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프랭클린 포어 지음, 안명희 옮김 / 말글빛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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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계화가 변화시킨 현재의 모습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는 독특하게도 축구라는 매력적인 문화를 이용합니다. 축구 팀, 축구 선수, 축구 관중 등과 같은 요소들이 나타내는 모습들은, 세계화에 대한 신화들을 산산이 부숴 버리고 있습니다. 축구를 통해 본 세계화는 그 기대와 달리 종족주의를 부활시켰고, 부패를 뿌리내리게 했고, 빈곤이나 반유대주의, 급진적 이슬람주의 등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줍니다. 스포츠인 축구가 이러한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축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단순한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때론 사회 계층과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대신하며, 종교보다 더 독실한 믿음을 강요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세르비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축구 구단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서포터 '울트라 배드 보이스'들은 엄청난 난동을 피우는 말썽꾸러기 팬들입니다. 이들은 폭력단원들의 조직적인 행동을 능률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구단의 임원들과도 접촉하며, 리더들은 월급도 받습니다.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의 홀리건들은 단순히 팀의 승리에 열광하며, 질 경우에 흥분하는 평범한 홀리건들과 다릅니다. 이들은 1990년대 당시 세르비아의 민족주의가 부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울트라 배드 보이스들은 특히 크로아티아 인이나 미국인 등을 증오하는데, 세르비아의 정치적 배경과 경제적 원인으로 인해 인종주의와 급진적 민족주의에 물들게 됩니다. 35년간 유고슬라비아를 통치한 티토가 죽고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세르비아인들과 크로아티아인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춰냈고, 정치인들은 국가적 의제를 민족주의로 끌고 갔으며, 이런 적의는 축구장에서 분출됩니다. 레드 스타와 디나모의 경기에서 유고슬라비아 인종 집단 간 공개 싸움이 일어났는데, 옥외 게시판을 뜯어내고, 돌을 던지는 등의 격렬한 싸움은 세르비아 선수들을 구출하기 위해 헬리콥터까지 출동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홀리건 이야기에 영국이 빠질 수 없습니다. 1999년에 셀틱과 레인저스의 더비 경기 후에 발생한 사건기록은 역시 영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칼 맥그래오티라는 사람은 석궁에 가슴을 찔렸고, 토마스 맥파든이란 사람은 가슴, 배, 사타구니를 칼로 찔렸고 살해됬습니다. 이렇게 과격한 공격이 오가는 이유는 종교에 있습니다. 레인저스의 응원단은 대부분 개신교 신도들이며, 셀틱은 가톨릭입니다. 페니안의 피가 우리의 무릎을 적시네 라는 노래를 부르며 응원하는 레인저스의 응원단은 1920년대에 KKK단의 지부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도시에 적을 둔 라이벌간의 경기는 영국 축구 리그의 또다른 볼거리지만, 셀틱과 레인저스는 종교라는 원인 때문에 단순한 적의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개신교와 가톨릭, 경제적 차이 등의 환경은 셀틱과 레인저스의 경기가 스포츠로 끝나지 않게 합니다. 팀의 승리는 곧 종교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나라 하면 십중 팔구는 브라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브라질 축구는 세계화의 부정적인 측면이 긍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훼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이며, 부패가 어떻게 자유화를 몰아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브라질 선수들이 유럽으로 가는 이유는 많은 연봉도 있지만, 부패한 고위관계자들인 카르톨라스의 통치 때문이기도 합니다. 카르톨라스들은 정치적으로 힘이 센 축구클럽에게 유리하도록 해마다 브라질 챔피언십의 규정을 바꾸며 공정한 경기를 방해합니다. 2000년 마지막 경기에서 돈이 절실한 바스코 구단은 최대 수용 인원보다 12,000명이나 많은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들여보냈다가 담장이 붕괴되면서 168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부상자들이 경기장 바닥에 쌓이고 헬리콥터가 그들을 운반할 때 경기를 취소시켰겠지만, 카르톨라스들은 경기를 계속 진행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펠레를 비롯해 많은 개혁가들이 카르톨라스들을 축구계에서 몰아내려 했지만 카르톨라스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들은 세계화의 긍정적인 부분을 모두 무시했고, 결과적으로 브라질 축구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이탈리아 축구는 빗장수비라 불리는 방어 전략으로 유명한데, 득점의 기회가 적고 실책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탈리아 축구에서 승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항의와 책략입니다. 심판의 판정이 경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심판의 관대한 판정으로 이득을 보는 구단은 다름아닌 유벤투스와 밀란입니다. 이 두 구단엔 공통점이 있는데, 구단주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자들인 부패한 과두재벌이기 때문입니다. 유벤투스는 아넬리 집안의 장난감이며, AC밀란은 이탈리아의 총리이기도 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장난감입니다. 이 재벌들의 영향력은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파울을 범한 유벤투스가 가장 적은 레드카드를 받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판정들을 준 덕분에 유벤투스와 AC밀란은 높은 승률을 자랑합니다. 이 과두재벌들은 축구 밖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이탈리아의 총리기도 한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의 회사가 회계 조작 혐의로 고발되자, 회계 조작이란 범죄를 아예 위법행위 목록에서 빼 버리기도 합니다.

