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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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문장이었을 것이다. 자네는 어찌 죽으려는가. 인간은 어머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어머니 없이는 죽을 수도 없네. 스물 언저리.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을 읽으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마지막 대화에 울었던 기억이 있다. (여기서 '어머니'를 21세기 페미니즘에서 박제한 '모성'으로밖에 대입하지 못하겠는 분들은 조용히 이 포스트에서 나가주기 바란다.) 그 뒤 사반세기를 훌쩍 넘긴 시점에서 요코야마 히데오의 [빛의 현관]은 내가 읽으며 눈물을 떨군 두 번째 소설이 되었다. (그렇다고 두 소설의 문학적 성품과 수준이 동류 동급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Y주택' 의뢰인 일가족의 실종 배후를 좇으면서 유년을 회고하는 주인공 아오세 미노루의 유랑(流浪). 그와 이혼한 아내 유카리가 지향했던 정주(定住). 독일에서 일본으로 망명했다 터키에서 타계한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 그리고 프랑스에서 숨을 거둔 일본 화가 후지미야 하루코의 체재(滯在). 처음엔 세 가지 기둥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오가며 때로는 맞대고 또는 뒤섞으며 적당히 안주하는 소설로 읽혔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일본 거품경제 붕괴 전후의 냉엄한 현실에 수많은 사람들 사연과 위태로운 관계망 그리고 마법 같은 선의와 속죄가 씨줄 날줄로 엮인다. 무엇보다, '쉽사리 입에 담으면 너무 진부해지는 아름다움'에의 탐구 내지 추구라는 관념의 동심원 정중앙에 가계와 세대를 넘나드는 인연과 각자의 '삶'이 놓여 있다. 


[지와 사랑] 속 골드문트가 얘기한 '어머니'를 굳이 [빛의 현관]에 치환하면 한 사람의 '원풍경(原風景)'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백 페이지에 걸쳐 책은 말한다. 주인공 아오세 미노루의 유년 시절 기억과 그가 살아온 생의 모든 노정이 그의 원풍경, 가슴에 품고 있는 '노스 라이트'가 되었노라고. 인간의 진창과 하늘을 아우르려 애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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