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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펫 14 - 완결
오가와 야요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보신 분들은 이미 다 보셨을만한 책입니다만... 이번에 다시 보니 또 너무 좋아서,,,;
*주의! 요새 케이블에서 하고 있는(듯한) 프로그램과는 그리 관계가 없습니다. 랄까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소재만 놓고 보자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다. 잘나가는 여자( 나중에는 남자도)가 '펫'으로 남자 아이를 기르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냔 말이다. 혼전 동거도 떳떳하지 못한 사회에서 애인도 아니고 인간 취급도 아닌 '애완동물' 취급.
하지만, 그런 골치아픈 문제들은 일단 '연애 판타지'라는 명분으로 처리(?)하고 나면, 이 만화... 너무 사랑스러운거다. 여느 남자들보다 능력있고 키도 큰 완벽녀, 이 여자 스미레. 곱슬곱슬한 머리에 가진거라곤 애교밖에 없어보이는 이 애완동물, 모모. 근데 한 꺼풀 벗기고 보면 스미레라는 여자, 표현방법도 서투르고 도통 일을 요령있게 처리하지 못하는 여자고, 천상 귀여운 펫이라고 생각한 모모는 엄연히 (당연하지만) 다케시라는 이름을 가진 잘나가는 모던 댄서다.
그 둘의 묘한 조합이 만나서 판타지가 발생한다. 판타지의 '성'인 스미레의 집에서 스미레는 본모습으로 돌아가고 다케시는 모모가 된다. 반대로 밖에선 스미레는 똑부러지는 능력녀에 모모는 다케시로 돌아간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 나눈 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겠지만, 세상 사람들 누구나 조금씩은 '본연의 모습'과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다른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만화는 그런 사람을 특히나 갭이 심한 '스미레'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위로해주고 있다.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스미레는 '펫'인 모모에게만 마음을 연다.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일 바에는 죽는게 낫다고 여기는 여자인 스미레도 애완동물인 모모 앞에서는 마음껏 울 수 있다. 애초에 인간이 아닌 존재기 때문이다. 스미레가 붙여준 이름인 '모모'조차 옛 애완동물의 이름이고, 스미레가 모모를 대하는 모습은 강아지를 대하는 모습과 다름없다. (물론 조금 민망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강아지이기 때문에 강한 척 하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이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다. 애완동물은 절대적으로 주인을 사랑하고, 언제든지 부르면 달려오는 어디까지나 주인만을 위한 존재니까. 물론 이 상태에서 머무른다면 그냥 조금 이상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머물렀겠지만, 모모가 진짜 개가 아닌 이상 감정이 안 생길리가 있나. 기르는 강아지에게도 무한한 애정을 주는데.
만화는 맨처음 열등감에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에서 시작해서 갑자기 난입한 모모의 등장, 뒤이어 옛날부터 좋아했던 하스미 선배를 걸쳐 스미레의 약한점을 사정없이 공략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강한척 작렬인 스미레는 공적인 면과 사적인 면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린다. 일에 완벽해 질수록 주위 사람들에게 질시를 받고, 사귀는 사람 앞에서 완벽해 지려 할수록 스스로 지쳐간다. 그런 그녀를 위로해 주는 건 오직 모모 뿐.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스미레가 부러워 지는 건, 절대 내게 그런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일본에서 드라마로 제작될 만큼 사랑받았던 작품이니 분명 나처럼 공감한 사람이 많다는 소리. 분명 '모모'가 스미레에게 퍼붓는 전폭적인 애정과 이해심이 필요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애완동물을 제일 예뻐하는 사람은 집안의 가장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올려다보는 작은 존재가 사랑스럽다는 얘기다. 결국 말하자면 사람에게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게 아닐까. 지치고 힘든 하루에 짜증을 내도 변함없이 주변을 맴도는 존재. 주인을 반기고 꼬리를 흔들고 없으면 불안해 하는, 나만을 필요로 해주는 존재.
몇 번을 읽어도 스미레가 부럽고, 모모가 존경스럽다. 나 역시도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고 필요로 해주었으면 하고, 내가 가진 재능을 최대한 끌어내서 이거다 싶은 나만의 길을 나아가기 싶다. 뭐, 계속 부럽다, 부럽다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한 편으로 밀어놓고 봐도 읽기에 재미있고 적당히 가벼운 만화책이다. 연애 판타지 답게 읽고나면 어쩐지 눈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는듯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