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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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활자를 읽으면서도 뜻은 머리속에서 조합이 안되는 상황이 50페이지까지 왔다 갔다 하다가 집중해서 겨우겨우 완독했습니다.

비슷한 독서로는 스탕달의 "적과 흑", 니체 관련 서적인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겠네요.

모두 제가 강한 흔적은 남겼지만 충분히 소화는 못한 책입니다. 이제 구면이니 다음 인연에는 한층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2.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과 올더스 헉슬리의 할아버지인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친구였다는군요.

그냥 그렇다구요.

 

3.소설의 흐름은 어찌보면 현대소설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아주 낮설지는 않아보입니다.

한 사람의 머리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잡상과 시각, 청각적 외부 자극이 우리 머리속에 인식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다가 그 사람과 시공간을 비슷하게 공유하는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자연스레 넘어가서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화를 해도 될 듯 합니다. 머리속의 생각은 어찌 전개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넘나드는건 그냥 하나의 기나긴 롱테이크로 영화가 가능하겠습니다.

*캐나다 친구가 자신이 본 영화를 하나 이야기해줬는데 카메라가 무작위로 한 사람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식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화였다더군요. 형식상 비슷할 듯

 

4.<만일 지금 죽어야 한다면 지금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때이리 (오셀로 2막 1장)>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하게 되는데 소설을 읽다보니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죽음이 찾아온다면 반복되고 버텨나가는 이 일상이 예상 못한 순간에 끝나버리는 걸지 모른다는 것. 그 견딜 수 없는 허무.

버지니아 울프는 그 순간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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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 푸르메 어록
김영두 엮음 / 푸르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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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퇴계하면 떠오르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천원짜리.

영남유학, 아니 조선유학을 대표하는 사람.

조선의 고리타분한 꼰대 선비의 대명사(이건 정말 제 선입견)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도 저를 포함한 한국인의 삶속에 넓고 깊게 박혀있는 퇴계를 알고싶어서 책을 골랐습니다.

사실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 이 책이 꽃혀있는걸 몇 달은 눈여겨 봐왔거든요.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라는 책과 이웃하고 있었는데 제목 스타일의 유사성에서 유추한것과는 달리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더군요.

 

1.

책 자체는 매우 쉽습니다.

퇴계의 학문을 논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생각과 행동하심을 적어두고 모아둔 것이라 매우 살갑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읽은 후 느낌을 적어보자면 하얀 쌀밥을 먹은 느낌입니다. 쌀밥이되 임금님표 이천쌀 햅쌀을 곱씹는 듯 씹는 맛이 참 좋습니다.

책 속에서는 "맑고 따뜻하다"고 표현을 합니다.

 

2.

책 속에서 함께 나누고픈 구절 하나를 가져와 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허물을 볼때에는 참으로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대해야 합니다.

진정 그 사람의 허물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하물며 조심하기는 둘째치고 오히려 칼날을 세워 찔러대는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형제 사이에는 허물이 있어도 서로 말해줄 수 없는 것입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처신하기 아주 어려운 일이다. 다만 마땅히 나의 정성된 뜻을 다하여 형제들이 그것을 깊이 느껴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형제의 의리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정성된 뜻이 미덥지 못한데도 그대로 말을 해서 바로 꾸짖으면

서로 사이가 벌어지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형과 아우에게는 온화하게 대하여야 한다" 했으니 진실로 이 때문이다. "

 

*위 공자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논어 자로편]

자로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선비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간곡하게 권면하고 온화하게 대하면 선비라고 할 수 있다.

벗에게는 간곡하게 권면하는 것이고 형제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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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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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마켓팅의 승리가 아닌가 하네요.

책 제목만의 첫 인상은 미친듯이 몰두하는 옛사람들을 보여주고 그들처럼 살기를 독려하는 약간의 자기계발적 느낌이었는데

실제 제목과 어울릴 글은 전체 책의 1/3이며 제목은 책 모두를 아우르지는 못한다는 인상입니다.

 

골고루 좋았지만 특히나 좋았던건 김득신 편이었습니다.

 

1.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친구와 교류하는 예법

빚이 있다고 솥까지 떼어오는 모습은 선비가 견뎌낼 수 있는 세상이치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라 생각했던 이가 함께 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싶으면 공연히 말을 섞지 않고 그만 연을 끊습니다.

 

김득신이 한 번은 만주(晩洲) 홍석기(洪錫箕)의 집에 머물며 공부하고 있었다. 홍공은 출타하고 없었고 그만 혼자 있었다.

한 종이 솥을 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종이 말했다. "빚 받을 집에서 뽑아 왔습니다."

김득신은 책을 거두어 그 길로 서둘러 돌아오려 했다. 홍공이 오는 길에 그를 보고 까닭을 물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굳이 묻자 솥을 뽑아온 일을 가지고 대답했다.

홍공은 "이것은 내가 모르는 일이다. 내 집에 과부가 된 누이가 있는데 혼자 한 일이다. 실로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며

간곡히 사과해 마지않았다. 김득신은 그제서야 그만두었다.


