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전쟁 -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
윌리엄 쇼크로스 지음, 김주환 옮김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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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이 종전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영향력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전쟁당시 고엽제로 피해를 입은 병사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으며, 베트남의 토양은 2미터 이상 오염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됬습니다. 고엽제로 인한 기형아들은 아직도 태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한 미군이 경북 칠곡에 있는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로 쓰이는 독성물질을 매몰했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이러한 베트남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독특하게도 베트남전에서 제대로 조망되지 못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베트남전 당시 있었던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과 인접해 있는 캄보디아는 시아누크 국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시아누크는 극단적인 중립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시아누크는 소련, 폴란드와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중국의 원조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미국은 이러한 중립주의 정책에 불쾌감을 나타냈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을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북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초 단계로 캄보디아가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미국 CIA의 지원에 따라 이뤄진 우익의 쿠데타가 일어났고, 시아누크는 실각하면서 친미정권인 론놀정권이 수립됩니다. 시아누크가 실각함에 따라 미군과 남베트남군의 군사작전은 본격적으로 캄보디아로 확전되었습니다.

당시 북베트남군은 캄보디아를 이용해 게릴라 전술을 펼쳤고, 캄보디아에 북베트남군의 수뇌부들이 모여있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사령부가 캄보디아에 있다는 소문은 닉슨대통령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박사, 그외 몇명의 군 관계자들은 캄보디아에 있는 북베트남 세력을 공격해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B-52폭격기들이 캄보디아에 폭탄을 투하함으로서 캄보디아가 베트남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공습 이후에도 북베트남 사령부는 찾지 못했습니다. 공군의 타격이 별 소용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자 미군은 본격적으로 육군을 투입했습니다.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마을을 닥치는대로 파괴하고, 식량을 불태웠습니다. 론놀정부도 쿠데타 이후 불안한 민심을 돌리기 위해 캄보디아인들이 가난한 이유가 베트남인에게 있다는 선동을 펼치며 일방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키신저는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전쟁을 두 개의 중립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확대시킬것을 주장하는 동시에 베트남에서는 장기전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작전은 중립국인 두 나라를 선전 포고도 없이 폭격하면서 미국의 교전 수칙마저 위반했다. 고엽제를 비롯한 화학 무기도 사용되었다. 이때 미군 폭격에 희생된 민간인은 캄보디아에서 60만명, 라오스에서 35만명에 이르렀다. -《키신저 재판》 

