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기네스 팰트로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컨테이젼]에서 재난의 실체는 박쥐의 병균이 돼지로 옮겨가 변이되면서 사람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D-2'라는 자막과 함께 재난의 둘째날부터 시작된 영화는 바이러스의 확산 양상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다가 제일 마지막에 'D-1' 즉, 바이러스의 창궐 원인이 되는 화면들을 배치하는 영리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컨테이젼]의 주인공은 'MEV-1'라는 가상의 바이러스는 물론, 그 창발과 전이 앞에 무기력한 '인류'라는 시스템 자체다. 유명 배우들이 잔뜩 나오지만 소더버그의 차갑고 건조한 시선은 그들에게 스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낼 기회를 좀체로 주질 않는다. 그냥 일반인들 자리에 맷 데이먼, 기네스 펠트로, 케이트 윈슬릿, 로렌스 피시번, 마리옹 꼬띠아르, 주드 로 같은 유명인들이 들어가 있는 가상 다큐 내지 재연 드라마인 셈.
 

영화에 오버가 없다. 발빠르되 입은 무겁달까. 바이러스의 무차별 습격으로 혼돈에 빠진 세상 속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들. 한쪽에선 아노미를 틈타 폭동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불안과 광기, 군중심리를 악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질병의 원인을 추적하고 백신을 개발하는 등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때로 희생하기도 하는 모습을 카메라는 과묵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렇게 극적 장치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기존의 감염 재난물 장르의 공식을 철저히 피해가는데도 흥미진진. 진정 섬뜩한 작품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경로로 '나'를 감염시킬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면서 육체 이전에 이미 정신이 황폐해진 사람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사악해질 수 있는지, 그런 우리가 이루고 있는 '첨단' 문명, 그 고도의 사회계약과 과학기술 조차 기실 자연 앞에 얼마나 무력하고 취약한지 실감나게 보여주면서 보다 근원적이고 실질적인 공포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 문제에 대해 역시 사실적으로 파고 들었던 [트래픽] 이후로 간만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진면목을 엿보면서 몰입할 수 있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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