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부터 1979년까지 이다. 내가 76년에 태어났으니 훨씬 이전의 얘기이자 76년부터는 또 나와 무관하지 않은 시대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 것이다. (79년 박대통령이 돌아가셨을때를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아기였던 나는 밖에 나가 놀고 싶어했고 그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할머니께서 부채과자를 주며 '나라에 큰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니가 나가서 아~ 거리고 놀면 큰일난다'며 나를 방에 붙잡아 두셨다. 그때 문 밖에서는 사이렌 소리가 났으며 뭔가 모르게 술렁이는 분위기에 나는 상당히 신기해 했었다.)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 박사가 물러나고 박정희 대통령이 군부정권을 세운 시절 청와대 근처의 효자동에는 효자 이발관을 하고 있는 성한모(송강호)가 있다. 그는 면도사였던 민자(문소리)를 꼬드겨 임신을 시키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버팅기는 민자에게 사사오입을 주장하며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돈은 별로 못벌지만 인생은 편하게 살 수 있는 낙안이라는 이름을 이름짓는 곳에서 받아온 성한모는 민자와 아기와 함께 이발소에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그러다 청와대에서 나온 사람을 간첩으로 오인해서 신고하고 신고정신의 투철성을 인정받아 청와대에서 상을 받게 된 성한모. 그는 그때부터 대통령의 이발사가 된다. 그러다 북에서 간첩이 내려왔고 마침 이 간첩들이 설사를 한 것을 발견. 설사를 하는 사람들은 간첩과 접선을 하여 일명 마루구스 병에 걸렸다고 하여 국가에서는 설사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들여 고문을 한다. 마침 성한모의 아들 낙안이 설사를 하는데 성한모는 자신이 청와대 이발사인 만큼 모범을 보이기 위해 낙안을 직접 경찰에 데려가나 잠시 맡겨둔다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낙안은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다리를 못쓰게 된다. 성한모는 아이의 다리를 낫게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이는 끝내 걷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박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전두환이 새로운 대통령이 되자 성한모는 다시 대통령의 이발사가 될 뻔 한다. 그러나 성한모는 머리를 이발하기 위해 의자에 앉은 전두환에게 이렇게 말한다. '각하 머리가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그 존재만으로도 무게감이 실리는 배우 송강호의 영화이다. 시대상황과 가상을 적절히 엮은 시나리오는 훌륭하긴 하지만 만약 송강호가 아닌 배우가 맡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경상도 사투리를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사한 문소리도 연기를 잘 했으며 박대통령 역활을 맡은 목소리 끝내주는 배우와 그 밖의 조연들도 썩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는 송강호라는 배우로 인해 빛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내가 송강호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코믹과 동시에 진지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실소를 금할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내내 웃기기만 하는 배우는 아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긴 알면 내가 배우하지 뭣하러 여기 앉아 있겠는가!) 송강호는 웃기다가도 갑자기 진지해지는데 관객들은 그 사이의 갭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코믹과 진지함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 배우 송강호. 나는 그래서 그가 좋다. 늘상 코믹하지만도 않고 늘상 진지하지만도 않은. 어떤 역활을 맡아도 송강호 버전이 되어버리는 극중 인물들. 복수는 나의것을 제외하고 송강호는 단 한번도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역활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복수는 나의것에서는 계속 진지해야만 하는 역활이었다.)