미군이 캄보디아에 쏟아부은 포탄의 양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싸울때 사용된 16만톤보다 훨씬 많은 54만여톤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였습니다. 하지만 닉슨대통령과 키신저 박사, 닉슨 행정부내의 강경파들은 이러한 폭격 사실을 자료를 소각하고 이중보고서를 사용하는 등 치밀한 노력 끝에 은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최초의 공습작전인 조찬 작전이 실시된 뒤 일주일 후 뉴욕타임즈에 공습을 의심케 하는 짤막한 기사가 실렸지만 대중들과 언론사, 심지어 다른 정부기관마저도 이에 주목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뉴욕타임즈의 이 기사에 닉슨, 키신저 등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고 기사의 출처를 조사하기 위해 불법으로 도청장치 등을 설치하며 훗날 벌어질 워터게이트 사건의 단초를 마련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지면서 미 의회는 4년 뒤인 1973년에 가서야 전쟁이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은 채 중립국인 캄보디아로 확전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미국이 캄보디아로 전쟁판도를 넓히게 되면서 전쟁 이전 경작이 가능했던 논 가운데 80%가 불모지로 변했고, 3800만톤에 달했던 쌀 생산량은 66만톤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국민이 빈곤층으로 전락했지만 친미정권인 론놀정부의 요인들을 비롯해 캄보디아의 극소수의 상류층은 여전히 테니스를 치고, 나이트 클럽을 전전하고, 와인이 곁든 프랑스 요리를 즐기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군과 론놀정부군에 대항한 세력은 크메르 루주였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북베트남과 소련, 중국의 지원을 받았고 결국 베트남전이 종식됨과 동시에 론놀정부를 밀어내고 캄보디아 집권세력이 됩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캄보디아의 주인이 된 크메르 루주는 훗날 폴 포트라는 악명높은 지도자와 킬링필드로 이어지게 됩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은 닉슨 행정부의 강경파들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를 낳았습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공산화되었고, 킬링필드라는 대량학살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닉슨 독트린으로 인해 북한에선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했고, 남한에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새로운 독재체제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베트남전이 캄보디아로 확전되지 않고 그 전인 1968년에 파리 평화회담이 성사되었다면 닉슨의 운명도, 베트남의 운명도, 캄보디아의 운명도, 그리고 우리나라의 운명도 지금과 다른 모습이였을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이라는 역사를 통해 전쟁을 주장했던 강경파들이 수립한 정책이 민중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왔는지를 교훈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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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메의 구조 - 왜 인간은 괴물이 되는가
나이토 아사오 지음, 고지연 옮김 / 한얼미디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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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천 계양구 A고등학교 B양이 동급생들에게 1년 넘게 왕따를 당하다가 목을 매 자살하려 했던 사건이 뉴스에 올라왔습니다. 이런 학교 내 집단괴롭힘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큰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에 각계각층에서 집단괴롭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집단괴롭힘 사건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이러한 '왜 집단괴롭힘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답변을 구조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필립 짐바르도는《루시퍼 이펙트》에서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고문사건의 원인으로 싱싱한 사과도 썩게 만드는 썩은 사과상자의 영향력을 언급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집단괴롭힘 문제의 저변에는 썩은 사과상자, 학교라는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왕따 사건을 교권의 붕괴나 학급질서의 붕괴로 인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집단괴롭힘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이 학교라는 공간은 매우 독특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질서의 핵심은 보편주의와 휴머니즘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그에 반해 학교의 질서는 보편주의가 사라진 인간주의만이 존재합니다. 친구관계가 양호한 경우에는 배려를 베풀지만, 나쁜 관계에는 잔혹하고 박정하게 대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시민사회의 질서를 질서의 기준으로 보는 관점에서 보면 학교는 질서가 해체된 공간이며, 유아적이고, 욕구불만에 대한 내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소사회를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독재체제나 전체주의 국가 이상으로, 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영혼까지 노예화하는 음산한 질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선악의 개념과 학교 무리 안에서의 옳고 그름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사건을 평가한 슐레진저 보고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단괴롭힘 사건은 단지 비정상적인 개인의 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적 과정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상태에 있을 때 그곳이 바로 그의 감옥이다. - 에픽테토스 

우리는 보통, 우선 개인이 있고 그 개인과 개인이 유대를 쌓으면서 관계를 맺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교공동체에서는, 우선 모두의 관계가 일차적이고 개인은 그 이차적 항목으로서 존재합니다. 학교는 운명처럼 밀착되어 지내야 하는 생활환경이기 때문에, 학생들은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자기의 신분으로서의 자신을 살아갑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윤리질서를 한마디로 말하면 고분고분하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시민사회의 논리로 학교의 집단괴롭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학교의 윤리질서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은 집단괴롭힘에 대한 외부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규범의 준거점이 다른 수준에 있는 것입니다.

현행 학교제도의 바탕에는, 시민사회의 질서가 쇠퇴하고 독특한 학교적인 질서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학교적인 질서 속에서 학생들도 교사들도 학교적인 현실감각을 몸에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집단괴롭힘은 사람을 바꿔버리는 유해환경으로서의 '학교다운 학교'와 그 속에 만연하는 학교적인 질서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해학생들은 자신들이 학교적인 공간 안에 있다고 느끼는 한 자기들 나름의 학교적인 집단의 생활방식을 당당하게 일관합니다. 그들이 집단괴롭힘을 그만두는 것은 시민사회의 논리에 둘러싸여 더 이상 학교적인 생존방식이 통용되지 않음을 실감했을 때입니다.

