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들수록 느끼는 거지만
사람 사귀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상대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걸 표현함에 있어 점점 인색해진다.
그만큼 사람에게 다쳐보았고
또 그만큼 모험심도 줄었다.
그냥 있는 사람들이나 잘 관리하자 싶고
괜히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을 늘여봤자 인생 복잡해지기 밖에 더 하겠나 싶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은
탐이 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빨리 친해지고 싶고, 조금이라도 그 사람에게 더 잘 보이고 싶어지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의 얘기도 내 얘기도 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약간은 조심스럽다.
내가 나를 보여줘도 이 사람이 지금 가진 호감을 나에게 그대로 가져 줄 것인가..
혹시 그 사람이 생각했던 것과 실제의 나는 너무 괴리감이 큰거 아닐까..
그래도 어찌 되었건
나이가 들어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약간은 놀랍고도 신나는 일이다.
러시아에 오랫동안 공부를 하러 가서
귀국한지 얼마 안된 친구의 친구가 있다.
그녀와 나는
정말 1년에 한 두번 가뭄에 콩나듯 만났었다.
단 둘이서 만난적은 없었고 주로 그녀를 소개해 준 친구가 동석을 했었다.
그래서 우리의 중심은 항상 그녀였다.
그러다 얼마 전 부터 우리는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와 달리
그녀와 나는 프리랜서라서
'오늘 점심 같이 먹을까?'
혹은 '심심한데 작업실에 차 마시러 올래?' 같은게 가능하기 때문.
취향은 아주 다르지만
미를 추구하는 것은 똑 같으며
각자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일을 꽤 재밌어 한다는 것도 비슷하다.
나는 그녀에게 사놓고 쓰지는 않던 빨간 립스틱을 선물했고
그녀는 나에게 사놓고 쓰지 않던 까만 썬글라스를 선물했다.
새로운 선물을 하는건 쉽지만
쓰던걸 주는건 쉽지않다.
그건 뭐랄까.. 단순히 물건이 아닌
그걸 살때의 내 자신을 주는것 같고, 그 물건과 함께 지낸 세월을 건네는 것 같다.
어제 밤 늦게 그녀의 작업실에서 내가 말했다.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 해 달라고.
내가 여태까지 들은 그 어떤 G선상의 아리아보다
그녀가 연주하는 G선상의 아리아는 아름다웠다.
바이올린을 켤때 그녀의 모습은
완전 다른 사람같다.
사는 형편이 비슷해서 그런지
우리는 어디서 차를 마실 것인지 밥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사실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너무 갭이 큰 사이는
조금 불편해진다.
누가 돈을 낼 것인지, 혹은 어디가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해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만나면 참 편하다.
요즘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그녀는 무사히 연주회를 마쳤으며
자주 나를 만나러 나온다.
이 사람.
점점 궁금해지고
더 알고 싶어진다.

참. 난 이렇게 약간은 까칠해보이고 만만하지 않게 보이는 사람이 좋다.
나 역시 매우 유순한 순둥이로 생기지는 않았기 때문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