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초콜릿 (반양장) -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
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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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세상에는 많은 과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 초콜릿은 아마도 가장 인기있는 과자일 것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가격마저 저렴합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싼 이 식품은 충치 걱정을 해야한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초콜릿을 단호하게 '나쁜 음식'이라고 규정합니다. 음식에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초콜릿은 나쁜 음식의 한 표본입니다. 긴 세월동안 초콜릿은 많은 요리법의 변화가 있어왔지만 그 핵심적인 특징은 역사에 초콜릿이 기록된 이래로 한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카카오에 대한 기록은 3000여 년 전의 올메크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후에 마야족으로, 아즈텍으로 이어집니다. 카카오는 신의 음식이라 불리웠으며,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지배계급의 초콜릿에 대한 갈망은 하층계급의 고된 노동에 의해 채워졌습니다. 이는 아즈텍을 침략한 에스파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스파냐가 아메리카를 노략질하며 알게 된 카카오는 에스파냐 수도사들에 의해 유럽으로 점차 알려지게 됩니다. 신의 음식이라는 카카오의 고유한 엘리트주의는 유럽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의 왕과 귀족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부유한 상인과 유명한 지식인들은 초콜릿을 즐겼지만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유럽의 기득권층이 초콜릿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의 위력 덕분에 일반인들도 부유한 상인과 지배계급만이 누리던 기호식품들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엔 커피와 차와 같은 식품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초콜릿도 약효가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미국에서 인기를 얻어 갔습니다. 네델란드의 판 하우턴은 카카오 분말을 생산하면서 현대 초콜릿의 역사를 시작했고, 존 캐드베리는 차별화된 포장과 마케팅 전략으로 초콜릿의 입지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초콜릿을 발렌타인데이의 일부이자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부활절과 연결시켰습니다. 허시 또한 다양한 전략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초콜릿계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초콜릿은 점차 개성있는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1890년대만 해도 벨기에는 콩고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1000만 명의 아프리카 인들을 죽였습니다.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름만 바뀐 노예제'로 실존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경마에 참여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핸디캡이 심하게 주어진 개발도상국의 말들은 출발문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순종 경주마는 이미 경기장을 거세게 내달리고 있다. 세계무역 경마의 규칙은 당연히 가장 좋은 말을 가진 주인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 피터 로빈스,《도둑맞은 열매》 

전 세계에 카카오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국은 자주 바뀌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서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서아프리카 국가들, 가나,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집니다. 이처럼 생산국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때론 정치적이였고 때론 경제적이였습니다. 초기엔 얼마나 노예들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생산국을 결정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업형 농업방식이 생산국을 결정했습니다. 카카오 나무는 다른 나무의 그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같이 키우는 것이 자연적으로 옳은 방법이기 때문에, 카카오 나무만 키우는 기업형 농업방식은 자연의 논리에 역행하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끊임없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멈출 경우 땅은 황폐화되고 버림받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은 카카오 농민들에게도 거세게 불어닥쳤고, 농민들이 이를 버티지 못하면서 생산국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로 대표되는 자유화의 충격요법은 카카오 농민들에게 독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카카오 가격은 마구 요동쳤고, 런던과 뉴욕의 상품거래소가 카카오 생산 농민들의 삶을 볼모로 잡게 되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세력은 원두를 평생 한번도 본 적 없는 상품 브로커들과 자체 비축분을 능란하게 관리하는 극소수의 다국적기업들입니다. 투기꾼들은 카카오 원두의 선물 가격을 예측하면서 헤지 마켓을 주물러댔습니다. 이에 대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우푸에부아니는 다국적 초콜릿 기업과 은행들을 상대로 카카오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우푸에부아니의 완전한 패배이자 다국적 카카오 기업들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로서 전세계 카카오의 절반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조차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후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이루어졌고, 극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카카오 생산을 장악했습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농민들은 카카오 원두를 더 저렴하게 생산해야 했고, 결국 카카오 재배법이 처음 시작될 때의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노예제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예가 비쌌다. 그래서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를 돌봐야 했다. 요즘에는 몸값이 싸다.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더는 쓸모없어진 노예는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일회용 인간이다. - 케빈 베일스  