이 윤리질서에 따르면, '옳음'이란 '모두'의 규칙에 부합된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지메는 그때그때 '모두'의 기분이 동해서 생겨난 '옳은'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연결되어 있는 한 그런 행위는 계속해서 더 많이 해야 한다. 설령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해도 자신들 나름의 질서에 따랐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동조한다는 것은 '옳다'는 뜻이다. 눈치가 빠른 것은 '옳은' 것이다. 분위기를 잘 맞추는 것도 '옳은' 짓이다. 그 중심에 있는 강자는 '옳은' 행동을 한다. 따라서 그 강자에게 복종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다. - p.40 

집단괴롭힘은 많은 경우 폭력의 형태를 띕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는 자신의 불완전감을 회피하기 위해 타인을 조종함으로서 얻어지는 전능감을 얻고자 합니다. 완전하게 조종하는 가해자 자신은 완전하게 조종당하는 타인의 반응에 자신의 존립 여부를 내맡기고 있는 극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보여줍니다. 가해자는 이러한 집단괴롭힘에서의 전능모형을 구현하지 못하면 전능감을 내세워 속여오던 자신의 결핍, 불완전감이 드러나고 말기 때문에 괴롭힘을 멈추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이지메 가해자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독특한 피해의식과 증오, 잔혹성이 생겨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거부하면 대부분 가해자 쪽이 그런 취급을 받은 것에 특유의 분노를 느낍니다. 집단괴롭힘 사건이 발생했을때 오히려 가해자와 그 가족이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내 눈은 피해자의 눈, 내 손은 가해자의 손'이란 말처럼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집단괴롭힘을 당하거나 묵인한 학생들은 때론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태도를 멜라니 클라인은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으로 묘사했는데, 집단괴롭힘을 견뎌낸 학생들은 자신을 강인한 이미지로 개조하는 일에 집착하며, 자신이 괴롭히는 피해자에게 자신을 투사합니다. 이렇게 자란 학생들은 처세하며 사는 사회에서는 강인해질 수 없는 자를 장난감처럼 취급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집단괴롭힘을 견뎌낸 체험이 강할수록 이 권리의식도 강해집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강인함의 미학은 괴롭힘을 당하는 자는 한심하다든지, 괴롭힘을 당하면 스스로 단련하여 괴롭히는 자가 되면 된다는 생각을 초래합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학교가 전체주의적인 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학교라는 시스템의 존재만으로도 하위자를 권위자에게 순응하게 만드는 훈육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집단괴롭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는 두 가지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먼저 학교라는 곳은 성스러운 공동체로 인식되어 시민사회의 논리와 단절된 특수한 사회로 유지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시민사회의 논리를 학교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사건을 빈발시키고 있으며, 폭력을 쓰면 경찰을 부르는 것이 당연한 장소라면 일정한 선을 넘기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한마디로 폭력형 집단괴롭힘을 멈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도나 정책이 바뀌면 이러한 생활환경의 이해 구조는 쉽게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데버러 L. 로드는 우리 마음속에 굳어버렸다고 가정하는 편견조차도 사실은 법에 의해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변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현대 학교의 구조의 개선입니다. 저자는 현대의 학교는 심리학의 감각차단 실험과도 같은 견디기 어려운 곳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학교는 학생 생활 전반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전인교육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그것을 개개인에게 강제합니다. 집단 학습, 집단 섭식, 학급활동, 잡무 할당, 학교 행사 등을 강압함으로서 모든 생활 활동이 집단화됩니다.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친구나 선생님과 종일 부대끼며 공동생활을 해야만 한다는 조건에, 다양한 강제적 학교 행사가 더해집니다. 게다가 폭력에 대하여 법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무법지대이기도 합니다. 시민사회에선 개인이 타인과의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에 이런 정신적 중압감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학교가 폐쇄적이지 않고 인간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를 높이면 공간안에서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는 일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학급제도를 폐지하고 대학교처럼 과목을 자율화하는것이 바람직하며, 사회는 학교 외의 공부 방식을 제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감정노동자라기보다 감정노예라고 할 수 있다. 늘 미소를 지어야 하는 감정노동자인 승무원보다 억지로 끌려간 성노예에 가깝다. 학교에 강제 연행되어 우연히 같은 반에 배속되었을 뿐인 타인들과 친밀한 친구로서 공동생활을 강요당하는 강제노동은, 병사와 관계를 가져야만 하는 성노예의 강제노동과 동일한 형태다. - p.170 

