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한 번은 가고 싶은 성지 여행 세계여행사전 3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부 엮음, 이선희.이혜경.김귀숙 옮김 / 터치아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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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가고 싶은~” 시리즈 중 하나다. 누구나 한번쯤은 꼭 가보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바쁜 일상이나 사정으로 인해서 가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같은 경우도 그런 곳들이 참 많은데… 실 예로 나는 제주도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제주도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 찾아보려니 거의 없다. 흠, 그렇다보니 더더욱이나 갈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제주도의 사진이나 다른 분들의 여행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해야만 했다는 가슴 아픈 일이 있다.

 

이 “일생에 한번은 가고 싶은 성지여행”도 같은 맥락이다. 정말 나바호나 데빌스타워, 이스터섬, 앙코르와트 등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은 많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시간과 돈으로 귀착된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도대체 ‘언제쯤이면 편히 한번 잠을 잘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사치다. 하지만 가보고 싶다는 마음조차 갖지 말라면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어찌되었든간에 내가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곳들이 빼곡이 들어차있는 이 책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 책은 모든 여행지를 독자가 언젠가는 꼭 가본다는 가정하에서 When to go / Planning / Websites 등을 일목요연하게 적어놨다. 직접 그곳을 여행해서 찍은 사진과 여행을 하는데 필요한 정보들을 간결하게 요약해놨기 때문에 정말 그곳을 여행하겠다 마음먹는 사람이라면 첫 단추를 꿰는데 어려움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아마도 못가보겠지…?’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하는 나조차 그 정보들을 보면서 언제쯤 계획을 잡아서 가면 될른지 가늠해보기도 하는 망상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으니… 뭐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주제도 1.성스러운 풍경 / 2.거석유적과 수수께끼 / 3.신앙의 요람 / 4.웅장한 폐허 / 5.일상 속의 예배당 / 6.성소 / 7.순례길 / 8.의식과 축제 / 9.추모여행 / 10.영적 재충전을 위한 명상 여행 등 다양하다. 나라면 분류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 여행지들을 정말 깨알같이 모아놨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거석유적과 수수께끼>, <웅장한 폐허> 였는데 정말 이런 곳은 언젠가 꼭 가봐야 하는 곳!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들이 많았다. 여행지마다 약간의 칼럼이 있었는데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짧아서 여행 에세이만큼은 아니라고 2~3페이지 정도로 좀 길게 써줬더라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개하는 여행지들의 개수가 적어지더라도 한두장 정도 사진을 더 첨부하고 칼럼을 더 길게 했으면 정말 내취향이었을텐데…

 