결국 초콜릿 생산과정은 노예 시절과 변한게 없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선 노예제보다 악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예시절엔 왕이나 귀족, 유명한 지식인들과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날 경우 설령 길거리의 거지일지라도 초콜릿을 맛볼 수 있지만 정작 카카오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신의 음식입니다. 카카오 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콜릿을 먹어보기는 커녕 카카오로 뭘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 노동에 투입되고 있고 인신매매가 성행합니다. 빚을 지게 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은 계약노동자라고 부르는 노예들이 됩니다. 브라이언 우즈, 케이트 블루웨트가 만든 다큐멘터리『노예제도 : 국제조사』에서 나온 한 아동 노동자의 말은 그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는 건 제 살을 먹고 있는 거예요"

이런 현실들은 오랜 시간동안 잊혀져 있었지만, 정의심에 불타는 보도기자들이나 용기있는 내부고발자들을 통해 점차 초콜릿 산업의 그림자를 대중들이 알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노예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카카오 원두를 보이콧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은 초콜릿 회사들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노예들이 생산한 카카오로 만들었는지 여부를 표기하라는 제도를 도입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식품업계의 개척자인 크레이그 샘스는「그린&블랙스」를 만들어 현대의 공정무역과 같은 제도를 초콜릿 시장에 도입했습니다. 유기농 초콜릿의 등장에 대해 UN 같은 국제기구들은 처음에는 사업의 미래가 어둡다며 농민들에게「그린&블랙스」와 거래하지 말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였고 UN은 기존의 권고를 철회했습니다.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으로 농민들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재래종을 되살려냈고, 전보다 나은 수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기존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합니다. 세관 장벽은 농민들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수 있는 직접 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복잡함과 관료주의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쓰지 않고 어린이노동이나 노예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카카오로 만들어지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은 소비자들의 정치적 소비가 산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변화는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초콜릿은 정확한 출처를 알수 없는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길고 긴 초콜릿의 역사속에서 과연 이런 어두운 측면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초콜릿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소비자들에게 달려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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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 (양장) -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
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많은 과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 초콜릿은 아마도 가장 인기있는 과자일 것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가격마저 저렴합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싼 이 식품은 충치 걱정을 해야한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초콜릿을 단호하게 '나쁜 음식'이라고 규정합니다. 음식에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초콜릿은 나쁜 음식의 한 표본입니다. 긴 세월동안 초콜릿은 많은 요리법의 변화가 있어왔지만 그 핵심적인 특징은 역사에 초콜릿이 기록된 이래로 한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카카오에 대한 기록은 3000여 년 전의 올메크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후에 마야족으로, 아즈텍으로 이어집니다. 카카오는 신의 음식이라 불리웠으며,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지배계급의 초콜릿에 대한 갈망은 하층계급의 고된 노동에 의해 채워졌습니다. 이는 아즈텍을 침략한 에스파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스파냐가 아메리카를 노략질하며 알게 된 카카오는 에스파냐 수도사들에 의해 유럽으로 점차 알려지게 됩니다. 신의 음식이라는 카카오의 고유한 엘리트주의는 유럽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의 왕과 귀족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부유한 상인과 유명한 지식인들은 초콜릿을 즐겼지만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유럽의 기득권층이 초콜릿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의 위력 덕분에 일반인들도 부유한 상인과 지배계급만이 누리던 기호식품들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엔 커피와 차와 같은 식품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초콜릿도 약효가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미국에서 인기를 얻어 갔습니다. 네델란드의 판 하우턴은 카카오 분말을 생산하면서 현대 초콜릿의 역사를 시작했고, 존 캐드베리는 차별화된 포장과 마케팅 전략으로 초콜릿의 입지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초콜릿을 발렌타인데이의 일부이자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부활절과 연결시켰습니다. 허시 또한 다양한 전략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초콜릿계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초콜릿은 점차 개성있는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1890년대만 해도 벨기에는 콩고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1000만 명의 아프리카 인들을 죽였습니다.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름만 바뀐 노예제'로 실존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경마에 참여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핸디캡이 심하게 주어진 개발도상국의 말들은 출발문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순종 경주마는 이미 경기장을 거세게 내달리고 있다. 세계무역 경마의 규칙은 당연히 가장 좋은 말을 가진 주인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 피터 로빈스,《도둑맞은 열매》 

