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기 전 부터 내 친구는 광분했더랬다. 엘르걸이라는 잡지에서 뽑은 세계 10대 꽃미남에 우리의 원빈이 당당하게 등극했기 때문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으로 나온 꽃미남 올랜드 볼룸. 잘생긴게 축구까지 잘하는 데이비드 베컴. 안드로이드 남창을 연기할 정도로 미끈한 주드로. 더이상 말이 필요없는 조니뎁 등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아. 우리의 꽃미남 원빈. 세계로 뻗어 나가는구나. 쫘악 쫘악 뻗어 나가거라 대한의 플라워 프리티 보이여!

처음에 나는 이 영화가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배경도 부산이고 (친구의 배경은 부산. 똥개의 배경도 부산. 곽경택의 고향은 부산) 주인공이 사투리를 쓰며 거기다 무엇보다도 김태욱 (친구: 도루코역. 똥깨: 진묵역)과 친구에서 선생으로 등장했던 머리털이 별로 없던 배우가 여기서도 선생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때 보니 곽경택이 아니라 안권태 감독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영화 친구의 조감독이었었다.) 안권태 감독은 자신의 데뷔작을 영화 친구에 그 뿌리를 두고 안전하게 출발했다. 만약 감독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면 곽경택 감독이었다고 다들 느낄만큼 말이다.

이 영화는 원빈의, 원빈에 의한, 원빈을 위한 영화이다. 신하균이라는 연기를 꽤 하는 배우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의 비중은 그냥 멋진 원빈의 형 정도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를 못한다. 싸움 잘하고 욕 잘하는 불량스런 학생 원빈은 시종일관 후줄그레한 추리닝을 입지만 그 마저도 '니가 입으면 집구석 웨어 내가 입으면 빠쑝' 으로 승화시킨다. 너무 잘 생긴 배우들이 흔히 그렇듯 보는 손해도 원빈은 피해가는듯 보인다.(장동건의 경우 잘생긴 얼굴 때문에 배우로 인정받기까지 고생아닌 고생을 해야했다.) 이 영화로 인해 원빈이라는 배우는 막내 혹은 동생의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굳힌다. 예전에 TV드라마 꼭지에서도 원빈은 막내였으며 장동건과 함께한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동생이었고 본 영화에서도 또 동생이다. (여기서의 동생이미지는 태극기 보다는 꼭지에서의 동생과 그 분위기가 사뭇 비슷하다.)



내용은 별거 없다. 태어날때 부터 언청이 (구개열)로 태어난 형 신하균. 형이 태어나자 마자 아빠는 죽고 원빈은 유복자이다. 엄마는 남편없는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억척스럽게 아들들을 키운다. 신하균은 말잘듣고 착한 범생이 스타일이나 외모때문에 늘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 한다. 원빈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다가 껄렁껄렁해져 버린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그득한) 아이로 자란다. 둘은 같은 학교에 같은 학년 같은 반이 되고 원빈은 형같은 아우. 신하균은 형 대접을 못받는 아우같은 형이 된다. 그러다가 이러저러한 사건에 휘말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보니 단 한번도 원빈을 형이라 부르지 않았던 원빈은 뒤늦게서야 형에 대한 사랑을 밖으로 표출한다.

이 영화가 곽경택 영화의 아류작 쯤으로 보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친구나 똥개에 나왔던 배우들 때문만은 아니다. 사투리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것. 양념조의 예쁜 여학생이 등장하는것 (똥개에서는 학생이 아니라 다방 종업원이었지만) 그러나 주인공과 본격적인 로멘스에 돌입하지는 못하고 그냥 미묘한 관심만 가지고 맴도는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성은 완전히 거세된듯한 100% 마초적인 남자영화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주인공이 어린시절부터 나와서 현재로 넘어가는 전개 스타일. 그리고 중간중간 과거 회상장면이 등장하는 것. 잘생긴 배우를 터프하게 혹은 망가지게 그리는것 (친구에서의 장동건. 똥개에서의 정우성. 그리고 이 영화에서 원빈) 까지 무엇 하나도 곽경택의 연출 스타일을 벗어나는게 없다. 친구의 조감독이었으니 별 수 없잖느냐고 말하면 할 말은 없겠지만 그래도 스승과 똑같은 제자는 재미없다.