피파 회장 아벨란제는 웃으며 말했다. "전 세계가 아르헨티나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아르헨티나의 야만적인 정부가 전 세계에 보여 주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월드컵은 1936년 아돌프 히틀러가 올림픽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또 다른 살인 통치가 스포츠와 스포츠맨을 이용해 선전되었고, 스포츠와 스포츠맨의 영광에 빌붙었다. 아르헨티나의 진짜 얼굴은 아마도 실종자 어머니들의 용감하고 겁에 질린 얼굴일 것이며, 동족을 대상으로 한 군사정권의 더러운 전쟁의 희생자들과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들고, 월드컵 기간 동안 매일 수도의 마요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이거나 투옥된 사람들의 얼굴일 것이다. - 《피파의 은밀한 거래》, p.53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세계화가 자본주의를 승리자로 만들 것이라던지, 탈민족주의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등의 낙관적인 변화를 예상하는 학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축구의 세계화를 통해 본 세계화는 오히려 독재를 굳건히 했고, 지역주의에 근거한 응원문화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세계화는 축구에 내재된 오래된 증오를 침식시키지 못했고, 끊임없는 부패, 빈곤, 인종문제에 대해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강력한 장점인 전세계 어디에서나 원하는 축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축구팬들에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어떤 현상이나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축구를 통해 바라본 세계화의 의미 또한 기쁨과 두려움이라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저자는 세계화의 어두운 측면을 조명하고 있지만, 축구라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시점으로 인해서 어두운 측면을 더 쉽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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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권력의 얼굴
제러미 블랙 지음, 박광식 옮김 / 심산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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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인류는 지구의 모양에 대한 지식적 욕망을 가져 왔습니다. 그 결과 지구의 모양을 계산하는 것부터, 지역적인 부분을 지도로 그리는 일까지 인류의 역사는 꾸준히 측정을 거듭해 왔습니다. BC 275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책임자였던 에라토스테네스가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그림자 길이의 차이를 통해 지구 둘레는 42,000km일 것이라고 계산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하지만 북극을 포함한 모든 지역을 완벽하게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구형일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극지방과 일부 대륙의 중심부는 19세기까지 지도로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지역이 밝혀지지 않는 한, 지구는 구형일 수도 있지만, 도넛 모양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류는 기술의 발달로 우주에 나가면서 지구는 둥글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3차원인 우주공간에서 2차원인 지구 표면을 보았기 때문에, 지구 표면의 지도를 쉽게 시각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 덕에 대부분의 지도 사용자들은 지도의 표면적인 정확성과 객관성을 신뢰합니다. 이러한 정확성은 근대 지도에 깔려있는 이데올로기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즉 지도는 객관적이기 때문에 정확하고, 실제를 공정하게 과학적으로 재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은 2차원 다양체 혹은 곡면이다. 우리는 세계의 가능한 모양들을 생각함으로써 이 개념에 도달할 수 있으며, 2차원 다양체를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형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2차원 다양체 혹은 곡면이란 그 위의 모든 구역들을 종이에 지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학적 대상이다. 2차원이라는 말은 그 대상에 속한 임의의 점 근처의 점들을 두 개의 상호 독립적인 방향을 통해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앵카레의 추측》p.37 