저자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집단괴롭힘의 구조를 풀어가면서 그 이상의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집니다. 규칙을, 질서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존엄을, 때로는 생명마저도 경시하는 태도는 과연 학교만의 문화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집단괴롭힘은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군대문화도 그 일종이며, 사회적으로도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동성애자 문제에서도 이런 구조는 발현될 수 있습니다. 왜 학생들은 집단괴롭힘을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더 나아가 인간은 왜 소수의 사람들을, 약자를 괴롭히는 괴물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이러한 전체주의에 대한 매커니즘을 이해함으로서 열린 사회,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독자의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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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 믿음에 갇힌 여자들
제럴딘 브룩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뜨인돌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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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종교 중 하나인 이슬람교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종교입니다. 이슬람교에 대한 이미지 중에서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이슬람의 원칙에 순종하는 여성들의 모든 옷, 히잡이 아닐까 합니다. 히잡의 생김새는 이슬람교가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자 제럴딘 브룩스는 본래 이슬람교는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오늘날 이슬람 국가들이 여성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종교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은 말합니다. "신앙을 가진 여성에게 말하라. 시선을 낮추고 몸가짐을 정숙하게 가지라고. 아름다운 신체기관 중에서 분명하게 눈에 띄는 곳만 치장하고 가슴을 베일로 가리라고."

현재 대부분의 이슬람 여성들이 사용하는 히잡의 형태는 이러한 코란의 가르침에 나오는 분명하게 눈에 띄는 곳이란 표현을 여성의 얼굴과 손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우리 사회의 윤리규범에서도 통용될 만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정숙한 여자에게 속이 훤히 보이는 블라우스나 너무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지 말라는 수준의 규범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실제 무슬림 여성들이 입고 있는 이슬람 복색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사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경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차이는 아랍어의 특징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hormah'는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 중 하나이며 성스러운, 신성불가침의 라는 어원이 있지만 동시에 사악한, 금지된 같은 어원도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적 특징 때문에 코란을 정확히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적 메시지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발상이 유연하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 꼴리는 대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2차 자료인 하디스를 둘러싼 논쟁에서 비롯됩니다. 현재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는 여성 억압 사례들은 겉으로는 종교적 이유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 코란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란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 또한 정숙해야 한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코란에 따르면 남성은 배꼽과 무릎 사이를 가려야 하며, 몸을 가리는 천은 살갗이 비치거나 몸에 딱 붙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 전역에서 남성들은 이 규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걸프 만의 남성 젊은이들에게 스키니가 유행이며, 축구선수들은 허벅지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고, 레슬링 시합은 급소보호대만 걸칩니다. 여성들은 차도르를 입은 채 수영을 해야 하지만 남성들은 배꼽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지 않는 것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여성 억압 문화는 공통적으로 그 기반에 남성 중심의 권력체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무슬림국가에서 여성들은 남자 친척들의 명예를 좌우합니다. 아내가 간통을 하거나 딸이 혼전성관계를 하는 경우, 심지어는 의심을 샀다는 것만으로도 가족 전체의 명예를 더럽히는 셈이 되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할례를 하거나, 명예살인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오히려 많은 하디스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현재의 이슬람교도들이 행하는 여성의 성적 억압을 혐오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디스엔 막루와 순낫이라는 행동이 있는데, 막루는 별로 권장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행동을, 순낫은 바람직하지만 의무사항은 아닌 행동을 일컫습니다. 대부분의 무슬림 남성들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은 순낫이며, 여성할례도 순낫에 해당합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적인 할례문화는 종교적 가르침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여성 억압 문화 때문에 이슬람교는 금욕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만,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보다 오히려 성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이슬람교는 결혼관계 속에서의 성관계를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 아내의 죽은 시체와 성관계를 하는 것 정도가 금지되어 있을 뿐, 거의 모든 형태의 성관계와 체위를 권장합니다. 또한 코란은 기혼 여성들에게 20일마다 몸에 있는 털을 제거하며 아름다움을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현대사회에서 계약결혼과 같은 형태도 이슬람교는 종교적인 틀을 통해 제공합니다. 이슬람교는 성행위를 장려하는 만큼, 간통, 강간 등과 같은 문제에 가혹한 대처를 합니다. 이슬람이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을 허용해왔기 때문에 변태적인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초기의 종교적 가르침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에릭 홉스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단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종교적 교리가 여성 억압적으로 해석되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이름을 외치는 행위들 가운데 초기 종교의 가르침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가 불교의 역사를 논하면서 거론한 바 있습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로 1935년 이란의 왕인 샤의 아버지가 차도르 금지령을 내렸는데, 이에 대해 샤의 반대파는 반발했고 차도르를 입는 행위는 종교를 떠나 정치적으로 해석되었고, 해방을 의미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아랍인들은 시리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걸쳐 포진한 부패한 종교, 군사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슬람교에서 성전, 지하드는 근본적으로 외부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내면을 정화하려는 노력, 즉 자신의 도덕적 실책이나 나약함을 상대로 하는 싸움을 뜻한다. 그러니 무슬림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지하드가 아니라 그 진정한 의미가 담긴 지하드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 할 것이다. -《폭력이란 무엇인가》p.181 