이 영화가 더더욱 아쉬웠던 것은 비단 곽경택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타일 때문만은 아니다. 복수는 나의것과 지구를 지켜라에서 더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신하균이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이어 이 영화에서 마저 자신의 연기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그런 평이한 역에 머무르려고 한다는 것이다. 과거 서프라이즈라는 영화가 신하균이 잠깐 정신을 못차리고 실수 한 것으로 여겼었는데 이렇게 연타를 쳐 버리면 실수라고만 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잘생긴 꽃미남 배우의 들러리를 하기에 신하균은 연기를 너무 잘 하는 배우이다. 우리형에서의 종현역은 그가 슬렁슬렁 해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역이었다. 배우에게 베스트를 이끌어내는 것은 감독이다. 하지만 감독은 원빈을 멋지게 그리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이 연기 잘 하는 배우를 그냥 평이한 조연쯤으로 내버려두는 실수를 저지른것 같다.

원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친구와 똥개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이 영화 역시도 그럭저럭 재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극장에 가서까지 볼 필요는 없을것 같다. 비디오로 보거나 아니면 명절을 기다렸다가 TV에서 해 줄때 봐도 결코 늦지 않을 영화이다. 아. 그리고 이 영화에서 엄마로 등장하는 김해숙씨는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오 해피데이에서 오바하는 장나라의 엄마로 나왔을때는 그저 그렇다가 이 영화에서는 무척 인상적인 엄마를 연기한다. (비록 엄마의 캐릭터 자체는 진부하기 이를데 없지만)

한가지 덧붙이자면 김태욱의 연기가 참으로 볼만했다. 언듯 생각하면 친구에서나 똥개에서나 이 영화에서나 모두 깡패 연기를 했기 때문에 '쟤는 또 깡패냐? 지겹다 지겨워' 할 수도 있겠지만 세 영화에서 그의 캐릭터를 찬찬히 비교를 해 보면 전부 다르다. 친구에서의 도루코는 의리도 있고 카리스마도 있는 깡패로 나왔으며 똥깨에서의 진묵은 비열하고 비리비리하고 거기다 약간 없어보이기까지 하는 깡패. 이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삼류 똘마니로 나온다. 깡패라는 이름의 똑같은 범주안에 든 캐릭터를 저렇게 다양하게 소하를 해 내는것을 보니 그 배우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제는 깡패 전문 배우가 된 듯 해서 약간은 지겨운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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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 2004-10-1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영화평입니다. 볼 생각도 없엇지만 님의 평을 보니 더더욱 보기가 싫어지는군요. 그리고 전 형이 없답니다.

부리 2004-10-1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짝반짝 빛나는 추천은 저의 소행입니다. 참고하세요

플라시보 2004-10-13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추천 감사하니다. 님의 아름다운 소행. 내 길이길이 기억하지요^^

sooninara 2004-10-13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우리형 봤는데..님의 글을 보니 전 페이퍼 올릴께 없네요^^
츄리닝만 입어도 베컴 저리가라..멋있던 원빈..
드라마 시티틱한 다 보이는 줄거리..그래도 원빈 얼굴만으로도 즐거웠답니다..
같이 본 친구두명과 셋이서 줄줄 울고 나왔다죠..

플라시보 2004-10-13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중간에 찡한 부분이 있었더랬죠. 뻔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울게 만든것은 감독의 힘이었다기 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크게 의존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온 배우들 모두가 자기가 맡은 역활을 비교적 잘 해낸것 같습니다. (신하균의 경우는 분명 잘 하긴 했지만 더 잘할수 있는 배우였기에 안타까웠구요.)

sweetmagic 2004-10-1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엄마랑 마징가랑 보러가기로 해서 님 리뷰 못 봤어요 영화보고 나서 추천! 드릴게요 히히히

플라시보 2004-10-1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그러세요 매직님^^ (마징가란 남동생 맞죠?)

흰 바람벽 2004-10-1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역쉬 안보길 잘한거 같아요. ^^
저도 감독이 곽경택으로만 알고 있었네요. 이런~ (그래서 보면서도 왜 이런 비슷한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내는거지 했는뎅.. )

플라시보 2004-10-1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제작사가 친구랑 챔피언 똥깨등 곽경택 영화 제작한 곳이더군요. 대표는 친구에서 선생으로 나온 사람 ('어이 거기 쥐새끼 같은놈 이사가느라 욕본다' 한 선생님요) 이구요. 그 영화사에서는 아예 그런 분위기의 영화만 줄곧 제작하기로 독하게 맘 먹은것 같습니다.^^

마냐 2004-10-1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너무나 예쁜 원빈 만으로 볼만하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줄거리에 따르면, 꼭 그런 식으로 형제의 화해를 유도해야 하나..싶은게 마음에 안들어서...음..여전히 고민중임다.

marine 2004-12-0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친구랑 둘이 그랬죠 "야, 이거 60년대 영화 아니냐?" 그래도 원빈은 정말 멋있죠? 원빈 보고 아무 감정 없었는데 그 영화 보고 감탄했다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