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2 - 이데아총서 14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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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칼 포퍼는 2차세계대전을 바라보며 전쟁이 발발한 사상적 토대로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의 세 철학자를 꼽습니다. 1권에서는 플라톤에 대해 기술했고 2권에서는 헤겔과 마르크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헤겔철학의 근간은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노예본성론을 강화하여 받아들였으며 그의 최상국가론 - 귀족정치, 봉건제도, 민주주의(통치자만의) - 과 플라톤이 생각했던 파멸의 이데아와는 반대인 진화의 이데아 사상을 헤겔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헤겔의 사상은 당시 독일을 통일한 프러시아와 프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어용철학으로 플라톤에서 시작된 전체주의 사상을 현대의 전체주의로 확립시키는데 교두보 역할을 합니다. 그의 사상은 그의 변증법과 동일철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단계의 변증법은 프랑스혁명으로 시작된 자유와 평등의 이념에 대항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동일철학은 프러시아의 기존 체제와 질서를 옹호하는 윤리적이고 법적인 실증주의입니다. 헤겔은 당시 독일을 지배했던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윌리엄 3세의 '모든 학문은 국가이익에 완전히 종속되어야 한다' 는 요구를 만족시킵니다. 그와 더불어 피히테로 시작된 독일 민족주의 이론을 받아들여 프러시아 제국의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프러시아와 더 나아가 나치독일에 이르기까지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헤겔의 3단계 변증법은 흔히 알려져 있는 정론-반박-종합 이라는 보편적인 과학적 사고진행방식입니다. 다만 독특한 점은 그가 반박 단계에서 제시되는 모순을 긍정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로 과학적 모순은 결국 과학적 발전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이므로 환영해야 한다. 모순을 환영해야 한다면, 모순을 제거할 필요는 없으므로 지적 진보를 이룰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헤겔의 동일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진화의 이데아 - 모든 사물은 갈수록 진보,진화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가서는 그 사물의 궁극의 형태에 도달하게 된다 - 와 유사합니다. 결국 남아있는것, 살아있는것, 현재 존재하는 가치관과 제도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까지의 형태보다 궁극의 형태에 가까운 발전의 정점이며 선[善]이다는 철학입니다. 쉽게 말해서 힘이 옳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곧 헤겔의 시절로 말하자면 프러시아 제국입니다.

헤겔의 영향은 마르크스의 극좌파, 보수주의 중도파, 파시스트의 극우파 모두에 끼치고 있으며 극좌파는 계급간의 투쟁, 극우파는 인종의 투쟁으로 받아들입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현대 전체주의와 동일하며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는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는 민족의 화신이며 그 선택된 민족들의 운명은 세계지배를 위해 결정되어져 있기 때문에 다른 국가와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여야 한다. 국가는 역사적 성공만이 심판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도덕적 의무로부터 면제되며 개인을 버리고 집단적 유용성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오래된 국가는 새로운 국가보다 역사적으로 발전의 형태에서 뒤떨어져 있으므로 오래된 국가에 대한 전쟁은 필연적이며 그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위대한 인간, 세계역사적 인물을 찬양하고 일반 시민들은 영웅적 삶을 이상으로 삼고 동경하며 따라가야 한다.' 이러한 헤겔의 철학은 독일 지식인층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결국 1,2차 세계대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칼 포퍼의 헤겔에 대한 평가는 쇼펜하우어의 묘사를 자주 인용하고 있는데, 칼 포퍼는 그 묘사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증명된 위대한 철학자로서 위로부터 권력에 의해 임명된 헤겔은 대머리에 무미건조한, 구역질나는, 무식한 허풍장이였다. 그는 지랄 같은 얼빼는 넌센스를 갈겨 놓고 그것을 이리저리 퍼뜨리는 데 용맹스럽기가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다. 이 넌센스는 금전적 이익을 탐하는 추종자들에 의해 불멸의 지혜로 떠들썩하게 처받을어졌으며 모든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얼른 받아들여졌다. 그 어리석은 자들은 이미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경탄의 합창을 불러댔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헤겔에 마련해주었던 폭넓은 정신적 영향력은 한 세대 전체를 지적 부패에 빠뜨리게 하였을 뿐이다. - 쇼펜하우어 