 

2.자식을 진정 안아주는 아버지, 생이지지 학이지지 곤이지지

모자라는 아들이라도 자상히 지켜보는 김득신의 아버지의 모습은 공연히 미소가 지어집니다.

논어 말씀처럼 머리가 좋지 않은, 배워도 힘든 곤이지지라도 열심히 배워 익히고 나면 태어날때부터 아는 천재의 생이지지와 다를게 없습니다.

 

그의 노둔함이 이와 같았다.

김득신이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 김치(金緻)가 꿈에 노자(老子)를 만났다. 그래서 아이 적 이름은 노담(老聃)을 꿈에서 보았다고 해서

몽담(夢聃)으로 지어주었다. 하지만 신통한 태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는 머리가 너무 나빴다. 열 살에야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흔히 읽던 <<십구사략(十九史略)>>의 첫 단락은 겨우 26자에 지나지 않았건만, 사흘을 배우고도 구두조차 떼지 못했다.

저런 둔재가 있느냐고 곁에서 혀를 차도 아버지는 화내지 않고 되풀이해 가르쳤다. 아들이 노자의 정령을 타고났으니,

자라서 반드시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을 두둔하였다.

"나는 저 아이가 저리 미욱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그것이 오히려 대견스럽네. 하물며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떠듬떠듬 나아간 끝에 김득신은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어 올리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그 글을 받아보고 크게 감격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더 노력해라. 공부란 꼭 과거를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서 물러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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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6
푸페이룽 지음, 심의용 옮김 / 돌베개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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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자교양강의

 

몇 년전 오강남 교수님의 장자를 읽고서는 정말 오랜만에 다시 장자를 편 셈인데 확실히 장자는 까스활명수 같은 맛이 있는듯 합니다.

유교 역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있지만 눈에 힘을 주고, 이를 앙다물고, 자세를 바로하게 한다면

장자는 확실히 눈웃음에 어깨춤을 덩실거리게 합니다.

아직은 부족하여 책을 읽고 서너시간만 약효가 가지만 읽고 또 읽다보면 장자같은 마음가짐의 약효가 길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이중텐의 삼국지강의도 그렇고, 푸페이룽의 장자교양강의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TV강좌였다고 하는데

이런 강좌도 한글 자막과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조조-최염-정현

 

책 속에 조조와 최염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흉노의 사신이 오자 조조는 풍채가 좋은 최염을 조조 자신으로 꾸며 사신을 맞습니다.

대면후에 사신에게 묻자 사신은 조조(=사실 최염)는 풍채가 좋고 기품이 있으나 그 옆의 신하(=조조 자신)가 오히려 영웅의 풍모가 있었다 이야기해서

조조가 그 사신의 안목에 위협을 느껴 죽였다는 것입니다.

 

위 이야기는 세설신어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제가 알고 있던 이야기에서는 사신을 죽인 적은 없어서 위키피디아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세설신어에만 그런건지 다른 이야기에는 죽인 이야기가 없긴 하더군요.

 

그런데 검색하다 알아낸 또다른 인연이 정현이었습니다.

 

논어에 대한 주석은 크게 정현과 하안의 고주,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송나라 주희의 신주로 나뉘는데

논어를 읽으려면 너무나 익숙한 이름인 정현이 다름아닌 위 이야기 속 최염의 스승이라는군요.

심지어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을 앞두고 원소의 아들 원담이 정현을 원소에게 모셔가는 도중에 정현이 죽었네요.

논어와 삼국지가 제 머리속에서 연결되는 순간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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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사월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유정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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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

분명히 제목도 낮익고, 작가도 낮익고, 내용도 익숙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었었는지 가물가물한 상태로 다시 다 읽었다. 


결론은 이전에 읽었었는지 몰라도 이번에 제대로 읽었고 많은 감동을 주었다는 것일거다.


1.아직도 이런 관습이 알바니아의 고원에서 이뤄지고 있는것인가? 기분이 묘하다. 

작가의 힘이 알바니아라는 나라에 관심이 가게 만들었다. 이게 문화의 힘인가? 


2.참으로 무지해보이는 관습법이 어찌보면 참으로 합리적으로 보였다. 

사례1) 대문에 총질을 당한 사람에 대하여, 그 모욕에 대한 보상으로 총질을 한 사람과 대문을 바꿔달고, 총질을 한 사람은 그 대문을 계속 유지하여야 함.

사례2) 이웃에 갔던 아내가 그 집의 세형제에게 강간을 당함. 해결안은 셋 중의 하나가 사형당하거나 세 형제의 아내가 각각 하루밤씩 피해자와 자는 것.


3.관습속의 합리성에 대한 궁금증.

문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인도가 소를 신성시 하는 것도, 이슬람에서 돼지고기를 혐오하는 것도 나름의 문화속 합리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알바니아의 고원과 같은 사람이 드물게 살고 척박한 곳. 북극지방이나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손님을 매우 귀하게 모시는 듯 하다. 인가가 드문 곳에 손님을 내치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단순한 논리에서 나온 풍습이 아닐까? 

또 하나 책속의 이야기중에서 복수당할 차례의 집안은 무서워서 농사도 제대로 못짓게 되는데 이것은 농경지를 쉬게 만들어줘서 결국 땅을 기름지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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