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훔치기 - 왜 예술은 우리를 눈멀게 하는가 What's Up 7
다리안 리더 지음, 박소현 옮김 / 새물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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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스페인에서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산투아리오 데 미제리코르디아 성당에 있는 19세기 화가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의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인 모양으로 훼손된 일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이 프레스코화가 훼손되자 그전보다 관람객이 더 몰렸다는 사실입니다. SNS 시대의 일시적인 유행으로 치부하기엔 그 영향력은 상당히 오래 남았습니다. 스페인의 이 이야기는 미술품에 대한 독특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러 갔는가?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현재 미술작품 하면 누구나 첫손에 꼽을만한 작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11년 루브르 미술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합니다. 주택 도장공이었던 빈첸조 페루지아가〈모나리자〉를 훔친 것입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모든 미디어에서 사건을 조명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모나리자〉를 보러 갑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평소에 미술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군중들이 보려고 몰려든 것은〈모나리자〉가 사라지고 남은 텅 빈 공간이었습니다. 예술작품이 거기 있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 없기 때문에 보러 간 것입니다.〈모나리자〉는 더이상 과거의 작품과 동일한 작품이 아니었습니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작품들보다 월등한 인기를 얻게 된〈모나리자〉는 새로 만들어진 역사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자 다리안 리더는〈모나리자〉도난사건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현상을 바탕으로 미술에 대한, 더 나아가 우리의 시선에 대한, 보는 것이라는 행위를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시선은 인간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눈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포스터만 붙여놔도 절도행위가 줄어드는 심리학 실험이나 문신, 혹은 페르소나에 대한 연구는 이미지가 우리를 사로잡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라캉은 보는 사람과 시각적 이미지 사이의 비대칭성에 주목했는데, 인간이 이미지나 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나 상이 인간을 포획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누군가 자신을 빤히 쳐다본다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회피합니다. 라캉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시선에는 선의가 아니라 악의의 차원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심리엔 악의와 욕망이 가득한 타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 시선을 그림에 가두어 화가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미술작품은 타자의 시선을 그림에 집중시킬 뿐만 아니라, 그 시선을 타자 자신이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대표적인 기법이 원근법인데, 평평한 종이에 그려지는 이 독특한 시선처리로 인해 바라보는 주체가 바라봄을 당하는 주체가 됩니다. 즉 우리는 미술작품을 통해 거울은 아니지만,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모나리자〉가 도난당한 뒤 루브르에 몰려든 군중들은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을 입증해주었다. 미술작품의 진정한 기능이란 물이라는 텅 빈 장소, 다시 말해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는 장소 사이의 틈새를 환기시켜주는 것이었다. - p.134 

그렇기 때문에 미술작품은 텅 빈 공간에서 태어나고, 텅 빈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미술작품은 미완성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려 합니다. 완전한 누드보다, 살짝 가려져서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더 에로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런 욕망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비어있고, 미완성인 그림을 보면서 공상적인 사유를 발휘해 그것에 욕망하고, 그런 자신을 바라봅니다.〈모나리자〉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된 심리에도 사라진 그 공간에서 자신만의 모나리자를 찾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모나리자〉도난사건 이후로 사람들은 모던 아트가 제공하는 텅 빈 공간을 보려고 미술관과 화랑에 가게 되는 세기를 맞이합니다.

그림이 거기에 없다는 사실이 사물을 다른 식으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한때 비가시적이었던 모든 것이 시선의 대상이 되었고, 이로 인해〈모나리자〉도난 사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었습니다. 모나리자가 관람객들에게 신비에 싸인 존재가 되기 시작한 것은 팜므 파탈이라는 문화적 현상이 등장하고, 고티에와 페이터같은 사람들이 회화에 대한 평문을 쓰면서부터였습니다. 평론가들은 모나리자의 미소에 팜므 파탈의 모든 특징을 부여했습니다. 그녀는 그저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수수께끼 같은 것의 상징이 되었고 도난 사건 이후 그녀의 이미지를 사용한 광고 열풍이 이어지면서 그처럼 기이한 양상은 영원한 것이 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는 우리의 시각적 현실 속에 감추어진 것만 찾으며,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모나리자〉가 도난당함으로써 비로소 우리가〈모나리자〉를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모나리자〉도난사건은 미술작품과 그것이 점하고 있던 텅 빈 공간 사이의 분열이 드러나는 극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극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미술작품이 사라지지 않아도 이 텅 빈 공간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보는 사람의 심리를 정신분석적 측면에서 바라봄으로써〈모나리자〉를 보고 있는 사람의, 스페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 프레스코화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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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에 대한 옹호 - 믿음의 폭력성을 치유하기 위한 '의심의 계보학' 산책자 에쎄 시리즈 7
안톤 지더벨트.피터 버거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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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검사를 하러 온 학생에게 안과 의사가 말합니다. "앉아서 토끼뜀을 열 번 뛰어봐요." 학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토끼뜀을 하기 시작합니다.