저자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자행되는 여성 억압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종교의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코란은 결코 여성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대우하라고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때문에 이 문제는 사회적이며, 권력구조의 문제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종교의 문제로 보였던 이 문제들의 해결책이 바로 종교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저자가 만난 많은 이슬람 여성 가운데서 가장 행복했던 부부는 바로 초기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했던 부부였습니다. 여성을 대하는 현재 이슬람교의 태도는 모순적입니다. 여성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면서도 여성을 성스럽고 강력한 존재로 두려워합니다. 여성의 목소리만으로도 남성이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기 때문에 여성이 말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태도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남자이며,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격언을 여성을 억압하는 문화에서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는 것은 재밌는 현상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여성 억압이라는 이슬람 문화권의 현실을 단순히 시대에 뒤쳐지는 다른 문화를 가진 미개인들의 태도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 또한 곤란합니다.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성별 노동분업의 문화 속에서는 자유주의 속에 내재된 문화 때문에 남성의 지배는 은폐됩니다. 자유주의 문화는 여성 할례, 여성의 조혼, 영아 살해, 일부다처제 등을 비난하지만 우리의 자유로운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애써 무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독단적 신념을 경계하라는 지적은 비단 이슬람 문화에 대한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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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전쟁
사라 치룰 지음, 박미화 옮김 / 엘도라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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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프랜시스 베이컨으로 대변되는, 자연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서양의 시각이 반영된 자본주의 체제는 필연적으로 많은 양의 자원을 요구합니다. 현재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많은 자원들은 전통적인 곳들, 광산이나 숲, 혹은 바다 등에서 왔습니다. 이런 자원의 중요성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원쟁탈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회가 계속 발전하면서 지구의 자원을 너무 많이 쓰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식이 제기되어 오고 있고, 나우루공화국이나 이스터 섬의 사례처럼 자원의 무분별한 사용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말해주는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저자는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새로운 자원의 보고를 말하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지역, 심해입니다.

심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자원은 광물자원입니다. 1977년 처음으로 발견된 블랙스모커 주변에는 광물퇴적층이 형성되는데, 고농도의 납, 아연, 은, 금 등이 있습니다. 해양전문가들은 블랙스모커에서 1톤당 평균 5~20그램의 금과 1200그램의 은을 채취했으며, 근처의 광석을 연구한 결과 전체의 50퍼센트는 아연, 15퍼센트는 주석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중에서 주목받는 것이 망간단괴인데, 구리, 니켈, 코발트 등의 성분이 있어서 이런 자원들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메탄 하이드레이트, 석유, 천연가스 등의 값어치 있는 자원이 심해에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은 보통 수심 4,000미터 이하의 심해저 바닥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심해자원에 관심이 있는 나라들은 심해의 95퍼센트를 탐색할 수 있는 수심 6,000미터용 로봇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프랑스, 영국, 노르웨이, 포르투갈, 러시아, 일본, 한국, 캐나다, 호주, 미국은 수심 6000미터 이상 잠수할 수 있는 ROV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말 태평양의 섬나라 통가 앞바다에서 탐사를 하던 연구원들이 블랙스모커 주변의 암석에서 1톤당 30그램의 금을 발견하자, 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헤르치히는 그들이 발견한 것이 그때까지 광산에 대해 알려진 것을 압도했다고 회상했다. "육지에 있는 광산에서 토사 1톤당 금 1그램을 발견해도 개발할 만하다고 하지요. 육지에서 1톤당 금30그램이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블랙스모커에서는 그게 가능했어요." - p.66 