으이구, 정말 사진만 보고 가보지는 못하니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감상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진들이 조금쯤은 나를 위로해준다. 정말 망상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언제가는 꼭 가보고 싶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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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무사 이성계 -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서권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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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시대를 열었던 태조 이성계. 타이틀만 놓고 보면 카리스마 있고 딱딱한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시골무사 이성계”. 한마디로 내가 알고 있는 이성계의 이미지와 전혀 맞아 보이지 않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왠지 모르게 초라하고 초췌해 보이는 듯한 초로의 남자가 말 위에 있는 모습의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읽게 된 책이었다. 남자를 위한, 남자소설이라는 평론가들의 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읽고 싶은 것을 읽은 것뿐이다. 남자소설이라고 해서 여자가 읽지 못할 까닭은 없었기에…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이라 칭한 책 속의 전투는 1380년 고려 말 전라도 지리산 부근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이겼던 “황산대첩”을 무대로 한다. 만 명이 넘는 적들, 천 명이 겨우 넘는 아군 병사들… 한때 아버지처럼 따랐던 최영이었지만 지금은 성계의 사병인 가별치들만을 이끌고 전투를 벌이라 명한 최영. 패한다면 자신도 죽고 나라가 흔들릴 터이고 이긴다 해도 천덕꾸러기의 변방 무사의 신세를 면치 못할 힘겨운 싸움이다. 중앙군을 이끌고 있는 변안열, 정몽주와는 사사건건 충돌하고, 왜군의 젊은 무장 아지발도는 강하다. 그렇다보니 성계의 처지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객관적인 눈으로 보기에 결코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전투였다. 다만 전투의 와중에도 병사들에게 계속 풍등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뭔가를 암시하고 있지만 과연 풍등을 어찌 사용할 것인지에 관해서는 직접적으로 그 내용이 언급될 때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으면서 거슬렸던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책의 타이틀은 ‘운명을 바꾼 단 하루의 전쟁’, 하지만 책 속의 성계는 한 나절 만에 전투를 끝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차이가 묘하게 거슬렸었는데 그 내용은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 후반부의 후반부에 가서야 반전으로 나타난다. 등장인물 소개에서 나오듯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황산대첩이 일어난 1380년 이후였지만 작가는 이성계의 군사를 자처하며 새로운 의지를 심어주는 인물로 정도전을 선택해 이야기의 흥을 더하고 반전을 이끌어낸다.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책 속의 이성계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사병인 가별치들과 함께하는 소탈하고도 정감가는 모습과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군들에게 아이를 잃고 미쳐버린 여인 하나까지도 신경을 쓰는 인간미 넘치는 모습과, 결단력과 통솔력까지 겸비한 그의 모습은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한 나라를 건국할 수밖에 없는 운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운명과 함께하는 것은 두란과 처명 부대를 필두로 한 이성계의 사병부대인 가별치들. 그들은 형제의 피를 나눈 자들로 결속력이 대단하여 서로를 귀히 여기며 신뢰하는 모습이 전투를 통해서 잘 그려져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전쟁을 이겼을까… 이 책에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도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골무사였던 이성계는 그들과 함께 왜군을 멸하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내 소감을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이렇다. 훌륭하다. 이렇게 재미있고, 또 장중하기도 한 역사소설 정말 오래간만에 읽었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어디를 봐서 남자를 위한 남자소설이라 말하는 것인지 모르더라.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남자들의 소설, 거친 표현들이 난무하고 성적인 표현도 거침없이 쓰여져 읽기가 껄끄러운 그런 소설과는 아예 그 태생 자체가 틀리다. 거친 표현 하나도 없이 여자인 내가 읽기에도 전투에 대한 흥분과 열기가 코앞에서 느껴질 정도로 정중하고 말끔한 문체들로 전투 장면을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정말 내 마음에 들었다.

아마도 황산대첩 이후 원대한 꿈을 갖게 된 이성계의 모습이 소위 말하는 남자들의 로망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이지… 싶지만 여자에게도 꿈이 있고 야망이 있다. 남자들 스스로가 여자들과 분리시켜서 말하는 원대한 포부라는 것은 남자들만을 위한 단어가 아니다. 나는 이성계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단 하루의 전쟁 이야기인 이 “시골무사 이성계”를 보면서 꿈의 실현이라는 것은 늦고 빠름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성계에게 방랑은 꿈의 연장이었다. 변방에서 말을 달리며 누렸던 자유와 인월에서 아지발도와 싸우며 품었던 꿈의 부피는 왕좌의 자리보다 훨씬 컸다.
- p.367 에필로그 中


이후 조선을 건국한 뒤 태조의 자리에 있다가 상왕을 거쳐 태상왕의 위치에 있던 시절, 이성계는 이미 늙어버린 두란, 처명과 함께 방랑을 했다고 한다. 꿈을 품고 그 꿈을 쫓던 그들에게 안락함이라는 것은 거친 변방보다도 못했던 모양이다. 뒷방 늙은이 신세를 면치 못했을 나이라는 패널티와 중앙의 업신여김까지 받으며 변방을 전전한 그가 조선이라는 500여년을 이어나갈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 작가분이 궁금해졌었다. 그래서 찾아본 작가의 이름은 서권. 이 책의 저자인 그는 2009년 5월 11일 이 장편 역사소설인 “시골무사 이성계”를 탈고한 후 경천 작업실에서 친구, 선후배, 지인 모두를 불러 그윽이 한잔 한 후 홀연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정말 아쉬웠다. 소설의 이성계의 나이와 작가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찾아보지만 그래도 ‘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건만 차라리 살아주지…라는 아쉬움 섞인 독백만 나직이 읍조려 본다.



