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게 참, 선생님과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고도 묘하다.
지금 논문을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을 나는 정말 존경하고, 심지어 좋아한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처음봤다. 그분의 사무실에 가면 컴퓨터가 있는 책 상 말고도, 한복판에 공간을 꽉 채우는 책상이 있는데 언제나 빈틈이 없이 이것 저것 서류들과 책들 가득 쌓여있다. 어떤때는 바닥에도 늘어 놓아져 있다. 채점할 레포트들, 새로 준비하는 원고 자료 등.
선생님을 보면 권위자가 되는 게 쉬운일이 아니구나를 알게 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충전하고, 심지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낸다. 난 이까이꺼 논문하나 준비하는데 이리 때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도록 괴로워하는데, 그걸 저렇게 힘들어도 좋아서 평생 업으로 하시는 걸 보면 학자 재질은 따로 있구나 싶기도 하다. 게다가 가르치기까지 잘하시니 참 대단하시다.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집중이 되는 그런 포스를 지니셨다.
문제는 이 일중독 선생님만 보면 공부를 해야만한다는 강박관념이 마구 들면서, 제출해야하는 챕터의 데드라인이 오버랩되면서, 심지어 기한을 마구 마구 넘기기 태반이기에, 화악 좋아좋아의 마음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책감이 엄습하면서 슬슬 피하게 된다는 이런 참담함이. 배반이야 배반. 아이로니, 아이로니.
아 진짜. 근자에 건강도 안좋아지셨는데. 마구마구 즐거운 소식들, 예를 들어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샘솟아 글이 술술 써진다든지 하는 것을 들려드리고 싶은데. 앞에서 방실방실 재롱도 부려드리고 그러고 싶은데. 가장 중요 문제인 논문에 대한 압박이 너무 심해서 그게 안되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데 대한 죄의식으로 숨고만 싶은 것이다. 사실 그리 뺀질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부할 때 원래 느린 곰탱이인 것 뿐인데. 시간이 좀 넘들보다, 그리고 선생님보다는 한참 더 걸린다는 것 뿐인데. 참 안타깝다.
어찌 존경하옵는 선생님께서 건강도 빨리 회복하시고 이 못난 제자도 분발하여 선생님께 기쁨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