하지만 지도는 현실의 선택적 재현입니다. 지구 같은 3차원의 구형을 2차원으로 표시하려면 본질을 거세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지도는 그것들이 표현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대단히 작기 때문에, 지도 제작자들은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은 지도 제작자가 재현자라기보다는 창작자라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 과정에 정치가 있으며, 권력이 있습니다. 지도의 역사는 정치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정치 권력에 대한 강조는 상당수 현대 지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지도를 이용한 국가의 자기주장은 국민과 국가의 영역을 분명하게 표시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지도를 통한 공간 정리는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교육 과정이기도 합니다. 데니스 우드가 쓴《지도의 힘》에서는 그러한 관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드는 지도는 이해관계에 복무함으로써 기능하며, 이해관계는 감춰져 있고, 역사의 핵심적 일부분이라고 말합니다.

3차원인 구체를 2차원인 지도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지도는 필연적으로 왜곡이 따르며, 지도의 투영법을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를 통해 그 지도가 어떤 권력을 반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화된 사회에서 쓰이는 지도들은 모두 유럽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항해자들의 필요에 맞춘 지도인 메르카토르의 적도 투영법은 중세 기독교권의 지도와 달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삼지 않고 유럽을 중앙에 배치합니다. 또한 북반구는 위쪽에, 남반구는 지도의 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표시함으로써 북반구의 우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898년의 반데르 그린텐 투영법은 1988년까지 미국 지리학협회에서 사용했는데, 그린란드, 알래스카, 캐나다, 소련이 실제보다 크게 표시됬습니다. 반데르 그린텐 투영법에서는 소련이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그려졌는데, 유라시아 전체를 위협하는 압도적인 존재로, 봉쇄해야 하는 대상으로 묘사됩니다. 즉 이 투영법은 냉전시대에 맞는 지도의 이미지인 것입니다. 1988년이 지나자 미국 지리학협회는 로빈슨 투영법으로 바꿨는데, 이 투영법에서는 소련의 크기가 갑자기 축소됐습니다.

유럽 식민주의의 종식과 근대 과학의 발전이라는 흐름에 따라 독일의 아르노 페터스는 새로운 지도를 제안합니다. 페터스의 투영법은 열대 지방을 엄청나게 키워놓았고, 그 결과 아프리카의 길이가 극단적으로 과장됐습니다. 기존 질서의 재정립을 겨냥한 시도의 하나로, 제3세계의 관심이 커져나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페터스의 지도는 열띤 환영을 받게 됩니다. 또한 유럽이 세계지도의 한 가운데에, 그리고 북반구가 위쪽에 있어야 한다는 관념에 도전하는 지도도 등장했습니다. 《맥아서 수정 세계지도》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지도의 한 가운데에, 남반구를 위쪽에 배치함으로써 기존의 관념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도전은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는데, 여전히 세계지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우위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유럽중에서도 동유럽에 비해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지도화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세계 대아틀라스》를 보면 그러한 서구중심주의적인 경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1인치에 94마일의 축척이 적용된 반면, 남미는 197마일의 축척이 사용됬고, 아프리카 남부의 카탕가 지역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의 극동 지방, 그 중에서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한국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데, 이 세 나라는 극동 지역을 다룬 페이지에서 한꺼번에 다루는가 하면 축척도 237마일로, 세밀도도 떨어집니다. 그 결과 이 극동 지역의 지도를 다른 지역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인구가 희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서구중심주의는 아동용 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어스본 아동백과사전》에 나오는 지도들을 보면 아시아의 경우 농업 위주의 목가적인 이미지를 채택했고, 아프리카의 경우 동물만을 사용해 표현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서구를 제외한 지역은 산업화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햄린 아동백과사전》의 지도는 남한과 북한에 같은 색을 사용했고, 심지어 경계선은 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중국의 인접 국가들에는 모두 같은 계열의 색을 사용함으로써 오해를 불러올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서구중심주의는 장소의 명명법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데, 많은 경우 과거의 식민지들이 유럽 제국주의의 잔재를 씻어내기 위해 발생합니다. 인도의 경우 뭄바이, 딜리, 첸나이를 사용하지만 지도는 봄베이, 델리, 마드라스로 되어 있습니다.