전 세계에 카카오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국은 자주 바뀌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서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서아프리카 국가들, 가나,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집니다. 이처럼 생산국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때론 정치적이였고 때론 경제적이였습니다. 초기엔 얼마나 노예들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생산국을 결정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업형 농업방식이 생산국을 결정했습니다. 카카오 나무는 다른 나무의 그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같이 키우는 것이 자연적으로 옳은 방법이기 때문에, 카카오 나무만 키우는 기업형 농업방식은 자연의 논리에 역행하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끊임없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멈출 경우 땅은 황폐화되고 버림받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은 카카오 농민들에게도 거세게 불어닥쳤고, 농민들이 이를 버티지 못하면서 생산국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로 대표되는 자유화의 충격요법은 카카오 농민들에게 독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카카오 가격은 마구 요동쳤고, 런던과 뉴욕의 상품거래소가 카카오 생산 농민들의 삶을 볼모로 잡게 되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세력은 원두를 평생 한번도 본 적 없는 상품 브로커들과 자체 비축분을 능란하게 관리하는 극소수의 다국적기업들입니다. 투기꾼들은 카카오 원두의 선물 가격을 예측하면서 헤지 마켓을 주물러댔습니다. 이에 대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우푸에부아니는 다국적 초콜릿 기업과 은행들을 상대로 카카오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우푸에부아니의 완전한 패배이자 다국적 카카오 기업들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로서 전세계 카카오의 절반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조차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후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이루어졌고, 극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카카오 생산을 장악했습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농민들은 카카오 원두를 더 저렴하게 생산해야 했고, 결국 카카오 재배법이 처음 시작될 때의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노예제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예가 비쌌다. 그래서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를 돌봐야 했다. 요즘에는 몸값이 싸다.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더는 쓸모없어진 노예는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일회용 인간이다. - 케빈 베일스  

결국 초콜릿 생산과정은 노예 시절과 변한게 없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선 노예제보다 악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예시절엔 왕이나 귀족, 유명한 지식인들과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날 경우 설령 길거리의 거지일지라도 초콜릿을 맛볼 수 있지만 정작 카카오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신의 음식입니다. 카카오 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콜릿을 먹어보기는 커녕 카카오로 뭘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 노동에 투입되고 있고 인신매매가 성행합니다. 빚을 지게 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은 계약노동자라고 부르는 노예들이 됩니다. 브라이언 우즈, 케이트 블루웨트가 만든 다큐멘터리『노예제도 : 국제조사』에서 나온 한 아동 노동자의 말은 그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는 건 제 살을 먹고 있는 거예요"

이런 현실들은 오랜 시간동안 잊혀져 있었지만, 정의심에 불타는 보도기자들이나 용기있는 내부고발자들을 통해 점차 초콜릿 산업의 그림자를 대중들이 알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노예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카카오 원두를 보이콧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은 초콜릿 회사들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노예들이 생산한 카카오로 만들었는지 여부를 표기하라는 제도를 도입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식품업계의 개척자인 크레이그 샘스는「그린&블랙스」를 만들어 현대의 공정무역과 같은 제도를 초콜릿 시장에 도입했습니다. 유기농 초콜릿의 등장에 대해 UN 같은 국제기구들은 처음에는 사업의 미래가 어둡다며 농민들에게「그린&블랙스」와 거래하지 말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였고 UN은 기존의 권고를 철회했습니다.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으로 농민들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재래종을 되살려냈고, 전보다 나은 수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기존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합니다. 세관 장벽은 농민들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수 있는 직접 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복잡함과 관료주의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쓰지 않고 어린이노동이나 노예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카카오로 만들어지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은 소비자들의 정치적 소비가 산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변화는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초콜릿은 정확한 출처를 알수 없는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길고 긴 초콜릿의 역사속에서 과연 이런 어두운 측면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초콜릿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소비자들에게 달려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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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 봄나무 문학선
샐리 그린들리 지음, 정미영 옮김, 문신기 그림 / 봄나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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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과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 초콜릿은 아마도 가장 인기있는 과자일 것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가격마저 저렴합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싼 이 식품은 충치 걱정을 해야한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초콜릿을 단호하게 '나쁜 음식'이라고 규정합니다. 음식에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초콜릿은 나쁜 음식의 한 표본입니다. 긴 세월동안 초콜릿은 많은 요리법의 변화가 있어왔지만 그 핵심적인 특징은 역사에 초콜릿이 기록된 이래로 한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카카오에 대한 기록은 3000여 년 전의 올메크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후에 마야족으로, 아즈텍으로 이어집니다. 카카오는 신의 음식이라 불리웠으며,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지배계급의 초콜릿에 대한 갈망은 하층계급의 고된 노동에 의해 채워졌습니다. 이는 아즈텍을 침략한 에스파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스파냐가 아메리카를 노략질하며 알게 된 카카오는 에스파냐 수도사들에 의해 유럽으로 점차 알려지게 됩니다. 신의 음식이라는 카카오의 고유한 엘리트주의는 유럽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의 왕과 귀족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부유한 상인과 유명한 지식인들은 초콜릿을 즐겼지만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유럽의 기득권층이 초콜릿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의 위력 덕분에 일반인들도 부유한 상인과 지배계급만이 누리던 기호식품들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엔 커피와 차와 같은 식품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초콜릿도 약효가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미국에서 인기를 얻어 갔습니다. 네델란드의 판 하우턴은 카카오 분말을 생산하면서 현대 초콜릿의 역사를 시작했고, 존 캐드베리는 차별화된 포장과 마케팅 전략으로 초콜릿의 입지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초콜릿을 발렌타인데이의 일부이자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부활절과 연결시켰습니다. 허시 또한 다양한 전략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초콜릿계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초콜릿은 점차 개성있는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1890년대만 해도 벨기에는 콩고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1000만 명의 아프리카 인들을 죽였습니다.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름만 바뀐 노예제'로 실존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경마에 참여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핸디캡이 심하게 주어진 개발도상국의 말들은 출발문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순종 경주마는 이미 경기장을 거세게 내달리고 있다. 세계무역 경마의 규칙은 당연히 가장 좋은 말을 가진 주인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 피터 로빈스,《도둑맞은 열매》 