EBS 다큐프라임『인간의 두 얼굴』에서 보여주는 이 장면은, 심리학의 고전적 실험 결과를 재확인해 줍니다. 밀그램을 비롯해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확인한 사실은 권위나 지식, 상황과 같은 요소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이 의사의 명령에 복종한 것은 의사가 권위 있는 존재, 믿을 만한 존재라는 생각이 심리의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명의 의사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꿀만한 믿음을 줄 수 있는데, 하물며 더 거대한 존재, 더 믿음직한 존재 앞에서 사람이 믿음을 보낼망정 의심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자 피터 버거와 안톤 지더벨트가 말하는 사람이 의심하기 힘든 거대한 존재들은 바로 ~ism, ~주의라고 부르는 것들입니다.

프랑스혁명, 계몽, 이성, 과학.. 근대의 등장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세력이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들은 종교의 몰락, 이른바 세속화는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현재는 종교의 부흥기라고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 저자들이 말하는 종교는 중세식의 그런 종교는 아닙니다. 종교는 변화했지만 몰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근대가 가져온 것은 다원성이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도시화,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 가치관, 생활 방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터키 음식을 먹고 일본 만화를 보고 미국 드라마를 보며 인도 춤을 추고 이집트인과 연애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근대화의 다원성은 상대화를 가져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생각을 접하면서 뭔가 절대적이라 믿던 믿음이 약화되고, 소멸됩니다. 몇백년, 심지어는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 땅에서 금발 머리나 검은 피부의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절대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경향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오염으로 인해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나 솔로로 살아도 되고, 동성애자가 되도 되고, 원하는 종교를 아무거나 믿어도 되고,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도 되고, 아나키스트가 되도 됩니다.

다원성, 상대화는 일어나는 일이며,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상대화 현상을 과도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수많은 선택은 인지과정에 상당한 부하를 가져옵니다. 이런 심리를 에리히 프롬은《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잘 묘사한 바 있습니다. 저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전체주의 운동은 자유가 주는 부담에서 도피하려는 시도이며, 일종의 해방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라는대로, 사회가 요구하는대로 사는 삶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편합니다. 반대로 상대화 현상을 환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상대화는 두 가지의 ~주의를 탄생시킵니다. 상대주의와, 근본주의입니다.

 

모든 상대주의에는 절대의 재래를 기다리는 광신이 있으며, 모든 광신에는 모든 절대로부터의 해방을 기다리는 상대주의가 있다. - p.77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유일하고 보편적으로 옳은 윤리 체계란 없습니다. 실재의 부재는 푸코의 데리다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발전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체계 안에서 지식을 전달하는 기제가 권력을 차지하려는 투쟁의 수단이기 때문에 객관성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담론의 존재를 긍정합니다. 문제는 상대주의의 인식론이 현실의 사실을 찾아내는 일을 어렵게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화 효과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근본주의의 문제는 전체 사회를 손에 넣고 자신들의 신조를 모든 구성원에게 당연시되는 상황을 꿈꾼다는 점입니다. 여성의 사회적 약진에 적응하지 못하고 남자가 모든 권력을 쥐었던 과거를 꿈꾸는 사람들이나 경전에 씌여있는대로 생활하는 종교인 등 우리 사회 주변에서 근본주의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현대의 사람들이 손쉽게 상대주의나 근본주의를 접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 두가지 주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헌신과 숭배 그 자체이며 새로운 시대의 신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과거 종교로 대표되는 닫힌 사회가 의심을 불허하는 사회였다면, 이 두가지 입장 역시 어느 쪽도 의심 때문에 오염되지 않습니다. 두 입장이 지닌 확실성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지만 동시에 의심의 종말을 이끌어냅니다. 문제는 의심의 종말이 민주주의의 종말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의심이 없는 한 민주주의도 없다. 절대적인 진리가 모든 형태의 전제정치의 핵심인 것처럼. 제도적 저항, 다당제, 대안 세력, 민주정치 체제의 핵심에 의심이 없다면 무엇이 있겠는가? 의심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으로 침묵한다면, 민주주의 그 자체가 종말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민주주의가 뭐가 필요한가? -p.170 