칼 포퍼는 전체적으로 이전의 플라톤과 헤겔에 비해서 마르크스의 업적중 일부분에 대해선 꽤나 후한 평가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순수한 역사이론으로 경제와 정치의 발전, 역사의 미래 진행을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그는 프랑스 유물론의 영향을 받아 사회공학을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역사발전의 법칙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간성과 마음의 법칙들에 의해 진보한다는 방법론적 심리주의를 주장하는데, 사회학은 심리학에 환원될수 있다는 심리주의 이론에 대해 마르크스는 반심리주의를 주장합니다.

심리주의는 사회의 모든 현상은 개별적 인간성의 법칙이라는 방법론적 개체주의를 주장한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사람의 보편적 행위가 본능이나 인간성에 뿌리를 두었다는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나 인간의 전통의 기원을 심리학적으로 추측해야 한다는 점에서 역사주의의 방향(사회과학은 사회현상에 관해 거시적인 역사법칙에 따라 역사적 예언을 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계성을 드러냅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사회의 경제조직인 물물교환이 모든 사회제도와 역사적 발전의 근본임을 주장합니다. 인간의 사상은 경제조건 위에 세워진 것이므로 사상과 관념은 그 사람의 삶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해야만 과학적으로 연구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흔히 마르크스이론을 계급투쟁이라 이해하는 통속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다르게 마르크스는 자본가조차도 역사에 무력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정신적 자유를 최종적인 삶의 기점이자 역사발전의 최종단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람은 육체에 얽매여 있으며 신진대사에 필요한 경제적 필수품으로부터 벗어날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살아가면서 할수 있는것은 인간의 품위에 걸맞는 노동조건으로의 개선, 즉 노동복지의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중심 사상입니다.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사회에서 계급투쟁의 역할에 대한 시각을 넓혀 줌으로서 가치있는 제안이였고 그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에 한해서의 분석으로는 탁월했지만 동일계급간의 투쟁 - 칼 포퍼는 중세 유럽왕과 교황의 다툼을 예로 듬 - 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였다고 평가합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에서 사상은 경제적 조건위에 드러난 하나의 현상이므로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는 정치무력설을 주장합니다. 이는 당시 영국의 가혹한 상황속에서 나온 것으로 초기 자본주의의 단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값어치가 있습니다.

메리 앤 위클리는 쉬지않고 26,5 시간을 일했다. 케이라는 남자 의사가 뒤늦게 배심원 앞에서 증언하기를 메리 앤 위클리는 장시간 노동하였기에 죽었다고 했다. 배심원은 이 의사를 훈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죽은 사람은 졸도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이 지나친 노동을 함으로서 가속화되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가질 수는 있다. -《자본론》p.257 