전 세계에 카카오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국은 자주 바뀌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서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서아프리카 국가들, 가나,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집니다. 이처럼 생산국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때론 정치적이였고 때론 경제적이였습니다. 초기엔 얼마나 노예들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생산국을 결정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업형 농업방식이 생산국을 결정했습니다. 카카오 나무는 다른 나무의 그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같이 키우는 것이 자연적으로 옳은 방법이기 때문에, 카카오 나무만 키우는 기업형 농업방식은 자연의 논리에 역행하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끊임없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멈출 경우 땅은 황폐화되고 버림받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은 카카오 농민들에게도 거세게 불어닥쳤고, 농민들이 이를 버티지 못하면서 생산국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로 대표되는 자유화의 충격요법은 카카오 농민들에게 독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카카오 가격은 마구 요동쳤고, 런던과 뉴욕의 상품거래소가 카카오 생산 농민들의 삶을 볼모로 잡게 되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세력은 원두를 평생 한번도 본 적 없는 상품 브로커들과 자체 비축분을 능란하게 관리하는 극소수의 다국적기업들입니다. 투기꾼들은 카카오 원두의 선물 가격을 예측하면서 헤지 마켓을 주물러댔습니다. 이에 대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우푸에부아니는 다국적 초콜릿 기업과 은행들을 상대로 카카오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우푸에부아니의 완전한 패배이자 다국적 카카오 기업들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로서 전세계 카카오의 절반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조차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후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이루어졌고, 극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카카오 생산을 장악했습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농민들은 카카오 원두를 더 저렴하게 생산해야 했고, 결국 카카오 재배법이 처음 시작될 때의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노예제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예가 비쌌다. 그래서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를 돌봐야 했다. 요즘에는 몸값이 싸다.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더는 쓸모없어진 노예는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일회용 인간이다. - 케빈 베일스  

결국 초콜릿 생산과정은 노예 시절과 변한게 없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선 노예제보다 악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예시절엔 왕이나 귀족, 유명한 지식인들과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날 경우 설령 길거리의 거지일지라도 초콜릿을 맛볼 수 있지만 정작 카카오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신의 음식입니다. 카카오 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콜릿을 먹어보기는 커녕 카카오로 뭘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 노동에 투입되고 있고 인신매매가 성행합니다. 빚을 지게 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은 계약노동자라고 부르는 노예들이 됩니다. 브라이언 우즈, 케이트 블루웨트가 만든 다큐멘터리『노예제도 : 국제조사』에서 나온 한 아동 노동자의 말은 그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는 건 제 살을 먹고 있는 거예요"