PS : 가슴아픈 한가지는 책을 읽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책이 구겨져버린 것. 정말 마음 아파 죽겠다.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꺼내 보고 싶은 책인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 자신이 원망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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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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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나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문장이다. 당시에는 이게 뭔 소린가…싶어서 멀거니 그냥 바라만 봤던 기억도 함께 난다. 하지만 이제는 저 문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토니 웹스터는 평범한 인간이다. 남들 다 그렇듯 고교 시절은 죽이 맞는 친구들과 건실히(?)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고는 연애도 하고 또 실연도 하는 평범한 시절을 보냈다. 현재는 60대의 퇴직 공무원으로 이혼했지만 친구처럼 편히 지내고 있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평온함은 어느 날 자신에게 날아온 유언장으로 인해 부서진다. 유언장의 주인은 사라 포드 부인 - 대학시절 토니가 사귀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였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오백 파운드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에이드리언 핀, 그가 누구였던가. 토니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났던 고교시절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결코 잊지않으리라 생각했던 그의 친구이다. 하지만 토니의 기억에 그는 대학 시절 자살했다. 촉망받던 수재였던 에이드리언의 자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토니에게 상처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이름이 40년이 흘러 다시금 현실에서 불려진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토니는 대학에 진학한 이후 베로니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헤어지게 된다.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의 간격을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후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음을 고하는 편지를 보내오고 토니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겠다 축하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영국에서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여기까지가 토니의 기억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조금 다른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퇴색된 토니의 기억 속의 그 편지는 그 한 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그 편지 한 통이 모든 비극의 원점이었다. 뒤늦게 그 비극의 원인을 기억해낸 토니는 망연자실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하물며 한번 뱉어진 말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법. 수십년전의 독을 품은 언어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토니에게 되돌아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회한 뿐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바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후회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그를 동정할 수밖에 없는 나 또한 과거 누군가에게 그런 독을 품은 말을 던지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에 문득 마음이 불편해진다.

젊은 시절은 누구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기겠지만 토니가 그러했듯이 나또한 젊었기 때문에 용감했고 용감했기에 어리석은 일들은 많이 저지르기도 했다. 대부분의 일들과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퇴색되어지게 마련이지만 토니와 베로니카, 에이드리언 사이에 있던 이 사건처럼 시간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비극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일도 있으리라. 다시 한번 책을 들고 읽어내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시절을 회고해본다. 기억나지 않는 저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비극을 덮어버리고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무지가 죄를 덮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자신을 속이듯이 그렇게…

지금의 나는 그저 기도할 뿐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처럼…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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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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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야말로 안식이라고 누가 이야기 했는가. 여기에 죽지 않는 존재가 있다. 그에게 죽음이란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불과하기에… 환생이라고 하는 종교적이기도 하고 미신적이기도 한 장치로 인해 그는 영원을 살아간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죽는다고 해도 그는 어딘가 다른 공간의 “누군가”가 되어 다시 살아갈 것이다.

주인공인 ‘나’, 케이는 보통의 사람들이 으레이 그러하듯이 환생을 믿지 않는 자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쫓는 기자라고 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더 단단한 정신적인 무장을 한 그였지만, 종군기자로 일하던 시절 이라크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이브라힘 이라는 청년을 만나면서 그 단단한 무장에 균열이 일어난다. 스스로를 죽지 않는 존재라고 말하던 청년 이브라힘. 그는 이라크 전쟁으로 죽었지만 녹음기에 담긴 그의 이야기는 ‘나’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환생’ - 아랍인 청년 이브라힘은 자신의 수많은 전생들을 기억한다고 한다. 한 전생에서 그와 ‘나’는 살인이라는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십자군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들은 예수의 삶을 함께했던 여인으로서의 전생의 기억을 가진 이집트 와지르의 기록관과 십자군의 사제로 만나는데 십자군의 사제였던 ‘나’는 예수가 평범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진실을 숨기기 위해 이브라힘을 창으로 찌른다. 그것이 ‘나’와 이브라힘이 얽혀있는 전생. 그리고 그들은 현재 다시 만난 것이다. 우연처럼 그들이 다시 만난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브라힘이 말하는 전생들은 그가 죽지 않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0세기에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시간을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전생들 중 일부를 공유하므로 인해 아마도 이 만남이 없었다면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자신의 친모와의 얽힘을 위한 시간의 안배가 아니었을까. ‘나’의 친모는 신내림을 받고 ‘나’의 시간에서 스스로 떨어져나갔지만 친모의 넋을 기리기 위한 넋굿을 통해서 무당의 몸을 빌린 어머니와 만나서 다시한번 ‘나’의 시간과 친모의 시간이 교차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짊어졌던 과거의 짐들, 친모에 대한 원망과 슬픔을 비로소 벗는다.

