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내 마음이 나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문장이다. 당시에는 이게 뭔 소린가…싶어서 멀거니 그냥 바라만 봤던 기억도 함께 난다. 하지만 이제는 저 문장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토니 웹스터는 평범한 인간이다. 남들 다 그렇듯 고교 시절은 죽이 맞는 친구들과 건실히(?) 보내고, 대학에 입학하고는 연애도 하고 또 실연도 하는 평범한 시절을 보냈다. 현재는 60대의 퇴직 공무원으로 이혼했지만 친구처럼 편히 지내고 있는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평온함은 어느 날 자신에게 날아온 유언장으로 인해 부서진다. 유언장의 주인은 사라 포드 부인 - 대학시절 토니가 사귀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였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오백 파운드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에이드리언 핀, 그가 누구였던가. 토니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났던 고교시절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결코 잊지않으리라 생각했던 그의 친구이다. 하지만 토니의 기억에 그는 대학 시절 자살했다. 촉망받던 수재였던 에이드리언의 자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토니에게 상처가 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이름이 40년이 흘러 다시금 현실에서 불려진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토니는 대학에 진학한 이후 베로니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헤어지게 된다.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서로의 간격을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후 에이드리언이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음을 고하는 편지를 보내오고 토니는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겠다 축하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영국에서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여기까지가 토니의 기억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과 조금 다른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퇴색된 토니의 기억 속의 그 편지는 그 한 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그 편지 한 통이 모든 비극의 원점이었다. 뒤늦게 그 비극의 원인을 기억해낸 토니는 망연자실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을 수 없다. 하물며 한번 뱉어진 말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는 법. 수십년전의 독을 품은 언어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토니에게 되돌아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회한 뿐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바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후회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그를 동정할 수밖에 없는 나 또한 과거 누군가에게 그런 독을 품은 말을 던지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걱정에 문득 마음이 불편해진다.

젊은 시절은 누구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기겠지만 토니가 그러했듯이 나또한 젊었기 때문에 용감했고 용감했기에 어리석은 일들은 많이 저지르기도 했다. 대부분의 일들과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퇴색되어지게 마련이지만 토니와 베로니카, 에이드리언 사이에 있던 이 사건처럼 시간조차 해결해주지 못하는 비극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까지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그런 일도 있으리라. 다시 한번 책을 들고 읽어내린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시절을 회고해본다. 기억나지 않는 저 너머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비극을 덮어버리고 싶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무지가 죄를 덮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자신을 속이듯이 그렇게…

지금의 나는 그저 기도할 뿐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처럼…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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