이런 현실들은 오랜 시간동안 잊혀져 있었지만, 정의심에 불타는 보도기자들이나 용기있는 내부고발자들을 통해 점차 초콜릿 산업의 그림자를 대중들이 알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노예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카카오 원두를 보이콧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은 초콜릿 회사들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노예들이 생산한 카카오로 만들었는지 여부를 표기하라는 제도를 도입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식품업계의 개척자인 크레이그 샘스는「그린&블랙스」를 만들어 현대의 공정무역과 같은 제도를 초콜릿 시장에 도입했습니다. 유기농 초콜릿의 등장에 대해 UN 같은 국제기구들은 처음에는 사업의 미래가 어둡다며 농민들에게「그린&블랙스」와 거래하지 말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였고 UN은 기존의 권고를 철회했습니다.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으로 농민들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재래종을 되살려냈고, 전보다 나은 수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기존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합니다. 세관 장벽은 농민들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수 있는 직접 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복잡함과 관료주의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쓰지 않고 어린이노동이나 노예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카카오로 만들어지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은 소비자들의 정치적 소비가 산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변화는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초콜릿은 정확한 출처를 알수 없는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길고 긴 초콜릿의 역사속에서 과연 이런 어두운 측면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초콜릿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소비자들에게 달려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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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강의 신비
손현철 글.사진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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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어떻게 흘러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해 4대강 사업추진본부 환경부본부장 차윤정씨의 인터뷰 내용중 일부를 거론해봅니다. '지금의 강 생태계는 한계적 상황에 처해 있다. 연중 절반 이상은 강물이 말라 어떤 수(水) 생태계도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강에 물이 풍부해야 물고기를 비롯한 생태계가 풍성해진다. 사람들이 잊어버린 풍요로운 하천 생태계와 강변 풍경을 만들고 싶다. 강 고유의 생태성은 흐르는 물이다. 물고기는 모래를 원할까 물을 원할까. 강은 물이 주어져야 유지되는 생태계다. 지금 4대강을 가보면 우선 물이 많아졌다. 생태계의 기반이 훨씬 풍성해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강에서 물을 회복시키는 사업이라 생각한다. 강을 메워 도로를 만들거나 인공적으로 수로를 파는 게 아니다. 너무 오래 방치된 퇴적토를 긁어내 강의 본래 생태계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이 말은 강을 살리는 길은 모래를 긁어내는 방법임을 의미하며, 모래가 강을 죽이고 있다는 생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저자는 모래는 결코 천덕꾸러기가 아니라는 반대주장을 펼칩니다. 자연이 수백만, 혹은 수천만년 동안 깎고 쓸고 싣고 내려놓은 퇴적물이 이룬 환경에는 그 나름의 지형학적 정당성과 항상성, 그것을 기반으로 형성된 유기체 생태계와의 상호 적응력과 균형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이 꾸불꾸불 감돌아 흐르는데, 바위가 있고 얕은 곳에서는 여울이 되고 제자리에 고여있고 깊은 곳에서는 못이 된다. 파란 물이 끝없이 맑고 바위 사이사이에 돌다리와 모래사장이 있는데 모두 곱고 깨끗하여 볼 만하다. - 허목, 단양산수기 

흔히 모래의 기능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불순물 여과 기능입니다. 일반적으로 마시는 물이 정수장에서 혼화, 응집, 침전의 과정을 거칠때 모래도 사용되듯이, 강속에 쌓인 모래 또한 같은 기능을 합니다. 또한 모래는 입자 크기에 따라 자기 부피의 30~50%의 물을 저장해 강의 수위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을 방지하며, 유속에 따라 모래양이 조절됨으로서 유량 조절자 역할을 합니다. 또한 모래톱은 유기물이 이동해와 쌓이기 때문에 농사가 잘 되는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옛날엔 한강에도 모래가 있었습니다. 전두환시절 1982년부터 1986년동안 한강종합개발 사업을 벌이며 강변의 모래톱과 바닥의 모래와 자갈을 퍼냈습니다.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상류와 하류에 수중보를 설치했고 이런 인공수로 덕분에 유람선이 다니고 늘 물이 차있는 한강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유의 생태와 풍광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대도시인 서울을 끼고 있는 한강은 그런 환경이 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국에 주요 강들이 그렇게 될 필요성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강바닥을 채굴했을때 생기는 위험성은 단순히 생태학적인 부분만은 아닙니다. 모래나 자갈을 파낸 만큼 실어 나를것이 없어진 강물은 남은 에너지로 강바닥을 스스로 파기 시작하는데, 이런 세굴 현상은 단순히 채굴한 지역만이 아닌 몇킬로미터 이상 지속됩니다. 그럼으로 인해 물살이 더욱 빨라집니다. 강물의 속도가 2배 빨라지면 물이 운반할 수 있는 물체의 질량은 64배 늘어납니다. 이런 세굴에 의한 침식현상으로 일어난 사고중 2001년 포르투갈의 교각이 무너진 사고가 있었는데, 이 사고로 인해 70명이 사망했습니다. 사고원인은 다리 아래쪽으로 5km 떨어진 지점에서 벌어졌던 바닥 자갈 채굴 공사가 지목됬습니다.