마르크스 자신도 자식들이 죽었을때 관도 사지 못했을 정도로 가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법률체계와 현실의 경제상황의 모순을 바라보며 정치무력설을 주장하였고, 형식적인 자유보단 실질적 자유가 중요하므로 노동일수의 단축이 근본적인 필수 사항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대해 칼 포퍼는 현대에 잘 알려진 수정자본주의, 국가의 계획경제 간섭을 주장합니다. 포퍼는 경제적 힘이 모든 악의 뿌리에 있다는 독단은 없애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모든 악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은 모든 형태의 통제되지 않은 힘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돈 자체가 특별히 위험한 것이라고는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위험스러운 것이 되는 것은 돈이 직접 권력을 살 수 있든가, 살기 위해 자신을 파는 경제적 약자를 노예화함으로써 권력을 간접으로 살 수 있을 때라는 포퍼의 조언은 현대의 우리 사회에도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문제의식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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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3 2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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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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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Fermat's Last Theorem)
xⁿ + yⁿ = zⁿ (n은 3이상의 정수)을 만족하는 정수해 x,y,z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x ,y, z 중 하나가 0이거나 모두 0인 경우는 제외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과거 수많은 수학자들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정리를 남긴 페르마도 주석으로 무한 반복성 귀류법을 통해 n=4일경우를 증명해 남겨놨음이 밝혀졌습니다. 수학자 오일러는 페르마와 마찬가지로 무한 반복성 귀류법을 사용해 n=3일 경우에 도전했지만 논리상의 허점이 발생했고 오랜 노력 끝에 허수를 이용, 논리의 허점을 보완하는데 성공해 n=3일 경우를 증명했습니다. n=3과 n=4가 이미 증명되었으므로, 3과 4의 배수들 역시 자동적으로 증명이 되었습니다. 그 후 소피 제르맹은 ‘만약 그 방정식에 해가 있다면 그 해는 어떠한 조건을 만족할 것이다’ 라는 방식을 제안했고, 제르맹의 제안을 바탕으로 페테르 구스타프 르죈느 디리클레와 아드리앵 마리 르장드르에 의해 n=5인 경우를 증명했고, 프랑스 수학자 가브리엘 라메는 제르맹의 방식에 새로운 논리를 첨가해 n=7인 경우를 증명합니다. 그후 '모든 타원방정식은 모듈 형태와 연관되어 있다'는 타니야마 - 시무라 추론이 나오게 되고, 독일의 수학자 프레이가 페르마정리는 타원방정식으로 치환될수 있음을 증명하게 됩니다.


프레이는 이런 변환을 통해

1) 만일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모든 타원 방정식은 모듈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
2) 만일 모든 타원 방정식이 모듈적 성질을 가져야 한다면 프레이의 타원 방정식은 존재할 수 없다.
3) 만일 프레이의 타원 방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페르마의 방정식에 정수해란 있을 수 없다.
4) 따라서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맞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게 됩니다. 하지만 프레이는 자신이 유도한 타원방정식이 정말 그 정도로 비정상적인지를 완전하게 증명해내진 못했는데, 그 후 수학자 켄 리벳이 (M)구조의 감마 제로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프레이의 오류를 해결합니다. 결국 타니야마-시무라 추론을 증명하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할수 있음이 알려지게 됩니다.

물론 타니야마-시무라의 추론은 여러 해 동안 아무도 증명하지 못한 난제임이 틀림없었죠. 그럴듯한 아이디어조차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의 현대 수학의 주류를 이루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증명을 완전하게 끝내지 못한다 해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습니다. 일부만 증명되어도 그만큼 수학은 발전하게 될 테니까 말이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생동안 저를 따라다니던 페르마의 환영이 이제 드디어 저의 전문적인 지식을 밑천 삼아 대적할 수 있는 대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던 겁니다. - p.262

20세기의 세계적인 논리학자인 힐베르트는 사람들이 “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실패할 것이 빤히 보이는 그런 무모한 일에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와일즈는 실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하기 위해 최신 계산법을 익혀나갔습니다. 그는 타원 방정식과 모듈 형태에 관련된 모든 수학을 익히는데 18개월을 사용했고, 10년 이상의 세월을 인내하려고 결심합니다. 그는 학술모임과 세미나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관련없는 모든 일에서 손을 뗍니다. 그는 1년간의 심사숙고 끝에 증명의 기본틀로 귀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합니다.

 귀납법의 원리는 도미노와 비슷한데, 도미노처럼 첫 번째 도미노와 두 번째 도미노가 쓰러지면서 결과적으로 무한개의 도미노를 쓰러뜨리는 방식입니다. 와일즈는 이런 귀납법을 위해 수학자 갈루아가 만든 갈루아의 군론을 도입합니다. 타원방정식의 E급수와 모듈 형태의 M급수에 대해 모든 원소의 값을 일일이 대조하여 일치함을 확인한 뒤 다음 급수로 넘어가는 기존의 방법 대신에 한 원소와 한 원소를 비교한뒤 다음 원소로 넘어간다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합니다. 그는 2년의 도전 끝에 갈루아 군을 이용,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합니다. 첫 번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와일즈였지만, 그 후 나머지 도미노를 쓰러뜨릴 수학적 테크닉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타원 방정식을 분류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인 이와자와 이론을 선택해봤지만, 이와자와 이론은 와일즈를 만족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칩거 5년만에 세상 밖으로 나가 콜리바긴과 플라흐가 고안한 수학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게 된 와일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도미노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합니다. 방정식을 주의 깊게 들여다본 와일즈는 이것이 몇 가지의 패턴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모든 패턴의 타원 방정식에 적용될 수 있도록 콜리바긴-플라흐의 방법을 강화하는 것이 해답임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6년째에 접어들며 매 주마다 새로운 패턴의 타원방정식과 모듈 형태가 일치함을 증명해나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모든 정리를 증명하게 됩니다. 그 후 와일즈는 1993년 케임브리지에서 6월 21일,22일,23일에 걸쳐 세 번의 강연을 하며 자신의 연구결과를 공개했고, 몇 년에 걸친 심사를 받게 됩니다.