지질학자들이 망간단괴에 함유된 광물성분 조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해양생물학자들은 거대한 환경오염과 그로 인한 생태계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심해에서는 소수의 적응된 생명체만 살고 있을거라는 보통의 인식과 달리, 심해의 블랙 스모커 지역이나 콜드 시프 지역엔 열대우림지역보다 더 많은 종류의 생물이 사는 생태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해양생물 조사프로그램이 발족된 이래 세계 각국의 해양생물학자들은 2010년 기준으로 5,600종이 넘는 신종 생물을 발견했습니다. 채집조사를 나갈 때마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추측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바다의 생명체의 1에서 5퍼센트 정도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해의 생태계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블랙 스모커나 콜드 시프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데, 문제는 그곳에 각종 자원과 유정, 혹은 가스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망간단괴를 채집할때 발생하는 흙먼지는 필연적으로 생태계를 위협합니다. 심해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시간이 육지보다 오래 걸립니다. 이런 심해 생태계를 걱정하는 이유는 단순히 동물윤리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류가 살아오면서 단순히 철과 같은 광물에만 도움을 받지 않았던 것처럼, 심해 생명체들이 가져다주는 혜택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해양 바이오테크놀로지는 화학, 제약산업에 혁명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연구중인 심해 박테리아를 이용한 바이오플라스틱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분해되며, 제품의 용도에 따라 개성있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고, 심해미생물로 만든 세제는 얼음같이 차가운 물에서도 기름때를 녹일 수 있습니다. 심해 생물체들에게서 항생제, 진통제, 항암제를 추출하는 것도 많은 부분 연구되었고 실용화된 것도 있으며, 수술에 사용되는 봉합실의 경우 이미 해저미생물로 만든 것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해의 자원을 둘러싼 문제들은 이러한 인간과 자연간의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인간과 인간 간의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 세계 100여 곳에서 해양경계선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나 대륙붕에 대한 권리 문제의 핵심은 심해에 내재된 자원입니다.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7.5퍼센트, 천연가스 매장량의 30퍼센트를 차지할것으로 추측되는 북극 해저의 권리를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 미국, 캐나다, 그린란드, 노르웨이 등이 신경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의 갈등도 제도에 있는 유전과 가스전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관련된 독도 문제에도 양국이 30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자원,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있습니다. 석유가 매장되어 있다고 예상되는 스프래틀리 군도에는 무려 7개국, 중국, 대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볼프룸은 추가 영유권 조항이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예를들어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 위에 떠 있는 섬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섬은 지질학적 측면으로 봤을 때 대서양 중앙해령에 속하는 봉우리다. 대서양 중앙해령의 길이는 16,000킬로미터로 대서양 해저에서 가장 긴 해저산맥이다. 바다 위로 봉긋 솟은 조그만 섬이 대서양 중앙해령에 속하고 그 섬이 아이슬란드령이라면 대서양 중앙해령 전체가 아이슬란드 땅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아이슬란드 땅은 바다속에서 포르투갈 서쪽에 있는 섬까지 연결된다는 말이다. - p.96 

