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책을 표지로 판단하지 마라.) 라는 말이 있지만 난 은근 꼬임에 넘어가기 쉬운 성격이라 표지와 제목에 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로서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변명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도 표지가 책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 종종 있으니 그런 책 앞에서는 스스로도 못 믿을 변명인 셈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운좋게 좋은 책을 좋은 제목으로 건졌으니 이런 책고르는 습관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닐지 모르겠다. 이게 인간 관계로 넘어가면 절대 안 되는데-하는 걱정은 덮어두고라도.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사실 난 제목만 보고 런던의 고서점을 돌아다니며 순박하고 온후한 서점주인분들의 사진과 이야기가 펼쳐질 줄 알았다. '런던'이라는 내게는 한없이 이국적인 장소에 가장 많이 끌렸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만. 하지만, 책은 목차, 프롤로그부터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고서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바로 "Do not judge a book by its cover."와 관계된 이야기가.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이 굉장히 독특한 이벤트는  '독특한', 즉 다른 사람과 약간 다르기 때문에 '편견'이 박혀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소통의 장으로 제목인 리빙 라이브러리, 즉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은 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차근차근 읽어가듯 사람을 '대출'해 그 사람의 인생을 읽어가자는 의미에서 나왔다.  색다른 이벤트를 좋아하는데다 기본적으로 '도서관' 개념을 좋아하는 나는 프롤로그 첫 문단을 읽으면서부터 이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이벤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나서는 더더욱, 이런 이벤트가 우리 나라에서도 열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성실한 독자다운 생각을 하게 됐다.

 

성실한 독자답게 인터넷에서 리빙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봤다. (주소는 http://living-library.org/index.html) 사이트에서 살펴보니 수많은 나라에서 개최되었고 심지어는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개최되었다고 한다. 내가 언어와 시간, 돈만 된다면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리빙 라이브러리를 돌아다니면 세계가 무척이나 넓어지겠지.

 

김수정씨의 런던 리빙 라이브러리에서도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이 '책'으로 참가했다. 싱글맘, 장학사, 레즈비언, 우울증 환자, 여자 소방관, 신체 기증인, 휴머니스트, 혼혈 등 '편견'이 있는 사람들. 평소 탁 터놓고 얘기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도 자유로이 나눌수 있고 질문도 자유로운 이 행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이해하고 시야가 넓어져 돌아갔을까. 우리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나로서는 참가할 수 없는 행사지만, 다행히도 김수정씨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이 책은 행사에 참가한 '책'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런던 곳곳의 풍경, 사람들의 사진, 영국의 풍습이나 생활을 전해주고 있어서 '사람'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영국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책이었다. 런던 소개책도 아닌데 어쩐지 영국으로 건너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옛날엔 그저 다 똑같은 외국이었는데 알면 알수록 영국이란 나라에 호감이 가고 동경이 생긴다. 특히 이국적인 사진에 홀딱 반했다. 사실 우리나라의 생활 풍경을 외국인에게 보여줘도 이국적이다, 고 말할테지만 내겐 친근할 뿐이라 외국의 일상 사진만 보아도 여행 가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책 곳곳에 사진이 있어서 보는 눈도 즐거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당연히도 '편견'을 깨트리는 이야기들이다. 내 스스로는 그런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다보니 은연중에 편견을 갖고 있던 자신을 깨닫는다. 내가 어느 직업, 어떤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조차 편견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공정하고 '자신'만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날 좋아해주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내가 나라는 걸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임의로 분류하고 있는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기 다른 성격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삶이 있다. 심지어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남들과 다른' 점이 분명히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장점이라고 하겠고 어떤 사람에게는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그게 '개성'이라고 불리고 있겠지.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은 다들 다르다,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세상에는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안 되는 게 없다, 라는 일반적이지만 의외로 깨닫기 힘든 깨달음을 이 책을 통해 재차 깨달았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좋은 취지의 행사가 한 번쯤은 열리기를 바란다. 자라나는 어린아이에게도 고민하는 청소년에게도 삶에 지친 어른들에게도, 남들과 아주 약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고민해왔던 '책이 될' 분들에게도 의미 깊은 행사가 될테니까.

 

 

-하지만 진을 용감하게 만들어 준 건 역설적으로 바로 그 '나이'였다. 노년으로 접어드는 길목처럼 느껴지는 나이 예순 살. 그 나이가 진에게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막 넘기는 나이. 이번만큼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불가능하다는 예감이 들었다. (50)

 

-선생님이 결코 가져서는 안 될 게 바로 선입관과 편견이에요. '저 아이는 아마 이 정도 수준일걸' '이런 가정 형편이니 여기까지만 기대해야지', 이런 선입관이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해요. (77)

 

-어차피 내가 지니고 갈 짐은 나의 것이고, 내 인생도 나의 것이에요. 누구에게 잠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 짐의 중량은 내가 안고 가야 합니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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