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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듀링론 - 오이겐 류링씨의 과학혁명, 개정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민석 옮김 / 새길아카데미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 세대의 사회, 과학의 본질과 방향을 바꾼 세기의 사상가 마르크스의 지적 영향력은 세계 어느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정작 마르크스가
살아있을때는 그가 바라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공산당선언 이후 불타올랐던 혁명의 불길은 사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회를 이끌던 자본가계급과
왕정의 생존자들은 앙시앵 레짐의 몰락을 교훈으로 삼기라도 하듯이 혁명적 요구에 대해 온건하고 양보를 할 태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급진적 해결책보단 안정적인 점진적 해결책을 선호했고,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정치적, 경제적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해방을 위해 노동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미하일 바쿠닌과의 대결은 마르크스의 생애에서 마지막 공적 사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독일에서 라쌀레 추종자들의 위신은 꾸준히 높아졌습니다. 그들의 반대파이자 마르크스주의 진영을 대표하던 리프크네히트는
인터내셔널의 해체로 말미암아 그들과 손을 잡고 단일 통합당을 결성하고자 했습니다. 리프크네히트는 영국에 살면서 어떠한 타협안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보다는 국내에 있는 자신이 당장에 전략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당은 고타에서
회의를 열어 동맹을 맺고는 양측의 지도자들이 작성한 공동 강령을 발표했고, 공동 강령은 마르크스에게 보내졌습니다. 마르크스는 즉각 베를린에 있는
리프크네히트에게 격렬한 비판이 담긴 서한을 급송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엥겔스에게도 리프크네히트에게 그 정도로 강력한 서한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사도들이 라쌀레와 이른바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에서 유래한 오도되고 반은 무의미한 용어들에 미혹되어, 자신이 폭로하고
제거하기 위해 평생을 보낸 모호한 문구들을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라쌀레 측과
리프크네히트 측 사이의 동맹이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힘도 점차 커졌습니다. 영국에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독일의 리프크네히트와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인물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는 베를린 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던 급진적 성향의 강사였던 오이겐 뒤링이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대단히 반자본주의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독일의 사회민주당 내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었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공식 기관지에 오이겐 뒤링의 글과 이를 지지하는 글들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반뒤링론》은 제목 그대로
뒤링을 반대하는 글입니다. 엥겔스는 자신이 쓴 것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포괄적인 글을 써서 뒤링의 사이비과학적 사회주의가 독일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공격합니다.
듀링씨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다음의 말로 요약해 본다. 과대망상으로 말미암은 정신이상이라고. -
p.347
엥겔스는 꾸밈이 없고 힘이 넘치면서도 명쾌한 문체를 대단히 능숙하게 구사해가면서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을 제시합니다.
엥겔스는 당시에 과학적 저술가와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던 견해, 즉 모든 자연 현상은 공간 속의 물질 운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비변증법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유물론을 공격하면서, 변증법적 원리가 인류 역사만이 아니라 생물학, 물리학, 수학의 영역에서도 보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엥겔스는 정말 다양한 분야를 언급하는데, 이중 일부는 현대사회에도 적용될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풍요 속의
빈곤과 관련된 부분은 지타 베르마가 오늘날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어느정도 일치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반뒤링론》이 마르크스사에서《자본론》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고전이 된 것은
오이겐 뒤링의 다방면에 걸친 체계에 논박을 가하면서 철학, 정치경제학, 사회주의 등 전체적인 마르크스 세계관을 포괄한 최초의 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저서가 누구나 이미 읽었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별로 없는 책의 부류라면, 엥겔스의 저서는 최초이자
최적의 입문서였기 때문에 전문가부터 일반 시민 및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읽을 수 있는 부류였습니다. 문제는 엥겔스가 펼친 유물론적 역사관이
비록 자유주의적 혹은 관념론적 역사 기술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난을 충실히 따르고는 있지만 마르크스의 대부분의 저술들, 특히 마르크스가 초창기의
저술들에서 펼치고 있는 유물론적 역사관에 비해 더 기계적인 결정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엥겔스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것으로 마르크스주의는 독일 관념론, 프랑스 정치 이론,
영국의 경제학이라는 세 가지 기원에서 생겨나 발전한 것이라는 다소 다윈론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내린 최고의 간명한 평가로서, 오늘날까지 러시아와 독일의 사회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칼
마르크스》p.386
다재다능하고 박식했던 엥겔스는 광범위한 분야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기는 했지만, 오늘날 봤을때 그의 논의 자체는 그다지 쓸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때로 엥겔스의 이론에서 나타나는 지나치게 야심적인 시도들은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이 충돌할 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압도적 다수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엥겔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따랐는데, 당연히
엥겔스의 이론이 더 알기 쉽고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에서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상황에서 엥겔스는 이 책을 통해 뒤링과 같은
이론을 공격함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다시금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세계관으로 변호하고, 사회민주당 내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지도이념으로 끌어올리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통해 엥겔스의 역사관이 더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