저는 8년 동안 한 가지 문제만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단 한시도 그 문제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생각만으로 보낸 시간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지요. 저의 여행은 이제 끝났습니다. 마음이 아주 편안하군요. - p.375

 6명의 심사위원이 와일즈의 논문을 검토했고, 순조롭게 검토가 이뤄지던 중 닉 카츠는 하나의 오류를 발견합니다. 여섯 편의 논문 중 3편의 일부분에서 발견된 그 오류를 해결하는데 와일즈는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세간에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해결할 수 없을거라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와일즈는 심사숙고 끝에 리처드 테일러라는 수학자를 영입합니다. 테일러와 작업을 하던 도중 와일즈는 문득 2년전 단 한 개의 도미노도 쓰러뜨릴 수 없었던 이와자와 이론을 생각합니다. 이와자와 이론은 와일즈에게 부적절한 것이였고, 콜리바긴-플라흐의 방법 역시 부적절했지만,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합쳐놓는 순간 모든 문제점이 기적과도 같이 말끔하게 해결됩니다. 그는 결국 1994년 10월 25일에 두편의 논문을 공개하는데 성공합니다. 앤드루 와일즈의 『모듈적 타원 곡선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리처드 테일러, 앤드루 와일즈의 『헤케 대수학의 고리이론적 성질』이 그것입니다. 이 두편의 논문은 13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였고, 수학 역사상 가장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이였습니다. 그는 20세기 정수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현대의 수학과 미래의 비전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걸작이였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전혀 다르게 보였던 수학분야를 하나로 통합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63년, 당시 열 살 배기 소년이였던 앤드루 와일즈는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심코 밀턴가에 있는 도서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가 어느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그 책에는 문제가 단 한 개밖에 없었고 해답도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 책은 에릭 템플 벨(Eric Temple Bell)이 저술한 최후의 문제(The Last Problem)라는 제목의 수학책이였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수학 문제는 여러 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페르마의 문제가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문제 자체가 너무나도 단순하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와일즈는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열 살배기인 저도 문제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그 문제를 푼 수학자가 아무도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떤 운명 같은 걸 느꼈어요. 이 문제를 내가 풀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거였지요. 그날 이후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한시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p.25

300년만에 페르마의 족쇄를 걷어낸 앤드루 와일즈가 증명을 끝내고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라는 대사로 마무리하는 순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7년의 칩거생활과 30년 만에 이뤄낸 꿈이 이루어졌을때 와일즈가 어떤 심정이였을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그가 한번 이뤘던 꿈이 좌절될뻔했던 순간과 다시 그것을 해결해냈을때의 기쁨은 부러운 감정마저 느끼게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자가 수학에 대해서 애매한 감정을 지닌 독자거나, 만약 당신이 대학생이거나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글을 읽을 의욕을 심어주거나 수학 과목을 더 신청할 생각을 하게 만들기를 희망한다면, 그 희망은 이미 이뤄줬으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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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전2권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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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편익과 연관시킨다는 사회통념에 따르면 유권자란 경제적 이기심의 귀감입니다. 만일 고소득자의 과세율을 인상한다는 법안이 발의된다면, 우리는 고소득자들은 법안에 반대하는 반면, 저소득자들은 찬성표를 던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은 자주 어긋납니다. 저자는 가난한 소농들이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지고,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이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하며,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들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내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그곳은 미국의 캔자스 주 입니다.

