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옥의 묵시록 후반부에 커츠 대령(마론 브란도 扮)이 읊던 T.S. 엘리엇의 시 '텅 빈 사람들' 전문을 (거의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옮겨 둔다. 시의 첫 구절이 지옥의 묵시록 원안으로 알려진 조지프 콘래드의 중편소설 어둠의 심연에서 따온 인용구라고 하니 세 작품은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1.

 

우리는 텅 빈 사람들
우리는 박제된 인간들
모두 기대고 있으며
머릿속은 짚으로 꽉 찼다
슬프다, 우리의 메마른 음성은
우리가 함께 속삭일 때조차
마른 풀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건조한 지하실
깨진 유리 위를 달리는 쥐들의 발처럼

소리도 의미도 없다

 

형체 없는 모양, 색깔 없는 그림자,
마비된 힘, 움직임 없는 몸짓

 

죽음의 다른 왕국을 부릅뜬 눈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우리를 기억한다 잃어버린
난폭한 영혼들이 아닌
그저 텅빈 사람들로서
박제된 인간으로서

 


2.

 

꿈에서도 감히 마주한 적 없는 눈길들
죽음의 몽유 왕국에서
그들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저기, 그 눈(目)들이
부러진 기둥의 햇살 중에 있고
흔들리는 나무에 있다
그리고 목소리들,
저무는 별빛보다
희미하고 장중한
바람의 노래 속에 깃든 음성들


내가 저 죽음의 꿈 속 왕국으로부터
가까이 있지 않게 하도록
또한 쥐의 겉옷, 까마귀 거죽,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들판의 십자가 말뚝처럼
치밀한 변장을 하도록
더 가까워지지 않기를

 

황혼의 왕국에서 맞는
마지막 대면은 아니길

 

 

3.

 

이곳은 죽음의 땅
선인장의 땅
여기서 돌의 형상들이 일어나
희미해지는 별의 명멸 아래
죽은 이들의 손에서
탄원을 받는다

 

이곳은 죽음의 다른 왕국과
같은 곳인가
홀로 일어나
우리가 자비로움에
떨고 있을 시간
입맞춤하는 입술은
기도자를 부서진 돌로 바꾼다

 

 

4.

 

눈(目)들이 부재하는 곳
이곳엔 눈들이 없다
여기 죽어가는 별들의 계곡
이 텅 빈 계곡에
우리의 잃어버린 왕국들의 부서진 턱뼈

 

여기 마지막 회합 장소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듬으나
말하기를 기피하며
이 비대한 강변에 모인다


볼 수 없으나
눈들은 다시 나타난다
영속하는 별처럼
사멸의 황혼 왕국에 피는
다엽 장미처럼
텅 빈 인간들의
유일한 희망

 

 

5.

 

여기서 우린 선인장 주위를 맴돈다
가시로 덮인 선인장
아침 다섯 시면
우리는 선인장 주위를 돈다


이상과
현실 사이
동작과
행동 사이에
그늘이 드리운다

 

왕국은 그대들의 것

 

관념과
창조 사이
감정과
반응 사이에
그림자가 진다


인생은 길다


욕망과
충동 사이
발생능(發生能)과
존재 사이
본질과
그에서 파생된 것들 사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왕국은 그대들의 것


그대의
삶은
그대의 것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는다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는다
세상은 이렇게 종말을 맞는다
쿵 소리 한 번 없이 훌쩍임으로

 

 

The Hollow Men - T.S. Eliot

 

I.

 

We are the hollow men

We are the stuffed men

Leaning together

Headpiece filled with straw. Alas!

Our dried voices, when

We whisper together

Are quiet and meaningless

As wind in dry grass

Or rats' feet over broken glass

In our dry cellar


Shape without form, shade without colour,

Paralysed force, gesture without motion;


Those who have crossed

With direct eyes, to death's other Kingdom

Remember us -- if at all -- not as lost

Violent souls, but only

As the hollow men

The stuffed men.

 


II.

 

Eyes I dare not meet in dreams

In death's dream kingdom

These do not appear:

There, the eyes are

Sunlight on a broken column

There, is a tree swinging

And voices are

In the wind's singing

More distant and more solemn

Than a fading star.

 

Let me be no nearer

In death's dream kingdom

Let me also wear

Such deliberate disguises

Rat's coat, crowskin, crossed staves

In a field

Behaving as the wind behaves

No nearer --


Not that final meeting

In the twilight kingdom

 

 

III.

 

This is the dead land

This is cactus land

Here the stone images

Are raised, here they receive

The supplication of a dead man's hand

Under the twinkle of a fading star.


Is it like this

In death's other kingdom

Waking alone

At the hour when we are

Trembling with tenderness

Lips that would kiss

Form prayers to broken stone.

 


IV.


The eyes are not here

There are no eyes here

In this valley of dying stars

In this hollow valley

This broken jaw of our lost kingdoms


In this last of meeting places

We grope together

And avoid speech

Gathered on this beach of the tumid river


Sightless, unless

The eyes reappear

As the perpetual star

Multifoliate rose

Of death's twilight kingdom

The hope only

Of empty men.

 


V.


Here we go round the prickly pear

Prickly pear prickly pear

Here we go round the prickly pear

At five o'clock in the morning.


Between the idea

And the reality

Between the motion

And the act

Falls the shadow


For Thine is the Kingdom


Between the conception

And the creation

Between the emotion

And the response

Falls the shadow


Life is very long


Between the desire

And the spasm

Between the potency

And the existence

Between the essence

And the descent

Falls the shadow

For Thine is the Kingdom


For Thine is

Life is

For Thine is the


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This is the way the world ends

Not with a bang but a whim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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