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10 - 완결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최근 절판의 위험을 감지하고 만화책들을 다시 모아보려고 한다. 물론 신간도 끌리지만 쌓여만 가는 책들과 자리가 부족한 책장을 고려해 예전에 사두었던 책들의 뒷권만 사려고 (노력)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충사/는 어쩐지 '아..지금 사두지 않으면...' 하는 느낌이 아슬아슬하게 드는 책이었다. 뭐, 언젠가 애장판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이번에 큰 맘 먹고 9권을 한꺼번에(한 권은 이미 집에 있었기 때문에) 질러버렸다. 신기하게도 소설책과 만화책은 택배를 받고나서의 마음이 사뭇 다르다. 어느 책이나 설레는 건 마찬가지지만 아무래도 만화책이 더 '보기 쉽기' 때문일까 두근두근 신이 난다. 굳이 분석하자면 불쑥 튀어나오는 조급증 덕에 빨리 읽을 수 있는 책에 기뻐진 거지만.

 

/충사/가 도착하던 날은 아직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택배를 받아본 건 엄마였고 나는 저녁 무렵이 다 되서야 택배를 뜯어볼 수 있었다. 묵직한 택배 박스가 책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걸 느낄 때면 뜯기가 아까워진다. 선물을 풀러보기 전의 두근거림 같은게 사라질 것 같아서. 물론 난 내용물을 다 알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새 책이다! 싶은 마음에 상자를 열고 책들을 침대 위에 쏟아부었다. 어디서 봐도 재미는 덜하지 않겠지만 책은 자고로 편하게 봐야한다는 게 내 진리다. 추운 날은 침대 위에 작은 책상을 펴놓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읽는 게 딱 좋다. 거기에 아이스크림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게다가 '충사'는 어쩐지 침대가 잘 어울리는 이야기다. /충사/는 어딘가 어린 시절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전래동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할머니는 평범하게 혹부리 영감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조근조근 펼쳐지는 이야기, 라는 느낌이랄까. 아마 그건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의 '할머니/할아버지가 겪은 이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에는 좀처럼 듣기 힘든 여우/도깨비에 홀렸다-하는 이야기들이 잔뜩 나와 보고있으면 어쩐지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불 속에서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숨을 죽이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던 그 때의 기분에 취하려면 역시 진짜 이불 속이 좋겠지.

 

내가 만화를 고르는 기준은 대충 3가지로, 그림체와 스토리, 장르-정도로 나뉜다. 그림체, 라고 해도 딱 이거다! 싶은 그림체라기 보다 보기에 예쁘거나 귀엽거나 정감가는 스타일이 좋다. 스토리는 뭐랄까, 개연성이 너무 부족하다거나 너무 노골적인 '인터넷 소설' 류만 아니면 좋겠고... 장르는 탐정/추리 장르면 스토리와 그림체는 거의 상관하지 않는다는 의미라 별 도움은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충사를 처음 고른 건 아무래도 '스토리' 쪽이었다. 당연히 탐정/추리 장르는 아니었고 (사실 제목만 보고는 세*코 이야기, 같은 장르인 줄 알았는데...) 그림체는 확실히 정감가는 스타일이었지만 그 당시 난 귀여운 스타일을 선호했기 때문에 볼까말까 상당히 망설였던 만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게 된 건 사실 애니판 충사를 먼저 봤기 때문일까. 애니판 충사는 상당히 원작에 충실해서 재미삼아 보기 시작했는데 홀딱 반해 (아직 읽지 못한) 원작까지 사랑스러워지는 작품이었다.

 

/충사/는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져서 몇몇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이야기에서만 등장한다. 덕분에 몇 권을 집어들든 재미가 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인 '깅코'는 늘 자유롭고 담담한 얼굴을 하고 떠돌아다니는 충사다. (이게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인 이유) 살가운 얼굴 보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주제에 속정 많고 오지랖도 넓어서 가는 곳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만난다.

 

/충사/는 '판타지' 장르라고 생각한다. 굳이 겹쳐서 넣자면 '드라마' 쪽이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는 판타지가 아닐까. 엘프나 호빗같은 종족이 등장하지도 않고 마법이 사용되지도 않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충사/의 정확한 시대 배경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일본 역사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더 할 수도 있지만 작가도 딱히 시대에 연연하지는 않기 때문에 모른다고 해서 이야기의 재미가 덜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다들 옛날 (일본) 옷을 입는데 깅코는 어째서인지 현대적인 옷을 걸치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니 정말 왜일까...?)

 

 

어렸을 때, 눈을 감으면 눈 안에서 무언가 반짝 반짝 거렸다. 그 때는 그 작은 빛들이 꾸물꾸물 움직여서 아메바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낭만이 없는 아이였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충분히 아메바 스러웠다.

 

/충사/에서는 그걸 '벌레'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리같은 벌레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과 가까운 그런 존재라고. 1권에서 깅코는 "곤충이나 파충류와는 전혀 다른 '벌레'. 대강 설명하면 이래. 이 손의 이쪽 네 가닥이 동물이고 엄지가 식물을 가리킨다고 하자. 그럼 사람은 여기... 심장에서 가장 먼 중지의 끄트머리에 있는 셈이야. 손의 안쪽으로 갈수록 하등한 생물이 되어가지. 계속 따라가다 보면 손목 부근에서 혈관이 하나로 이어져. 여기 있는 것이 균류나 미생물이야. 이 부근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식물과 동물을 구분 짓기가 어려워지지. 하지만...아직 그 앞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어. 팔을 따라 올라가 어깨도 지나간다...아마도...이 부근(심장)에 있는 것들을...'벌레'...혹은 '초록'이라고 부른다.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이지."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충사"란 그런 벌레를 연구하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말한다. 깅코는 선천적으로 '벌레'가 꼬이는 체질이어서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며 해를 끼치는 벌레를 쫓아내거나 벌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충사를 읽다보면 확실히 옛날에는 '자연'이라는 게 좀 더 생생하고 무섭고 친근한 어떤 것이었다는 걸 느낀다. 충사의 이야기에는 종종 벌레지만 자연현상과 비슷한 것이 나온다. 무지개를 닮은 벌레, 비를 닮은 벌레, 구름을 닮은 벌레... 거스를 수 없는 것, 두려운 것, 풍요로운 것, 이해할 수 없지만 고마운 것. 지금 같이 일기예보도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기술도, 복구할 수 있는 기술도 변변치 않았던 옛날에는 자연재해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제서야 깅코가 말한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들이지',라는 말을 조금 이해한다. 그런 벌레들은 살아있는 자연에서 파생된 것이니까.

 

지금은 설령 '벌레'가 있다해도 알아채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과연 그게 행일까 불행일까.

 

 

이윽고 다리의 통증은..., 마음의 통증까지 수반하게 되었다.
미비하고 하등한 생명에 대한 교만.
이형의 것들에 대한 이유 없는 공포가 야기한 살생.
그런 것들이 적지 않게 감지된 것이다. -2권 /문장의 바다/

 

네 안에 뻥 뚫린 커다란 공동을 꽁꽁 틀어막아.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돼버리기 전에... -4권 /빈 누에고치 따기/

 

땅 밑바닥은 차가우냐-.
답답하냐.
무서우냐.
괴로우냐.
맑은 물과... 무수한 별들이...
사는 곳. -9권 /호중천의 별/

 

어릴 적 가슴을 설레게 했던 방울소리가
몹시 애절하게 들려왔다.
마치 살을 에는 것처럼 아름답고 슬픈 소리였다. -10권 /방울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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