미국의 중심에 있는 캔자스 주는, 대초원 지역의 상징적인 주이자 과거 극렬한 진보성향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 창설을 주도한 유진 뎁스가 활동했고, 미국자동차연맹의 산실이며, 그 외에도 수많은 노동단체가 활동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캔자스 주는 미국 어느 주보다 기독교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조지 W 부시가 캔자스 주에서 8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습니다. 캔자스의 이러한 정치 구도 변화는 미국 정치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업자라고 무조건 경제 침체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보다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낸 부모들이 특별히 정부의 교육지원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며, 일하는 여성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정책에 대해서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가정주부들과 별반 의견이 다르지 않다. -《스틱》p.278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카운티가 있는 곳은 다름아닌 캔자스 주입니다. 그러나 캔자스 사람들은 계급적 적개심은 불타오르지만 그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적 기반은 부인합니다. 계급이란 돈이나 타고난 출신성분, 심지어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문제는 진실성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캔자스 사람들은 국가의 순결성과 같은 더 웅대한 것에 주목하며, 가난한 원인이 경제체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영적 문제라고 말하는 공화당 상원의원 샘 브라운백 같은 사람들의 말에 동조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간에는 공화당의 정치전략이었던 '두 개의 미국'론이 있습니다.

공화당 지역인 빨간 주와 민주당 지역인 파란 주를 비교하는 '두 개의 미국'론에 따르면, 파란 주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멋지고 영리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조롱하고,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속물적인 상류층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빨간 주의 사람들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유쾌하다고 말합니다. 빨간 주의 사람들은 애국자이기 때문에 군대를 갔다오고, 언제나 정직하게 일하는 소박한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이러한 구분법에 따라 미국의 농민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월가에 보복하기 위해 공화당에 투표합니다.

정치적 진보주의자들과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둘 다 도덕성이 자신의 종교와 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종교와 정치의 전체 영역은 거의 배타적으로 보수주의자들에게 넘겨져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반대의 강력한 목소리가 없음을 최대한 이용해왔으며,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을 종교와 정치에 연결하는 일련의 상징적 쟁점들을 만들어왔다. -《자유 전쟁》p.230 

캔자스 주처럼 확고한 민주당 지역이 공화당 지역으로 변화한 계기 중 하나는 민주당의 중도층 전략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자, 농민과 서민층보다 중도층에 집중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 계층에게 공백이 생겼고, 이를 공화당이 캐치하는데 성공합니다. 민주당의 중도층 전략이 중도층을 포섭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민주당은 중도층도 잡지 못하고 전통적 지지 기반마저 잃게 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결국 미국 중부 지역은 공화당의 지지지역이 되었고, 민주당은 해안가 지역에 지지기반이 있는 구조가 됩니다.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우파는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중도에 있던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좌측으로 밀어내며 공화당의 주요 세력이 됩니다. 이들은 선거에서 낙태,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논쟁을 이끌어냈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선거의 핵심이 경제에서 가치로 전환된 것입니다. 선거가 도덕성, 가치를 다투는 투쟁의 장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치에 투표를 하게 되었고,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낙태, 동성애, 진화론 같은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필연적으로 네거티브 선거전이 이뤄졌고, 이는 전체적인 면에서 악영향을 미칩니다.

대통령이 좋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취임 이후 정책을 집행할 추진력이 생긴다. 하지만 오직 네거티브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이런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유권자들은 오직 누구누구가 싫어서 그 사람을 뽑았을 뿐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는 낙선자뿐 아니라 당선자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킹메이커》p.82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캔자스 주의 변화, 미국 내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경제에서 눈길을 돌려 낙태 찬반 문제, 동성애 허용 문제 등을 주요 쟁점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공화당은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프랭크는 왜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힘들어하면서도 경제적 요소와 상관없이 투표를 하는 착란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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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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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편익과 연관시킨다는 사회통념에 따르면 유권자란 경제적 이기심의 귀감입니다. 만일 고소득자의 과세율을 인상한다는 법안이 발의된다면, 우리는 고소득자들은 법안에 반대하는 반면, 저소득자들은 찬성표를 던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념은 자주 어긋납니다. 저자는 가난한 소농들이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지고, 가정에 헌신적인 가장이 자기 아이들이 대학교육이나 적절한 의료혜택을 결코 받을 수 없는 일에 조심스레 동조하며, 주민들이 자신들의 생활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몰락한 도시로 만들며 그들과 같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날릴 정책들을 남발하는 후보자들에게 압승을 안겨주며 갈채를 보내는 광경을 보여줍니다. 그곳은 미국의 캔자스 주 입니다.