유럽과 유럽인이 가장 중요한 세계로 표현되는 지도학적 강조의 원인은 바로 경제력에 있습니다. 지도나 지도책은 서구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고, 지도 판매에 따른 이윤도 서구에서 훨씬 큽니다. 유럽과 북미를 제외한 지역을 자세히 다룬 지도책들은 자금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이런 지원들 또한 대부분 서구에서 지원해줍니다. 또한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해외 판매를 해야 하는데, 이는 주요 국제어로만 지도를 출판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도책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지명이나 범례, 설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서구의 우위성은 제작 뿐만 아니라 배포에서도 우위를 누리고 있는데, GPS의 보급으로 그러한 관념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사례는 인식적인 측면에서 서구화가 반드시 식민 통치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20세기 에티오피아에서 서구에 대한 정치적 반발이 가장 거셌을 때 발간된 《에티오피아 아틀라스》는 이데올로기적으론 대단히 선명했지만, 지도 제작법에서는 서구의 것이였습니다.

이렇듯 지도는 지도 이상의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분야를 지도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지도는 세계관 뿐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 문제를 표현할 수 있고, 선거와 같은 정치 뿐 아니라 국경, 전쟁 등 수없이 다양하고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서 사용중인 프로필의 그림만 봐도 지도를 통해 다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지도가 도면인 한, 지도는 인간 활동의 산물이자 기록물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인간 활동의 논쟁적 성격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공간과 공간성에 대한 특정한 관점을 제시, 기록하고 또 다른 관점들과 다툼을 벌이는 과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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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 - 애니메이션과 인문학, 삶을 상상하는 방법을 제안하다
정지우 지음 / 이경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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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라이트 노벨에 대해 평하면서 순수문학과는 다른 논리가 있음을 말한 바 있습니다. 그는 라이트 노벨과 순수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에 대해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광주대단지사건과 같은 도시 재개발이라는 현실을 논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순수문학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문학작품을 놓고 라이트노벨적인 작품과 순수문학적인 작품이라는 구별을 한다면, 현대의 많은 이야기 장르는 대체로 라이트노벨적입니다. 곧 개봉할 영화『변호인』이 실제 있었던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것처럼 여전히 순수문학적인 이야기 장르는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현대의 많은 영화, 드라마, 소설들은 메타 이야기적인 구조 하에 단순한 이야기의 소비에 그치고 맙니다.

최근에 시청률 1위를 달성했던 SBS의 드라마『상속자들』을 보면 재벌가의 남자 주인공과 가정부의 딸인 여자 주인공이 사랑으로 맺어진다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는 현대인들의 라이트노벨적인 소비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주류 문화 작품들에서 라이트노벨적 구성을 찾아볼 수 있다면, 서브 문화 작품들에서 순수문학적 구성을 찾아볼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저자 정지우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런 관점을 모색해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유행하는 드라마, 소설, 영화, 연극보다 만화, 애니메이션이 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은 장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18세기부터 시작된 근대사회에서는 국가를 중심으로 규범의식이나 전통의 공유와 같은 '큰 이야기'가 존재했습니다. 근대사회에선 국가가 중요했고, 민족이 중요했고, 전체를 중요시했습니다. 근대사회는 국가와 민족, 사회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것을 이상향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근대적 인간상을 가장 잘 묘사한 작품으로 저자는『그렌라간』을 주목합니다.『그렌라간』에서는 나선력이라는 에너지로 대표되는 인간의 가능성, 진보, 해방이 긍정되며 인류는 끝없이 전진하고, 진화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동시에 이 근대적 인간상은 중세적 인간상과의 결별을 의미하는데, 주인공 시몬이 "나는 나다"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렌라간에서 그렌단이 하는 것, 그들이 긍정하는 것, 그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의 핵심에는 결국 무엇이 있는가? 그건 인류를 위한 '역사적 행위'이다. - p.47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적, 다문화주의적, 다원화라는 특징에 따라 거의 대중 모두가 공유하던, 설령 공유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공유해야 했던 큰 이야기라는 개념이 쇠퇴하고 근대부터 시작된 '개인'이라는 관점이 더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근대의 개인은 국가에 귀속된 개인이었지만, 현대의 개인은 국가라는 틀에서 해방됩니다. 이러한 현대적 개인상을 묘사한 작품으로 저자는『원피스』를 주목합니다.『원피스』의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은 근대의 인간상과는 전혀 다릅니다. 국가의 발전, 인류의 진보라는 대의명분보다 개인의 욕망, 개인의 꿈을 긍정합니다. 루피의 해적단은 각자가 다른 꿈을 추구하며, 같이 나아가는것도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 공통점이 있어서 동료로 존재합니다. 그러나『원피스』가 보여주는 현대성은 순수한 물과 같은 정제된 현대성입니다.