이 이야기들은 시간의 파이프라인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무척 혼란스럽다. 게다가 환생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예수, 십자군 이야기 그리고 이라크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소설 속으로 끌어들여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를 만들어낸다. 그 운명에 저항하고자 몸부림쳤던 ‘나’의 어머니도 있다. 그렇다보니 한번 읽어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두번읽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느껴지는 것은 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 환생은 그 물음에 대한 조심스럽게 말해보는 하나의 해답이리라.

나는 환생을 믿지 않는다.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환생이라고 하는 현상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인간 중 하나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죽음이 삶의 끝이라면 그 허무를 향해 내달아야만하는 우리의 생이 얼마나 힘에 겨울 것이겠는가- 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죽음 뒤의 세상인 ‘천국’이라는 곳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것이 정답일지는 알 수 없다.

이 책속에서 말하는 환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유랑자일 것이다. 끝나지 않는 시간 속을 떠돌 듯이 살아가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로 교차되는 순간만이 생에 대한 의미를 갖겠지. 원컨대 환생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이브라힘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일만은 절대 없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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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도서관 - 여성과 책의 문화사
크리스티아네 인만 지음, 엄미정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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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다. 책에 관련된 내용인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펼쳐드니 책 속에는 많은 명화들이 있었다. 어떤 그림은 익숙하기도 한 것이 어디선가 봤었나보다- 싶기도 하다. 아이들이 둘인데 여기 저기서 하는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명화를 많이 보여주려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얼핏 그냥 훝어만 보다 보니 조금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더 자세히 보니 책 속의 그림들 주인공이 다들 여자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들은 모두약속이나 한듯하여 책을 들고 읽고 있다. 아무래도 주제는 여성들의 독서인가보다- 생각이 들고나니 그 의도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개구리 올챙이 때를 모른다고...그리 오래전이 아닌 과거에 우리 나라에서도 여자가 글을 알고 책을 읽는 것을 터부시 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라고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은 그렇게 여자들에게 한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도 같던 책이 지금처럼 누구나 원한다면 즐겨읽을 수 있게되기까지의 과정을 독서하는 여성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통해서 설명한다. 책을 읽다보니 독서하는 여성에 대한 그림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깜짝 놀란다.

무심코 그저 그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하며 보았던 작품들이었건만 이 책은 그 그림 하나에 얼마나 많은 시대적인 상황이나 의미가 담겨져 있는지를 알려준다. 우선 책속의 그녀가 입고있는 옷 등으로 시대를 추측할 수 있고 책을 읽고 있는 그녀들의 표정이나 자세들로 그들의 감정도 추측해낸다. 실제 그 그림을 그린 화가나 그림에 대한 숨겨진 뒷이야기 등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에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결국 이 책이 바란 것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여성들이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현재와 같은 시대 ㄲ지 투기의혹 길고 또 힘겨운 과정을 봤다. 하지만 단지 그 과정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공을 들인 것같다. 그래서 나는 책의 제목에서 의미를 찾는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호기심이 많은 존재로 묘사된다. 그 넘치는 호기심 탓에 열지말라던 상자를 열어버렸으니 오죽하랴. 그런 판도라의 이름을 붙인 "판도라의 도서관". 나는 그 제목을 보면서 과거 여성의 호기심이나 지적인 욕구를 부정적으로 대하던 것과 다르게 현재는 그런 여성들을 존중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그에 정중한 경의 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독서를 몇 안되는 취미로 갖고 있는 나는 정말 생각해보니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 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왠지 좋다. 원하는대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이 시간을 더 많이 즐겨야겠다. 여성들이여 힘겹게 쟁취한 이 행복을 맘껏 한번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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