미국의 중심에 있는 캔자스 주는, 대초원 지역의 상징적인 주이자 과거 극렬한 진보성향을 보이는 곳이었습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 창설을 주도한 유진 뎁스가 활동했고, 미국자동차연맹의 산실이며, 그 외에도 수많은 노동단체가 활동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캔자스 주는 미국 어느 주보다 기독교 근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조지 W 부시가 캔자스 주에서 80퍼센트가 넘는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습니다. 캔자스의 이러한 정치 구도 변화는 미국 정치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업자라고 무조건 경제 침체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의료보험이 없는 이들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들보다 정부의 의료보험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을 공립학교에 보낸 부모들이 특별히 정부의 교육지원 정책에 찬성하는 것도 아니며, 일하는 여성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정책에 대해서는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도 가정주부들과 별반 의견이 다르지 않다. -《스틱》p.278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카운티가 있는 곳은 다름아닌 캔자스 주입니다. 그러나 캔자스 사람들은 계급적 적개심은 불타오르지만 그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적 기반은 부인합니다. 계급이란 돈이나 타고난 출신성분, 심지어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문제는 진실성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캔자스 사람들은 국가의 순결성과 같은 더 웅대한 것에 주목하며, 가난한 원인이 경제체제의 문제라기보다는 영적 문제라고 말하는 공화당 상원의원 샘 브라운백 같은 사람들의 말에 동조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간에는 공화당의 정치전략이었던 '두 개의 미국'론이 있습니다.

공화당 지역인 빨간 주와 민주당 지역인 파란 주를 비교하는 '두 개의 미국'론에 따르면, 파란 주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멋지고 영리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조롱하고, 스스로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속물적인 상류층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빨간 주의 사람들은 겸손하고, 경건하며, 예의바르고 친절하며 유쾌하다고 말합니다. 빨간 주의 사람들은 애국자이기 때문에 군대를 갔다오고, 언제나 정직하게 일하는 소박한 노동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이러한 구분법에 따라 미국의 농민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월가에 보복하기 위해 공화당에 투표합니다.

정치적 진보주의자들과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둘 다 도덕성이 자신의 종교와 정치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까지 종교와 정치의 전체 영역은 거의 배타적으로 보수주의자들에게 넘겨져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반대의 강력한 목소리가 없음을 최대한 이용해왔으며, 엄격한 아버지 도덕성을 종교와 정치에 연결하는 일련의 상징적 쟁점들을 만들어왔다. -《자유 전쟁》p.230 

캔자스 주처럼 확고한 민주당 지역이 공화당 지역으로 변화한 계기 중 하나는 민주당의 중도층 전략 때문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노동자, 농민과 서민층보다 중도층에 집중했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 계층에게 공백이 생겼고, 이를 공화당이 캐치하는데 성공합니다. 민주당의 중도층 전략이 중도층을 포섭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민주당은 중도층도 잡지 못하고 전통적 지지 기반마저 잃게 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결국 미국 중부 지역은 공화당의 지지지역이 되었고, 민주당은 해안가 지역에 지지기반이 있는 구조가 됩니다.