국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개인은 드디어 홀로 대지에 섰지만, 동시에 그것은 불확정성과 불안감을 가져다줍니다. 개인과 개인간이 가져다주는 친밀성의 부재, 생존의 추구는 현대인들에게 집단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렇듯 불안과 자존감의 상실이라는 실제 현대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주는 작품으로 저자는『강철의 연금술사』와『충사』그리고『진격의 거인』을 지목합니다.『강철의 연금술사』가 보여주는 인간상은 근대적 인간상을 탈피한 현대인의 관점에서 사람과 사람간의 우정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충사』는 현실에서 한발짝 물러서 삶을 상상할 것을 사람들에게 권유합니다.『진격의 거인』은 현대인적인 개인의 욕망을 바탕으로 근대인적인 사회적으로 책임감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다원주의적 세계는 재미있게도 '과거의 사람들' 역시 수용한다. 즉, 중세인이나 근대인으로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 역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 p.62 

저자는 이 외에도『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으로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나『초속 5cm』로 유명한 신카이 마코토,『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통해 삶을 상상할것을, 세상을 응시해볼것을, 시간의 단절을 상상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이 외에도 최근『은수저』,『논논비요리』등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서브컬처물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도 삶을 상상해보고자 하는 트렌드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현실과 상상이라는 세계를 살아갑니다. 어렸을 때는 상상의 세계를 더 살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현실의 세계로 넘어갑니다. 현대인들은 어른이 되면서 모두 리얼리스트가 됩니다. 문제는 우리들 모두가 너무나 순수한 리얼리스트가 되어서 현실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체 게바라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고 말한 바 있습니다. 저자가 이렇듯 애니메이션을 통해 삶을 바라볼 것을 종용하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삶을 상상해볼수 있는 가장 좋은 표현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저자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꿈을 가지고 삶을 상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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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살인 - 1975년 4월의 학살
천주교인권위원회 엮음 / 학민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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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법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재판, 이 책은 그 재판인 인혁당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이 낳은 비극입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있자마자 바로 다음날 처형이 일어난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행태로, 이 사건이 비정상적이며, 지극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군사 쿠데타를 통한 권력 장악 이후 박정희 정권이 보인 정치적 행보는 경찰과 군대를 통한 폭력과 억압이라는 일관성을 가집니다. 정권이 표방하는 정치적 목표에 반대하는 의견이 일정 선을 넘는다고 판단될 때, 예외없이 국가 전체에 비상 알람을 울려 댔고, 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이 사법살인 입니다.

박정희는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부터 때때로 영구집권에 대한 흑심을 드러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옮긴 것은 1968년 삼선개헌의 정지작업으로 김종필 직계를 제거하면서부터입니다. 1인 파쇼권력을 획책한 것은 71년 대선 전후로 알려져 있는데, 72년에 유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박정희는 유신 반대운동이 치열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박정희는 유신권력에 반대할 소지를 깨끗이 청소해 놓았다고 믿을만한 근거가 있었는데, 여당의 경우 김종필계를 숙청해놨고, 언론 또한 장악한 지 오래였습니다.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 중 하나는 학생운동인데, 71년에 학원병영화를 반대하는 학생들에 대해 위수령을 발동해 1,889명의 학생을 연행했고 학생운동세력에 심각한 타격을 줍니다. 유신 이후에도 민우지 사건, 검은 10월단 사건, 함성지 사건 등을 통해 학생들을 또 다시 위축시킵니다.