우리는 의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의심은 취약하고 위태롭습니다.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에서 중요한 것은 의심을 보호하고 제도화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민주주의를 의심할지라도. 이는 하나의 역설이지만, 의심을 보호하기 위해선 헌법국가와 민주적 체제가 의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순성이야말로 민주주의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찬양 중 하나입니다. 의심은 정치적, 사회문화적 요새를 필요로 하며 자유와 인권에 대한 헌법적 보호막을 갖추고 존립할 때, 인지적이고 도덕적인 의심이 가장 보호된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그런 의심을 바탕으로 파괴적인 근본주의와 급진적인 상대주의의 사이에서 어렵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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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수 혁명 - 안전한 식수를 향한 인간의 권리와 투쟁
제임스 샐즈먼 지음, 김정로 외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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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를 틀면 마실 수 있는 물이 나오고, 변기를 내리면 오물이 사라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특히 도시의 사람들이 그러한데, 서울의 경우 거의 100%의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이 갖춰진 것은 몇십 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물의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언제라도 생활수준이 수십년 전 수준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태백지역에서 물 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주민들이 큰 고통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깨끗한 물은 생명의 연장 측면뿐만 아니라 삶의 질적인 문제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깨끗한 물을 국민들에게 언제나 공급하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굉장히 중요합니다.

현대 상수도 기술은 대단히 오랜 옛날부터 개량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경우 BC 312년에 18km의 수로를 건설하여 급수를 개시했고, AD 305년까지 578km에 달하는 수로가 건설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안압지에서 7~10세기경 통일신라시대에 사용된 토기로 만들어진 상하수도관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 유사한 수도운영체계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는 영국으로, 1619년에 관부설에 의한 일반급수가 행해졌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오염되기 시작한 수질자원으로 인해 상하수도 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858년 대악취 사건을 계기로 근대적 하수처리시설을 만드는 계기가 되어, 1873년엔 연속급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발달된 상하수도 시설이 합리적인 건설비와 유지 관리비를 투자하여 소비자에게 질적으로 안전하고 양적으로 충분한 물을 공급함으로써 근대사회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합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제임스 길리건은 근대사회에서 수많은 병을 물리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은 의사, 병원, 혹은 약의 역할이 아니며, 상하수도 체계야 말로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의학적 업적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더러운 물이 주범인 설사로 인한 사망자는, 전쟁과 내전으로 죽는 사망자의 6배에 달한다는 통계만 보더라도, 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청결한 물의 공급과 하수 체계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의 위협에서 구해 냈습니다. 이는 동시에 물이 안보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배트맨 비긴즈』에서 악당들이 상하수도 시스템을 이용해 고담시를 공격한 것처럼, 도시에 핏줄처럼 퍼져있는 관로들은 우리를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급수시설의 안전을 강화하고 감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 떠오르는 기술들이 비싸다는 것은 차지하고, 이와 유사한 기술들은 시장 이익이 적으면 상업적으로 개발될 것 같지도 않다. 많은 공공정책 이슈와 마찬가지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은 문제 해결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도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 p.226 

물과 공기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대표적인 물질이지만, 모든 사람이 비교적 동등하게 얻는 공기와는 다르게 물의 경우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물질입니다. 여전히 10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싸게 공급한다는 공중보건의 개념은, 그 사회가 얼마나 진보적이며, 얼마나 발달된 곳인지를 나타내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19~20세기에 깨끗한 물의 보급은 공공보건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수돗물의 안전성이 의심을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도시의 인구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시의 배수 시설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수질 체계를 유지하고 개선하는데 필요한 투자는 줄어들었습니다. 종전의 수질 관리 체계를 감독, 규제하고 평가하며, 신기술에 입각해서 표준을 강화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의 미흡함 또한 수돗물의 신뢰에 타격을 입힙니다.

