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와 클로버 세트 1~10(완결)
우미노 치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은 완결난 작품만 리뷰 써야겠다-하고 생각해서 신경을 못 쓰고 있었는데 방청소하다 고이 모셔진 허니와 클로버를 보니 다른 만화책은 몰라도 이 책만은 꼭 써야해, 라는 묘한 의무감이 느껴져서 또 청소하다말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오늘도 내 방은 더럽다...)

 

고등학교 시절 논스톱이 (헛된) 대학생활의 환상을 심어주었다면 허니와 클로버(난 줄여서 허니클이라고 부른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거쳐 "미대"란 곳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물론 나도 미대 역시 다른 여느 대학처럼 힘든 곳이라는 걸 알지만, 허니클을 읽다보면 절로 이런 대학교에 가고 싶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정확히는 이런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 겠지만.

 

허니클의 주요 무대는 미대로 몇 년간의(딱 4년간이 아닌;) 대학생활을 거쳐 각자 나름대로 성장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예술가에 대한 뜬 구름잡는 식의 선입견 때문에 어쩐지 정말 미대는 이렇게 자유분방하겠구나~ 싶어서 얼마간은 부럽고 얼마간은 구경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양의 과제와 실습에 치여 죽을 맛이라고 내 친구 모씨가 부르짖었다...)

 

허니클 캐릭터들은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각각의 개성이 매우! 뚜렷한 사람들이라 오히려 더 정을 주기 쉬울지도... 그 중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모리다.

 

재능이 자유롭게 넘쳐 성격까지 침범해버린 것 같은 모리다는 간단히 말하자면 '재미있는' 사람이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물론 어디까지나 '보는' 입장에서. 실제 저런 사람이 있다면 하루하루가 독특하고 기억에 남을지는 몰라도 엄청 피곤할 테니까. (그 훌륭한 예시 : 모리다의 담당 교수님)

 

마음만 먹으면 남들이 깜짝 놀랄 작품을 만들고 관심이 갔다하면 사리사욕 가득한 (그러나 재미도 가득한) 홈페이지 만들어 매일 업데이트 하기도 마다하지 않는, 가끔은 후배들에게 '저주' 취급을 받는 사람. 재능, 만큼은 샘처럼 솟아오르는, 어딘가 어린애 같은 사람.

 

내가 모리다를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재능있고 자유롭기 때문이 아닐까. 그 재능과 자유로움으로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그 모습을 동경하기 때문일테고. 굳이 모짜르트와 살리에르의 예를 들지 않아도 재능이 없어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어느 면에고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어느 방면에는 천재인 사람도 다른 방면에는 어린애에 가까울 수 있다. 불행히도 보통에 보통인 나는 어느 면에고 뛰어나다기 보다는 평균가도를 달리지만, 모리다처럼 재능이 있고 그 재능을 훌륭하게 꽃 피운 사람을 보며 즐거워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미술 쪽에 재능이 없다는 걸 완벽하게 인정했기 때문이고 모리다라는 사람이 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분명, 다케모토는 모리다 옆에서 모짜르트 옆의 살리에르의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까. 뭐, 다케모토 같은 경우에는 재능 뿐 아니라 사랑이라는 달콤쌉싸름한 요소도 들어갔지만서도. 따지고보면 허니클에서 가장 성장한 사람은 다케모토가 아닐까 한다. 재능이 넘치는 하구미나 모리다, 야마다에 비해 다케모토는 가장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재능 역시 특출난 편이 아니었다. 다만 사람에 대한 그 한없는 믿음과 포용력이 강점이라면 강점이랄까. 힘겨운 첫사랑을 졸업하고, (타칭) 자아찾기 여행에서 조금이나마 자신을 찾은 다케모토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허니클의 가장 큰 매력은 앙상블이 아닐까 싶다. 다재다능하고 사막 한 가운데에서도 탈출할 모리다지만 다른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단순한 괴짜일 뿐이다.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재능이 너무 커 인생이 작아보이는 하구미는 사람들과 만나 자신의 약함을 마주보고 인생을 정했고, 그야말로 평범함의 결정체인 듯한 다케모토는 사랑과 자아를 찾는다.

 

이러니 내가 그 대학생활을 동경할 수 밖에. 모두들 너무 강하다. 넘어져도 엉엉 울면서 일어나는 그 강함에 읽을 때마다 반하게 된다. 더불어 언제나 방긋 웃게 해주는 순진함에도.

 

어쩐지 한 살 먹을 때마다 울음이 많아 지는 나지만, 만화책 보고 운 적은 쵸파사건(원피스) 이후로 처음이었다. 작가인 우미노씨가 가족이 사라진 허전한 느낌이었다, 라고 말했지만 나 역시 뭔가 잃어버린 듯 뻥 뚫린 기분에 울먹울먹 마지막 권을 덮었다.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다들 누가 빌어주지 않아도 행복해 질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 아직도 자아찾기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위해 아껴두자.

 

-어릴 때 어떤 책에서 읽었던 건데, 기회는 어떤 인간에게나 적어도 평생 3번은 꼭 찾아온대. 그래서 어른이 되어 생각한 건데, 막상 그 기회가 왔을 때, 거기에 "뛰어들 수 있나" "없나"는 단순히 돈이 "있냐","없냐"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 거야. (8권)

 

-어째서 이 세상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는 걸까. 어째서 "사랑받는 자"와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존재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나누는 것일까. 어디가 갈림길이었을까. (9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괜찮아. 이제 알았어. 그리고 싶어. 이것 외의 인생은 내겐 없어. (10권)

 

-사는 의미를 무엇에 거는가...그 차이라고 생각해. 그게, <사랑>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고 싫고와 상관없이, 뭔가 <이루어내야만 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모두들 그 순간은 그야말로, 본능에 판단을 맡길 수밖에 없을 거야. (10권)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 하고...이제는 알겠다. 의미는 있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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