하지만 73년의 김대중 납치사건, 서울대 문리대에서 벌어진 반유신 투쟁 등은 박정희 정권에 큰 타격을 줍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박정희 유신체제의 악랄함을 국제사회에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고, 서울대의 투쟁은 전 대학으로 퍼져나가 동맹휴학, 시험 거부 등의 투쟁을 일으킵니다. 박정희정권은 학생투쟁에 대해 문리대에서만 180명을 연행하고 20명을 구속하는 등 초강경 처벌로 나섰지만, 12월에 구속학생 전원을 석방하고 모든 처벌을 백지화하는 항복선언을 합니다. 이 조치로 인해 반유신투쟁은 학원가를 넘어서게 되었고, 장준하 등 각계인사 30명이 헌법개정청원운동을 시작합니다.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전복하려는 불순분자의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담화를 발표하지만 반유신투쟁이 멈추지 않자 결국 74년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합니다. 유신헌법을 반대하면 15년 징역형을 내리겠다는 협박이였습니다. 긴급조치 1호 위반을 통해 첫번째로 구속된 장준하씨를 시작으로 23명이 1호를 통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긴급조치1호 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박정희 정권은 같은 해 4월 3일에 긴급조치 4호를 선포했는데, 이는 박정희 독재정권에 반대하면 죽일 수 있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였습니다.

민청학련과 이것에 관련한 제 단체의 조직에 가입하거나, 그 활동을 찬동, 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그 구성원에게 장소, 물건, 금품 그 외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그 활동에 관한 문서, 도서, 음반, 그 외의 표현물을 출판, 제작, 소지, 배포, 전시, 판매하는 것을 일제히 금지한다. 이 조치를 위반한 자,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 긴급조치 4호 中 