저자는 심해는 지구의 보물창고이며, 미래의 번영과 생존을 위해서 제3의 골드러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지구 표면적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이 손대지 않은 지역에 이제 인간이 개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웠느냐는 점입니다. 인간이 자원을 빠른 속도로 소모하기 시작한 이래 생긴 많은 문제들을 심해의 자원을 채취할 때 해결할 수 있느냐는 아주 중요한 과제입니다. 멕시코 만에 있는 심해유전에서 발생한 초대형 재해는 아직 우리가 심해를 제대로 다룰수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기술적으로, 법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제 해저기구, 해양법재판소가 해저를 통제할 수 있는 법규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심해는 이익윤리에 휘말려 빠른 속도로 망가져버릴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심해는 바로 인류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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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과잉 사회 - 지워져버린 소녀들의 진실과 도래할 인류의 재앙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의 자연적인 출생 성비는 평균적으로 여아 100명 당 남아 105명 비율입니다. 남자가 더 많이 태어나는 이유는 신체적인 요소와 사회적인 요소로 인해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기 전에 더 일찍, 더 많이 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성비가 깨졌습니다. 남성이 너무 많은 사회가 된 것입니다. 인구와 관련된 사회문제는 저출산, 고령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혼인 연령대에 남성의 수가 여성을 크게 초과하는 일 또한 전 지구적 차원의 인구 문제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인구통계학자들은 자연 출생 성비가 유지되었다면 아시아에서만 1억 6,300만 명의 여성이 더 살고 있을 것이라고 산출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결혼을 할 수 없는 남성이 아시아에만 1억 6,300만 명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성별 선택의 전통적 기반은 남아 선호 사상에 있습니다. 하지만 남아 선호 사상을 가졌던 전통사회들이 꼭 성비 불균형의 문제를 겪었던 것은 아닙니다. 동인도회사의 기록은 인도의 여아 살해가 영국의 통치 아래에서 시작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영국의 무거운 세금과 토지 제도의 개편은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딸을 낳는 것은 곧 가족의 토지를 잃는다는 것과 동일시되게 만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승혼 관행과 불공정한 경제 정책이 결합되면서 남아 선호 사상이 대두되었고, 실질적인 형태인 여아 살해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학 기술의 발전, 저렴한 성 감별법을 통해 쉽게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폭발적인 형태로 성비 불균형을 가져왔습니다. 여성이 아이를 될수록 낳지 말 것과 아들을 최대한 낳으라는 두 가지 압력을 모두 받는 세계이기 때문에, 성 감별 낙태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다가옵니다. 성비 불균형이 발생한 나라들의 공통된 특징은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중이고 태아 성 감별이 가능할 정도까지 의료 체계가 자리를 잡았으며, 낙태가 만연해 있고, 최근 출생률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성비 불균형의 이론적 기반은 맬서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맬서스는 인구의 수를 억제하지 못한다면 지구가 감당할 수 없다는 이론을 펼쳤는데, 이 주장을 받아들인 학계와 대중은 인구감소를 위한 대응책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 방법으로 문화적, 경제적 요인들로 부모들이 아들을 원하며 많은 경우 부부는 단지 아들을 낳으려고 계속 아이를 낳기 때문에, 태아 성 감별을 통한 낙태를 함으로서 다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이론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들을 낳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인구 증가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에를리히의《인구 폭탄》같은 저서 등을 통해 대중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별 선택은 잠재적인 어머니의 수를 줄이는 추가적인 장점도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성별 선택을 용납할 수 있다고 믿었을 뿐 아니라 여아 태아를 도태시킴으로써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회의론자는 거대한 인구가 수렁에 빠진 경제 상황과 공존하는 나라들을 쉽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들은 예외 없이 인구규모라는 천부적인 혜택이 독창적인 발명에 대한 보상과 교육의 기회를 제한하는 정부 정책에 의해 그 밑동이 잘려나간 나라들이다. 인구 증가의 이익이 제거될 때 남는 것은 불이익뿐이다. -《발칙한 경제학》p.39 

포드재단, 세계은행, 유엔인구기금, 국제개발처, 국제가족계획연맹 등은 인구규모와 경제성장에 대한 1940년대의 이론을 기반으로 출생률이 낮아지면 국민이 더 부유해진다는 논리를 퍼뜨렸습니다. 휴 무어, 록펠러 3세, 루이스 스트로스, 키신저, 조지 H 부시 등과 같은 유명인사들도 이를 지지하는 인구활동가로 활약했습니다. 인구 활동가들은 낙태를 권리가 아니라 도구로 보았으며, 미국 내에서는 합법화를 지지하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해외에서는 낙태의 효용성을 홍보하는 이중성을 보였습니다. 인구조절운동의 인종차별주의와 우생학 논리는 상류층에 반향을 불러일으켜 빈곤층의 높은 출생률을 우려하게 했습니다. 때문에 서구의 빈곤층을 대상으로 대규모 불임시술이 시작되었고, 인도에서는 서구의 지원을 받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불임시술과 낙태를 자행했습니다. 출생률을 낮추는 것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인구는 경제성장의 저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빈곤층이 양산되고, 빈곤층이 많으면 공산주의가 확산될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전후 일본이 낙태가 유용한 인구 조절 도구임을 보여주는 미국의 실험장이었다면 한국은 그 도구가 제련된 곳이었습니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하고 매카시즘이 미국을 휩쓸던 시절이였기 때문에 반공과 연결되는 낮은 출생률은 중요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해외 원조를 받기 위해선 인구 조절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산아제한 정책에 적극 협조했습니다. 많은 한국 여성들을 억지로 끌고가 낙태와 불임수술을 자행했는데, 1977년에 서울의 의사들은 1명 출생 대비 2.75건의 낙태 수술을 했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기록된 최고의 낙태율이였습니다. 성공적인 여아 살해에 대한 보답으로 1980년에 세계은행은 한국에 3천만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습니다. 학자들은 한국사회가 과거에는 성 감별 낙태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현재 낙태의 천국이 된 데에는 군부독재시절 수십 년간 벌어진 강제적인 인구조절 캠페인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합니다. 서구에서 낙태 합법화는 보통 낙태 건수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가족계획 정책이 여성의 요구에 대한 배려 없이 수립되고 낙태가 피임을 보완하는 방법이라기보다 속성 인구 조절방법으로 도입된 아시아와 동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합법적 낙태는 더 많은 낙태를 의미했습니다.

