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최경석 지음, 서은경 그림 / 살림Friends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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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공무원 국사 수험서의 첫 장에서 다루는것은 선사시대가 아닌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런 역사를 보는 관점은 과거의 사실을 강조하는 랑케, 액턴의 관점과 역사가의 입장을 강조하는 크로체, 콜링우드의 입장, 그 두가지를 절충하는 카의 입장 이렇게 3가지가 제시되지만, 그중 중간적인 입장에 있는 이 책의 저자 에드워드 H. 카가 가장 비중있게 다뤄집니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이 책이 아직도 주목받고 있는것은, 그의 역사인식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낼 당시 저자가 반론하고자 했던 논리 또한 아직도 존재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역사를 바라보는데 있어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사실만을 확인한다는 실증주의, 역사는 특수한 것만 다룬다는 개념, 사람은 역사에서 뭔가를 배울 수 없다는 주장, 역사에 나타나는 인물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어떻게 내려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 공적인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 문제, 역사에서 우연적 사건이 의미하는 것, 역사의 객관성, 역사가는 어디까지가 단일한 개인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와 시대의 산물인지에 대한 문제, 역사는 문학인가 혹은 과학인가에 대한 문제와 같은 당시에도 지목되었고, 지금도 지목되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카는 자신의 역사인식론을 펼칩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관계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카의 가장 유명한 문구중 하나인 이 말은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계에 대한 그의 주장입니다. 19세기의 역사가들이 주장했던 틀림없는 사실 이라는 마법의 문구는 실증주의자들로 하여금 사실 숭배를 조장합니다. 로크나 러셀의 경험론적 철학이 이런 역사관과 조화를 이루는데, 이런 경험주의의 인식론은 주관과 객관의 완벽한 분리를 전제로 합니다. 역사란 확인된 사실의 집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이 주장은 20세기 초에 들어 반대에 직면하는데, 이탈리아 철학자 크로체나 미국의 역사가 칼 베커 등은 역사는 역사가가 만드는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이런 두 주장은 역사가 과거에 있느냐, 현재에 있느냐에 대한 논의인데, 카는 한쪽을 다른쪽 위에 올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며, 두 논의는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역사가는 이의 없이 산업혁명을 위대하고 진보적인 업적으로서 다룰 것이다. 혁명 도중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초기 단계에서 공업화에 따르는 대가로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한 대가를 보고 진보를 중단하고 공업화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주장하는 역사가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영국의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농민집단화 문제에 있어서 잔혹성과 무자비를 공업화의 정책에 따른 희생의 불가피한 부분으로서 논한다면, 나쁜 일에 관대하고 냉소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 pp.122~123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판단할때는 어느 정도의 해석을 전제로 하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가치판단을 포함합니다. 역사서에도 그런 가치판단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역사를 쓰는 역사가 또한 역사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적인 소유물이 아닌, 여러 세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축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의 저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가의 사회적 배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과거의 사건, 제도, 정책에 대해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이런 해석이 중요한 것은 역사가의 판단 자체가 현재의 가치규범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치규범 속에서 역사가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인지하고,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 포이어바흐 

과거의 수많은 사실 가운데서 어떠한 것이 역사로서의 가치가 있으며, 그것을 역사로 받아들여야 하느냐에 대해 카는 현재의 상황에 교훈을 주고, 미래를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역사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역사가들은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현재 사회에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역사적 발견과 주장이 사회의 관심사를 대변할 뿐 아니라 사회의 지적 영향력과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역사는 문학적 탐구가 아닌 과학적 탐구 영역이 되어야 하며 역사 흐름은 다양한 사회 이론과 계량화, 과학 법칙을 통해 현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지식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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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프로젝트 2 (양장 합본) 아케이드 프로젝트 2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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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외부에서 X레이로 자본주의를 촬영했다면, 이 책은 내시경을 밀어넣어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한 것입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역한 조형준씨의 말이다. 그의 이 말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책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할 장소로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19세기에 파리가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발흥한 것은 유럽역사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대단히 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 작가, 개혁가, 이론가들이 프랑스의 수도로 모여들었다. 파리는 비교적 관대한 군주인 루이 필립의 치하에서 많은 나라의 망명객과 혁명가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때문에 파리는 다양한 지적 조류를 폭넓게 수용하는 도시로 오랜 동안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경우는 격심한 정치적 반동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그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던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파리에서는 베를린에서처럼 자국문화에 따르도록 강요당하지 않아도 되고, 적어도 아직 런던에서처럼 냉대와 고립 속에서 소집단을 이루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자유롭고 심지어는 열렬하게 환영받기까지 하고 왕정복고의 시대 동안에도 살아남은 예술적, 사회적 살롱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주위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원 안으로 모여들 듯이 파리로 향했다.