이러한 수돗물 불신 현상에 힘입어 생수산업이 대두했습니다. 생수업계는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을 성공적으로 자극시켰고, 생수를 깨끗한 이미지로 포장함으로써 생수시장의 전성기를 마련합니다. 생수 판매량은 1976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배씩 증가해 한해에 90억 갤런에 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수사업은 세 가지 문제가 있는데, 페트병이 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고, 기존의 공공 수도체계를 흔들고, 생수에 들어가는 물의 질 관리를 기업에 의존해야 하고 그 기준이 수돗물에 비해 낮다는 것입니다. 물 관리에 관한 문제는 생수 뿐만 아니라 물 민영화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 볼리비아 등의 사례는 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전세계적인 고찰을 요구하게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기존 급수체계가 훼손되며 인구 증가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비록 현재는 적절한 급수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앞으로 안전한 식수를 구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대다수를 포함하고 있는 지역들에서는 안전한 식수의 공급을 더 늘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 p.337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물 관리체계는 자랑할만한 수준은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취수원 관리가 미흡해 정수처리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고도정수처리 시설도 한참 도입중에 있습니다. 수돗물의 질은 좋지만 급수설비의 관리는 공공기관이 아닌 건물주들이 따로 하다보니 소비자의 입장에서 쉽게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현재 매설된 관로의 상당수가 70~80년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라 노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공과정에서 야매로 만들어진 것도 꽤 됩니다. 태백지역의 문제를 조사한 결과 누수원인의 절반은 시공 부주의였습니다. 설계적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누수를 찾는것도 힘듭니다. 관로가 대부분 완성된 시점이다 보니 이젠 증설에서 상하수도 관망관리 분야로 넘어가면서 블록시스템, IT를 이용한 정보화 관리 도입등을 시작하고 있지만 법적인 부분 등에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서울시는 유수율이 95%에 달한다며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말하고있고, 지자체에서도 유수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계속 증가만 하는 유수율 통계는 그 통계의 진위성이 의심되는 비현실적인 자료라는것을 말해줍니다. 공무국외출장귀국보고서 환경복지국상수도과 2005.9 자료를 보면 25년동안 꾸준히 관리해온 일본 오사카 시의 경우 유수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때론 하락하는 경우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물공급이 안되서 고통을 겪었던 태백지역의 경우 유수율이 30%도 되지 못했습니다. 물을 100생산하면 70이상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가장 심한곳은 무려 11.7%였습니다. 헤더 로저스가《사라진 내일》에서 언급한 것처럼, 상하수도는 다리, 댐, 도로 등 다른 기간산업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화가 되기 힘듭니다. 상하수도 체계가 적절한 조치를 꾸준히 받지 못한 결과 우리 사회에 큰 폭탄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계속 안전한 물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가, 그런 물의 혜택을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할 수 있는가, 기후 변화나 다른 기술로 인한 물의 변화에 사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제임스 샐즈먼은 식수 문제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독자들에게 물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자원으로서의 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루 골드, 21세기의 석유라고 불리우는 만큼 물은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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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의 도시 -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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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공간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의 수가 농촌에 사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가장 주요한 생활공간이며, 생산공간이자, 소비공간입니다. 테크놀로지가 인간이 세상을 경험하고 지각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공진화하는 것처럼, 도시라는 공간 또한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사회 혹은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가, 어떤 생활양식을 원하는가, 어떤 가치관을 품고 있는가라는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삶을 관통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라고 말합니다.

도시는 어떤 무엇보다도 자본적이고, 자본주의적입니다. 자본주의의 토대엔 잉여가치의 영속적 추구가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끊임없이 생산되는 잉여생산물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는 자본주의의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밀도, 고합리적 도시 공간의 형성은 잉여생산물을 흡수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합니다. 자본주의는 상품의 세계와 나름대로의 논리, 세계차원의 전략, 화폐의 힘과 정치적인 국가의 권력을 포함하는 추상 공간을 생산함으로써 도시는 자본주의 구조의 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강점이 있다면 그것은 도시에 있으며, 단점이 있다면 그 역시 도시에 있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위기라는 지진이 온다면, 그 진원지는 도시라고 말합니다.

도시가 슬럼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도시가 가난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유하기 때문이다. - 지타 베르마 