네오콘이라고 불리는 기독교 우파는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중도에 있던 공화당 지지자들까지 좌측으로 밀어내며 공화당의 주요 세력이 됩니다. 이들은 선거에서 낙태, 동성애, 진화론, 총기 소지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논쟁을 이끌어냈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논의를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선거의 핵심이 경제에서 가치로 전환된 것입니다. 선거가 도덕성, 가치를 다투는 투쟁의 장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치에 투표를 하게 되었고, 경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선거에 낙태, 동성애, 진화론 같은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필연적으로 네거티브 선거전이 이뤄졌고, 이는 전체적인 면에서 악영향을 미칩니다.

대통령이 좋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선거를 통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생기고 취임 이후 정책을 집행할 추진력이 생긴다. 하지만 오직 네거티브에만 집중하는 선거는 이런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유권자들은 당선자가 어떤 정책을 집행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럴 경우 유권자들은 오직 누구누구가 싫어서 그 사람을 뽑았을 뿐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네거티브 선거는 낙선자뿐 아니라 당선자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셈이다. -《킹메이커》p.82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캔자스 주의 변화, 미국 내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적중했습니다. 경제에서 눈길을 돌려 낙태 찬반 문제, 동성애 허용 문제 등을 주요 쟁점화하는데 성공함으로써 공화당은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프랭크는 왜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힘들어하면서도 경제적 요소와 상관없이 투표를 하는 착란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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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 인식은 과거를 구명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내 손안에 썸씽 클래식 Something Classic
에드워드 H. 카 지음, 서상원 편역 / 스마트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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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카는 세상을 향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거론하였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린 트리벨리언 강연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여러 관점에서 제시하고자 했다. 카의 강연은 영국 BBC 라디오에서 방송된 후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전 세계적으로 약 25만부 이상 판매되었다. 카는 역사와 연대기를 구분해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역사'는 과거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이며,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설명하는 작업이다. 반면에 '연대기'는 사건들을 상호 연결시키지 않고 단순히 목록화하는 것이다. 연대기 작가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데 만족하지만 역사가는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킨 과정이나 그 사건이 끼친 영향까지도 설명해야만 한다. 물론 카는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정하고 선택하는 것이 역사가의 중요한 작업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것은 역사가의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그러나 역사가의 작업 가운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본 작업을 바탕으로 해석과 설명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카의 관점으로 보면 역사가는 연구 조사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자세를 갖춰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연대기 작가에게 사실이란 과거에 발생한 그 무엇이지만 역사가에게는 어떤 과거 사실을 역사 서술과정에서 선택하고 사용할 때에만 비로소 그 사실이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는 역사학자의 임무는 단순히 과거에 누가 무엇을 왜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카는 역사가란 역사 속에서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 추진력, 즉 경제적 변화와 산업화, 계급 형성과 계급 갈등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추진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역사가는 마르크스주의적 관념이나 맑스 베버적 패러다임, 사회학적 관념 등 오늘날 활용되고 있는 다양한 이론들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카는 연구 과정에서 이러한 이론들을 다양하게 변용해서 이용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전체적으로 폐기해야만 할 때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론의 도움을 받든, 받지 않든 역사가의 핵심적인 과제는 과거의 패턴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카는 이러한 작업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일에 도움이 될 때에만 과거에 관심을 가졌다. 카는 역사를 우연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거나 혹은 위대한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구현해 나간다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연한 사건과 원인은 역사적 흐름에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영향만을 줄 뿐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경향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왜 했는지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 변화는 누구도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카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경향이 역사가가 속한 사회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때 '역사가'들은 '연대기 작가'들과 달리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카가 30년 이상 연구한 러시아 혁명을 우리가 연구할 때, 우리의 관심사는 카가 관심을 가졌던 혁명적 갈등의 드라마나 차르 체제, 자유주의, 민주사회주의, 아나키즘 같은 역사 속에서 실현되지 못한 역사의 추동력에 관한 관념과 행동의 문제가 아니다. 또 소련 공산주의의 또 다른 대안들이 왜 그렇게 쉽게 실패했는지의 문제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역사가는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한 후 그들이 구체화시킨 이념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계획경제 이념이 어떻게 그들의 사고와 정책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카가 이와 같은 관점을 갖게 된 것은 그 자신이 역사가로서 특이한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역사란 무엇인가?》는 역사 이론 분야에서 역사학도들이 가장 많이 읽을 정도로 비중 높은 책이었지만, 카는 어느 대학 사학과에서도 교수직을 맡지 않았으며, 학술단체의 역사 분야 석좌를 차지하지도 않았다. 카는 고전을 연구했으며, 20년 간 영국 외교부에서 일했고, 국제관계를 강의했으며, 런던〈타임〉지 직원으로 근무했다.

