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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소설을 읽고나면 먹먹하다. 너무 재밌어서 뭐라고 달리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침을 흘리며 무조건적인 좋아요. 재밌어요나 연발하긴 너무 바보같고. 좀 제대로 쓰자니 대체 내가 느낀 이 감정과 재미를 뭘로 설명을 해야할까 싶어 난감하다. 가끔은 내가 알라딘에 왜 서평을 쓰고 앉았나 싶은 순간이 바로 이런 책을 읽었을때이다. (누군가가 그러던데 난 악평에 강하단다. 그래서 악평은 신나하며 잘도 쓴다.)
심윤경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원래 이 책이 먼저 나오고 다음에 달의 제단이 나왔는데 나는 거꾸로 되어서 달의 제단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냉큼 이 책을 집고 싶었지만 소설 한두권에 사이에 실용서 한권을 내 나름의 법칙으로 세웠던지라 나는 책꽃이 제일 위에 올려둔 이 책을 내내 눈으로 노리기만 했었다. 실용서를 싫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없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인 책을 스무 페이지 정도 남겨두고 부터는 내 벼개위에 이 책을 올려뒀다.(내 독서의 8할은 침대 위에서 이뤄지므로 언제든지 그 재미없는 책이 끝장나기만 하면 대번에 읽어주리리 하는 나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이 책을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해서 단 몇시간 만에 읽어 치웠다. 중간중간 화장실이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거실로 나간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침대 위에서 꼼짝도 않고 누워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누누이 말했듯 적어도 내가 책을 읽어치우는 속도는 재미와 비례한다. 가끔은 재밌어도 좀 걸리는 책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소수이고 과연 진심으로 뼛속까지 재밌었냐고 물으면 나는 흡입력이 떨어지는...저 그러니까 좀 어려워서...내용이 느리게 전개가 되어... 하며 주뼛거릴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명쾌하게 하루. 더 정확하게는 반나절만에 다 읽었다. 산만한걸로는 그바닥에서 그랑프리감인 내가 내리 책을 읽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잠시도 손에서 놓고싶지 않을만큼 재밌었다는 소리이다. 이런식의 비교는 무의미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나는 달의 제단보다 이 책이 조금 더 재미있었다. (물론 달의 제단도 하루만에 읽긴 했지만 그때는 주스도 마시러 나갔었다. ) 그래서 오히려 거꾸로 읽은게 더 다행이 아니었나 싶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핫도그 먹을때 밀가루 다 벗겨 먹고 마지막에 소세지를 우물거리며 먹는 기쁨.
설명을 좀 하자면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역시나 달의 제단에서 내가 침이 마르게 얘기했던 부분인데 심윤경 작가는 주인공을 자신과 같은 성이 아닌 사내 아이로 설정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퍽 성공적으로 작은 사내아이를 그리는 것에 성공했다. 남자 작가들이 그리는 사내아이들에 비해 개구진 구석이 약간은 모자라는 듯 하지만 사내는 으례 개구져야 한다는 법칙만 없다면 괜찮은 모자람이다. 또 성장소설 치고는 조금 특이하게 주인공이 힘든 일을 많이 겪는다. 흔히 성장 소설에서 보여지는 자잘한 힘든 일이 아니라 그 아이의 인생을 바꿀만한 큰거 두 껀이 빵빵 터진다.
소설의 첫 시작인 1977년은 내가 태어나고 한해 뒤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여동생 영주가 태어난 1978년은 내 여동생이 태어난 해 이기도 해서 나는 이상하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다. 단지 시대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이나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작은 남자아이였던 주인공은 두번의 큰 일을 겪고나서 어른으로 접어들려고 한다. 77년부터 81년까지 아이는 자기자신이 전부였던 세상에서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헤아리는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결말부분이 안으로 움츠려드는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세상과 인간들과 제대로된 의사소통을 시작할 수 있는 통로라고 느꼈다.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과 소통을 하지 않았을때는 절대 불가능한 것들이니까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가 생각이 났다.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나는 그 애니메이션도 신지의 성장소설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 소년이 주는 느낌은 독특하다. 나는 한번도 실체에 매혹된적은 없지만 내가 책이나 영화를 통해 만난 남자아이와 소년들은 모두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남자들에게 너무 무거운 책임을 지워놓고 늘 젊잖을것을 강요당하는 어른이 되기 전의 서글픔이 아름답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겠다. 이 책이야 말로 아무 내용도 모르고 그저 성장소설이고 주인공이 사내아이더라 정도로만 알고 있어야 재밌을것 같기 때문이다. 난 사실 스포일러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반기는 타입의 인간이지만 (영화 보기전에 본 사람들의 얘기며 줄거리며 제작과정을 거의 다 찾아보고 나서야 간다. 책도 누군가에게 내용을 전해듣고 나서 읽는걸 좋아한다.) 이 책만큼은 나 역시도 어느 누구에게 아무소리도 듣지 못한채 보는 재미가 컸다. 그냥 재밌었다는 것. 무척 빨리 읽었다는 것. 그리고 참 많이 놀랐다는 것만 말해야겠다. 주인공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는데 분명한 것은 심윤경 작가가 더 편할 수 있었던. 그리고 더 빠삭하게 파악이 가능한 여자아이의 성장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이 책은 일기장 소설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아도 충분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