71년 대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독재 정권으로서는 유신 체제에 대한 반대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대선의 승리 또한 장담할 수 없었으며, 자칫하다간 독재정권이 붕괴될 위험에 처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나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사건이 세계적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대통령도 법과 여론 앞에서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는 교훈을 주게 됩니다. 결국 박정희는 민청학련과 관련된 주동자들을 엄벌에 처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민청학련 관계로 1,024명을 조사했고, 그중 253명을 비상군법회의에 송치하겠다고 했으며, 최종적으로 지도자급 32명을 법적으로 심판합니다. 32명이 받은 형량은 사형 7명, 무기징역 7명, 징역 20년 12명, 징역 15년 6명이라는 천문학적인 형량이였습니다. 심지어 민청학련 사건의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에게 변론 내용을 이유로 징역 10년을 선고합니다. 변론 내용을 문제삼아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변호권의 침해였으며, 변호인은 재판에 관한 직무상의 행위로 인해 어떤 처분도 받지 않는다는 군법회의법 28조의 명문에도 위배되는 처사였습니다. 변호사마저 징역형을 받는 모습은 이 재판의 본질적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청학련사건 관계자들은 국내외로부터 많은 연대적인 동정을 받았는데, 대부분 젊은 학생이었고, 종교의 배경이 있었으며, 배후 조종자가 전직 대통령이거나 대학교수, 교직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문에 박정희정권은 이러한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고, 대부분의 민청학련사건 관계자는 사형을 피해 갔습니다. 하지만 인혁당이라고 분류된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학생이나 대학교수, 성직자 등의 다른 관련자들과 달리 낯선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동정적인 여론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반공을 내세워 인혁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정부 발표에 사람들은 별 의심을 품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천명이 넘는 민청학련 관련 혐의자 가운데서 유일하게 처형당한 그룹이 되고 맙니다. 이들은 가족들 외엔 몇몇 외국인 성직자, 그리고 가톨릭계로부터 약간의 동정을 받았을 뿐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직접 박정희와 만나서 인혁당이라는 누명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자비를 탄원하려 하였으나, 청와대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중개자를 통해 박정희는 인혁당 피고들뿐 아니라 자기에게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러 "그들을 바짝 움츠리게 해야 한다"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답하였고, 그 다음날에 사형판결을 받은 전원이 교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인혁당 사건은 그 가족들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줍니다. 인혁당의 가족들은 빨갱이라는 누명속에 언제나 감시당해야 했고, 직장을 구할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인혁당의 아들을 동네 꼬마들이 끌어내어, 목에 새끼줄을 매어 나무에 묶어 놓고 폭행하는 놀이는 했는가 하면, 돌팔매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인혁당 관계자 뿐만 아니라 그 가족, 친지들,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역사에 난도질을 한 이 사건은 그야말로 독재정권이 낳은 씻을 수 없는 수치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2007년에 나온 법원 판결에서 인혁당 사건은 강압과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음이 인정되어 무죄임을 공식적으로 밝혀졌지만, 박근혜 대선후보, 박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인혁당 관련 논쟁을 일으키는 등 무고한 희생자들이 짓밟힌 명예를 완전히 되찾을 날은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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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피시 - 네 종류 물고기를 통해 파헤친 인간의 이기적 욕망과 환경의 미래
폴 그린버그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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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표면의 약 71퍼센트를 차지하는 광활한 바다는, 그야말로 생명의 요람이자 자원의 보고입니다. 갈수록 증가하는 인구는 이런 바다의 필요성을 더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4가지 생선 종류를 통해 지금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해양산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다낚시꾼의 낚시, 어부들의 근해어업, 대규모 선단의 대양어업, 양식산업에 이르기까지 이 네가지 생선이 들려주는 다이나믹한 이야기는 현재 물고기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하고, 미래의 인류에게 영양을 어떻게 공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17세기 아이작 월튼이 물고기의 왕이라 불렀던 연어는, 각종 뷔페는 물론이고 저가형 초밥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요근래 가장 대중적으로 접하는 생선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강을 올라와서 알을 낳는 것으로 유명한 연어는, 적응력이 뛰어나고, 크고 영양분이 많은 알에서 태어나 물고기먹이를 구하기 쉽다는 양식에 매우 유리한 성장과정을 지니고 있어서 초기 양식산업을 이끌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연어 공급량의 절반을 양식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어양식의 문제로 물살이 세고 깨끗한, 양식장을 하기에 좋은 장소가 점점 귀해지다보니 질병과 오염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것은 양식장의 연어 뿐만 아니라 자연산 연어까지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0.5kg의 연어를 얻기 위해 1.5kg의 물고기를 먹여야 하는 사료방정식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고, 작은 물고기를 먹는 양식연어는 자연산 연어보다 PCB오염 누적이 2배 이상 높다는 것은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유럽에서 특별한 날에만 먹었던 농어는 현대 과학 양식시장의 불합리성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생선입니다. 19세기의 프랜시스 골턴은 사육조건으로 5가지를 제시했는데,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튼튼하고, 인간을 좋아하는 기질을 타고났고, 인위적인 환경을 좋아하고, 자유롭게 번식할 수 있고, 품이 많이 들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농어는 이런 조건에 전혀 부합하지 않았고, 양식하기에도 힘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농어양식이 시작된 이유는 높은 가격을 받을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생선을 양식하는데는 여러 과학자들이 해낸 과학적 성과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조하르는 농어의 산란시기를 컨트롤할수 있는 호르몬 구를 만들어냈고, 그리스의 타나시스는 갓 부화한 농어의 먹이로 유용한 담륜충이라는 생물을 찾아내었고, 국제 수산 양식 공동체는 아르테미아(시멍키라고도 불리는 아이들이 키우는 장난감 새우)라는 새우가 먹이로 적절하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그런 성과로 농어양식은 전세계에 1억마리가 넘는 보급량을 자랑하게 되었지만,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가격이 폭락하기도 했습니다.