사실 요즘에는 국제관계 분야에서 쌓은 그의 업적이 역사 이론분야에서 진행한 연구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특이한 배경 때문에 카는 역사와 역사 연구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대다수 공무원들처럼 카는 정책 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또 그는 사건을 주도할 만한 권력이나 조직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 즉 대다수 과거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비평가들이 지적하듯이 카는 전적으로 주요 집단들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정부와 권력자들의 행동들을 쉽게 동일시했고, 어떤 일이 발생했든 그것은 역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오히려 외교부 관리로서 현재의 국제 정치 상황을 다루어야 했으므로 과거에 일어났을 법한 일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카는《역사란 무엇인가?》를 저술할 당시 1960년 무렵에는 역사의 무대에 막 출현한 급진적인 학생 세대, 즉 전후 베이비 붐 세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시대에 있었던 교육 기회의 확대와 경제적 번영,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적 해방을 활용하였다. 그 세대는 역사가 현재를 설명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혁명과 혁명가들, 폭동과 반란자들, 노동운동, 파업과 데모, 급진파와 반항아들은 당대의 폭압적인 권위주의와 구태의연한 관행에 저항한 사람들로서, 1960년대의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발굴하고 구명해야만 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중요한 인물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오늘날 그들의 사상이 가진 영향력과 그 사상이 미래를 위해 내건 승리의 약속을 감안하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산업사회 이전의 원시적인 반란자들은 원시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항자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는데, 그들의 반항은 비록 뚜렷한 목적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운동을 지향하였다. 사회주의 운동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잔존해 있던 차별을 일소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카는 1960년대 초 전통적인 대학이 여전히 답습하고 있던 영국사회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폭넓은 기초 위에서 역사를 연구, 교육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예를 들면 서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계획경제를 주장한 러시아와 중국의 역사, 더 나아가 식민 지배에서 갓 해방된 제3세계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의 이런 주장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역사가들 사이에 격렬한 토론을 불러 일으켰으며, 마침내 5년 후 학부 역사 교육과정이 카의 주장대로 개혁되었다. 영국과 유럽의 테두리를 벗어난 역사를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는 카의 주장은 역사학과 사회학 간의 더 많은 지적 교류, 더 많은 사회사 연구, 더 많은 저술과 교육 활동을 호소한 다른 주장과 함께《역사란 무엇인가?》에 반영되었으며, 1960년대의 학생 세대와 당시 많은 젊은 역사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역사가들이란 그들이 속한 시대의 산물이라고 카는 생각했다. 역사는 개별적인 역사가들이 과거에 대해 저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한 사회가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보았다. 물론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항상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또한 왜 자기들이 역사를 저술하고 있으며 자기들의 작업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 있을 것인지를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 메시지를 가슴 깊이 간직한 젊은 역사가들은 자기들이 유용하고 의미 있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업적이 정치적으로 중요하고, 자기들의 발견과 주장이 사회의 관심사를 대변할 뿐 아니라 바로 그러한 이유로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지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 포이어바흐 

카는 역사가 본질적으로 문학적 탐구가 아닌 과학적 탐구 영역이기 때문에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입증하는 기준과 절차는 과학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카가 역사가의 중요한 도구(수단)라고 여긴 역사 흐름과 규칙성은 과학 법칙을 적용해 한층 분명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객관적 역사가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과거의 인물, 제도, 사건들이 역사 흐름에 공헌한 정도에 따라 그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 역사는 과거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며 거대한 역사적 추동력과 장기적인 발전의 관점에서 역사적 사실을 해석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 이론과 계량화, 사회과학의 다른 도구의 도움을 받아 현재의 정치적 행동과 정치적 결정을 내리도록 확고한 지식 기반을 창출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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