 

파리의 지적 분위기는 흥분과 이상으로 들떠 있었다. 이러한 지적 분위기에서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구체제, 군주들과 폭군들, 교회, 군대, 지성이 결여된 속물적 대중, 노예와 압제자들, 생명과 자유로운 인권의 적들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의 분위기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떠들썩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감정은 뜨겁게 고양되었고, 개인적인 느낌들과 믿음들은 열정적인 문구로 표현되었으며, 혁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구호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열렬하게 되풀이되었다.

 

프랑스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벤야민은 아케이드(arcade),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매춘, 도박,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사진, 증권, 광고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찾아낸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기 자본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파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성찰할 수 있다. 이 책은 격동의 시기, 마르크스와 수많은 계몽주의자들이 활약하던 그곳, 현대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 19세기 파리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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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프로젝트 1 (양장 합본) 아케이드 프로젝트 1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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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외부에서 X레이로 자본주의를 촬영했다면, 이 책은 내시경을 밀어넣어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한 것입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역한 조형준씨의 말이다. 그의 이 말은 아케이드 프로젝트란 책이 무엇인지를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벤야민은 자본주의 몸통 내부를 촬영할 장소로 19세기 프랑스 파리를 선택했다. 그의 선택은 매우 탁월했다. 19세기에 파리가 사회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발흥한 것은 유럽역사에서 전례 없는 현상이었다. 대단히 많은 시인, 화가, 음악가, 작가, 개혁가, 이론가들이 프랑스의 수도로 모여들었다. 파리는 비교적 관대한 군주인 루이 필립의 치하에서 많은 나라의 망명객과 혁명가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때문에 파리는 다양한 지적 조류를 폭넓게 수용하는 도시로 오랜 동안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의 다른 국가들의 경우는 격심한 정치적 반동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그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던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파리에서는 베를린에서처럼 자국문화에 따르도록 강요당하지 않아도 되고, 적어도 아직 런던에서처럼 냉대와 고립 속에서 소집단을 이루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자유롭고 심지어는 열렬하게 환영받기까지 하고 왕정복고의 시대 동안에도 살아남은 예술적, 사회적 살롱들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치 주위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원 안으로 모여들 듯이 파리로 향했다.

 

파리의 지적 분위기는 흥분과 이상으로 들떠 있었다. 이러한 지적 분위기에서 그들은 대화와 토론을 하고 글을 썼다. 구체제, 군주들과 폭군들, 교회, 군대, 지성이 결여된 속물적 대중, 노예와 압제자들, 생명과 자유로운 인권의 적들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의 분위기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떠들썩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의 감정은 뜨겁게 고양되었고, 개인적인 느낌들과 믿음들은 열정적인 문구로 표현되었으며, 혁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구호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열렬하게 되풀이되었다.

 

프랑스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벤야민은 아케이드(arcade), 패션, 권태, 박람회, 광고, 매춘, 도박, 회화, 신문, 조명, 철도, 사진, 증권, 광고 등 자본주의 탄생기의 파리 모습을 찾아낸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초기 자본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파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를 성찰할 수 있다. 이 책은 격동의 시기, 마르크스와 수많은 계몽주의자들이 활약하던 그곳, 현대의 기반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곳, 19세기 파리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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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듀링론 - 오이겐 류링씨의 과학혁명, 개정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민석 옮김 / 새길아카데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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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사회, 과학의 본질과 방향을 바꾼 세기의 사상가 마르크스의 지적 영향력은 세계 어느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정작 마르크스가 살아있을때는 그가 바라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공산당선언 이후 불타올랐던 혁명의 불길은 사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를 이끌던 자본가계급과 왕정의 생존자들은 앙시앵 레짐의 몰락을 교훈으로 삼기라도 하듯이 혁명적 요구에 대해 온건하고 양보를 할 태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급진적 해결책보단 안정적인 점진적 해결책을 선호했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해방을 위해 노동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미하일 바쿠닌과의 대결은 마르크스의 생애에서 마지막 공적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일에서 라쌀레 추종자들의 위신은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그들의 반대파이자 마르크스주의 진영을 대표하던 리프크네히트는 인터내셔널의 해체로 말미암아 그들과 손을 잡고 단일 통합당을 결성하고자 했습니다. 리프크네히트는 영국에 살면서 어떠한 타협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는 국내에 있는 자신이 당장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당은 고타에서 회의를 열어 동맹을 맺고는 양측의 지도자들이 작성한 공동 강령을 발표했고, 공동 강령은 마르크스에게 보내졌습니다. 마르크스는 즉각 베를린에 있는 리프크네히트에게 격렬한 비판이 담긴 서한을 급송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엥겔스에게도 리프크네히트에게 그 정도로 강력한 서한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도들이 라쌀레와 이른바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에서 유래한 오도되고 반은 무의미한 용어들에 미혹되어, 자신이 폭로하고 제거하기 위해 평생을 보낸 모호한 문구들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라쌀레 측과 리프크네히트 측 사이의 동맹이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힘도 점차 커졌습니다. 영국에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독일의 리프크네히트와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인물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던 급진적 성향의 강사였던 오이겐 뒤링이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대단히 반자본주의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독일의 사회민주당 내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었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공식 기관지에 오이겐 뒤링의 글과 이를 지지하는 글들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반뒤링론》은 제목 그대로 뒤링을 반대하는 글입니다. 엥겔스는 자신이 쓴 것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포괄적인 글을 써서 뒤링의 사이비과학적 사회주의가 독일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공격합니다.