노동운동, 혹은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 도시 투쟁은 혁명적 잠재력과 혁명적 의의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고 묵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도시 사회운동은 당연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착취와 소외에 뿌리를 둔 반자본주의 계급투쟁과는 분리된 것이며, 도시 투쟁은 생산 문제보다는 재생산문제, 또는 권리와 주장, 주권, 시민권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뿐 계급과 관련 있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변화의 불을 지피는 도시 기반 운동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오해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공장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체라고 말한 것처럼, 노동자의 상징이 공장에서 일하는, 프롤레타리아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비는 자본 이론에 있어서 생산의 주체, 변화의 주체는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에서 도시의 노동자들과 프리케리아트들로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하비는 변화의 원동력을 1871년 파리 코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고자 합니다. 많은 나라의 망명객과 혁명가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덕분에 파리는 다양한 지적 조류를 폭넓게 수용하는 도시로 오랜 동안 명성이 자자했고, 파리의 지적 분위기는 흥분과 이상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구체제, 군주들과 폭군들, 교회, 군대, 지성이 결여된 속물적 대중, 노예와 압제자들, 생명과 자유로운 인권의 적들에 대한 열정적인 저항의 분위기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이 떠들썩한 사회를 하나로 묶는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 냈고, 혁명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구호는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열렬하게 되풀이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과 파리코뮌으로 대변되는 혁명의 기반에 파리라는 도시에 대한 권리 요구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주의, 다시 말해서 국가 사회주의는 나름대로의 공간을 생산했는가?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공간을 생산하지 못하는 혁명은 애초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가지 못한다. 요컨대 실패한다는 말이다. 그런 혁명은 삶은 바꾸지 못하며, 오직 이념의 상부구조, 제도, 정치 기구만을 바꾸어놓을 뿐이다. -《공간의 생산》p.108 

저자가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 해결을 위해선 그 핵심인 도시에 대한 권리, 도시권을 자본이 아니라 도시 노동자들, 더 나아가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시권은 도시를 우리의 마음속 바람에 가깝게 바꿔나가고 재창조할 권리이며 도시 공간의 형성 과정에 행사하는 권력,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고 뜯어고치는 방법을 지배하는 권력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잉여의 생산과 이용의 민주적 관리를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을 바꾸다, 사회를 바꾸다는 식의 말은 적합한 공간의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합니다.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반란의 도시》를 통해 도시에 대한 권리를 외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도시권에 대한 요구는 우리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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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 (양장) - 탐닉과 폭력이 공존하는 초콜릿의 문화.사회사
캐럴 오프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많은 과자가 있지만, 그 중에서 초콜릿은 아마도 가장 인기있는 과자일 것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인기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을 뿐더러 가격마저 저렴합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싼 이 식품은 충치 걱정을 해야한다는 것 외에는 단점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초콜릿을 단호하게 '나쁜 음식'이라고 규정합니다. 음식에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가 적용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렇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초콜릿은 나쁜 음식의 한 표본입니다. 긴 세월동안 초콜릿은 많은 요리법의 변화가 있어왔지만 그 핵심적인 특징은 역사에 초콜릿이 기록된 이래로 한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카카오에 대한 기록은 3000여 년 전의 올메크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후에 마야족으로, 아즈텍으로 이어집니다. 카카오는 신의 음식이라 불리웠으며, 역사적으로 수천 년 동안 지배계급의 초콜릿에 대한 갈망은 하층계급의 고된 노동에 의해 채워졌습니다. 이는 아즈텍을 침략한 에스파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에스파냐가 아메리카를 노략질하며 알게 된 카카오는 에스파냐 수도사들에 의해 유럽으로 점차 알려지게 됩니다. 신의 음식이라는 카카오의 고유한 엘리트주의는 유럽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럽의 왕과 귀족들,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부유한 상인과 유명한 지식인들은 초콜릿을 즐겼지만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유럽의 기득권층이 초콜릿을 즐기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의 위력 덕분에 일반인들도 부유한 상인과 지배계급만이 누리던 기호식품들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초기엔 커피와 차와 같은 식품들이 인기를 끌었지만, 점차 초콜릿도 약효가 있다는 믿음이 퍼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미국에서 인기를 얻어 갔습니다. 네델란드의 판 하우턴은 카카오 분말을 생산하면서 현대 초콜릿의 역사를 시작했고, 존 캐드베리는 차별화된 포장과 마케팅 전략으로 초콜릿의 입지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는 초콜릿을 발렌타인데이의 일부이자 사랑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부활절과 연결시켰습니다. 허시 또한 다양한 전략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초콜릿계의 대부가 되었습니다. 초콜릿은 점차 개성있는 맛과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1890년대만 해도 벨기에는 콩고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1000만 명의 아프리카 인들을 죽였습니다.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지만, '이름만 바뀐 노예제'로 실존하고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은 경마에 참여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핸디캡이 심하게 주어진 개발도상국의 말들은 출발문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순종 경주마는 이미 경기장을 거세게 내달리고 있다. 세계무역 경마의 규칙은 당연히 가장 좋은 말을 가진 주인들이 고안해낸 것이다. - 피터 로빈스,《도둑맞은 열매》 