인구 증가가 번영을 가져온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가질 때 그것은 언제든지 기뻐해야 할 경사다. 그 아이들이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게 거의 확실한데,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양육을 모두 떠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출산에 대해 기꺼이 보조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발칙한 경제학》p.50 

일면적으로 보면, 여성의 수가 적다는 것은 여성의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여성의 수가 적으면 결혼할 때 협상력 등에서 여성이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수가 줄어들면 사회의 나머지 집단에게서 더 귀하게 대우받을 것이라고 착각해 소수집단이 되고 싶어 하는 다수 집단은 없습니다. 성비 불균형은 분명히 여성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줍니다. 성비 불균형 사회에서는 남자는 결혼하기 힘들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에게 과도한 투자를 하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성비 불균형이 높은 사회는 문맹률이 높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낮았습니다. 오늘날 성비가 편향된 사회들은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조합니다. 또한 성매매, 신부 매매, 강제 결혼 등 여성에 대한 위협들을 불러옵니다.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는 성비 불균형을 성매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 바 있습니다.

매춘부의 임금이 이렇게 낮아진 이유가 무엇일까?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섹스 자체에 대한 수요가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매춘이 경쟁에 취약해진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매춘부들에게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누구일까? 그것은 남자와 기꺼이 무료로 섹스를 하는 '일반' 여성들이다. 다시 말해, 혼전 섹스가 매춘의 대체물이 된 것이다. -《슈퍼 괴짜경제학》p.54 

남자 아이를 선호해서 일어난 이런 문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옵니다. 인구통계학자들은 결혼 가능한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는 가상의 모델에서 남겨질 수밖에 없는 남성들을 잉여 남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들은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낳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아들이 홀로 늙어가는 것을 봐야 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자연을 가장 망친 사람이 자연재해를 가장 덜 받듯이, 대만과 한국의 부유한 부모들이 결정한 성 선택의 영향을 베트남의 가난한 남성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결혼하지 못하는 젊은 남성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젊은 잉여 남성들은 각종 범죄, 살인, 비행 문제를 저지를 확률이 높습니다. 많은 경우에 분노한 젊은이들은 애국주의에 기댑니다. 중국에서 이러한 젊은이들의 애국주의는 인터넷 신상털기와 같은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습니다.

2007년에 우리나라는 20여 년 만에 성비 불균형에서 정상적인 출생 성비로 바뀐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는 학자들에게 고무적인 현상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상 출생 성비가 된 이유는 1.08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 때문이였습니다. 첫 임신에서 태아의 성별 때문에 낙태가 이루어지는 일은 거의 드뭅니다. 우리나라에서 성 감별 열풍이 한창일 때도 첫 아이의 성비는 거의 정상 수치인 104였습니다. 즉 남아 선호 사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낮은 출생률로 인해 고령화 문제라는 또 다른 재앙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과 정부의 인구감소 정책이 만들어낸 성비 불균형 사회는 수만 명의 잉여 남성, 외국인 아내들의 유입, 가임 여성 감소로 인한 고령화 문제라는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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