듀링씨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다음의 말로 요약해 본다. 과대망상으로 말미암은 정신이상이라고. - p.347 

엥겔스는 꾸밈이 없고 힘이 넘치면서도 명쾌한 문체를 대단히 능숙하게 구사해가면서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을 제시합니다. 엥겔스는 당시에 과학적 저술가와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던 견해, 즉 모든 자연 현상은 공간 속의 물질 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비변증법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유물론을 공격하면서, 변증법적 원리가 인류 역사만이 아니라 생물학, 물리학, 수학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엥겔스는 정말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는데, 이중 일부는 현대사회에도 적용될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풍요 속의 빈곤과 관련된 부분은 지타 베르마가 오늘날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어느정도 일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반뒤링론》이 마르크스사에서《자본론》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고전이 된 것은 오이겐 뒤링의 다방면에 걸친 체계에 논박을 가하면서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등 전체적인 마르크스 세계관을 포괄한 최초의 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저서가 누구나 이미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의 부류라면, 엥겔스의 저서는 최초이자 최적의 입문서였기 때문에 전문가부터 일반 시민 및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는 부류였습니다. 문제는 엥겔스가 펼친 유물론적 역사관이 비록 자유주의적 혹은 관념론적 역사 기술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난을 충실히 따르고는 있지만 마르크스의 대부분의 저술들, 특히 마르크스가 초창기의 저술들에서 펼치고 있는 유물론적 역사관에 비해 더 기계적인 결정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엥겔스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것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독일 관념론, 프랑스 정치 이론, 영국의 경제학이라는 세 가지 기원에서 생겨나 발전한 것이라는 다소 다윈론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내린 최고의 간명한 평가로서, 오늘날까지 러시아와 독일의 사회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칼 마르크스》p.386 

다재다능하고 박식했던 엥겔스는 광범위한 분야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기는 했지만, 오늘날 봤을때 그의 논의 자체는 그다지 쓸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엥겔스의 이론에서 나타나는 지나치게 야심적인 시도들은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이 충돌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압도적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엥겔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따랐는데, 당연히 엥겔스의 이론이 더 알기 쉽고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에서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엥겔스는 이 책을 통해 뒤링과 같은 이론을 공격함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금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세계관으로 변호하고, 사회민주당 내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지도이념으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통해 엥겔스의 역사관이 더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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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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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를 통틀어 카를 마르크스만큼 강력한 영향을 행사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지적, 도덕적 영향력은 지구 어느곳에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재정권 당시 마르크스의 책을 가지고만 있어도 잡아가던 시절이 있었고, 이름이 비슷했단 이유로 막스 베버의 책을 가진 학생들이 잡혀가던 웃지못할 일들도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름은 누구나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정작 마르크스가 어떤 인물인지를 아는 사람은 유명도에 비하면 많지 않습니다. 세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 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이 평전을 통해 마르크스의 생애와 시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성장하던 시기는 사회 표면아래 잠복해 있던 경제적, 정치적 문제들이 세계를 짓누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은 마르크스가 살던 독일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마르크스의 청소년기는 프랑스에서 전파된 불온 사상에 대해 기존 체제가 강력하게 탄압하며 억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반유대법 때문에 현 체제의 순응하는 모습을 강하게 보였고, 이런 굴종적인 태도는 소년 마르크스에게 분노의 감정을 가져왔습니다.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가톨릭교회와 봉건귀족이라는 구체제가 자연스럽게 무너질 것이며, 모든 인간이 정치적, 법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는 프랑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달리 인간의 생활조건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기존 제도들에 의해 수호되던 체제를 타파하는 변혁의 시기에 지적인 성장을 이룬 마르크스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철저한 이성주의자이자 합리주의자였고 민족주의나 종교적, 인종적 공동체 같은 사회 세력들의 영향력을 싫어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현실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마르크스 이론의 특징은 대중들이 단순한 감정적 고양 이상의 작업을 가능케 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은 학문으로서의 학설이 아니라 실천과 다를 바 없는 학설이였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직접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대표적으로 영국 노동자들의 선거권 획득 운동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기본 원리들을 포괄적이면서도 상세하고 현실성 있게 결합한 비범함에 있었습니다. 가장 예쁜 눈, 귀, 코, 입을 각각 모아서 합치면 가장 예쁜 얼굴이 탄생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마르크스는 가장 예쁜 얼굴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이성과 교육의 힘을 강조한 볼테르로 대표되는 계몽주의와 프랑스와 영국의 과학적 경험주의, 과학적 경험주의에 반발해 등장한 독일의 형이상학적 역사주의를 마르크스는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마르크스의 가설들은 독일 관념론과 프랑스 합리주의 및 영국 정치경제학의 독특한 종합을 보여주었는데, 마르크스가 새로운 학설을 확립함으로써 서로 별개의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회현상들을 제대로 통합해서 설명하는 것이 비로소 가능해진 것입니다.