전 세계에 카카오를 공급하는 주요 생산국은 자주 바뀌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시작해서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서아프리카 국가들, 가나, 코트디부아르, 인도네시아까지 이어집니다. 이처럼 생산국이 자주 바뀌는 이유는 때론 정치적이였고 때론 경제적이였습니다. 초기엔 얼마나 노예들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느냐가 생산국을 결정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업형 농업방식이 생산국을 결정했습니다. 카카오 나무는 다른 나무의 그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과 같이 키우는 것이 자연적으로 옳은 방법이기 때문에, 카카오 나무만 키우는 기업형 농업방식은 자연의 논리에 역행하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화학비료와 살충제가 끊임없이 동반되어야 하며, 이를 멈출 경우 땅은 황폐화되고 버림받습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은 카카오 농민들에게도 거세게 불어닥쳤고, 농민들이 이를 버티지 못하면서 생산국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로 대표되는 자유화의 충격요법은 카카오 농민들에게 독약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카카오 가격은 마구 요동쳤고, 런던과 뉴욕의 상품거래소가 카카오 생산 농민들의 삶을 볼모로 잡게 되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세력은 원두를 평생 한번도 본 적 없는 상품 브로커들과 자체 비축분을 능란하게 관리하는 극소수의 다국적기업들입니다. 투기꾼들은 카카오 원두의 선물 가격을 예측하면서 헤지 마켓을 주물러댔습니다. 이에 대해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우푸에부아니는 다국적 초콜릿 기업과 은행들을 상대로 카카오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우푸에부아니의 완전한 패배이자 다국적 카카오 기업들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로서 전세계 카카오의 절반을 공급하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조차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후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이루어졌고, 극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카카오 생산을 장악했습니다. 무한경쟁 속에서 농민들은 카카오 원두를 더 저렴하게 생산해야 했고, 결국 카카오 재배법이 처음 시작될 때의 방식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노예제였습니다.

예전에는 노예가 비쌌다. 그래서 노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를 돌봐야 했다. 요즘에는 몸값이 싸다.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더는 쓸모없어진 노예는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일회용 인간이다. - 케빈 베일스  

결국 초콜릿 생산과정은 노예 시절과 변한게 없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선 노예제보다 악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예시절엔 왕이나 귀족, 유명한 지식인들과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날 경우 설령 길거리의 거지일지라도 초콜릿을 맛볼 수 있지만 정작 카카오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신의 음식입니다. 카카오 산업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콜릿을 먹어보기는 커녕 카카오로 뭘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카카오 농장 노동에 투입되고 있고 인신매매가 성행합니다. 빚을 지게 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들은 계약노동자라고 부르는 노예들이 됩니다. 브라이언 우즈, 케이트 블루웨트가 만든 다큐멘터리『노예제도 : 국제조사』에서 나온 한 아동 노동자의 말은 그들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초콜릿을 먹는 건 제 살을 먹고 있는 거예요"

이런 현실들은 오랜 시간동안 잊혀져 있었지만, 정의심에 불타는 보도기자들이나 용기있는 내부고발자들을 통해 점차 초콜릿 산업의 그림자를 대중들이 알게 됩니다. 소비자들은 노예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카카오 원두를 보이콧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불매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은 초콜릿 회사들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제품에 노예들이 생산한 카카오로 만들었는지 여부를 표기하라는 제도를 도입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자연식품업계의 개척자인 크레이그 샘스는「그린&블랙스」를 만들어 현대의 공정무역과 같은 제도를 초콜릿 시장에 도입했습니다. 유기농 초콜릿의 등장에 대해 UN 같은 국제기구들은 처음에는 사업의 미래가 어둡다며 농민들에게「그린&블랙스」와 거래하지 말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였고 UN은 기존의 권고를 철회했습니다.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으로 농민들은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재래종을 되살려냈고, 전보다 나은 수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정무역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닙니다. 기존의 생활은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합니다. 세관 장벽은 농민들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수 있는 직접 가공식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의 복잡함과 관료주의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쓰지 않고 어린이노동이나 노예노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카카오로 만들어지는 공정무역 초콜릿의 성공은 소비자들의 정치적 소비가 산업계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런 변화는 아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초콜릿은 정확한 출처를 알수 없는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길고 긴 초콜릿의 역사속에서 과연 이런 어두운 측면이 사라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초콜릿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소비자들에게 달려있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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