고 해서 제가 확 바뀌기야 하겠습니까만. 적어도 제가 직장에서 정치적인 행동에는 젬병인 인간이라는걸 깨닳은 것 만으로도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