연어와 농어가 평소 접하기 힘든 귀한 생선을 대중적으로 보급하기 위한 양식이였다면, 대구는 예전부터 서민들이 즐겨먹던 생선이 양식을 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서구 인구의 20배를 먹여살릴수 있을 만큼 풍성했던 대구는, 민영화와 독점화, 산업화된 어업으로 인해 대구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됩니다. 흔하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 물고기마저 양식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대구목이 인기를 끄는 것은 대구의 특징이 완벽한 산업용 생선이기 때문인데, 움직이는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비린맛이 별로 없고, 간에 기름을 축적하기 때문에 다른 생선보다 훨씬 더 오래 저장할 수 있습니다. 흔하고, 부드러우며, 다른 식품으로 쉽게 가공이 가능한 대구는 엄청나게 잡히는 바람에 유전적 다양성마저 훼손될 지경에 처했습니다. 허친스의 연구에 따르면 물고기 집단의 70~80퍼센트가 잡혀도 어느 정도는 변하기 전의 원래상태로 돌아가는데, 대구는 그 이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960년대 캐나다 그랜드뱅크의 대구는 평균 10kg가 넘었던 반면, 현재는 1.5kg에 불과합니다. 대구의 예는 생태계에서 한 집단의 90%이상 제거될 경우 게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자연에서 음식을 채집하는 이들은 정말 서서히 사라지는 것일까? 길들이지 않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마지막 물리적 끈인 대구는 이제 가끔 가다 볼 수 있는 꿩 요리처럼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진미가 될 것인가? - 《대구》 

어마어마하게 크고 빠른 생선으로 유명한 참치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먹기 시작한 생선인데, 냉장고가 발명되기 전엔 일본에서도 맛이 너무 강하고 비린내가 나는 이유로 참치를 먹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참다랑어는 스포츠 낚시용으로 쓰였을 뿐 대부분 먹지 않고 죽여서 쓰레기장에 버려지는 신세였습니다. 하지만 그후 30년간 생선회 붐이 일면서 참치 수요가 급증했고 0.5kg에 몇페니 하던 가격이 수백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더군다나 개체수가 적어 비영리단체에서 먹어선 안 될 물고기로 지정하자 전 세계 소비량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참치어업이 급증하게 되자 참치수는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결국 참치양식쪽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참치는 여러모로 양식에 적합하지 않은 생선인데, 참치 0.5kg를 얻기 위해 들어가는 사료는 무려 10kg에 달합니다. 참치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생선중에서 가장 댓가가 큰 생선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금과 같은 식성으로 자연산 물고기를 고집한다면, 네개에서 다섯개의 대양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양식은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저 4종의 생선 양식산업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그 변화는 두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양식방법을 개선하거나, 다른 종을 양식하는 것입니다. 연어의 경우 방법을 개선하는 것인데 연어와 함께 성게와 해삼, 홍합을 같이 양식하는 다중양식 방법은 연어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줄일수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전염성 연어 빈혈 바이러스를 흡수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런 다중양식 환경에선 해초를 합성한 사료를 먹기 때문에 PCB 함량도 두드러지게 줄어듭니다. 농어는 양식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종을 선택했습니다. 식민지 시대 영국이 아시아 바다농어라 불렀고 호주 원주민은 바라문디 라고 불르는 이 생선이 사는 환경은 양식장 환경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온순하고 순종적이며 번식력도 강하고 질병에도 내성이 높을뿐 아니라 식물성 사료를 먹기 때문에 PCB 오염확률도 낮습니다. 대구 역시 새로운 종을 양식하는것을 대안으로 내세우는데, 동남아시아 메콩강의 트라와 바사입니다. 참치 또한 대체생선을 찾는 방법밖에 없었는데, 하와이에서 카할라라고 알려진 이 물고기는 참치의 먼 친척뻘입니다

난 항상 미 건국 초기 헌법에 흑인남성은 백인남성의 60%의 가치를 지닌다는 내용이 있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를 보세요. 세상일이란 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 p.269 

저자는 우리가 바다에 대해 얼마나 모호하고 단순하게 생각해왔는지에 대해 지적합니다. 물고기잡이를 할때 흔히 사용하는 바다의 선물이라는 표현은 바다는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고, 공짜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인식은 바다를 소중히 다루지 않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채식주의자도 가축의 고통엔 분개하지만 자연산 물고기는 먹는 경우가 많이 있고, 포유동물과 조류를 자비롭게 대하라는 종교 율법도 물고기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젠 해저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은 필연적인 권리임을 주지시킵니다. 그렇기 위해선 인식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생선을 하나의 음식으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지능과 생명을 가진 동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물고기의 미래는 변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저자는 식품에서 존중받아야 할 생명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물고기들을 위한 길이며, 인류를 위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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