또 송강호의 가장 큰 매력중 하나는 평범한 소시민같은 그의 외모이다. 그는 비록 잘생기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지만 둥그스름한 얼굴과 짝눈을 가지고 마치 옆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인상을 준다. 내가 송강호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눈여겨 본 것은 조용한 가족에서 삼촌 역활을 맡았을 때였다. '학생 아닌데요' 하는 이 단순한 대사 한마디를 송강호처럼 처 낼수 있는 배우는 장담하건데 대한민국이건 전세계건 다 뒤져도 송강호 하나 뿐이다. 단지 연기를 잘한다 혹은 극중 역활을 잘 해석하고 배역에 몰입한다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송강호의 독특한 연기는 송강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아직까지는 없다. 배우치고는 그다지 잘 생기지 않은 송강호는 그래서 오히려 어떤 역활이건 자연스럽게 소화 해 낼수가 있다. 장동건의 잘생긴 외모가 인기의 비결은 될 망정 연기의 걸림돌이 될 수 있었던 것의 반대로 송강호의 외모는 외모만으로 환영받을 스타는 안될 지언정 그의 연기에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잘 생기지 않은 외모는 장동건보다 덜 치열하게 연기잘하는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장점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장동건이 단지 잘생긴 연예인에서 연기를 잘 하는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들인 노력은 옆에서 지켜보기 안쓰러울 정도였으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 과정들을 무사히 견뎌내서 이제는 얼굴이 아닌 연기가 되는 배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중간 나는 딱 한가지 장면에서 불만이 있었다. 바로 아들 낙안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었는데 전기고문에 유달리 잘 견디는 아니 오히려 그걸 재밌어 하는 아이로 설정이 되어서 나중에는 몸에 전구를 연결해서 불까지 켜는데 보면서 사실 약간 오바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렇지만 그 장면이 지나가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고문받는 장면을 리얼하고 치열하게 보여주었다면 효자동 이발사는 너무 심각한 영화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받은 신체학대에 관한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효자동 이발사에서 마저 아들 낙안이 리얼하고 처절하게 고문을 받았더라면 나는 영화를 이렇게까지 재밌게 보지 못했을것 같다.

아들 낙안은 비록 고문으로 다리를 못쓰기는 하지만 거기서 만약 송강호가 갑자기 똑똑해진다거나 하여 나라와 정부를 비판하고 나서지 않은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보면 갑자기 어떤일을 계기로 약간 무식하고 멍청했던 인물이 지나치게 똑똑해지고 현명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효자동 이발사는 충분히 그런 연출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그와같은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성한모는 아이의 다리를 못쓰게 되자 거리에 나가서 가위로 자기 머리를 자르며 울분을 토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 이발사로 각하의 머리를 자르고 마루구스병에 대해 주워들은 것을 이리저리 생각하여 이것이 국가의 음모임을 밝혀내는 일 같은건 하지 않는다. 별로 배운것 없고 가난하며 빽도 없는, 어쩌다 운이 좋아서 대통령의 머리를 깎을 수 있게 된 성한모로써는 너무도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실을 너무 코믹하고도 단순하게 그린 단점이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효자동 이발사는 시대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이발사인(가끔 깍쇠로 불리기도 하는) 성한모의 눈에 비친 세상이고 성한모식 해석이 가미된 영화이기 때문에 갖은 심각한 사건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내내 무거워지지 않고 처음의 중량을 잘 지켜가며 마무리를 짓는다. 사실 송강호의 전작 살인의 추억이 말 그대로 살인적으로 대단한 영화였기 때문에 그때보다는 다소 흥행 스코어가 떨어질지는 몰라도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살인의 추억은 살인의 추억대로 효자동 이발사는 효자동 이발사대로 매력적인 영화이다. 왜냐면 두 영화 다 너무나 매력적인 송강호라는 배우가 제대로 되었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나는 송강호의 말투가 너무 좋다. 완벽한 표준어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부산 사투리도 아닌것이 그 매력적인 말투는 배우 송강호만이 지닌 분명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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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5-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반가워요! 저랑 같은 날에 이 영화를 보셨군요!! 님 말씀처럼 송강호가 갑자기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다행입니다.

비로그인 2004-05-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마태우스 님이랑 한 날에 똑같은 영화에 대한 페이퍼를 올리셨군요.
혹시 두 분이 같이 보신 건...^^*

코코죠 2004-05-08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태우스님의 저 당황한 듯한 말투....냉열사님 예리하십니닷. 음 수상해 수상해 역시나 수상해

책읽는나무 2004-05-0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도 두분의 영화평을 읽으면서.....헛!! 같이 봤나?? 의심(?)했습니다....^^
또한.....플라시보버전 영화평과.....마태우스버전 영화평을 보면서....같은 영화지만...평을 읽자니...각기 다른 영화를 본듯한 느낌도 드네요^^....전 개인적으로 플라시보버전이 더 와닿네요.....ㅎㅎㅎ

플라시보 2004-05-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마태우스님도 저와 같은날 저 영화를 보셨군요. 흐흐. 님들. 의심할껄 하세요. 마태우스님과 제가 있는 도시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