모래와의 싸움은 부질없는 싸움이며 너무나 무모한 도전임을 지적합니다. 모래는 물과 함께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 스스로 강이 되기도 하는 우리에게 모래의 강은 자연의 축복이며 선물임을 말합니다. 과거 우리의 삶과 문화가 그곳에서 시작되었듯이, 미래 또한 그곳에 해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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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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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자신을 프랑스어로 저항이라는 뜻을 가진 레지스탕스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17년에 출생한 저자 스테판 에셀도 이러한 저항가 중 한명이였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불의에 저항해 왔습니다. 나치즘에 저항했고, 심지어는 레지스탕스들의 모국인 프랑스의 큰 잘못이였던 알제리 지배에 대해서도 저항했습니다. 이러한 저항의 동기는 분노였습니다. 이들의 분노는 프랑스의 토대가 되었고, 많은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들은 모든 시민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원했고, 공동체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을 국영화하는것을 원했습니다. 경제계나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는 경제적 민주주의 정립을 원했고, 국가나 금권, 외세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원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레지스탕스들은 이런 원칙과 가치를 위해 저항했고, 현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산들은 계속적인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사회보장제도는 계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며, 소수의 경제계 인사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해 나가고 있고, 기업의 지배를 받는 언론이 늘어나고 있으며, 교육의 장에서까지 차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가치를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에셀은 권고하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분노하라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에셀의 시대보다 분노해야 할 것들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분노해야 할것은 점점 늘어나지만 뚜렷한 성과를 느끼기는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분노하지 않습니다. 에셀은 분노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인간을 이루는 기본 요소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분노만 하는데서 그친다면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에셀은 분노한 뒤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라고 말합니다. 나치의 침공에 맞서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총을 집었듯이, 현대사회의 불의에 맞서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해 세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선 과거 2차 세계대전과 같은 명확한 형태의 불의는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관심을 가진다면 과거처럼 충분히 분노할 만한 불의들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제 제재로 인한 이라크인 사망자 수는 역사를 통틀어 소위 대량 살상 무기들이 초래한 사망자 수를 능가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p.299 

그러나 에셀은 이런 불의에 대해 과거처럼 총을 들며 분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미래는 비폭력의 시대이며, 비폭력이라는 길을 통해 인류는 다음 단계로 건너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때론 극심한 절망과 분노가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폭력은 희망에 등을 돌리는 일이며, 폭력보다는 희망을, 비폭력의 희망을 택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 다음에 타인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인 것입니다.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이 불의에 저항할 때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불의에 저항할 때, 비폭력의 수단을 사용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의미 있고 중요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의 기본적인 경험에 반하는 어떤 것도 수용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전통이나 관습 또는 권위자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충분히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수용을 요구하는 확실성이 우리가 경험한 확신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기표현은 그 뿌리에서부터 방해받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가에서 자유의 조건은 늘 권력이 강요하는 규범을 광범위하고 일관되게 회의하는 것이다. - 《권위에 대한 복종》p.268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심리학 실험을 통해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맹목적이거나, 관습에 순응하는 뿌리 깊은 습관에 따르며, 어떤 사회, 어느 곳에서나 권위에 대한 복종이 너무도 쉽게 발생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권위자의 명령이 옳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다 하더라도 그에 저항하기는 매우 힘이 듭니다.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한다면 심리적으로 금방 편안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복종의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그런 편한 길을 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손을 잡는것과 같이 사람간의 접촉성이 높아지면 권위에 저항할 확률이 늘어난다는 것 또한 인상적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의에 저항하는 고된 길을 걷고자 한다면 해야 할 일은 명료합니다. 다함께 손을 잡고, 고된 길을 걷게 해주는 에너지를 얻는 것입니다. 그 에너지는 바로 분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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