마르크스 이론의 부분적인 내용은 기존의 사상가들이 이미 제창한 것들이었습니다. 생시몽은 경제적 관계의 발전이 역사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주장했고, 푸리에는 고삐 풀린 자유방임주의 자본주의가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했으며, 시스몽디는 자본주의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역사와 사회에 관한 역사적 유물론 역시 구조의 기본 개념은 헤겔에게서, 동적 원리들은 생시몽에게서, 물질의 우위에 대한 믿음은 포이어바흐에게서, 프롤레타리아에 관한 견해는 프랑스의 공산주의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르크스의 이론은 완전히 독창적이었고,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절충주의로 흐르지 않고, 대담하면서도 정합적이고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사유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 사회과학, 역사학, 정치학, 철학, 심리학 등의 광범위한 학문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행동경제학, 진화심리학, 인지심리학 등을 모두 합친 이론이 등장했다고 상상해보면 그 파괴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당시 지배 세력이었던 왕정제, 귀족제에 대한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의 대표작《자본론》은 전체 사회질서와 그 지배자들 및 지지자들 그리고 이데올로그와 자발적, 비자발적인 앞잡이들, 다시 말해 그 사회질서와 공동운명체인 모든 자들에 대해 그때까지 행해진 고발 가운데 가장 가공할 만하면서 가장 근거 있고 주도면밀한 것이었습니다.

《자본론》은 신념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에 쓰여진 그 어떤 저술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자본론》은 이 책을 한 줄도 읽지 않았거나 혹은 때때로 등장하는 모호하고 애매한 문장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읽은 수백 만의 사람들에 의해 맹목적 숭배, 또는 그 반대로 맹목적 증오의 대상이 되어왔다. 《자본론》의 이름으로 혁명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반혁명 세력은 적의 무기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면서 은밀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무기를 집중적으로 탄압했으며 지금도 탄압하고 있다. - p.357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은 너무나 엄청나서, 결과적으로 웃지 못할 상황을 많이 만들고 말았습니다. '역사 과정을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관념이다'라는 명제를 반박하기 위해 출발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의 관념이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침으로써 스스로의 테제의 힘을 약화시켰습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개인이 거대한 사회 세력들의 꼭두각시라고 말했지만, 마르크스라는 개인은 거대한 사회 세력의 창시자가 되었고, 마르크스는 사상은 위장하고 합리화하는 사회적 이익의 반영에 불과한 부수적 현상이라고 주장했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야말로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마르크스는 신념의 의의와 진실성 여부는 신념 자체가 아니라 그 표현인 실천에 달려 있다고 말할 만큼 혁명적 실천과 다를 바 없는 학설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과 전략을 가져왔고, 이러한 특징 때문에 결국 마르크스 스스로 자신은 결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지적 유산은 우리 세대의 사회, 과학의 본질과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런 위대한 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이사야 벌린은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지적을 이 책에 응용해 보면,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평전은 독자들이 마르크스와 아는 사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되는 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벌린은 마르크스라는 위인의 사적인 모습과 특이한 버릇까지도 전부 밝혀주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번쩍번쩍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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